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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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남부 사투리가 전라도 사투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소설 속 그들의 인생은 두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은 사투리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이름들이나 나열해 보자.

선비 할아버지와 공산당 아버지, 옹점이, 대복이, 석공, 유천만과 그 아들 복산이...

 

옹점이 집 수색하러 온 순경한테 따지듯 내뱉던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워떤 용천(나병)허다 올러감사헐 것이 그런 그짓말을 헙듀? 찢어서 젓 담글 늠, 그런 것은 안 잡어가유?"

 

대복이가 전쟁 중에 출정을 나갈 때 정거장에서 벌어지는 환송식의 아비규환을 묘사한 장면은 그 어느 기록화면보다도 처절하고 실감나게 느껴졌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노파, 아무개를 숨넘어가게 부르고 몸부림치는 노인,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머리칼을 쥐어뜯어대는 아낙네, 제지하던 헌병에게 떠다박질려 고꾸라지며 코피가 터진 여자, 헌병의 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며 대신 나를 데려가라고 사정하는 노파, 헌병 구둣발길에 넘어졌다 일어나서 얼굴을 쥐어뜯으려고 덤비는 노파......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우리 학교 전교생은 목통이 터져라고 노래를 부르고, 호루라기 소리, 경찰관의 고함과 호통 소리, 떠난다고 울어대는 기적 소리, 젖먹이 아이들 우는 소리, 중고등학생들이 불고 치는 북소리 나팔 소리...... 동이 트는 새벽 꿈에 고향을 본 후 배낭 메고 구두끈을 굳게 매고서...... 노래를 불렀다. 기차가 움직이면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쳐대고...... 기차가 엿가래 휘어지듯 산모퉁이를 돌아가버리면 아무도 없는 빈 철길을 맨발로 뛰어 쫓아가며, 아무개를 부르다가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만세만세를 외쳐대던 백발 노파의 울부짖음,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정신이 돌아버리던 허연 노파의 허연 눈동자...... 우리들은 만세와 군가만을 신나게 불러 대었다. (167-168)

 

내 부모 세대의 삶들이, 그들의 애환이 담긴 글들이었다.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과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는 책이 흔치 않다.

낯선 낱말들 때문에 조금 더디게 읽히긴 했지만 한 시대의 (사실보다도 더 실감나는) 진실을 여실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 읽고 나니 그 옛날 대학 다닐 때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임철우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이 소설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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