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이게 뭔가... 개념을 못 잡고 어리둥절해서 미선이, 윤상, 토이 등등을 다 놓치고 말았던 GMF를 올해는 다녀왔습니다. 올림픽공원 곳곳에서 돗자리 펴놓고 맥주에 치킨 먹어가며, 샌드위치와 떡볶이 먹어가며 느긋하게 음악을 잘 즐기고 왔어요.
무대 바로 앞의 스탠딩 존과 잔디밭의 피크닉 존, 이렇게 두 개의 관람구역을 나누어놓아서 마구 흥이 나면 스탠딩 존에서 쿵쿵 뛰면 되고, 아니면 들려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며 느긋하게 소풍을 즐기면 되는, 편안하고 좋은 음악축제였습니다.
라인업이 발표되기 전에 I Love GMF 사전예매를 실시했는데, 그때 2일권을 7만원에 예매했어요. 결과적으로 잘한 거 같습니다. 내년에도 이렇게 걍 예매할라고 합니다. (1회 때 이승환, 2회 때 윤상과 토이, 올 3회엔 이적... 이 나왔으니까 내년에 김동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이 양반 콘서트는 30분 만에 매진되곤 해서 엄두를 못 냈거든요.)
토요일날 11시반쯤에 집을 나섰는데, 올림픽공원에 도착하니 1시 10분쯤 되었고, 예매확인하고 2일권 팔찌 교환하고 하니까 2시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뭐 이렇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 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저인지라 별로 화는 나지 않았는데, 성격 급한 우리나라 관객들은 십중팔구가 하루 종일 투덜대더군요.
저는 진행에서 좀 화가 났던 건, 쓰레기 만들지 말자고 그렇게 얘기했으면서 웬 먹을 것 파는 가게를 그렇게 많이 입점시켰나 하는 거였어요. 홍대 앞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기린아, 바삭 같은 집들도 나와서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값도 비싸게 받을뿐더러 정성도 안 들어가 대실망이었습니다.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싸가지고 가서 별 돈은 안 썼지만, 이런 실상을 파악하고 나자 일요일 날은 절대 군것질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떡볶이 + 샌드위치 3종을 짊어지고 갔습니다.
토요일날 저의 동선은 Alice in Neverland, Pudditorium, 오지은, 세렝게티, 전제덕, Sweet Sorrow, The Cribs, 흐른, 불독맨션(한 10분 들었나...?), My Aunt Mary ;; 헉헉...
나를 실망시킨 밴드나 연주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세렝게티의 파워, The Cribs의 미친 듯한 에너지(세상에, 쉬지도 않고 70분을 그냥 내처 달리다니...), 명불허전 My Aunt Mary 였습니다 !! (중간에 루시드 폴이 깜짝 손님으로 나와서 한 곡 부르고 갔어요. 아, 루시드 폴 노래 이제 참 잘하는 거 같아요... 감동했습니다.)
일요일은 길이 안 막혀서 1시 출발 2시 도착.
킹스턴 루디스카부터 시작했습니다. 토요일날은 세 군데의 무대를 바람처럼 질주하며 다녔지만, 이날은 메인 무대인 Mint Breeze 에 집중하기로 해서 돗자리 펴놓고 그냥 눌러 앉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혼자 낮잠 자고 있는 친구를 떼어놓고 막 다른 무대도 갔다왔어요.
이날의 동선은
킹스턴 루디스카, 짙은, 굴소년단(나만 혼자 다른 스테이지로 이동), 장기하와 얼굴들, 노 리플라이, 막시밀리언 해커, 메이트(나만 혼자 이동), 휘성, 보드카 레인, 이적, 페퍼톤스.
이날 깜짝 놀란 것은 메이트 !! 보컬도 연주도 정말 수준급. 엔터테이닝 능력과 센스도 최고. 마이클 잭슨 커버곡을 비롯해서 김태우의 최신곡 <사랑 비>까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커버했는데, 이게 어찌나 멋진지 사람들이 웅성웅성... 곳곳에서 팬이 되었다는 탄성이 들렸습니다.
장기하는 여전히 무심한 듯 재미있고, <별일없이 산다> 부를 때는 혼자 추임새(?)로 "아, 씨발" 한번 내뱉어주시고 ^^;;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노 리플라이 들으러 Loving Forest Garden 쪽으로 이동하다가, '짙은' 성용욱 윤형로 두 사람을 만나 싸인도 받았습니다. 윤형로씨는 이제 막 제대한 뒤라 머리도 짧고 매우 수줍어하고 그러더만요.
노 리플라이, 언니네 이발관, 이장혁... 으로 이어지는 Loving Forest Garden 무대는 10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데, 아침부터 이미 꽉 차 있어서 대기 줄이 엄청났습니다. 밖에서 소리만 듣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지요... (내년에는 뭔가 조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날의 헤드라이너인 이적은 개인적으로 별 관심 없었는데, 무대 구성력이나 관객과의 호흡, 이 사람들이 뭘 원하겠구나 하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영리한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UFO > 를 부를 때부터 피크닉 존에 있던 사람들까지 그냥 다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끝날 때까지 다 방방 뛰더군요. 저도 패닉 시절의 노래를 부를 때는 같이 간 친구랑 같이 막춤을 추며 신나게 굴렀습니다. 무슨 노래할 때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미미시스터즈도 갑자기 무대에 난입(?)해서 춤을 추더군요. 근데, 화면을 보니까 이 과묵한 언니들이 이적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어요. 역시 이적의 힘인가...!!
이적 공연 끝나자마자 바로 페퍼톤스 공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분들이 왜 헤드라이너인가 약간 갸우뚱했는데... 와, 팬들이 떼창하는 거 보고 좀 놀랐습니다. 항상 B급 가수(죄송...)가 객원보컬을 하는 특성상 라이브 공연의 노래는 안습이었지만, 이장원의 유머 센스와 기타 연주에 감동하고, 무엇보다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 덕분에 나도 더 좋아졌습니다. 떼창 덕에 모든 걸 다 잊었어요.
이 페스티벌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흡연구역이 참 우아하고 예뻤다는 것.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항상 구석에 가장 안 좋은 자리에 쭈그러져 있게 마련인데, 여기서는 야외 까페같이 간지 나는 곳이 흡연구역이더라니까요. 전기난로도 피워주고 있어서 나는 불을 쬐러 갔었는데, 거기 있다 보니까 celebrity 들이 막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 이지형, My Aunt Mary의 한진영(으로 추정되는 인물), 치즈 스테레오(공연은 안하지만 구경 나온 듯) 등을 만났고, 일요일날은...!! 와인을 사러 온 미미시스터즈까지 알현.
정말 오랜만에 잘 놀았는데, 아마도 토요일 밤에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5년에 한번씩은 이런 일이 생기는데, 돈 좀 두둑하게 넣어놓고 재미나게 놀고 나면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이죠. 에이 뭐, 잃어버릴 때도 됐지. 잊자. 그래서 오늘 아침엔 반차 내고 경찰서와 은행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면허증과 각종 통장, 카드 재발급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이제 전 냉정을 되찾았어요.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