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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집어들게 된 배경은 신문지상에 올려진 Book Review의 한 구절때문이다. 저자의 El Escorial 여행기 일부를 소개하는 구절을 보자마자 이 책을 온라인 서점을 통해 주문하였다. 책을 받아 든 순간의 첫 느낌은 경악스러울만큼의 두께였다.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분량으로 어쩌면 서점에서 책을 골르는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집어들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무게감을 준다. El Escorial (엘 에스꼬리알)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내 감정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저자도 느꼈다는 착시현상이 사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배경이지만, 신문지상의 Book Review와는 달리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El Escorial의 여행기는 사실 단 서너페이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El Escorial을 여행하는 저자의 여행습관에서 이미 나는 아주 작은 저자와의 동질감과 함께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 책은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월간 신동아] 등에 실린 저자의 수십년 동안의 글 중 여행과 관련이 있는 글들을 따로 떼어 모은 책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월간 신동아]라는 우리식의 표현에서 느껴지듯 두껍고 재미없고 지나치게 시사적이거나 현학적인 글들의 모임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 당연할 듯싶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논객답게 글의 양식은 [월간 신동아]버젼이나 글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적당히 시사적이고 적당히 현학적이며 술술 읽혀내려가는 글들로 어느 순간 "어? 끝이야?"라고 느낄만한 허탈감을 맛 볼 만큼 재미있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사실 많이 배울 수 있는 교재이고 나 역시 글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이 느낀 책이기도 하다.
여행이라는 본질로 다시 돌아온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난 큰 하나를 얻은 것이 있다. 저자의 글을 잠시 옮겨보자.
"한 마디로 말하자면, 판에 박힌 기행문처럼 하찮은 것도 없다는 말이 되겠다. ... 그런 '다분히 기행문 같은 기행문'은 대부분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 정보를 간결하게 정리한 실용적인 여행 안내서라면 나름대로 도움이 되겠지만, 평범한 작가의 평범한 기행문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본다."
이러한 연유로 이 책에서는 다분히 기행문 같은 글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의 서평을 검색해 보면 이러한 연유로 이 책에서 제 6장인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라는 글만이 읽을만 했다라는 독자들의 항변이 많은 반면 사실 나로서는 이 책에서 이 문제의 6장이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라는 꼭지가 이 책에서 가장 읽기 싫고 무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기행문을 원하는 독자의 관점과 판에 박힌 기행문처럼 하찮은 것도 없다는 저자의 관점이 대비되는 극도의 순간을 담고 있는 꼭지이다.
팔레스타인 보고 등 중동 아젠다들이 이 책의 많은 분량을 담고 있다. 이미 20년 전의 시각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지 않은 분량으로 신선하고 정확한 시각을 들려주는 이 책의 핵심재미 중 하나라고 본다. 물론 그 글이 작성된 이후 20년 동안 중동에서는 많은 아젠다들이 펼쳐지고 접혀지지만 그 아젠다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며 20년동안의 변화는 핵심이 아닌 주변 이슈들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기타 여러 핵심꼭지와 재미가 있지만 모든 장을 하나씩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책의 두께만큼 감상의 무게도 길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나머지 모든 글들의 감상은 비슷해 보인다. 취합된 감상의 결론은 이 책의 서론에 다시 귀결된다. 이 책의 서론을 읽는데 참 길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만큼 이 책의 서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겁다. 서론만 1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니 사색기행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하나씩 펼쳐지는 유일한 장이다. 나머지 장은 그것을 실현하고 녹여낸 결과일 뿐이다. 이 100페이지에 달하는 서론을 읽고 다시 읽는데 무려 4달 정도를 보냈다. 나머지 장은 모두 10여일 동안이 짜투리 시간을 내서 읽은 것과는 사뭇 다른 강도이다.
기행문 쓰기, 여행의 맛, 시사적 아젠다의 접근 등 많은 부분에서 느낀 점이 많고 글 읽기가 즐거웠던 오래간만의 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