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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지음 / 살림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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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도 이 책을 20년 만에 다시 읽는 게 아닌가 싶다.

가지고 있던 책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도서관에서 찾아 보니 한 권이 있더라.

2004년에 재판을 했는데 35쇄나 찍었으니 어지간히 많이 읽힌 책이다.

 

재미있고 따뜻한 소설이다.

어렸을 적 이만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니 부럽기만 하다.

청년이 되어서도 임철우는 광주에서 살면서 민중항쟁을 몸소 겪었다고 한다.

<봄날>이라는 소설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거라지. 읽어봐야겠다.

오늘날의 도시 아이들은 작가가 얘기하듯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온종일 갇혀 자라고 있'으니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마음 속에 담을 것인가.

 

아이는 아파트에서 태어났고, 또 지금도 역시 그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온종일 갇혀 자라고 있었다. 풀 한 포기, 흙 한 줌, 돌멩이 하나 만져볼 수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 스위치만 누르면 요술처럼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철문, 햇볕 들지 않는 이 이상스런 응달에서만 자라나야 하는 아이들의 눈에 장차 저 바깥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과 의미로 비치게 될 것인가. (268)

 

 

나 또한 유년과 청년 시절의 추억이 빈곤한 처지라 이렇게 책으로 간접 경험이나 해 보는 일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동화도 아닌데 난데없이 사람은 모두 별이라니. 그렇지만 그리 낯 간지럽지 않다.

오히려 나 또한 아이에게 작가의 할머니처럼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아빠이길 바라니까.

 

"악아, 내 귀한 손주 철이야. 사람은 말이다. 본시는 너나없이 모두가 한때는 별이었단다. 저 한량없이 넓고 높은 하늘에서 높고도 귀하게 떠서 반짝이다가, 어느 날 제각기 하나씩 하나씩 땅으로 내려 앉아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나는 법이란다. 그래서 어떤 별은 부잣집에 태어나고, 또 어떤 별은 가난하고 궁색한 집 처마 밑에서 생겨나기도 하는 거여. 또 가령, 서울이나 목포 같은 대처로 내려오는 별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이렇게 쬐그맣고 바람 많은 섬 같은 델 찾아 내려오는 별도 있는 법이제. ......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별 아닌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단다. 못생긴 얼굴이건 이쁘고 잘난 얼굴이건, 가난뱅이든 천석군 부자이건간에, 사람은 알고보면 죄다 똑같이 귀하고 소중한 별이란 말이여...... 그런디도,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연일랑 깡그리 잊어먹어 버렸단다. 제가 본시는 저기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살다가 잠시 내려와 있는 귀하고 착한 별이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저 서로 아등바등 뜯고 싸우기만 하면서, 평생 동안 악착같이 허덕이고 살기만 하다가 끝내는 가련하게 죽어가곤 하는 것이제......"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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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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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후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1960년에 발표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고 한다.

 

주인공은 철학 전공의 대학생 이명준인데, 북에 있는 아버지 때문에 생고생을 하다가 즉흥적으로 월북한 뒤 6.25 때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고, 전쟁 후에 중립국으로 망명하는 배 위에서 고뇌하다 제 몸을 바다에 던져 죽는, 그런 얘기다.

 

이 남자는 남한에서는 윤애, 북한에서는 은혜를 사귄다.

북에서 만나다 헤어진 은혜는 낙동강 전쟁통에 극적으로 다시 만나 동굴 속에서 줄곧 몸을 섞었고, 여자는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연합군의 폭격에 전사하고 만다.

 

초장부터 쉼표가 한 문장 안에 시도때도 없이 등장한 탓에 읽기가 힘들었다.

쉼표를 잘 쓰면 매우 세련된 문장이 되지만 너무 많이 쓰면 겉멋만 든 문장이 된다.

어떤 문장은 뭔 소린지 모르겠는 것도 있었다.

자의식과 지루한 사색으로 가득 찬 만연체의 글들은 뭔 소린지는 알겠는데, 어떤 부분은 무슨 한 사람의 대사가 이리도 길고 어려우며 심각한지 읽다가 지친다. 여자들 얘기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다 읽었겠나 싶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도 지식인들의 대화에서 이런 대사가 꽤 나왔지만 그나마 읽혔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건 왜 이렇게 더 현학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고력과 문장력이 한참 딸려서 그런가 보다.

 

관촌수필을 읽고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하나 더 읽어보고 싶어서 고른 건데, 좀 적응이 안 된다.

함께 실린 <구운몽>은 처음엔 술술 읽히더니 독고민이 어떤 찻집에 들어가 시인들의 대화를 듣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읽기를 포기했다.

두 편 다 읽진 못했지만 어쨌든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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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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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읽기 시작한 지는 좀 됐는데, 다른 거 읽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다. 이제 책을 여러 권 돌려가며 읽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한 마디로 자유시장경제는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하고, 국가의 규제나 복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복지를 해야 계층이동도 활발하고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희망을 품는다는 거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드는 게 아니고, 부자에게 증세를 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게 결코 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돈 놓고 돈 먹기 이제 그만하고 제조업과 같은 실물 경제를 되돌아 보자는 얘기고.

하기사 아이슬란드 망하는 거 보고도 금융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간 큰일 나겠지.

 

 

시장의 자유는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21)

이기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본성 중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본성도 아니고, 많은 경우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동기도 아니다. 사실 세상이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중략)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믿듯이 전적으로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70)

사람들이 자유 시장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완전히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면 기업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76)

더 중요한 것은 이기적인 개인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보상과 제재라는 장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79)

일본과 독일의 문화는 경제 발전과 함께 크게 변했다. 더 규범을 잘 따르고, 계산이 더 치밀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잘 협력하지 않으면 고도로 조직적인 산업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화라는 것은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아프리카가 되었든 유럽이 되었든 문화를 경제 저성장의 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다. (168-169)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그런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224)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238)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250)

많은 수의 규제들이 기업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 자원을 보존하고, 장기적으로 산업 부문 전체의 집단적 생산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기능을 한다. (262)

우리가 시장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소금이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소금만 먹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275)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도 심각한 사고를 낼까 두려워 시속 40~50킬로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업이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00)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 재빨리 옮겨갈 수 있는 바로 이 효율성 때문에 금융이 경제의 다른 부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314)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파괴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332)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334)

 

 

이런 글들을 보면 이 책은 단순히 경제 실용서라기보다는 경제 철학을 바탕으로 국제 정치학까지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이나 무역에 대한 규제의 긍정과 그 순기능을 말하는 부분은 자유시장경제에 망조가 든 요즘 매우 적절한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도 새겨들을 만하다. 특히 심각한 고용불안으로 인해 청년들이 직업적 안정이 보장된 의사나 법률가 같은 직업을 크게 선호한다는 분석은 아주 날카로웠다.

심심하고 조금 지루해지는 듯할 때마다 적절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비유들이 나와서 생소한 분야의 책이지만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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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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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남부 사투리가 전라도 사투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소설 속 그들의 인생은 두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은 사투리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이름들이나 나열해 보자.

선비 할아버지와 공산당 아버지, 옹점이, 대복이, 석공, 유천만과 그 아들 복산이...

 

옹점이 집 수색하러 온 순경한테 따지듯 내뱉던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워떤 용천(나병)허다 올러감사헐 것이 그런 그짓말을 헙듀? 찢어서 젓 담글 늠, 그런 것은 안 잡어가유?"

 

대복이가 전쟁 중에 출정을 나갈 때 정거장에서 벌어지는 환송식의 아비규환을 묘사한 장면은 그 어느 기록화면보다도 처절하고 실감나게 느껴졌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노파, 아무개를 숨넘어가게 부르고 몸부림치는 노인,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머리칼을 쥐어뜯어대는 아낙네, 제지하던 헌병에게 떠다박질려 고꾸라지며 코피가 터진 여자, 헌병의 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며 대신 나를 데려가라고 사정하는 노파, 헌병 구둣발길에 넘어졌다 일어나서 얼굴을 쥐어뜯으려고 덤비는 노파......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우리 학교 전교생은 목통이 터져라고 노래를 부르고, 호루라기 소리, 경찰관의 고함과 호통 소리, 떠난다고 울어대는 기적 소리, 젖먹이 아이들 우는 소리, 중고등학생들이 불고 치는 북소리 나팔 소리...... 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게 매고서...... 노래를 불렀다. 기차가 움직이면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쳐대고...... 기차가 엿가래 휘어지듯 산모퉁이를 돌아가버리면 아무도 없는 빈 철길을 맨발로 뛰어 쫓아가며, 아무개를 부르다가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만세만세를 외쳐대던 백발 노파의 울부짖음,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정신이 돌아버리던 허연 노파의 허연 눈동자...... 우리들은 만세와 군가만을 신나게 불러 대었다. (167-168)

 

내 부모 세대의 삶들이, 그들의 애환이 담긴 글들이었다.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과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는 책이 흔치 않다.

낯선 낱말들 때문에 조금 더디게 읽히긴 했지만 한 시대의 (사실보다도 더 실감나는) 진실을 여실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 읽고 나니 그 옛날 대학 다닐 때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임철우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이 소설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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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Thatcher, Dragon Hatcher: A Magic Shop Book (Paperback)
Coville, Bruce / Sandpiper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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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그림 잘 그리는 6학년 남자애가 어느날 이상한 마법 가게에서 용의 알을 얻어서 부화시킨 뒤 키운다는 얘기다.

 

용과 제레미는 의사소통을 텔레파시로 한다. 그러나 그 텔레파시는 언어가 아닌 그림(형상)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니 때로는 어떻게 그림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지 난감해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용은 제레미와 제레미를 좋아하는 여친 메리한테만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동심을 완전히 잃었나 보다.

별로 길지도 않은 이 책에 거의 몰입할 수가 없었다.

그냥 손에 잡았으니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읽었다고나 할까.

이야기 구조가 단순히 알을 획득하고 용을 키우고 헤어지는 거라 좀 싱거운 느낌이다.

마지막에 제레미가 용과 헤어질 때도 전혀 감정이입이 안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나게 볼 수도 있겠다.

 

도서관 사서가 이별을 슬퍼하는 제레미한테 한 얘기만 기억에 남는다.

 

"Nothing you love is lost. Not really. Things, people-they always go away, sooner or later. You can't hold them, any more than you can hold moonlight. But if they've touched you, if they're inside you, then they're still yours. The only things you ever really have are the ones you hold inside your heart."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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