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전서 도판집 - 전5권
드니 디드로 지음, 홍성욱 서문, 윤경희 해설, 정은주 옮김 / 프로파간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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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지배하던 세상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성 프란치스코는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있고,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가 있는 세상이었으며 용서 받기 보다는 용서하는 세상이라고 설파하였다. 받기보다는 주는 삶이 일상적인 곳에서 인간들은 어떤 막연한 서먹함을 느꼈다. 뭔가 하나가 빠진 익숙한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이성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종교에 이성을 접합 시킨 순간 진정한 과학이 탄생하였다. 이제 맹목적인 복종을 통한 진리에의 접근 보다는 무수한 실패를 통해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인간은 실패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더 세련되고 더 교만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교만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 절대자의 유일이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은 그 히미한 불안을 기록하였다. 종교인들에게 성경이 있다면 이성을 신봉하는 자신들에게는 백과사전이 있다고 외쳤다. 이들은 자신들의 외침이 바벨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방대한 저작은 그 외침의 일부인 것이다. 인간들은 점점 더 진보 할 것이고 그 진보가 두껍게 포개질 수록 신에 대한 인식은 히미해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두꺼운 지식의 높이 만큼 신에 대한 추구 또한 깊어질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성의 추구를 통해 절대자의 진리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백과전서의 저자들 역시 그 역설을 외면하지 않았았다. 이성이 없는 종교는 맹목이고 종교가 없는 이성은 방종이기 때문이다. 백과전서의 도판을 보면볼수록 이성의 정밀함 뒤편에 믿음이 히미하게 보이는 것은 나의 과문함 탓일지 모른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성의 위대함을 믿은 그 믿음에 경외를 표할 수밖에...Deo grat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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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의 행적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노트케르 지음, 이경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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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의 행적은 중간적인 기록이다. 이 책은 역사와 야사野史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샤를마뉴 시대의 영향력 아래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수도자였던 노케르트는 이 책을 샤를마뉴의 증손자인 샤를 비만왕을 위해 저술하였다. 당시 프랑크 왕국은 거대한 제국이 아니었다. 다만 그 흔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샤를마뉴가 사망한 뒤에 제국은 경건왕 루드비히에게 상속되었고 루드비히 사후 제국은 베르덩 조약을 통해 서프랑크, 동프랑크, 로타링기아로 분할되었다. 노케르트는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나 912년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911년 동프랑크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혈통인 루드비히 소아왕小兒王이 죽고 작센 공작 하인리히 1세가 독일왕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동프랑크에서는 카롤링거 왕조가 아니라 작센 왕조가 다스리게 된다. 

노케르트는 이 마지막 제국의 황혼녁에 가장 위대했던 샤를마뉴의 이야기를 저술하였던 것이다. 이 행적기는 많은 부분이 여백으로 채워져 있다. 자세한 역사적 상황은 생략된 채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정확한 맥락을 잡기 위해서는 카롤링거 왕조 전반의 역사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야기의 1부를 장식하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사례는 당시 교회와 왕국과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사실의 맥을 집을 수 있을 것이다. 2부의 전쟁 이야기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정확히 연결시켜 읽어보면 우리가 정통 역사에서 알고 있던 사실 외에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알게 해준다. 아직 교화되지 않은 프랑크 왕국의 왕족들과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세련된 동로마제국과 거친 프랑크 왕국과의 외교적인 이야기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얼마나 희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프랑크 왕국은 아직 완전히 교화되거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상태가 아니었고 그 주변부는 아직도 거친 야만의 세계였다. 이를 교화해야 할 교회 역시 제도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세계의 지배자라고 자부하던 동로마 제국 역시 이슬람의 지속적인 확장으로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 시기 서유럽에 강력하게 자신의 세력을 구축한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왕국은 그리스도교와 동로마 제국에게는 이슬람의 확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줄 강력한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간구와 희망이 이 행적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점도 무척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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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병사들 -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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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군대는 하나의 허구이며 낭만이고 진실이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그때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가정을 자신의 현재에 대입하여 열변을 토한다. 그러기에 세상의 절반을 담당하며 집안 일에 지친 여자들에게는 그것은 하나의 허구인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솔직한 군대란 수치심일 것이다. 복종과 이유없는 폭력은 자신들이 너무도 하찮고 나약하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 나약함과 수치스러움을 희석시키기 위해 군 생활의 무용담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여기에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부상당하고 죽음을 옆에서 본 사람들의 대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진실을 믿을 수 있는 동료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그들이 행한 이야기는 절대로 낮선 타인에게 말해서는 안되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자신들만이 알아야만 하고 타인은 그것을 신화 혹은 전설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이 신화와 전설로 희석될 때 범죄는 영웅의 행위가 되고 살인은 정의가 되는 것이다. 

이 기록은 의학적 기록과 같은 것이다. 의사들이 무수한 발사체에 의한 광범위한 두부頭部 손상이라고 기록한 사망 진단서는 병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관단총으로 적대적인 인간의 머리를 박살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와 이야기할때는 거친 단어를 사용하지만 타인에게 증언할 때는 순화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그 거친 단어를 사용한 기록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방부 9급 공무원인 군인은 사실 무력한 존재이다. 그들은 명령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나치의 병사들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그랬듯이 자신이 행한 평범한 악의 의미를 명령이라는 단어로 치환시킨 것이다.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은 남성들 모두가 총을 분해하고 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제목을 두레박을 올려라로 한 것은 군 쫄다구 때 야전으로 훈련가면 고참이 항상 시골 마을의 우물가 두레박을 올리라고 가르쳐 줬는데 그것은 아주 탁월한 가르침이었다. 여름철 우물의 두레박을 올리면 김치통이 따라 올라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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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심판하는 망치 -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 사냥을 위한 교본
야콥 슈프랭거.하인리히 크라머 지음, 이재필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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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백경,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 이 책도 우리들이 오해하고 있는 책의 목록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지금까지 완역된 적이 없고 발췌하거나 부분번역을 통해 알려졌다. 발췌나 부분번역은 항시 자신의 입맛에 맛는 부분을 취하는 것이기에 이를 읽고 책의 전체를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이 책은 러시아판을 번역했음에도 전체를 파악하고자하는 분들께는 무척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이런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점에서 중역이지만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조만간 이 책의 원본인 라틴어를 번역한 책이 나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책이 부분적으로 소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성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마녀를 심판할 때 옷을 벗기고 검사하는 방법이나 고문을 하는 방법이라든가 뭐 그런 기술적인 면을 기술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넘기면 첫장부터 신학적인 고찰이 튀어나온다.

이 책은 신학자인 성직자-신부-가 저술한 책이기에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상상하던 마녀를 색출할 때 어떻게 하는가하는 음란한 방법론적인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은 아주 적으며 분량도 짧다. 책의 대부분은 악마와 마녀에 대한 신학적인 고찰을 담고 있다. 그 고찰이라는 것이 주교법령집라든지 세비야의 이시도르, 교부들과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또 이 책의 구성은 은근히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 형식을 빌리고 있다.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고 이 주제에 대한 반대의견을 나열한 뒤 마지막으로 그 반대를 쳐부수는 형식을 취하면서 저자들은 이 책의 권위가 가톨릭의 정통을 따르고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스콜라 철학의 정치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정교함과 치밀함은 왜 가톨릭이란 종교가 2천년의 세월을 무수한 이단과 도전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단지 중세의 무지함을 표현하는 책으로 봐서는 안된다. 오히려 중세의 가장 큰 두려움인 악의 문제가 인간의 삶에 침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삶을 경험이 아니라 신학이란 잣대로 판단했을 때 창조되지 않은 악, 다시 말해 선이 결핍된 현상인 악이 어떻게 확대해석되는지 알게된다.

 신학에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되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영어와 라틴어 원본을 참조하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용어의 번역을 손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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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와 국민당 엘리티스트
정두음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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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사藍衣社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비밀스러움과 공포라는 점이다. 또 암살과 고문, 납치를 일삼는 무지막지한 관제官製 테러조직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런 남의사의 탄생과 소멸-결코 소멸되지는 않았지만-의 과정을 저자는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과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남의사가 독일보다는 일본의 군국주의로 염색된 파시즘에 더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파시즘은 오히려 남의사 뒤에 오는 삼민주의청년단三民主義靑年團이 더 강하게 받았다고 보았다. 저자는 남의사가 일본을 모델로 삼았지만 중국적인 요소인 방幇의 영향이 컸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파시즘 요소가 행行이라는 날줄을 구성했다면 중국적인 요소인 방은 지知라는 씨줄을 구성하여 남의사라는 단체가 성립되었다고 보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남의사가 생동과 사고의 일치를 요구하는 유교적 덕목인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목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남의사의 탄생은 중국이 일본에게 군사적 패배를 당한 청일전쟁淸日戰爭 이후부터 재기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였다. 중국은 일본이 소수의 우국지사들에 의해 명치유신明治維新이 단행되고 이들에 의해 50년도 안되 근대국가로 탈바꿈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중국도 일본처럼 소수의 엘리트집단을 양성하여 30년 안에 근대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장대한 꿈의 시도였다. 남의사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아는 것처럼 테러와 폭력의 집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은 일부였다. 남의사는 소수정예小數精銳를 표방하며 대중을 교화하고 지도하려 하였다. 다만 그 방법을 파시즘처럼 대중동원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전통의 범죄집단인 청방靑幇과 유사한 방식으로 하려 하였다. 남의사의 이런 행태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범죄조직인 청방과 대립하게 되고 결국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고 만다. 우리들이 남의사에 대해 아는 단편적 지식은 바로 이런 행태에 기인基因한 바가 크다. 남의사는 철저하게 개인에게 소속된 단체였다. 그 정점에 장개석이 위치해 있었다. 장개석은 남의사의 잠재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대중동원을 통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이는 장개석이 자신의 사부였던 손문의 기질을 이어받았기 때문이었다. 손문도 자신의 개인적 능력을 과신한 반면 대중의 능력을 무시하였다. 이는 장개석의 경쟁자였던 모택동이 대중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장개석은 남의사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끊임없이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였다. 충성, 헌신, 일치와 같은 덕목은 필수였다. 그러나 이런 덕목의 강조도 서안사변西安事變을 통해 크게 흔들리게 된다. 장개석 본인이 서안에 감금되어 있을 때 자신이 공들여 키워왔던 엘리트 그룹들이 자신을 권좌에서 내칠 생각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장개석은 서안사변 후에 남의사를 해체하고  삼민주의청년단을 만들게 된다.

남의사의 대부분은 삼민주의청년단에 가입하게 된다. 삼민주의 청년단은 남의사가 비밀리에 행하던 중국 개조작업을 공식화한다. 그것이 바로 신생활운동新生活運動이다. 이것은 철저히 위에서 아래로 행해지던 관제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당시 공산당은 홍구紅區에서 미래의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국민당이 청년들의 교육에 구래의 유습인 유교적 덕목과 서구식 문화를 강조한  반면 공산당은 당시의 현실적인 항일抗日을 구호로 젊은피를 흡수하였다. 국민당이 공식적으로 일본과 싸우게 된 것은 서안사변 후인 상해사변이 일어나면서부터이다. 이때는 중국의 많은 민중들이 일본과 싸우자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공산당에게 동조적이었다. 반면 국민당은 일본과 항전을 기피하는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이것은 공산당의 줄기찬 선전전宣傳戰의 효과이기도 했지만 장개석이 1932년부터 1938년까지 남의사를 통해 끊임없이 공작해온 것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개석은 남의사의 이상을 대만으로 옮기면서 철저하게 시행함으로서 자신을 정점으로 한 거대한 경찰국가의 틀에 묶어놓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은 유교적 덕목의 가장 불순한 사상이 성공한 것이었다. 결국 남의사는 어둠의 저편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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