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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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그대에게

작품은 그것에 몸 바치는 자를 작품이 불가능하리라는 시련에 처하는 지점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원래 밤에 이루어지는 경험이며 밤 그 자체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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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가 지옥으로 찾아간 것, 그것은 단 한 가지이다. 오르페우스의 작품의 모든 영광, 그의 예술의 모든 힘, 그리고 심지어 낮의 아름다운 밝은 빛 아래 누리는 행복한 삶의 욕망조차 이 단 하나의 관심에 희생이 되니 그것은 밤 속에 밤이 감추고 있는 것, 또 다른 밤, 모습을 드러내는 그 감춤을 직시하는 일이다.”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5장 영감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를 찾아 지옥까지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으며, 불안과 조급함으로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에우리디케를 욕망이라 하든 꿈이라 하든 영감이라 하든 창작자에게 그 의미는 도저히 포기가 안 되는 열망이다. 신해철은 평생 그 열망을 좇았다. 그의 데뷔곡이자 불후의 명곡이 된 <그대에게> 가사처럼(“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음악은 진실로 마약이며, 한 번 중독되면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 포크 록의 대부 한대수

 

신해철은 음악 천재도 아니었고 재능이 없다는 숱한 지적을 받았음에도 평생 섹스도 결혼도 안 해도 좋으니 음악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며, 음악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집도 재산도 가지지 않겠다고 간절한 신탁을 요청했고, 신은 마침내 그것을 허락했다.” 강변가요제에서 예선 탈락하자 그는 넉 달 뒤에 열리는 대학가요제에 몰두했다. 아버지 눈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네 문방구에서 산 멜로디언과 스펀지로 뮤트mute시킨 통기타를 이용해 하룻밤 만에 쓴 <그대에게>는 그렇게 탄생했다. 4박자 8비트의 전형적인 팝 록에 고전적인 코드 진행과 순진무구한 사랑타령 같은 이 곡은 그가 무한궤도-솔로-넥스트-크롬-비트겐슈타인-넥스트-솔로-넥스트를 거치는 긴 세월 동안에도 떼어내기 힘든 영광이자 극복 대상이기도 했다. 이 곡의 신비한 탄생과 마력은 그도 우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비밀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연결되었다.

 

*<그대에게>에 대한 내 소견 첨부 : http://blog.aladin.co.kr/durepos/10050701

 

신해철의 음악만큼이나 우리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우리들이 꿈꾸는 자유를 추구하는 이였기 때문이다. 시련과 대가와 굴욕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의 길을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꿋꿋이 헤쳐 간 사람이었다. 시류와 유행에 타협하기보다 스스로의 인문학적 화두를 음악을 통해 풀어나가려 했고, 솔로 2Myself- 넥스트 1Home- 2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3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을 자아-가족-존재-세계를 탐구하는 콘셉트 앨범으로 완성했다. 한국에서 이런 콘셉트 앨범은 드물뿐더러 제대로 완성된 예도 없다. 발라드, , 하우스 뮤직, 아트 록, 메탈 등의 온갖 장르를 종횡무진하면서 인정 받든 받지 못하든 개의치 않고 묵묵히 수행한 것은 의지만으로도 힘든 일이다. 그의 이 끝없는 호기심과 실험과 추구를 나는 어쩐지 이해할 거 같다. 1968년 생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겪은 삶과 문화가 그에게 피와 살로 녹아 있는 게 이제는 눈에 잘 들어온다. “대한민국 첫 번째 영상 세대인 동시에 마지막 라디오 세대였고, 가장 민감한 10대에 ‘MTV'의 문화적 충격을 받은 세대였다. SF와 판타지 장르에도 심취했던 그는 음악이 할 수 없는 영상 서사를 펼치고픈 예술적 욕망을 자연스레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성장과 맞물려 그는 영화음악 감독으로 사운드트랙 앨범을 다섯 편(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김홍준 <정글스토리>, 송능한 <세기말>, 박정우 <쏜다>, TV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냈다. 극영화는 모두 흥행 참패했고, 넥스트가 절정의 기량일 때 아예 정규 음반으로 제작한 <영혼기병 라젠카>가 아동용 TV 만화였던 건 얼마나 웃픈 일인가. 강헌의 말처럼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었다. 강헌 기획으로 제작한 <정글스토리>의 흥행 적자를 신해철의 OST가 만회해 주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그의 삶 전체는 이런 가교에 있었다.

 

 

* 편견과 가치평가 사이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가자. 이 곡이 대학가요제 그랑프리를 넘어 대회 다음 날부터 무명 록 밴드 음악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중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자, 이 평지돌출에 놀란 시샘이 덩달아 쏟아졌다. 멤버 전원이 명문대 재학생인 데다 유력한 재벌 그룹 아들까지 끼어 있었으니 음지의 다양한 질투는 거개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초호화판 기자재들이 무한궤도 전용 연습실에 즐비하다는 이죽거림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이 곡의 멜로디를 문방구제 멜로디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길이 없었으므로. 그러나 <그대에게>를 만 스무 살 아마추어 대학생이 아니라 이들 귀공자군단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전담 작곡 팀이 만들어주었다는 낭설은 노골적인 모욕이었다. 가진 자프레임은 짧은 무한궤도 커리어 뒤에도 계속 유령처럼 신해철의 행보 주위를 기웃거리게 된다.”

 

서태지는 표절 논란 말고는 문화대통령으로서 프리미엄을 누린 데 반해,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등 음악 저널리즘에게서 인색한 대우를 받는 복수를 감내해야 했다. 세기말에 이르러 파상적으로 진행된 각 매체의 베스트 100’앨범 선정에 있어넥스트 앨범은 결코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략)

어지러움 음악 행로가 새로운 분야를 향한 창조적 도전의 의미보다는 신해철 자신 혹은 동료와의 음악적 신뢰 결여로 읽힌다는 게 의심의 출발점이다. 전선이 넓어지면 집중력은 당연히 그만큼 엷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경기장의 이동은 변화보다는 변덕에 가깝지 않은가? 이와 같은 유목적 행로는 특히 록 정통주의자에게 참을 수 없는 희롱으로 느껴질 것이다.

장르로 범위를 좁히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앞선 말한 명반 선정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록 밴드를 음악적 아이덴티티의 토대로 구축했다고 해도 트로트로부터 동요와 민요까지 장르 전선을 확대한 조용필의 경우에는 거의 모욕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아무리 진지한 음악적 접근 태도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모든 장르를 커버하려고 시도하면 예술적 탐욕의 혐의를 받거나 상아한 세대 취향을 노린 상업적인 의도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조용필과 1990년대의 신해철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은 일련의 앨범에 걸쳐, 그리고 한 앨범 안에서 극단적인 장르 어법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신해철 앨범에 가해지는 가장 일반적인 공격은 장르의 백화점식 진열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다.

(중략)

그는 앨범 한두 장으로 일시적인 상업적 재미를 보려고 하면 모르겠으나 한 사람이 음악 인생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그렇게 시도한다면, ‘이 사람은 이것이 콘셉트구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강헌

 

 

 

* 락과 그 외 사이

(신해철) “나의 음악적 원체험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혹시 디스코가 아닌지? 농담이 아니다. 나중에 만난 헤비메탈처럼 충격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오케스트라의 사운드(특히 홀스트의 <혹성>, 베토벤의 교향곡,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와 보니 엠의 디스코는 굳이 말하자면 1970년대 후반에 10대를 시작한 나의 음악적 원체험의 공간에 아직 잔존하고 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뒤로 일관되게 나타난 오케스트레이션을 향한 욕망도 아마 그런 영향이 아닐까? 그리고 나중에 프로그래시브를 만나자마자 확 끌린 것도 아마.”

 

(강헌) 당신은 스쿨 밴드 적부터 딥 퍼플 같은 하드 록 사운드에 매료되었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신해철) “아니, 다만 원체험의 중심축에 록이 없었을 뿐이다. 올바른 음악의 태도는 정통적인 것과 새로움을 찾아다니는 것의 조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후자에 좀 더 매혹되어 있을 뿐이다.”

ㅡ 『리뷰4(1995)

 

* 서양음악과 국악 사이

(신해철) “이순신 장군 영화는 단체로 관람하면서 공짜인 국립극장의 국악 공연은 한 번도 데려가지 않는 게 우리 교육의 실상 아닌가? 나와 내 세대는 서양음악을 통해 음악을 익혔고, 앞으로도 그 질서는 본질적으로 변함없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나의 임무는 명확하다. 서양음악을 제대로 흡수하고 소화하는 것,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나의 음악 언어를 완성하는 일이다. 나는 발라드와 댄스 뮤직은 물론, 랩과 메탈, 그리고 아트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양 음악을 섭렵하는 중이다. 몇몇 사람은 내 음악이 너무 서양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생각해보자. 바흐부터 바르토크까지 이들의 음악만을 레퍼토리로 삼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만이 국가의 자랑인가? 우리 대중음악계엔 서양의 록 음악에 우리 국악을 접목시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김수철 형이 있다. 그의 끈질긴 자세를 나는 존경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나의 몫이 아니며, 국악에 대한 접근은 조급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실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앨범부터 국악적인 요소의 고용을 고려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결국 빼버리고 말았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할까? 이쯤 되면 우리 대중음악에서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해진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나는 끊임없이 빈 곳을 채워가는 링커가 되고 싶다.

ㅡ 『리뷰4(1995)

 

* 386 세대로서 고뇌하는 비겁자

뮤지션으로서 신해철의 아이덴티티는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이) 유년에서 청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이루어진 주체 형성의 산물이다. 박정희 시대를 지배한 권위적인 가부장주의 아래서 유년을 보내고 전두환 시대의 폭력적인 비민주성을 정면에서 마주한 청년, 어쩌면 한국 근대에서 지극히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해철의 주체 형성 과정은 그로 하여금 뮤지션십과 시민성을 분리하지 않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신해철은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이 뮤지션십 속에 실종되지 않은 한국 대중문화의 첫 번째 세대이며, 그는 자신의 시대가 부여한 이 세대 정신을 시치미 뚝 떼고 외면하는 식의 선택을 포기했다. 즉 가족 관계 속에 숨은 세대 갈등과 종교적 경험을 통해 양성된 존재론적 근원에 관한 성찰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는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더욱 정교하고 사변적인 수사학과 현실주의적 문제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강헌

 

87학번이었던 그는 전태일이 분신한 청계천 거리에 6월 항쟁으로 나섰다. 백골단에게 잡혀 폭행을 당하는 여학생을 구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숨어서 봤던 경험(‘고문의 망치사건)은 그가 평생 스스로를 ‘(고뇌하는) 비겁자로 말하며 자신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는 원체험이 되었다.

 

* 뮤지션과 시대의식 사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하얀 그림자출신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선율을 만들었고, 리더인 신해철이 가사를 붙였다. 신해철은 해설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삼국-고려 시대까지 족내혼이었다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중국에서 수입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제도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정작 본바닥인 중국조차 1908년에 동성동본 금혼 관련 법을 폐지했으며, 따라서 미풍양속이란 주장도 개소리라고 말이다.”

강헌

 

정치를 혐오했고 연예인에게 금기시되는 정치적 행동으로 어떤 불이익이 올지도 모르는데도 신해철은 노무현 대통령 찬조 연설에 나섰다. 그를 지지하는 결정적 이유로 우직함을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자신이 살면서 지키고자 한 애티튜드였잖은가. ‘솔직함, 달변, 열정, 진정성, 약자에 대한 옹호, 정면돌파... 젠장 또 눈물이.

남들과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무서움보다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무서움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그냥 자기 방식을택한 그.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그는 정치 혐오와 관망의 자세를 버리고 논객이자 행동하는 시민으로 거듭난다. 대마초 합법화에 대해서, 간통죄 폐지에 대해서, 학교 체벌 금지 운동을, 이라크 파병 반대 1인 시위, 이명박 정책과 기독교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면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다작가, 다변가인 그는 꼬박 3년간 단 한 곡도 발표하거나 녹음하지 않고 홀로 외롭게 예술적 탈상을 지켰다.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노무현 추모 앨범 脫傷 -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찍힐까 봐다들 몸을 사리던 때 그는 <Goodbye Mr. Trouble>로 돌아왔다. ‘끝까지 살겠소 죽어도 살겠소 우리 살아서 그 모든 걸 보겠소탄식으로 절절한 그 곡은 이제 신해철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으로 남았다. 죽어서도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을 만들게 한 못 말리는 그대여.

 

 

 

우리 앞의 생이 끝나기 전까지 이별의 "안녕"은 없어

시대와 시대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음악과 음악 사이에서 음악만이 아니라 언제나 돋보이는 목소리이기도 했던 그. 그가 꿈꿨던 음악, 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조차 실현하지 못한 밴드 불모지 한국에서 그가 N.EX.T로 실현하고자 했던 행복한 꿈을 이제 누가 해나갈 수 있을까. 여기 응원하고 있는 사람 있어. 힘내시오! 

 

왜 신해철은 그의 노래 <민물 장어의 꿈>처럼 생애를 걸고 밴드로 회귀하는 몸부침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자본이 지배하는 문화 산업의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밴드야말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음악 청년이 자신의 상상력을 억누르는 통제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예술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들어준 음악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연주를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이 표현할 욕망을 지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음악을 창조하고 연주하는 것, 나아가 자신이 녹음하고 자신만의 프로덕트 메커니즘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헌

 

미완의 프로그레시브, 미완의 록, 미완의 재즈, 미완의 발라드새로운 것도 아니고 낡은 것도 아닌, 뭔가 좀 그런 것같았던 무한궤도의 아쉬움을 끝까지 완성해 보고자 했던 그.

 

이 앨범의 백미는 역시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이 노래는 신해철의 기나긴 디스코그래피에서 매우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대에게>가 연가의 담론을 빌려 음악에 대한 지극한 충성심을 표현했다면, 장엄하면서도 순수하며 솔로와 코러스의 콜 앤 리스폰스가 효과적으로 잘 배치된 이 노래는 신해철이 짧은 평생을 두고 일관되게 추구한 존재의 다양한 의미와 가치의 균등성이라는 화두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도입부는 대단히 서정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템포는 느긋하며 강박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이 속한 야만적인 약탈의 시대로 인해 나날이 파괴되어가는 동시대의 젊음에게, 또한 다름없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반문하고 다시 반문한다. 신해철이 지닌 지성의 훌륭한 애티튜드는 그가 우리에게 답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는 모든 이의 다양한 꿈을 응원하는 한편으로 희망을 잃지 않게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한다는 데 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수많은 이가 (우울한 사춘기 시절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준) 신해철을 여전히 정신적 구루guru로 숭배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노래가 증명하듯이 그의 권위는 군림이 아니라 상처와 약함에 대한 동감에서 비롯한다. 나중에 이 애티튜드가 노래 텍스트를 넘어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가 품은 정치적 담론으로 발전할 것이다.”

강헌  

 

 

 

My Epilogue

    

신해철 리뷰를 정리하다 잠들었고

오늘 하루를 걱정하며 서둘러 눈떴다.

내가 쓰는 글이 내게 빛이 돼 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복잡하게 얽혀 있음에도 존재의 빛으로 증폭되는 저 풍경처럼.

내게 유일한 희망은 나다.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 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N.EX.T <The Dreamer>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N.EX.T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ps 솔직 1) 단도직입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신해철이 Crom 프로젝트 작업할 때 발표한 '일상으로의 초대오르골 꼭! 받고 싶습니다.

ps 솔직 2) 팬심을 아무리 동원해도 신해철 Jukebox Musical The Hero는 음.... <정글스토리> 2가 되기 십상이겠습니다; 설정, 스토리가 더 현대적이고 제대로 보완되지 않는다면, 이건 우리끼리 웃으며 추억하는 걸로; 이것 때문에 별 하나 뺐습니다. 강헌 선생님, 고생 많으셨고 매우 감사합니다. 이 책 보며 울고 웃으며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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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21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우린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전망 좋은 직장, 가정 안에서의 안정,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우리 가치의 척도가 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아마도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AgalmA 2018-04-22 07:13   좋아요 1 | URL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랑 <나에게 쓰는 편지> 가사 조합으로 댓글 마무리라니ㅎㅎ 신해철 리뷰에 엄청 어울리는 댓글이네요ㅎ👍
저도 신해철처럼 재산 모으는 거 신경 안 쓰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끊임없는 불안정, 빈 잔고로 살아왔지만 이 생활에서도 후회할 만한 게 있죠. 이것도 다 경험해봐야 아는 거지만. 마음 자세와 삶이 늘 일치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인생은 어떻게 살든 아쉬운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