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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법칙 - 개정완역판 ㅣ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2
로버트 그린 외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3월
평점 :
로버트 그린은 첫 책인 이 책으로 ‘부활한 마키아벨리’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도덕과
윤리를 내세우기보다 감정을 배제한 권력 게임의 법칙에 집중하는 점에서 정말 그렇다. 지위나 힘의 영향력을 모른 척하거나 평등과 정직성을 강조하는
것은 순진하거나 순진한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그린의 생각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외양을 의식하며 하는 한, 권력은 단순히 부의 축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의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가정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권력관계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린은 3천 년 사이의 역사 속 여러 나라와
역사적 인물을 통해 권력 강화(법칙 준수)와 권력 약화(법칙 위반) 사례들을 살펴보고,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행사할 때 고려할 48가지
법칙을 정리했다. 관건은 통제력을 잃지 않고 이성적으로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을까이다. 우리는 한 번뿐인 자기 삶의 군주라 이 문제는 늘
난관이다.
“항상 선하려고 애쓰는 자는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틈에서 반드시 파멸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군주는
선하지 않게 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렇게 배운 바를 필요에 따라서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ㅡ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군주론』
“권력은 외양을 가지고 게임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 당신은 많은 가면을 활용하고 기만 전략이 가득한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한다. 기만과 가장을 추하고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다양한 차원에서 기만이 필요하고,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주는 것은 거짓말하고 속이는 능력이다. 그리스 신화,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 고대 중동의 길가메시 서사시를 보면
기만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신들의 특권이다. 예를 들어, 영웅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교활함에 맞서고 신들의 지혜와 기만술에 필적하는 능력,
그들의 권력 일부를 훔치는 능력으로 인해 평가받았다. 기만은 문명세계에서 사용되는 고도의 기술이며 권력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수단이다.”
ㅡ 로버트 그린 『권력의 법칙』, 서문
그린은 권력 게임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말하며, 중요한 기술을 갈고닦고 세련된 행동규칙을 익힐 것을 강조한다. 여러
가면으로 자신을 재창조하더라도 상황을 냉철히 보지 못하면 허사다. 먼저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 파악해야 한다. 위험하고 다루기 힘든 다섯 가지
유형(거만하고 자존심 강한 유형, 자신감이 없는 유형, 의심이 많은 유형, 뱀처럼 교활하면서 기억력이 뛰어난 유형, 솔직하고 겸손하며 대체로
지능이 뛰어나지 않은 유형) 파악과 그에 대한 대처는 특히 중요하다. 나폴레옹은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외무장관 탈레랑을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종말을 자초한다. 탈레랑이 음모를 꾸미게 되었고 나폴레옹은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서서히 통제력을 상실했다. 엘바 섬에 유배 중이었던 나폴레옹이
탈출한 것도 나폴레옹의 영원한 몰락을 꾀하려는 탈레랑의 작전이었다.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을 연출할 줄 알았던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는
상징으로 왕권의 위엄을 공고히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촌스럽고 소박한 이미지로 차별화된 이미지를 만들어 선거에서 유리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나:really?). 테슬라에 대한 너무 지나친 공격으로 에디슨의 평판은 심하게 손상되었다. 노벨물리학 상을 테슬라와 공동으로 받을
바에야 아예 받지 않겠다고 한 에디슨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평판이 훼손되더라도 감행할 때는 적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을 매력적인 악당으로
부각시킬 줄 알아야 한다. 즉 “때론 상대보다 멍청하게 보이고, 때론 마치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할 줄 아는 유연함을 갖춰야 한다.” 재무 장관
니콜라스 푸케는 항상 관심의 중심에 있고 싶어 하는 루이 14세의 심기를 건드려 파멸을 맞았다. 갈릴레오는 메디치가의 지적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후원을 받는 데 성공해 개인적 성취를 얻었다. 루머와 신비화 전략을 이용해 자신을 눈에 띄게 할 줄도 알고, 덫을 놓아 상대방을 타격할 줄도
알며, 논쟁이 아니라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죄상을 밝히는 연설을 하는데 한 야유꾼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당신은 스탈린의 동지였소.” 그가
외쳤다. “그렇다면 왜 그때 그를 저지하지 못했소?” 흐루시초프는 야유꾼을 보지 못했는지 이렇게 고함을 쳤다. “방금 누가 말했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긴장된 가운데 몇 초간 침묵이 흐르자 마침내 흐루시초프가 조용히 말했다. “자, 이제 여러분도 내가 왜 그를 저지하지
못했는지 알았을 거요.” 스탈린의 면전에서는 누구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고 말로 설득하기보다 스탈린을 마주 대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사람들에게 직접 느끼게 했던 것이다. 실연은 직관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쟁이 필요
없다.」(p116~117)
인간은 기만적인 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진짜 속셈을 감추기도 하고, 부정직함을 정직하게 드러낸 것 때문에 존경을 받기도
한다. 나는 도덕과 윤리가 부동의 가치가 아니라 사회 유지를 위한 전략적 합의라고 생각한다. 자비나 의리가 아니라 그들이 느낄 우월감과 이익이
보장될 때 이 사회는 더 잘 돌아간다. 전략적 관대함의 부족으로 사회 전제가 안 풀리는 것도 본다.
쇼펜하우어는 “지능은 집중의 정도이지 확산의 정도가 아니”라고 했지만, 능력은 확산의 정도로도 평가된다. 인플루언서, 아이돌의
영향력이 막강한 요즘, 로버트 그린이 말하는 <숭배와 같은 추종을 창출하는 5단계 전략>은 그러한 권력의 메커니즘을 잘 설명한다.
1단계: 애매모호하고 단순하게 표현하라 ㅡ 2단계: 지적인 요소 대신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를 강조하라 ㅡ 3단계: 조직된
종교의 형태를 빌려와 체계를 갖춰라 ㅡ 4단계: 수입의 원천을 감추어라 ㅡ 5단계: ‘우리 vs 저들’의 대립구도를 만들어라
이것을 유지, 방어하는 그린의 조언도 설득력 있다.
「추종 세력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보다 집단을 속이는 일이 더 쉽고 집단이 당신에게 더 큰 힘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위험은 있다. 어느 순간 집단이 당신의 정체를 간파하면, 당신은 한 사람이 아니라 분노하는 군중을 마주해야 한다.
성난 군중은 과거 당신을 따르던 때에 보이던 열정만큼이나 격렬하게 당신을 짓밟을 것이다. 약장수는 언제든 이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그래서
만병통치약이 엉터리이고 자신의 말이 속임수라는 것이 드러나기 전에 종적을 감춰야 했다. 너무 굼뜨게 움직이면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
군중을 다루는 것은 불을 다루는 일과 흡사하다. 따라서 혹여 의심의 불꽃이 튀지 않는지, 군중을 선동해 당신에게 대항하려는 적이 숨어 있지
않은지 늘 촉수를 세워 살펴야 한다. 군중의 감정을 상대하려면 적응력을 키워야 하고, 그들의 분위기나 욕구에 맞춰 그때그때 민첩하고 적절하게
움직여야 한다. 첩자를 이용하라.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으면서 언제든 튈 수 있게 짐을 싸두어라.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을 정상적인 환경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집단에 집어넣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고립되어 있으면 특정한 암시나 협박에 굴복하기가 더 쉽다. 적절한 상대를 고르라. 그래야
당신의 정체가 탄로 났을 때 군중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다.」(p204~205)
권력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의지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역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감옥에 갔다가 금방 풀려나는 한국 재벌 사례를 생각하면 바로 이해된다. 미켈란젤로의 힘은 화가로서의 재능에 의존하는 집중적 권력이었다면, 닉슨
재임 시절 외교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의 힘은 상호의존적인 정치계에서 확장적인 권력이었다. 그린은 특정한 권력자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집중적인
형태의 힘이 확장적인 힘보다 더 많은 자유를 준다고 말했다. 재능과 전략이 뛰어나야 하는 만큼 집중적인 힘의 권력자는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적 4세기의 사상가 손자가 쓴 『손자병법』의 핵심적인 전략적 기조는 적을 완전히 박살 내는 것이다. 항우는 유방을 그렇게
처리하지 못해 불운을 자초했고,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그렇게 처리해 한고조 같은 통치자가 되었다. 아량을 베풀어 좋게 된 사례보다 그 반대 경우가
더 많다. 한국의 친일파 청산 문제도 마찬가지 아닌가.
「동물들은 정해진 유형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고 죽이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오로지 인간만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고, 임기응변하며, 규칙과 습관의 무게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와 같은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정해진 일과, 즉 동물적 본성에 굴복했을 때의 편안함을 선호하여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아무런 노력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어리석게도 그들이 다른 사람을 동요시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동요시키는 방법으로 두려움을 주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주도권을 쥐게 된다. 때때로
우리는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타격을 가함으로써 그를 흔들어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방법이다.」(p318)
자기만의 세계에서 고립되어 있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사람 속에서 동맹을 구하고 어울려 군중을 방패막이로
삼아야 한다. 소셜 커뮤니티도 그런 속성이 있고, 요즘 페미니즘 운동에 힘이 실리는 것도 그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잊지 말자. 내적 독립성을
잃지 말되 폐쇄성은 몰락의 제 1조건이다.
그린은 궁정의 정치를 지배했던 법칙들이 권력의 법칙만큼이나 시대를 초월한다고 말한다.
①과시하지 마라, ②태연한 자세를 생활화하라, ③아첨을 아껴라, ④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 ?상대에 따라 말과 행동을
달리하라, ?나쁜 소식은 다른 사람이 전달하게 하라, ?주인에게 우정이나 친밀감을 보이지 말라, ?윗사람을 절대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말라,
?상사의 호의를 바라지 말라, ?외모나 취향을 조롱하지 말라, ⑪냉소주의자가 되지 말라, ⑫자신을 관찰하라, ⑬자기 감정의 주인이 되어라,
⑭시대정신에 보조를 맞춰라, ⑮즐거움의 원천이 되어라
위 법칙뿐 아니라 이 책에 제시되는 많은 법칙들은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선별된 선택들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무조건 수긍하기에는
파렴치하고 비굴한 조건도 상당히 보인다. 그러나 오랜 진화 속에서도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은 변함없다는 점에서 늘 염두 해야 할 사항이다.
이를테면 ‘본심을 감추고 남과 같이 행동하라’는 그린의 law 30은 안정 지향적이지만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나쁜 악습으로도 느껴진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경멸하고 모욕적인 발언으로 환영받았던 오스카 와일드가 그렇지 않았기에 파멸했다는 걸 생각할 때 생존전략으로서는 똑똑한
처세술이다.
그린은 이 책을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읽거나, 당장 어떤 조치가 필요한 시점에 읽어도 무방하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안다고 고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권력은 경멸하거나 삐딱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주제이다. 외교 전쟁으로 국가 간 권력 싸움에 서민들 일상이 출렁이는
지금 시점에서도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타협은 일체 없이 확실한 방법론만 알리는 그린의 책들을 읽으며 자꾸 하게 되는 생각은 이
방법을 나쁜 마음으로 이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거다. 알다시피 마키아벨리나 니체 사상이 나쁘게 이용된 선례도 있다. 권력을 재미 삼아
휘두르는 자에게 벌이 내리길 바랄 수만도 없고, 인간 사회가 현명한 선택과 결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으니 만감이 교차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