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펼쳐보는 문화재 연표 그림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역사 공부를 할 때는 확실히 교과서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나 문화사, 문화재 관련 부분은 각종 보조교재나 참고서적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 어렸을 적, 계몽사판 컬러학습대백과 사전을 비롯해 무슨 무슨 백과사전이 한 질 갖춰져 있으면 무슨 시험이라도 다 잘 볼 것 같았던 들뜬 마음이 새삼 기억난다.

지리, 사회 공부에서 사회과부도가 중요했던 것처럼, 시각적으로 다양한 자료가 잘 정리된 역사 백과가 있으면 그것만 들여다봐도 지식은 차곡차곡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서평단 도서 가운데 하나는 <한눈에 펼쳐보는 문화재 연표 그림책>(이하 <문화재 연표>)인데, 사실 이 책 하나만 보자면 ‘음, 이거 하나 있으면 각종 숙제와 수행평가 등등에 유용하게 쓸 수 있겠네’ ‘설명이 좀 딱딱하게 읽히긴 하지만, 이런 책이야 기초자료니까... 더 알고 싶으면 다른 자료를 찾아봐야겠다는 마음만 들게 하면 이런 종류의 책으로선 임무 완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별 3개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한눈에 펼쳐보는’이라는 시리즈가 어떤 책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이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이 출판사의 다른 목록들까지 검토하다가 결국 남은 것은 실망감과 허탈함이다. 무슨 말이냐고?


자, 이 책을 보자.

 (이하 <문화재 백과>)

검색으로 이 책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비교해보았다.

저자와 그린이가 같고 내용 구성이 사실상 거의 동일하다. 책 볼륨의 차이가 있고(<문화재연표>는 42쪽 / <문화재 백과>는 290쪽), <문화재 연표>는 중요 사항을 최대한 단순하게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리하려고 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이건 재편집이지 신간을 내놓았다고 할 수 없는 거다. 

두 책의 글과 그림을 비교해보면서, <문화재 연표>가 말하자면 다이제스트 판이니까 글과 그림이 같거나 겹치는 게 이해는 가지만, 심지어는 서체 디자인조차 <문화재 백과>의 것을 그대로 갖고 온 것을 보니 좀 화가 나려고 했다. (아래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 이라든가 '에밀레 전설'의 서체를 보면 똑같은 걸 알 수 있다. 그림 파일 자체를 ctr + C --> ctr + V 하고 박스 테두리 색깔만 바꾼 거다.)






그렇다면 <문화재 연표>을 내면서 기존의 <문화재 백과>는 절판을 시켰는지? 알라딘에서는 어제 검색해보니 품절이었는데, 오늘 찾아보니 구입이 가능하고, 다른 서점들에서는 문제 없이 구입이 가능하다. 절판이 아니라는 소리다. (회사 홈페이지에도 그런 언급은 전혀 없고...)

<문화재 연표 >의 그 어디를 봐도 <문화재 백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신기하다. (글쓴이, 그린이 소개에서는 <문화재 백과>를 왜 뺐는지 궁금하다.)


<문화재 연표>의 판권을 보니, 저작권자가 출판사로 되어 있다. 글쓴이와 화가로부터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전적으로 양도받은 계약일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솔직히 이번 신간은 기존 책의 재활용품에 불과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다. 이걸 신간평가단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선정할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또 하나 찜찜한 대목은, 이건 뭐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 문제인데, 애초에 ‘한눈에 펼쳐보는’ 시리즈의 출발이 외국 책이었다는 거다. DK 출판사에서 펴낸 ‘크로스 섹션’ 시리즈를 한국어판으로 출간하면서 세계지도, 세계사 연표, 우리나라 지도 등등을 같은 시리즈로 기획해 넣은 것 같다. DK 출판사의 원서들은 도저히 우리가 육안으로 다 볼 수 없는 것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교양서 기획인 데 비해, 한국판 책들은 학습보조교재가 되는 것이 목표의 전부인 것 같다. 같은 시리즈로 묶기에는 기획의도도, 책에 들인 공력도 무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 한국의 출판사가 애초부터 전세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드는 DK 그룹의 기획을 따라가는 거야 불가능에 가깝지만, 솔직한 내 마음을 그냥 말해보겠다. ‘쉽게 묻어가는구나...’


물론 연표 책을 이 정도 퀄리티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 한 권만 단독으로 놓고 봤을 때는 좋은 참고서이자 교재라며 웬만히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1) 이 책을 신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2) 기존 책의 텍스트와 그림을 그대로 가져와 썼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백과>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다는 소개와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출판 관례상(조금 더 오버하자면 도의상)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새로 책을 만들면서 발전이 있다거나 참신한 기획이 보태졌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둘 중에 어떤 책을 학습보조교재로 구입할 거냐 물어본다면 나는 오히려 <문화재 백과>를 택할 것 같다. 나아진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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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2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2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러브캣 2013-02-2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엄마콩 2013-02-2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잘 읽었습니다.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비룡소 전래동화 24
성석제 글,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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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그림책은 이야기마다 정말 많은 버전이 있다. 바보 온달 이야기만 해도 책을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목록이 쏟아지는지!

글 작가, 그림 작가 모두에게 다양한 해석과 변용을 가능하게 하는 옛이야기들은 세월이 지나면 지나는 대로, 시대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최근에 본 옛이야기 그림책 중에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이영경의 <콩숙이와 팥숙이>였다. 콩쥐 팥쥐를 1950년대로 데려왔음!)


텍스트만 담아서 ‘읽기 책’으로 만들 수 있는 텍스트를 굳이 ‘그림책’으로 만드는 건, 아이들 보기 편하게... 라는 이유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 만들어진 이미지들 때문에 상상력이 오히려 더 가로막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어렸을 적 보았던 ‘선녀와 나무꾼’의 중국 스타일 선녀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서 나중에 다른 작가들이 그려낸 작고 소박한 선녀 이미지에 영 적응을 못했던 기억이 있다.)

바보 온달 이야기를 고구려 벽화 이미지를 모티브로 해서 작업했다는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소개를 듣고는 무릎을 탁 쳤다. 와, 정말 대단한 생각인걸!


이 책을 다 보고 나서는, ‘고구려’라는 나라, 그 나라의 사람들과 정서 같은 것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또렷이 그려졌다. 지금은 가볼 수도 없는 땅에 있는 고구려의 흔적, 희미한 색과 선으로 남은 고구려 고분벽화 속 사람들의 모습을 이 그림책을 통해 선명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용감했던 여성과 한 장수의 모습은 물론...


소설가 성석제가 글을 쓰고 화가 김세현이 그림을 그린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은 표지의 배경, 그리고 앞 면지에 수많은 글자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천 몇백 년을 말로 전해온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오래된 이야기임을 회색 바탕에 깔린 자글자글한 글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묵묵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온달, 그리고 독자들을 향해 눈을 맞추는 평강 공주. 오로지 눈동자만으로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시지요’ 하고 말하는 듯하다.


이후 펼쳐지는 그림책 화면들은 하나하나가 다 인상적이었다. 화가가 수없이 물감을 흩뿌려서 만들어냈을 고풍스런 질감과 아름다운 색들, 얼굴 표정은 눈동자만으로 최소화하여 표현했지만 움직이는 옷과 몸의 선으로 보이는 이러저러한 희노애락의 감정들.


성석제의 글은 물 흐르듯, 귓가에서 조곤조곤 들려오는 듯, 마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목소리처럼 자연스럽고 거치적거리는 대목이 한 군데도 없었다. 자신의 문체를 주장하기보다는 옛이야기의 어법을 자연스럽게 오늘로 가져온 듯한 문장이어서 참 읽기 편했다.


인상적이었던 몇 장면...


새들이 와서 스스럼없이 놀다 가는 온달. 그가 어떤 심성의 사람이었는지를 이 그림이 잘 보여준다.


긴 소맷자락을 날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그림책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이다. 고구려가 어떤 흥과 멋을 가진 나라였을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의 감정은 조그만 눈동자를 통해 보여진다. 나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좋은지... “너를 바보 온달한테나 시집 보내야겠다”고 엄포를 놓는 임금의 얼굴에는 그저 딸에 대한 사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주저앉은 울보 딸내미의 얼굴에선 고집이 엿보인다.


평강을 만난 온달은 훤칠한 인물이 되었다.


비루먹은 말도 평강을 만나자 늠름한 명마가 되었다. 아, 당근을 먹여주는 평강의 모습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그런데 이렇게 실하게 생긴 당근이 이 시절에 있었을까? 궁금해서 위키피디아 정보를 찾아봤더니 1세기 경 당근은 뿌리보다는 잎사귀와 씨앗을 향채소로 먹었다고 하고, 이런 오렌지색 당근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나타났다고...)



스토리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야기의 이미지를 남기는 것 또한 그림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평강과 온달의 혼례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들의 사랑을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이런 이미지로 남지 않을까...


고구려라는 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역사로 남았다는 것을 이 그림책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아직은 역사가 뭔지 모를 이 책의 어린 독자들이 아름다운 색과 이미지로 고구려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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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3-02-2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유아/어린이/가정/실용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먼저, 지난달에 아깝게 내 눈에 안 띈 책 하나를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물론 이 책은 신간평가단 대상 도서에는 제외된다. 12월 28일 출간이기 때문에... ㅠㅠ 


 “이제 나는 알아. 세상에는 꽁꽁 지켜서 즐거운 비밀도 있지만

반드시 털어놓아야 하는 비밀도 있다는 걸.” 
 
 어린이 대상 성범죄가 날마다 늘고 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무엇부터 이야기해줘야 할까. 이 사려깊은 책은 여자아이가 있는 집뿐만 아니라 남자아이 있는 집에도 꼭 읽히고 싶다. 이 책의 부제 또한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이고...
 지난달에 빠뜨려서 너무너무 안타까운 책이다.



그럼 이제부터 1월 출간된 책들 살펴본 이야기.

  책읽기가 정말 싫다는 아이에게 책을 읽힌다...? 

  책읽기 싫다는 녀석에게 이 책을 어떻게 안겨야 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  일단은 어른들부터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잘 새겨듣기를 바란다.

 책읽기가 얼마나 유용한 일인지를 훈화 식으로 설파하기보다는, 책 안 읽어도 돼, 하지만 좋은 책 한 권은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 하는 따뜻한 시선이 좋다. 

 저자는 대안학교 선생님인데,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여기 등장한 녀석들, 좋겠다~! 벌써부터 이름을 남겼구나~ ^^


 

같은 시리즈. 이번엔 수학이다. 

 아, 수학... 나는 수학을 달달 외우는 학생이었다. 문제 패턴과 공식을 외워가지고 문제를 푸는... 덕분에 점수는 웬만큼 나왔지만, 수학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는 거지... ㅠㅠ 

  그러나,

  신발장에 자신의 신발을 바르게 넣을 수 있는가?

  요리책대로 간단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가?
  사전에서 단어를 찾을 수 있는가?
  간단한 약도를 그릴 수 있는가?
<-- 저자는 이 네 가지만 할 줄 알면 누구나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아이들과 나 자신에게 용기를 심어주자!!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내용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가 했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아니, 그냥, 그래야 한다니까 그렇게 살고 있는 건지도... 
  <시간 가게>는 하루 10분, 나만 쓸 수 있는 시간을 사기 위해 행복한 기억 하나를 파는 이야기다. <모모>나 <크라바트>의 문제의식이 생각나는 동화. 읽어보고 싶다.






 김리리 작가의 새 시리즈. 주인공 이름은 고재미 ㅋㅋ 

 전작 '이슬비 이야기'에서 귀여운 여자아이 이야기를 그려냈던 김리리 작가가 이제 남자애 이야기를 가지고 '명랑'한 세계로 귀환!

 대책없이 재미난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 그래 아이들은 원래 이런 존재지, 하며 안심하고 싶을 때 꺼내 읽고 싶다. 








 이 책은 1월 출간도서인데, 지난달 신간 페이퍼에 잘못 올려놨었다. 이번달에 넣어야 제대로...

 집에 하나쯤 갖고 있으면 좋은 기본 요리책이다. 

 가끔 이상하게, 아주 기본적인 요리들이 잘 생각 안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펼쳐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을 듯. 신혼부부나 자취생들에게도 추천하고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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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3-02-06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신기한 붓]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신기한 붓 사계절 그림책
권사우 글.그림, 홍쉰타오 원작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고남순 회장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일도 잘 안될 지경... -_- 

뭐, 그건 그거고 ...

<학교 2013> 최근화에서는 교내 논술시험 문제와 모범답안을 미리 알고 있었던 민기가 시험을 포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문제를 정성껏(!) 입수해준 사람은 엄마... 민기는 시험을 포기하고 조용히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다...

문제 유출에 대해 알게 된 아이들이 한껏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자, 옥상에서 '너무 무거웠던' 가방을 내던지고는 찬바람을 맞으며 웅크리고 울던 민기를 울며 안아주었던 정인재 선생은 말한다.

"너희가 잊고 있는 게 있다. 민기는 시험을 포기했다. 답안지를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너희라면 어땠을까?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마량이 갖고 있던 신기한 붓이 새삼 생각났다.

무엇이든 그려내고 그대로 눈앞에 펼쳐보일 수 있는 신기한 붓. 

마량은 그 붓을 갖게 되자 시험삼아 큰 수탉 한마리를 그려보고는, 그 다음으로는 배고픈 아이들을 만나 '밥'을 한 솥 가득 그려준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예쁜 옷도 그려준다.  

고생스레 밭을 가는 할아버지한테는 힘센 황소를 그려주고, 소의 목에 예쁜 워낭까지 그려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뒤로도 마량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그림을 그려주었어요."

마량이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붓을 가졌지만, 마량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처음에 입었던 옷 그대로, 머리 모양도 신발도 그대로이다. 

그에 반해, 마량을 불러 앉힌 원님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금덩이, 황금산이다.

마량의 천진난만하고 고운 얼굴 못지않게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얼굴은

황금산을 목전에 둔 탐욕의 정점에서 오히려 불안과 공포심 가득한 낯빛을 보이던 원님의 얼굴이었다.

아, 이제 곧 파국이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던 그 얼굴...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생각할 것이다. '나에게 신기한 붓이 있다면...'

자신에게 그런 큰 힘이 있다면,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그것을 마량처럼 선뜻 남을 위해 쓴다고 할까? 민기처럼 시험을 포기할 수 있겠냐던 물음에 잔잔히 토해지던 아이들의 한숨이 생각났다.


권선징악의 옛이야기는 단순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고,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제 한몸 챙기는 것만이 능사요, 남의 기회를 뺏어서라도 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이런 세태에 <신기한 붓>을 읽는 마음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왜 마량에게 공감을 보내고, 원님의 몰락에 통쾌해하는가. 

나에게 있는 '힘'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량이 속세에서 한몫 잡지 않고 세상 곳곳을 떠돌며 웃음꽃을 피워내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마량이 그리는 그림은 어째서 이렇게 포근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이들과 이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남을 위해 아름다운 것을 그려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꿈결처럼 고운 그림으로 보여준 화가 권사우님께 감사를! 화가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금덩이가 아니라 꽃과 새와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앞에서 우리가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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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1-2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는 처음에만 보다만 드라마인데요. 고남순 회장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역지사지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도 그것처럼 힘든게 없어요.
또치님, 저도 이 책 읽고 싶네요.

또치 2013-01-21 23:58   좋아요 0 | URL
Arch 님 반갑습니다.
네, 정신 차리고 사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렇다고 넋 놓고 살자니 그것도 힘들고...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는 나날이 너무 많네요...

요샌 모든 책에 엉뚱한 감정이입을 해갖고 보는 건 아닌가 싶은데
어쨌거나 <신기한 붓>은 참 곱고 이쁩니다. 눈이 맑아지실 거예요 ^^

러브캣 2013-01-2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나는 비단길로 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비단길로 간다 푸른숲 역사 동화 6
이현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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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고등학교 때 역사 공부를 참 못하고 싫어했다. 역사는 '암기과목'이라며 달달 외우면 점수를 잘 받게 시험을 출제하곤 했으니 어찌어찌 외워서 점수는 잘 받았지만, 그래서 더 싫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는 정작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100점 받으면 뭐하냔 말이지.

암기 교육을 워낙 충실히 받은 탓에 나는 아직도 삼국시대의 중앙관제가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지방관제는 어떻게 정비했는지, 귀족들 회의기관 이름이 뭐였는지까지 기억이 나려고 한다. 으으...

 

"난 역사 과목 싫어." 하는 나에게 

"왜? 옛날 얘기 듣는 거 같아서 재미있지 않아?" 하는 친구도 가끔 있었는데 내 대답은 이랬다.

"뭐, 왕이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전쟁 나고 다 망하는 얘기잖아."

어린 마음에도 역사에 대해 궁금한 건 왕이 어떻게 다스렸는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신라는 군주 6부 5주, 백제는 방령 5부 5방... 이런 거 외워서 어디다 쓰게?!  저 무거운 금귀걸이는 도대체 귀에 어떻게 걸었는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시장에서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저 그릇은 뭘 담아 먹을 때 썼는지... 이런 게 궁금했지만, 진도 나가기 바쁜 수업 시간에 불쑥 물어볼 수도 없었고, 선생님이 잘 대답해줄 거란 기대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걸 '생활사'라고 한다는 걸  아주아주 나중에야 알았고, 이런 걸 모른 게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발해' 이야기는 정말로 수업시간에 스치듯 지나갔었다. 시험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저 넓은 곳을 마음껏 호령했던 나라라니... 그 마음을 나중에 서태지가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로 만들었을 때 얼마나 좋았었는지...!

이현의 <나는 비단길로 간다>는 발해의 여자아이 이야기다. 보통 여자아이도 아니고, 큰 상단을 몇달씩 이끌며 장사를 하고 꿈을 찾아가는 아이. 일찍이 본 적 없는 스케일이다. 


소년들은 어느 순간부터 '동화'를 떼고 영웅 이야기를 읽었다. 플루타크 영웅전, 일리아드 오디세이... 하지만 소녀들에게는 <빨간 머리 앤> <초원의 집> 같은 책들이 주어지곤 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은 이렇게 자꾸 후천적으로 학습되어 갔던 것 같다. 

<나는 비단길로 간다>를 읽으면서, 여자아이들에게 홍라를 꼭 만나게 해주고 싶어졌다. 사고뭉치 앤도 좋고, 말괄량이 로라도 물론 좋지만, 몇 나라를 넘나들며 세상을 배우는 홍라의 삶을 만나보게 해주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어머니가 남긴 상단을 떠맡게 되었지만, 홍라는 서서히 '리더'로 성장한다. 비록 결과는 미약할지라도, 우리는 홍라의 성장이 눈부신 것이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홍라는 그 과정을 함께해준 수많은 조력자들 덕에 자기가 있게 되었다는 것도 대견하게 깨닫고, 혼자 힘으로 자기 삶을 개척할 용기를 얻는다. 


영웅적인 주인공에 집중한 동화가 주변 인물들을 단순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홍라의 조력자로 나서준 다른 인물들도 다 너무 개성 있고 아름다워서, 책을 두 번 읽어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하늘의 비밀을 알고 싶어 천문생을 꿈꾸었던 월보 ... 월보 어머니가 "그냥 여기서 흙이나 파고 있었더라면 이 꼴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이란 게 꿈을 꾸게 생겨먹었더라는 거지요. 배고프고 헐벗은 우리네도 꿈이라는 걸 꾸게 마련이라는 거지요. (...) 그래도... 억울하네요. 참 많이 억울하네요. 가슴에... 억울한 게 사무쳐서... " (178-179쪽) 하고 흐느끼는 대목에서는 두번째 읽었을 때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역사를 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많이 한다. 왕이 누구든 지배계급이 어떻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지혜롭게 살아왔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세상에 남겼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 끝없이 아름다운 것과 정의로운 것과 희망적인 것들을 생각하며 후대에 남겨주려고 애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더 나중의 세대들이 우리 삶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지금 발해의 홍라를 생각하며 위로를 받듯이...


* 사족 1 - 푸른숲의 역사동화 시리즈에는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감수'라는 말이 표지에 박혀 있는데... 음... 이건 '동화', 즉 픽션인데 초등학교 교사들이 꼭 감수를 해야 하나? 굳이 역사 문제의 고증을 해야 한다면 전공분야의 역사학자가 감수를 하는 게 맞지 않나? 


* 사족 2 - 책 말미에 '동화로 역사 읽기'라는 꼭지가 있는데, 이 부분은 집필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말 다음에 이 꼭지가 있는 걸로 보아 작가가 이 부분까지 집필한 건 아닌 듯한데... 이 부분을 초등사회교과모임에서 쓴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주인 없는 글 같아 보이니 집필자를 밝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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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3-01-24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또치 2013-01-24 12: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