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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으로 달려! -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2014 SK 사랑의책나눔, 아침독서신문 선정, KBS 책과함께, 우수환경도서 선정, 2013 고래가숨쉬는도서관 겨울방학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17
사시다 가즈 글, 이토 히데오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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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나이가 들고부터 '전쟁'이나 '재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을 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배경인 대하소설이나 스페인 내전이 소재인 수많은 소설들을 처음으로 읽었던 어린 시절 혹은 청년 시절에는 실감이 없었던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살이 떨리도록 처절하고 무섭게 느껴지곤 한다. 한국전쟁 당시 예닐곱살에 불과했을 나의 부모님이 그 와중에 어버이를 잃고 친척들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면, 이제서야 내 부모님의 정치성향이나 생존본능이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곤 하는 것이다. 

지금 사는 터전이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과연 그걸 감당해낼 수 있을까... 정말이지 상상이 안 된다. 물건이나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게 된다면 나는 과연 앞으로의 생을 제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 지난 여름 거센 태풍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때도,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평화'에 대해 묵상할 때도,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쓰나미 피해와 함께 원전사고까지 발생했다.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해도, 원전사고로 인한 간접적 영향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 겸허히 살아야 하며,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겸손하게 되새긴다.


그림책 <높은 곳으로 달려!>는 2011년 바로 그날, 쓰나미의 한복판에 있었던 일본 가마이시의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04년부터 이미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아이들은 평소 훈련받은 대로 중학생들이 초등학생을 도우며 피난을 했다. 지진과 쓰나미를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하고 대비한 덕택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고, 한 중학생이 생각해낸 '안부 쪽지' 덕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도 서로 만날 수 있었다고. 



시작은 평화로운 바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크면 어부가 되고 싶은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쓰나미가 오면 뒤돌아보지 말고 달리라고, 각자 온 힘을 다해 도망치라고,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키는 거라고.


그리고 그날...

아이들은 중학생 언니 오빠의 손을 잡고, 신발이 벗겨진 친구에게 자기 신을 벗어주기도 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달린다. 위로, 위로 가야 한다.

시커먼 물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았을 때, 집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때, 주인공은 처음으로 생각한다.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누군가가 확 등을 민다. 그래, 여기 있으면 안돼. 위로, 산꼭대기로 달려야 해!



4쪽에 걸친 펼침면으로, 서로서로 손을 잡고 달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강아지를 챙기는 사람, 수레를 끄는 사람, 우는 아이를 안고 또 업고 달리는 사람... 나도 이 인파에 휩쓸려 있는 듯 눈물이 났다. 

이런 장면을 구상하고 하나하나 사람들을 그려나갔을 화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장면을 그리며 화가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나쁜 생각만 떠오를 것 같"아, 아이들은 일부러 웃긴 TV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웃기도 하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유난히 별이 밝은 밤이 흘러갔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모두 함께 지새웠던, 절대로 잊지 못할 밤도...


지금, 아이들은 시내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많은,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라고밖에는 이야기하지 못할 사연들을 그저 가슴에 안은 채로...



마지막 장면은 다시 그 바다. 할아버지는 말한다. 

"집도 배도 쓸려 가서 정말 목숨밖에 남지 않았구나."

하지만 노인은 바다를 원망하지 않는다. "자연은 원래 그런 거"라면서...

"살아만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법이란다." 

분명 할아버지도 끔찍한 태평양전쟁을 겪었을 것이고, 95년의 한신대지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노인이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는, 진심을 담은 최선의 지혜일 것이다. 


그림책을 통해 새삼 '살아 있다'는 것의 숭고함을 느낀다. 게다가 아주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닥치든 "다른 사람을 도우려면 우선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도망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그 어느 곳을 흔들어 공격할지 모를 일이다. 인간이 자연을 이기고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허히 살아야 할 텐데...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많은 은혜를 입기만 하고, 자연에게 다시 베풀 줄은 모르는 것 아닐까. 고귀한 생존의 기록인 <높은 곳으로 달려!>를 보면서, 이것을 '남의 나라 일'로 스쳐지나가듯 보지 말고, 누군가 나 대신 몸으로 교훈을 얻어준 것임을 깊이 마음에 새겨놓기로 한다. 


칠석날 아이들이 소원을 적어 걸었던 것들을 읽어본다. 

"다시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요." 

"친구가 엄마를 찾으면 좋겠어요."

"어서 어른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이제 큰 지진과 쓰나미가 오지 않기를!"

새해, 나도 이 소원들을 조용히 함께 기원하려고 한다. 

덧붙여, 인간이 좀더 겸손해져서 자연이 더이상 큰 벌을 내리는 일이 없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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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2-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보고갑니다.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 도시 여자의 촌집 개조 프로젝트
오미숙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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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계리에 '레이지박스'라는 독채 민박이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30대의 젊은 부부가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창고 3동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제주 시골집을 구입한 뒤 뼈대는 그대로 두고 깔끔하게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 2010년의 일. 이 집은 여행객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도시를 탈출하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당시만 해도 제주 농가주택은 4, 5천만 원 정도면 구압할 수 있었는데, 레이지박스 이후로 농가주택을 찾는 외지인들이 어찌나 많아졌는지, 지금은 농가주택이 씨도 말랐을뿐더러 간혹 나온다고 해도 8, 9천만원 선에서 거래가 된다고 들었다. (2013년부터 레이지박스는 하루에 한 팀에게만 빌려주는 독채 민박으로 전환했다.) 

2008년부터 제주 이주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나에게도 '레이지박스'의 기획과 감각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고, '제주 내려가면 나도 게스트하우스를 할까' 6개월 정도는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파주과 일산과 서울에서 최신의 트렌드로 무장한 건물들 속에 살면서, 가끔 레이지박스 블로그에 들어가 오래된 시골집의 낮은 지붕, 자전거가 서 있는 잔디밭,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작은 카페에 햇살이 내리쬐는 사진만 구경해도 참 기분 좋아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참 직설적이어서 끌리는 제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2천5백만원으로 시골집 사서 5천만원 들여 멋지게 고쳤습니다"이지만.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부 '땅따먹기'. 2부 '고칠 준비', 3부 '헐고 짓기'까지는 집과 땅을 고르고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로, 전체총 224p 가운데 85p를 차지한다. (이야기하는 항목은 많은데, 생각보다 분량은 적었다.) 그리고 4부는 '집구경'이다. 책의 2/3 가까운 분량이 화보집 수준의 집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북유럽 풍이 유행한다고 혹은 또 어디 풍이 유행이라고 해서 그걸 무작정 따라하거나 한 가지 컨셉으로 꾸민 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는 집을 마련한 것이 좋았다. 세월이 담기지 않고는 도저히 완성되지 못하는 규방공예 작품들이라든가,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수건이며 덮개며... 직장인 혹은 어머니나 아내 오미숙이 아니라, 취향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의 오미숙을 보여줄 수 있는 소품들. 나도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로 이주해서 집 짓는 과정에 대한 '정보'가 생각보다 양이 적기는 했지만, 꼭 챙기고 알아두어야 할 알찬 정보들이 가득해서 꽤 만족스러웠다. 

왜 시골로 가려 하는가? 완전히 귀농할 것인가 아니면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하는 것인가?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봐야 할 요소들은 무엇이 있나? 헌집의 뼈대를 어디까지 살리고 어디까지 손을 볼 것인가? 인테리어 컨셉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  

이 많은 것들을 혼자 힘으로 해낸 저자를 따라서 열심히 고민을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돈을 써서 이런 전문가를 찾아내고 맡기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길일 것이다. 아니면 자기 시간을 엄청 투자하든가... 


가끔 '무작정' 시골로, 제주로 내려왔다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운이 좋으면 모든 것들이 술술 풀리기도 하겠지만, 준비 없이 내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시간이든 돈이든 무엇으로든 때워야 하는 ... 

나는 제주에 내려오기까지 생각하는 시간이 4년 정도 되었고, 머릿속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뜻밖에 많은 것을 새로 배우고 깨닫곤 한다. 이것이 고통스러운 배움이 아니라 '공부'의 한 단계여서 즐겁기도 하다.


<2천만원으로 집 한 채 샀습니다>는 충청 내륙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해 집을 짓고 정착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어느 곳을 가려고 결심한 사람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고, 무슨무슨 풍이 아니라 날마다의 삶이 담긴 인테리어와 소품을 구경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좋은 눈요기가 되었고, 세상은 점점 팍팍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재미나게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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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2-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갑니다!

또치 2013-12-22 13:1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세요~!
 
유아/어린이/가정/실용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라, 12월이네? 했는데 벌써 5일이다. 신간평가단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도 같고... (특히 매월초 주목신간 리뷰를 쓸 무렵은 정말 화살같이 흐르는 듯... ㅋ )


  가장 먼저 눈에 띈 책은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 

  “꽃의 황제, 정원 왕국의 칼 대제, 독일 정원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의 외동딸 마리안네 푀르스터가 독일 포츠담에 있는 보르님 정원을 일곱 계절 동안 가꾸며 쓴 정원 일기라고 한다. 

  일곱 계절이란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을 말한다고. 맞다. 계절은 딱 사계절만 있는 건 아니지. 우리는 무지개 색깔을 당연히 '빨주노초파남보'라고 하지만, 외국 친구들은 "무슨 무지개 색깔이 그렇게 확 구분이 돼? 말도 안돼." 하고 놀라곤 한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시대, 도시에서 살다 보면 봄과 가을조차 누릴 여유가 없이 휙 지나가지만, 단 며칠이라도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면 누려야 하지 않을까. 일곱 계절 동안 볼 수 있는 꽃과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유은실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제목은 <일수의 탄생>.

 마침 <애완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부모 세대가 키워낸, 자기 결정 능력이라곤 없는, 그저 '애완'의 대상인 자식 세대의 상징을 주인공 '일수'를 통해 보는 것 같아 무척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참 쉽게 기대하는 평범한 아이,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하는 아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픈 허상인가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유은실 작가는 진지하고 무거운 얘기를 참 유머러스하게 해낸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 웃긴데, 읽고 나면 슬프고 서늘하다.





 

내년은 돼지해. 표지의 느낌을 보고는 '동물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 전혀 아니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구제역' 사태 때 파묻혀 갔던 수많은 목숨들에 관한 것이다. 

 축사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돼지들이 처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충격적이다. 작가는 계속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글과 그림을 전개한다. 인간 외의 생명들을 어떻게 대해야 옳을까... 무척 긴 여운이 남는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이 그림책 때문에 '갈색 아침 현상'이 일어났었다고...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소설가 프랑크 파블로프가 1998년 처음 발표한 《갈색 아침》은 국가 권력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면 비극적인 상황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우화라고 한다. 

 국가 권력이 얼마나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기란 쉽지가 않은 일일 텐데, 어떻게 그림책으로 전개내갔을지 무척 궁금하다.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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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학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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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캐나다 현대사, 그중에서도 이누이트가 살고 있던 땅에 들어온 유럽인들이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 서양문물을 퍼뜨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인디언들을 끔찍하게 학살하며 '개척'되었던 미국의 역사가 새삼 떠올랐다.)

주인공 올레마운은 배다른 언니 '로지'가 읽고 있는 책이 너무 궁금하다. 언니는 학교에서 서양식 이름을 얻었고, 영어로 된 책을 읽는다. 올레마운은 언니가 다니고 있는 '학교'라는 곳이 너무 궁금하다.  학교에 대해 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언니의 대답은 시큰둥할 뿐. 올레마운의 호기심은 점점 커져만 간다. 부모님이 "학교는 네 모든 것을 빼앗아갈 거다"라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올레마운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학교라는 곳, 거기서 배우게 될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에 대한 올레마운의 장밋빛 꿈은 어렵게 어렵게 허락을 받아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지속된다. 얇은 옷차림으로 땅바닥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나는 착한 아이니까 얌전히 글을 배우게 될 거야, 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잘리고, 이누이트의 옷과 신발을 뺏기고 아이들은 서걱서걱한 교복과 스타킹, 얇은 잠옷을 받아든다. 꿈으로 부푼 올레마운이었지만, 침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이불을 가지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고된 노동의 나날이 이어질 뿐, 배움의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올레마운은 파도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바닷가의 돌멩이처럼 단단한 아이였고, 견디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것을 끝끝내 이뤄내고 마는 끈질기고 강인한 아이였다.  

학교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자신이 원하던 배움을 손에 얻은 올레마운은 어렵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는 키가 껑충해진 딸을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한다. 아마도 수많은 올레마운이 이렇게 이누이트 사회에서 이도저도 아닌 낯선 존재로 살아가게 되었겠지...

변화의 물결은 너무나 거세고, 배움을 향한 호기심은 너무나 강해서, 올레마운의 동생들 또한 학교라는 곳에 가고 싶어한다. 끔찍한 학교를 겪어 보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이유도 없지만 올레마운은 동생들과 함께 학교로 돌아간다. 이누이트가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상처에 대한 회복력 또한 강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가 새삼 생각났다. 19세기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은 잔인하게 몰살당했다. 20세기의 캐나다에서는 그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유럽 세력은 이누이트의 문화를 말살하고 서양문화를 심었으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야 말았다. 지은이 마거릿 폰티악 펜턴처럼 자기 문화를 잊지 않은 이누이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보존하고 전파해나가기를 바란다. 원래 그 땅의 주인은 유럽인들이 아니었고, 혹독한 자연을 견뎌내며 살아왔던 이누이트들이었음을 우리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나쁜 학교>라는 책 덕택에 나도 이제 '캐나다' 하면 이누이트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었음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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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1-18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 갑니다~~ 또치님!!!
 
[잘되는 집안의 10cm 비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되는 집안의 10cm 비밀 -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한 정리와 배치의 기술 내 손으로 하는 풍수 인테리어 시리즈 1
이성준 지음 / 예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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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오피스텔에 한 2년 살았던 적이 있다. 돌아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안 풀리는 시기였다. 방들이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찬 긴 복도를 지나 내 방으로 들어가면 현관 옆으로 바로 주방이 있고, 아침을 해먹고 간 냄새는 저녁이 되어도 빠질 줄을 몰랐다. 그래도 볕은 잘 들었고,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침실은 그곳에 마련했다. 누가 방문이라도 했을 때 내 모든 살림살이가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이는 구조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식 냄새가 섞여 있는 방 안에서 빨래를 말려야 하고, 볕이 아무리 좋아도 침구를 탈탈 털고 일광소독할 수 없었던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원룸이라는 공간은 '살림살이'에는 정말 꽝이구나... 하는 걸 실감했던 나날. 돈이 좀 모이자 나는 바로 이사를 결심했다.


대도시에서의 오랜 아파트 생활, 그리고 제주 이주 첫 해의 아파트 생활을 지나 지금은 한적한 주택가의 단독주택 2층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10년 전에 지은 집이라서 그런지, 하루 종일 해가 잘 들고 환기가 잘 되도록 창문을 잘 배치해서 참 좋다. 마당이 있는 남향집이고, 베란다와 창고가 널찍하다. 햇살 좋은 날 빨래를 탁탁 털어 빨랫줄에 널 때의 기분이란! 

단독주택에 살면 아무래도 아파트보다는 집에 손이 갈 일이 많기는 하지만, 마당과 햇볕이 주는 즐거움만으로도 불편함을 충분히 상쇄한다고 생각. 


하지만 내가 워낙에 다람쥐처럼 뭘 모아놓는 걸 좋아해서, 아무리 집이 좋아봤자 집안이 어수선한 게 문제다 ^^;;

정리정돈이나 수납 관련 책을 봐도 그렇고, 이런 풍수 인테리어 책을 봐도 쾌적한 공간을 만드는 법칙은 아주 간단한 데 있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은 기를 잘 통하게 하는 좋은 방법"(24쪽)인 것이다. "모서리 같은 곳에 잡다한 것들을 마구 쌓아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참으로 찔린다 ;;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10cm의 비밀"이란 기의 흐름을 막지 않도록 가구와 가구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구와 벽 사이도 10cm 는 띄워 놓아야 한다는 것. 눈으로 봤을 때 답답하지 않고 먼지가 낄 때마다 자주 청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니 당연히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아예 붙박이장을 해놓은 경우는 어쩌지? 붙박이장은 그냥 벽면으로 치는 건가? 이게 좀 궁금하다. 


이 책의 저자는 같은 출판사에서 2006년에 풍수 인테리어 시리즈를 3권으로 낸 바 있는데, 지금은 품절이다. 아마도 이 책은 그 세 권의 책에서 요점을 잘 추려서 한 권으로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붙박이장 같은 최근 트렌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지금은 구경도 힘든 '카세트'라든지 '영어 테이프' 같은 단어가 등장(130쪽)하는 걸 보면 시류에 맞춰 새로 쓴 게 아니라 예전 버전을 잘 편집하는 데 중점을 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짝 든다. 

집안의 남녀 관계에 대한 관점 같은 것도 좀 구식(?) 사고방식이라 쉽게 동의하기 힘든 대목도 많았는데, 어쨌든 이 책의 요점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집안에 생기를 부여하라는 것!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리 정돈 잘하고, 해가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도록 물건들을 재배치하고, 식물을 적절히 이용해 생동감을 주면 된다. 안방, 공부방, 화장실, 거실 등등 모든 부분에 거의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데, 이 얘기를 좀 반복적으로 얘기하고 있어서 지루할 수도 있으나  책을 다 보고 나면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자, 일단 나는 정리 정돈부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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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1-18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