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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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프리모 레비가 쓴 장편소설이다. 그의 다른 책들은 일종의 수기(手記)라 할 만한 것인데, 이 책은 그중 드문 소설이다. 단테를 애독하는 화학자인 그는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이탈리아 유태인으로, 반파시즘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그의 대부분의 책들은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것들이다. 서경식 선생의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이후 이 책을 포함해 세권을 읽었다.  이 책은 그중 가장 무겁지 않은(?) 책이다. 사람이 가진 잔학성의 끝간 데를 보여주는 레비의 다른 책들에 비해 조금 가볍다 싶을 정도로 잘 읽힌다. 아마 소설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멘델이 빨치산 부대를 찾아가는 과정, 빨치산 주둔지에서의 생활, 몇 번의 전투, 그리고 2차대전의 종전과 이탈리아로의 귀환과정을 다루고 있다. 빨치산 소설이기는 해도 나치와의 전투과정이나 냉혹한 빨치산 전사의 투쟁 같은 것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파시즘이 지배하는 유럽 하늘 아래서 살아가야 하는 유태인들의 생존방식이 오히려 또렷하다. 당시의 유럽 빨치산은 종류도 유형도 가지가지여서 유태인만으로 구성된 빨치산 부대가 있는가 하면, 러시아 빨치산, 폴란드 빨치산도 있고, 여러 국가와 인종들로 구성된 혼합 빨치산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처럼 지리산 언저리에 고립된 채 존재했던 빨치산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 빨치산들은 그렇게 모여 서로 사랑도 하고, 기아선상에서 헤매기도 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하고, 때로 전투와 죽음을 겪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태(본명은 이우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의 <남부군>을 떠올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전에 이병주의 <지리산>이 있었고, <지리산> 이전에 남부군 전사였던 이태와 박현채 선생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병주의 지리산은 이태의 구술에 빚을 졌고, 조정래의 소설은 박현채의 회고에 빚을 졌다. 빨치산 출신인 이태는 김영삼의 민주산악회에 들어가 보수 정치에 몸을 담았고, 박현채 선생은 재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살다가 죽었다. 이태의 삶이야 보수 반공주의가 득세하는 한국사회에서 그가 목숨 부지하고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현채 선생은 조정래가 그의 소설에서 그려낸 것처럼 소년 전사 ‘조원제’의 나머지 삶을 오롯하고 충실하게 살았다.

빨치산 소년 전사인 박현채 선생에 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부경찰서 앞의 연구실에서 책 더미를 쌓아두고 원고를 쓰던 그의 모습과 그 형형한 눈빛이 기억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영 훈련소 화장실에서 새벽에 몰래 담배를 피다 보게 된 신문 쪼가리에서 선생의 부음기사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건장한 체구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를 침을 튀기며 까대던 그의 기개는 사라지고 오랜 암 투병생활로 흉하게 마른 선생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빨치산과 아우슈비츠 이후 프리모 레비의 삶은 박현채 선생의 길과 달랐다. 마르크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박현채 선생은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는 길로 나아갔고, 레비는 그의 과거를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으로 삶을 다 했다.

이태의 남부군에 등장하는 연희전문 출신 ‘청년 시인’ 김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영은 산에서 내려와 빨치산 정신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영등포 시장의 과일 노점상으로 평생 시를 쓰며 살았다. <깃발 없이 가자>(청맥)라는 그의 시집이 나온 것이 1988년이니 이 시인도 아마 유명을 달리했으리라. 레비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책을 읽는 빨치산과 시를 쓰는 빨치산은 전투의 와중에서도 자신의 영혼을 간직하려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내가 살아남은 것은 고전과 교양 때문 이었다”라고 고백한다. 빨치산 투쟁의 와중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자들은 영혼이 맑은 자들이다.

사랑에 대한 열정도 ‘청춘의 형이상학’이지만, 이념에 대한 열정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레비가 자살을 선택하고, 김영이 익명의 노점상으로 홀로 시를 쓰며 살아간 것(일종의 정치적 자살)은 유사한 선택인 것이다. 김영의 시 한편. “목숨이 백개 있어도 모자라는 싸움/매일 몇 번이고 죽음의 고개를 넘었다./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던 아들도 죽고/동생의 한을 푼다던 누나도 갔다./쌍치면 피재 한의 능선/수천의 탄환 중에 하나가 흰나리의/가슴을 뚫고 지나갔는데/나는 비껴서 무사한지 알 수 없다./억새풀 우거진 영마루에 강성구의 시신을 버리고/잡목 무성한 골짜기에 노병서의 묘비를 세웠다./죽어서 깃발로 펄럭이는 흰나리/삶을 넘어 죽음을 지나/용하게도 총알은 나를 피해갔건만/목숨이 백 개 있어도 모자라는 싸움에서/살아남은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인 것을.”(김영, 사선)

유태인으로서 레비의 인식은 시온주의자들의 그것과는 한결 다르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키에프 강경파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이 나치와 모종의 거래 조건으로 서민층 유태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가 하면, 자기네들의 신성한 시오니즘 운동에 반대한다고 유태인 이민자 252명을 태운 배를 하이파 항에서 폭파시켜 버렸다네.” 이것이 바로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포위된 요새론일 것이다. 적에게 공격받고 있는 포위된 요새 안에서는 다른 목소리, 다른 주장은 억압되거나 배제될 수밖에 없다. 레비는 빨치산 대장 율리빈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자민족 약자들을 무시하고 학살하는 시오니스트들에게 타민족의 고통에 대한 배려가 있을 리 없겠지. 그들에겐 오직, 어쩌면 나치보다도 더 잔인한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깊이 뿌리박고 있을지도 모른다네.” 동질성에 기반한 모든 집단주의의 망령은 이렇듯 흉물스럽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태인 빨치산들이 팔레스타인을 택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택하는 이유도 이 나라가 가진 개방성과 자유로움 때문이다. 프리모 레비 자신이 이탈리아 인이어서였을까. 하여간 이탈리아는 로마 가톨릭이 유태인들을 고리대금업자라고 경멸했을 때나 무솔리니 치하의 인종차별법 하에서도 유태인 학살이 한번도 없었다. 이탈리아는 “이방인은 적이 아니고, 법의 준수보다는 시민의 불복종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새삼 이탈리아를 달리 보게 된다. 그래서 이탈리아 공산당이 그렇게 뿌리 깊은 생명력을 유지하고, 마피아가 고향으로 삼을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발견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 유태인 수용소를 찾아간 빨치산들이 대량학살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된 유태인들을 만나는 장면. 이들은 총이 무서워 동료 유태인들에게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레비는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라고 묻는다. 여자 빨치산인 라인은 “내가 살기 위해 당신 가슴에 총을 쏘아도 괜찮다는 얘긴가요? ...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 버린 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라고 말한다. 인간이 다름아닌 호모사피엔스임을 말하는 이 대목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랑신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삶에 대한 애착’이었다고 말한다. 삶에 대한 애착으로서의 운명애(amor fati)와 그럼에도 끝까지 호모사피엔스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 레비가 그의 온 생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는 총살되기 직전 나치에게 허용 받은 30분 동안 써내려간 시의 한 대목이다. 3연으로 된 이 시는 마지막 연은 이렇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이 길이 아니라면 어쩌란 말인가?/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  


ps. 눈 덮인 러시아 평원에서 본 자작나무가 인상적이었는데,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사람들에게 자작나무는 아주 유용한 삶의 도구였던 모양이다. 다음과 같은 대목.  


“특히 시베리아의 광활한 설원에 눈보라에 맞서 쭉쭉 솟아있는 자작나무에 대한 관심이 깊었지요. 잘 아시다시피 자작나무는 기름덩어리라 추위에도 거뜬하고 우리 빨치산들로서는 횃불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지 않습니까. 불에 잘 타니까 땔감으로도 안성맞춤이구요. 또 얇은 껍질들을 벗겨 편지쓰기에도 좋지요.”
“편지도 써요?”
“그럼요. 아주 옛날엔 두루마리 대신 성경이나 코란, 토라, 탈무드 같은 것들을 기록했는데,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으니까 그만이지요.”
“말하자면 천연방부제인 셈이군요.”
“그리고 천연생수이기도 하죠.”
“천연생수요?”
“어, 아직 그 기막힌 맛을 보지 못한 모양이군요.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수액이 나오는데, 아주 달짝지근해요. 무병장수제로 통하지요. 그리고 그 자작나무가 죽으면 버섯이 자라는데, 그게 또 암치료에 특효약이지요.”
“허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군요.”
“물론이지요. 게다가 술꾼들이 최고의 술로 꼽는 순도 높은 보드카도 바로 마지막 제조공정으로 자작나무 숯에 걸러낸 술이지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매혹시킨 건 그런 실용성에 앞서 자작나무 자체가 갖는 순도 높은 미학이지요. 혹한의 눈보라에도 아랑곳 없이 하늘을 향해 아득하게 솟구친 그 수직의 염결성이 나를 숨막히게 하지요. 내가 죽으면 인디언들이 이름을 붙인 그 ‘서 있는 키 큰 형제들’ 아래에 묻히고 싶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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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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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나오는 소설들은 잘 읽지 않는다. 굵직한 서사의 맛도 묘사의 치밀함도 느껴지지 않고 왜소하고 자잘한 이야기들만 늘어놓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게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는 ‘자연의 소멸’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전일적 지배가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이른 후기 자본주의에서 ‘근대의 서사시’(프랑코 모레티)인 소설은 그저 쇄말적인 소재에나 매달리는 영락한 예술형식이 된 모양이다. 소설은 자본주의의 활력과 전근대의 낭만이 공존하던 시대를 다룰 때 가장 빛나는 예술이 된다. 서구의 19세기가 그렇고 한국의 70년대가 그렇다. 최인호, 황석영, 윤흥길, 김원일, 서정인 등 이른바 70년대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들이 그 시대에 가장 좋은 소설들을 펴낸 것도 이런 사정이다. 공장굴뚝으로 대변되는 산업화의 활기가 존재하면서도 노동자의 설움과 비애가 흘러나오고, 소박한 농촌 정서가 살아 있으면서도 이농현상이 극심했던 시기가 바로 70년대다. 역사적 변동기의 활력이야말로 소설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일 것이다.

소설이 읽기 싫어질 때, 육중한 서사의 힘을 느끼고 싶을 때면 나는 플로베르, 발자크, 제인 오스틴, 스탕달을 읽는다. 이들의 고전은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다 읽고 난 뒤의 뿌듯함과 충만감도 여전하다. 최근 소설들이 보여주는 형식주의적 ‘장난’이나 모더니즘 소설이 가진 뒤틀림이 없이 가장 정통적인 방법으로 소설의 진경을 보여준다. 내 보수적 독서관습도 이런 19세기 작가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저항하고 순응하면서 야심만만하게 성공에 도전하다가 좌절한다. 이들이 패배 후 돌아가는 곳은 그래도 남아 있는 순정하고 때 묻지 않은 공간, 인간성의 가장 깊은 곳이다. 거기는 사랑이거나 신뢰, 인간적 연대가 살아 있는 곳이다. 책읽기가 어수선해지고 소설의 본령이 그리울 때 펼쳐드는 작가들의 목록에 한사람 더 추가해야겠다. 그 이름은 찰스 디킨스다.

이틀 동안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인규 옮김, 민음사)를 푹 빠져 읽었다. 디킨스 소설이야 어릴 때 몇 권을 읽었지만 이 소설은 읽지 않았었다. 우리 집에 있던 문학전집에도 이 소설이 있었지만, 그 왜 있잖은가,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책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울고 웃었던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 나이에 소설 따위 보면서 눈물 찔끔거리는 것은 주책스러운 일이나 나는 기꺼이 눈물 몇 방울을 바쳐줬다. 아마 디킨스 소설의 애독자들은 이미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알고 있었을 텐데, 뒤늦게나마 이 사람의 글 솜씨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무감하다고 느껴질 때 펴들 수 있는 책이 한권 늘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요즘의 시각으로는 ‘막장드라마’처럼 보인다. 주인공 핍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연은 얽히고설켜 “알고 보니 내가 니 애비였다”는 식의 우연이 남발된다. 그럼에도 그게 크게 거슬리지 않는 까닭은 각 인물들을 보여주는 디킨스의 묘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번역 소설’ 가운데 사람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이토록 흥미롭고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도 아주 드물다. 특히, ‘조연급’들에 대한 묘사는 아주 사실적으로 재현된 시대극의 인물을 보는 듯한 인상이다. 핍의 매부인 선한 대장장이 조, 그의 아내이자 핍의 누나인 풍채 좋고 성격 괄괄한 조 가저리 부인, 시골 소읍의 위선적 인물인 펌블추크와 선량한 윕슬, 런던 변호사 사무실의 사원 웨믹 등의 인물들이 그러하다. 그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정말이지, 디킨스가 왜 대가인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인 ‘웨믹’이다. 그는 사무실이 있는 해머스미스와 주거지인 월워스를 오고 가는데, 사무실에서의 그는 냉정하고 차갑게 사무를 처리하고 철저하게 돈을 계산하는 인물인 반면, 자신의 집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착한 아들이자 인간미 넘치는 친구다. “(런던의 사무실로) 가는 동안 웨믹은 차츰차츰 메마르고 딱딱해져 갔으며, 그의 입은 다시 꽉 다물어져서 우체통 구멍처럼 되어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가 그의 근무처에 도착하여 그가 상의의 목깃에서 열쇠를 꺼낼 순간이 되었을 때는, 그는 월워스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의 성과 도개교와 정자와 호수와 분수와 노인장 등이 ‘귀청 때리는 놈’의 마지막 발사와 함께 모조리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1권, p.384)

그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런던의 차가운 자본주의적 질서로부터 분리시킬 줄 아는 인물이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직은 식민화되지 않은 안온하고 따스한 공간을 유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근원으로 삼을 줄 안다는 얘기다. 확대하자면 그것은 디킨스가 보여주는 당대 영국 사회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런던과 시골 소읍, 변호사 사무실과 대장간, 착하고 선한 그의 매부와 런던의 속악한 인물들 사이에서 그는 천하고 남루한 하층민과 그들의 삶에 더 곡진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가령, 도제인 핍을 런던에 데려가면서 돈을 주려는 변호사 제거스에 대해 대장장이 조가 보여주는 태도는 하층계급으로서의 자존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이들 계급의 모습은 자신이 속한 계급과 삶에 대한 자존과 위엄으로 도드라진다.

주인공 핍이 ‘신사’가 될 수 있도록 후원했던 익명의 인물은 늪지대로 도망왔쳐 왔던 죄수 프로비스였다. 핍은 공포에 질려 굶주린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줬고, 그것은 그에게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위안이 된다. 그는 천한 자신이 신사를 남몰래 키우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유형지의 험악한 삶을 견뎌내고 큰 돈을 벌었다. 그의 행위는 영국 사회에 대한 르상티망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지만, 디킨스는 그것이 굶주림에 빠진 자에게 어린아이가 보여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의’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생 복수를 꿈꾸며 차갑고 냉정한 세월을 보낸 미스 해비셤이나 그의 양녀인 에스텔러도 종국에는 그들의 내부에 지울 수 없는 인간애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디킨스는 “사람 잡는 덫을 설치해 놓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의 런던을 버티게 한 것이 바로 이런 인간성의 연대임을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조와 비니는 삶에 대한 태도와 타인에게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고결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통해 그런 영혼을 지닌 자들과 만나는 것은 책읽기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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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옥희의 영화>를 보다. 조선일보 뒤편에 있는 조그만 극장 스폰지하우스는 퇴근 이후 홀로 영화를 보기에 아주 적절한 공간이다. 홍상수의 영화라서 그런지(?) 좌석은 반쯤도 차지 않았다. 팔걸이에 턱을 괴고 앉아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위선과 위악에 키들거리면서, 그 위선과 위악이 내 안에도 겹겹이 쌓여 있음을 확인하면서 봤다. 80분 동안 오랜만에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나서 든 생각은 ‘삶으로서의 텍스트’라는 말이었다. 3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마지막 ‘옥희의 영화’에서 그녀의 삶으로 이뤄진 두 개의 텍스트를 병치시켜 보여준다. 그녀가 만나고 연애한 젊은 남자와 나이든 남자와의 짧은 아차산행 산책. 몇 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개의 사건은 그녀의 삶에서 동일한 것의 반복이면서 변주이기도 하다. 반복인 까닭은 연애하는 남자와 동일한 코스의 산책을 했다는 것이고, 변주인 것은 그때그때의 대사와 행위, 그녀가 느낀 순간의 감정이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두 개의 텍스트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만나게 되지만 다른 두 주인공들인 젊은 남자와 나이든 남자는 동일한 장소에서 서로 조우하지 않는다. 홍상수의 많은 영화가 그렇듯이 남녀가 벌이는 사소하고도 진지한 해프닝과 돌연 격렬해지는 주인공들의 감정적 굴곡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학교에 무슨 약 탔나봐. 요새 다들 나 좋다고 난리다, 난리”라고 발랄하게 내뱉는 옥희. 이 영화는 ‘약’에 취한 사내들이 젊은 영화학도 옥희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연애담이다. 옥희는 그런 두 남자와의 연애를 ‘영화’로 텍스트화하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반복이고 무엇이 변주인가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약에 취한 사내들이 편재해 있는 세상에서 그녀는 기꺼이 ‘약먹은 사내’들에게로 몸을 내던진다. 그러니 옥희의 ‘영화’는 반복과 사소한 변주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텍스트가 별다른 서사적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다. 약먹은 사내들의 애정공세에 기꺼이 기투하는 옥희의 운명이 만들어낸 유사-텍스트인 셈이다.

정혜윤의 <런던을 속삭여줄게>(푸른숲)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삶으로서의 텍스트가 아니라 그녀의 독서편력으로 이뤄진 텍스트와 그에 관한 그녀의 나직한 독백이다. 시인은 시를 쓰지만 때로 시를 온몸으로 살아가듯이, 누군가는 삶으로서 자신이 보여줄 ‘텍스트’를 만들고, 누군가는 자신의 독서편력을 ‘텍스트’로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런던에 관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런던행을 빙자한 그녀의 독서일기이자 책에서 책으로 이어진 그녀의 몽상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인 공간으로서의 영국 런던이 아니라 그녀의 독서목록과 그 책들의 귀한 구절들과 거기서 그녀가 느꼈던 사념들을 따라가며 책장을 넘겼다. 고백하자면, 그것은 질투와 시샘이었다. (이 나이에, 이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그녀가 보여주는 편력의 내력과 넓이가 질투가 났고, 잘 쓰여진 문장과 그 문장들이 실어 나르는 축축한 감성들에 시샘이 났다. 요컨대, 그녀는 ‘가짜’가 아니다.

유종호 선생은 어느 글에선가 ‘제자리에 놓인 말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게 유종호 선생이 인용하고 있는 미국 신비평가 클린스 브룩스의 말인지, 다른 누군가의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부실한 기억, 그리고 그걸 굳이 찾지 않는 불성실이 문제다. 아마 저자 정혜윤이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으리라.) 나는 정혜윤의 책을 읽으면서 이 말을 약간 비틀어 ‘제자리에 놓인 인용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것은 순전히 추후의 ‘인용’을 염두에 둔 극히 실용주의적인 독서의 산물이 아니다. 그녀는 텍스트와 내밀하게 교유하며 그 텍스트를 기억의 갈피에 꼭꼭 접어 두고 적절히 그것을 끄집어낸다. 아카데믹한 훈련을 받은 ‘인위적 독서가’들은 대영박물관을 두고 존 키츠와 쉼보르스카, 마르크스, 헤로도투스, 길가메쉬 서사시를 나란히 놓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연사 박물관에서 <거미여인의 키스>와 <황금가지>, <마담 보바리>, <인간등정의 발자취>와 릴케, D.H. 로렌스를 동시에 떠올리지 못한다.

책을 읽어주는 일을 직업으로 한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 책 제목은 밝히지 말자. 다만 레몽 장의 <책읽어주는 여자>는 아니다. 그녀의 일은 ‘사장’이 책에 쓰인 교양을 필요로 할 때, 혹은 사람을 만날 때 그에 관한 적절한 책을 생각해 내고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하며, 책을 읽는 행위가 ‘돈벌이’의 수단도 되지 않을까 라는 가상한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나, 정혜윤은 그런 보상을 바라지 않는 무상(無償)의 독서가다. 기실 독서가 주는 쾌락 외에 다른 것을 전제로 한 책읽기는 가짜들의 독서다. 이 기준에 비춰 나는 대부분의 경우 실용적 필요에 이끌려 책을 읽었으니 분명 ‘가짜’의 반열에 들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책읽기를 필수적으로 요구하지도 않는 직업이니(내가 아는 대개의 피디들은 책이 아니라 술에 탐닉하더라.) 그녀가 보여주는 무상의 책읽기는 온전히 ‘순정한 의미에서의 독서’다. 우리나라에 이런 순정한 독서가, 참으로 흔치 않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서였던가, 한겨레21 쯤 되는 잡지에서였던가. 저자의 책읽기를 보여주는 몇편의 글을 읽었던 듯한데, 온전히 이 여자의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영국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건네준 사람 또한 무상의 쾌락을 아는 사람이었는데, 눈밝은 자들은 자기류의 사람에게 눈을 반짝이게 마련인 모양이다. 저자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렸을 문학전집인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이거나 ‘을유문화사판 세계문학전집’을 첫째 권부터 차곡차곡 읽어 내려간 적이 있나 보다. 확인할 길이 없으니 편력으로 그리 짐작할 수밖에 없다. 나야 스탕달을 읽고 몇권 건너 뛰어 세익스피어를 읽다 말고, 에드가 알란 포우에 빠졌다가 모비딕을 반쯤 읽다가 세르반테스에 낄낄대다 제 풀에 지쳐 무협지로 건너갔으니 이건 질투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일 것인가. 그런데, 반가운 것은 세상에는 비록 소수나마 이런 전업독서가(?)가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누추한 일상을 벗어나려는 욕망을 가진 누구에게나 그런 욕망은 직접적으로, 혹은 변형된 채로 존재한다. 물론 전업은 생계를 위한 시간 외의 시간을 온전히 바친다는 의미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책의 경중을 잴 줄 아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과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 이문열의 소설과 <해리포터>와 동일한 반열에 놓일 수는 없다. 그럴 때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침대에 누워 읽다가 소설에 감명해 다시 정장을 하고 책상에 정좌한 채 책을 읽었다는 러시아 비평가의 ‘예의’를 생각하게 된다. <자본>을 소설책 읽듯 읽어치우는 자들은 마르크스가 애용한 대영박물관에서 아동노동에 관한 노동감독관의 보고서를 읽거나 연상해내지 못한다. 정혜윤이 가진 독서가로서의 장점은 이런 ‘기우뚱한 균형감각’이다. 그녀의 책읽기에 일단의 신뢰를 보내는 이유다. 바흐의 파르티타의 존재를 가르쳐준 시인 김갑수는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고 청승을 떨었다. 나는 도대체 왜 책을 읽는가. 정혜윤의 책읽기를 훔쳐보면서도 그랬다. 왜 책을 읽는가. 그것 역시 이 지상의 삶이 괴로워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일상과는 다른 회로, 다른 자전축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불러낸 것, 기꺼이 그 속으로 망명하고자 했던, 잠깐의 허깨비일지라도, 우리는 결국 '바다로 향해 날아간 나비'처럼 그렇게 책에 머리를 콕 박고 망명을 꿈꾸는 것이 아닐 것인가.   

 

 

By homely gift and hindered Words
The human heart is told
Of Nothing —
"Nothing" is the force
That renovates the World — 
 - Emily Dik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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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11-07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37년, 방바닥 이불 신세로 살아왔는데
정혜윤 이 양반 '침대와 책'보면서
침대 생활이 부러워진 적 있소.
사실 침대는 섹스의 보조 도구인 줄로만 알았다오.
요즘 정혜윤을 김경과 겹쳐읽고 있는데
둘 덕분에 그나마 우울을 달래고 있는 중.

모든사이 2010-11-0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김경이 패션지 기자였던 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좀 '가짜'에 가깝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저널적 잡식을 버무려 비틀린 글쓰기를 해댄다고 해서 내공이 깊은 것은 아닐 테니 말야.

이진성 2010-11-1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짜면 또 어떻수? 대통령도 해먹는 세상인데...

트레바리 2011-07-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최근에 이분이 <제인 에어>에 대해 쓴 짤막한 글을 어디서 봤는데, 개성은 강해 보여도 썩 명쾌하고 조리있단 인상은 받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말씀하신 '제자리에 놓인 인용의 아름다움'은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자리에 놓인 말의 아름다움'은 좀 떨어지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뭔가 직업상의 餘技라는 느낌도 짙었는데, 그렇기에 점수를 더 받는지도 모르지요. 호평하셨는데 속단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자리에 놓인 말'은 아마도, 조나단 스위프트의 "Proper words in proper places make the true definition of a style"이라는 명제에서 온 것 같습니다. 아울러, 마지막에 덧붙이신 에밀리 딕킨슨 시의 明譯을 한번 부탁드리고 싶군요..^^

모든사이 2011-07-16 17:02   좋아요 0 | URL
스위프트라니, 인용의 전거를 찾아내시는 내공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제인에어>에 관한 글은 한겨레인가에 실린 에세이 같은데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정혜윤의 책읽기를 대체로 신뢰하는 편이라서요.. ^^ 그리고, 피디라는 직업과 전업독서가를 병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문학전공자로, 문학을 팔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직업상의 '여기'일 수밖에 없겠지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고요. 가끔 그 '여기'만으로 먹고 살수는 없나 하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ㅎㅎ 디킨슨의 시는 강은교 선생이 번역한 민음사판 세계시인선에 실린 시입니다. 강은교의 번역은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인간의 가슴은 듣고 있지/허무에 대해 - /세계를 새롭헤 하는/힘인 허무-" -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라고 되어 있군요.

트레바리 2011-07-1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기'라는 말을 제가 좀 폄하하는 의미로 쓴 것 같은데, 비전문가가 써도 '여기'같지 않은 글을 염두에 둔 뜻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전문 분야인 만큼, 좀 더 신중과 성의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뭐 이런 얘깁니다..^^ 적어도 이 서재의 리뷰들은 '여기'라는 인상은 주지 않거든요. 암튼 한겨레21의 <제인 에어> 소설평 딱 하나만 읽고 딴지 걸 순 없지만, 글이 참신하고 재밌는 건 사실인데, 글 풀어나가는 방식이 좀 따라가기 힘든 데가 있다는 저의 까탈스러운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이런 건데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타인으로부터 오는 격려와 신뢰, 다정한 마음이 한 사람이 무사히 뒤틀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제인 에어의 진정한 관심사는 자기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려 노력하여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제인 에어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에서, 물론 앞뒤 문맥을 보면 무슨 얘긴지는 알겠는데, 이 자체로 세 문장을 각각 또 서로 이어서 읽어보면 다소 모호하고 비약이 있지 않나 합니다..(이런 부분은 예를 더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전문가 중심의 잣대로 판단하는건 아니지만, '여기'라도 '여기' 같지 않은 철저함이 더 귀감이 되잖을까 싶네요..^^ 디킨슨 시는 조금 전에 저도 민음사판에서 우연찮게 확인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적어두신게 오히려 낫군요..^^ 조나선 스위프트는 예이츠, 조이스,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씽 등과 함께 아일랜드 작가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혜윤씨 글은 앞으로 더 읽어보겠습니다. 기독방송 피디로서 독서의 달인이라면 과히 드물고 그러니 소홀히 볼 분은 분명 아니겠지요.. 답글, 감사드립니다.

모든사이 2011-07-16 20:48   좋아요 0 | URL
아일랜드 작가 중에 사무엘 베케트가 빠지면 섭섭하겠지요.. 더블린에서 파는 티셔츠를 보니 베케트와 예이츠, 조이스 세명을 앞자락에 넣은 게 있더군요. 정혜윤은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널리 확산시킨 공로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봅니다..^^
 
마오쩌둥 - 나는 중국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인문고전 깊이읽기 4
신봉수 지음 / 한길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마오쩌둥의 삶과 사상에 대해 내가 읽은 것은 조나선 스펜서가 쓴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푸른숲)이었다. 스펜서의 <현대중국을 찾아서>(이산)나 <강희제>(이산)와 같은 책에 비해 그의 마오평전은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그가 마오를 바라보는 시각은 ‘서구민주주의’를 잣대로 한 것이었다. 서구식 기준으로 볼 때, 마오는 끔찍한 독재자이자 우상숭배와 같은 전근대적 행태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같은 대참사를 불러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스펜서의 마오에 대한 시각은 대장정을 끝낸 1935년 전후로 크게 엇갈린다. 대장정 시기까지 마오는 민중의 지도자였지만, 준이 회의(1935)로 군사지휘권을 획득한 이후 ‘독재자’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대약진운동과 문혁과 같은 대재앙은 이미 그때부터 예고되었다고 본다.

스펜서의 시각은 마오에 대한 서구의 ‘표준적 이해’ 방식인 듯 하다. 그들로서는 한 개인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나 수 천만 명이 굶어죽은 대약진운동 같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일 뿐이다. 그 시각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을 고수할 때 과거의 중국도, 현재의 중국도 제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 끈질기게 ‘중국붕괴론’ 같은 것이 살아남는 이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중국붕괴론을 한반도까지 연장하면 ‘북한붕괴론’이 된다. 이해가 불가할 때 그들은 전면적 부정으로 나아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과 상관없이 중국은 승승장구하고, 북한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마오쩌둥, 나는 중국의 유토피아를 꿈꾼다>(신봉수 지음, 한길사)가 내심 반가웠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짐작컨대 외국의 사상가나 인물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쓴 책들은 많지 않다. 한길사의 인물평전 시리즈도 독일의 평전시리즈(한길 로로로)를 번역한 것이었고, <닥터노먼 베쑨>으로 유명한 실천문학사의 평전시리즈(역사인물찾기)도 번역서였다. ‘인문고전 깊이읽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한길사의 인물 평전시리즈는 맹자, 프로이트, 부르크하르트, 마오쩌둥 등 네 종류가 최근 나란히 출간되었다. 나로서는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에서 벗어난 마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한국인 학자의 눈으로 꼭꼭 씹어 삼킨 마오의 모습을 말이다.

베이징대에서 마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마오의 사상으로 본 중국의 근대성’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화가 서구적 근대화(후쿠자와의 문명개화는 곧 서구화였다.)를 추종하는 길이었다면, 중국은 '중국적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그 핵심에 마오주의가 있다. 저자는 마오의 사상을 인식론, 실천론, 모순론, 계급론, 민족해방론, 인민주의, 유토피아주의, 중국적 독자성, 근대와 탈근대라는 9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흥미로운 것은 마오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이같은 담론들이 바로 중국적 근대와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경로’를 이룬다는 점이다. 마오의 담론은 당대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맥락과 논리를 설명해준다. 담론의, 담론에 의한 중국 근대라고나 할까

하나의 담론, 그것도 한 지도자의 담론은 국가운영의 원리이면서 인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핵심기제가 된다. 저자가 서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퀸틴 스키너의 “정치사상은 정치제도를 결정한다”는 말은 마오와 중국의 경우에 그럴 듯하게 들어 맞는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오의 사상이 경험 속에서 길어 올려진 실천적 담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도의 추상적 담론에서 출발하지 않고 경험적 현실과 내부적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진 담론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상호작용이 그만큼 긴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로 이 경험주의는 불가능한 현실을 창출하려는 정치적 욕망으로 인해 재앙을 빚기도 했다. ‘경험’은 ‘이론’과의 긴장속에서 스스로를 벼리고 풍성하게 만드는 법일텐데, 마오는 때로 과도한 경험주의로, 때로 과도한 추상으로 흔들거린다.

먼저 마오의 인식론. 그가 쓴(썼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스탈린이 정식화한(속류화한?) 변유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았다. 물질의 의식에 대한 선차성, 사물의 인식가능성, 변화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 등 과거 소비에트 변유 교과서에서 반복되었던 주장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마오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인식의 주체성’을 유달리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뒤이은 실천론, 모순론 등에서 재차 강조되며 마오주의, 곧 중국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특징을 이루게 된다.

그 다음 실천론. 마오는 “인식은 실천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식은 수준에 따라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으로 구분되는데, 감성적 인식은 객관세계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이성적 인식은 객관세계의 법칙성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마오는 여기서 실천에 대한 강조로 나아간다. 그는 행위 주체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객관세계의 조건은 인간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인민대중의 자발적인 의지만 있다면 역사발전의 법칙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 객관세계의 조건과 한계를 인간의 의지로 넘어설 수 있다는 ‘만용’에서 마오사상과 중국 근대의 비극은 시작된다. 중국과 북한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것은 바로 이런 ‘주의주의’(voluntarism)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주의주의의 극단적 형태일 것이다.

 

당시 소련은 생산력 발전이라는 물질적 조건의 개선에 힘을 기울였지만 중국은 마오의 실천론에 입각해 그와 다른 발전경로를 추구했다. 마오의 주의주의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산관계, 이론, 상부구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은 정통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이탈일 것이다. 마오가 중국적 마르크스주의를 열었다면 아마도 이같은 마오적 편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니, 저자에 의하면 편향이라기 보다 중국 전통사상(가령 공자)이라는 또다른 마오사상의 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오는 공자가 인식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한다고 보고, 이것이 기계적 유물론보다 우월하다고 지적한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11번째 테제의 마오식 변형 ;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객관세계의 규칙성을 이해하고 세계를 해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규칙을 인식함으로써 세계를 능동적으로 개조하는 데 있다.”(실천론)

저자에 따르면 모순론이야말로 마오사상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미 중국의 전통사상에는 음양오행설과 같은 모순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의 전통들이 존재했다. 마오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과 같은 변증법적 논리학의 기초에서부터 시작하여 모순의 보편성과 절대성에 대한 인식으로 발전한다. 그는 모순을 주요모순과 부차모순으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대 중국혁명의 전략과 전술로 확장된다. 반식민지인 중국의 경우 제국주의의 침략이 시작되면 제국과 식민지간의 모순이 주요모순이 되고, 내부의 계급모순은 부차모순이 된다. 또는 제국주의가 중국내 봉건계급, 자산계급과 결탁하여 인민대중을 탄압할 경우 주요 모순은 계급모순이 된다.

중국 현대사는 모순론으로 잘 이해된다. 중국공산당이 1, 2차 국공합작에 참여했던 이유는 주요모순이 제국 대 식민지간의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가 물러가자 이제 내부의 계급모순이 주요모순이 되어 국공내전에 돌입한다. 중국 공산당이 최종적 승리를 구가한 이후에도 주요 모순은 계급모순으로 계속되는데, 잔존한 봉건세력 및 내부 자산계급과의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마오의 시각으로 보자면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은 바로 제국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계급모순을 둘러싼 투쟁인 셈이다.

마오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계급인 산업노동자를 혁명의 중심세력이라 보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고향 호남성에 가서 작성했던 ‘호남농민 보고서’에서부터 이런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유학파 중국 마르크시스트들이 교조적으로 산업노동자의 우위와 농민계급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마오의 ‘경험주의’로 보건대 혁명의 주체는 농민이었다. (마오는 특히 거주지 없이 떠돌던 유민을 가장 혁명적인 세력으로 꼽는데, 여기에 비밀 폭력조직인 삼합회, 청방 등이 들어가 있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농민계급의 혁명적 성격을 본 마오의 시각은 당시 중국사회의 발전 정도를 볼 때 타당한 것이었다. 남미의 무장 반군들이 마오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의 이론이 마오주의여서가 아니라 농촌에 근거한 농민게릴라라는 특유의 투쟁형태 때문이었으리라.

마오의 민족해방론은 모순론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그에게 민족과 계급은 주요모순의 시계열적 변화, 곧 민족-계급-민족-계급의 순환에 따라 중요도가 달리 파악된다. “구국이 계몽을 압도했던 시기”(이택후)인, 1921년 공산당 창당이전에는 민족모순이 주요모순이 되는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마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공산당 창당이후에는 계급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파악하게 되고, 1937년 중일전쟁의 시작으로 민족모순이 주요모순으로 등극한다. 사회주의 중국 이후에는 계급모순이 다시 마오의 화두가 된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덩은 마오의 민족모순에 대한 인식이 외국자본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낳았고, 이것이 중국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개방정책은 민족모순이라는 틀을 벗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민족모순의 해소과정은 동시에 계급모순의 심화과정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중국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대외개방적 자본주의(탈민족)는 현재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대국-화평굴기론?)와 결합하여 중국사회를 모순을 매우 복합적인 양상으로 드러낸다.

마오주의의 또다른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인민주의(populism)이다. 그중에서도 농민 중심의 인민주의다. (중국에서 인민주의의 역어는 민수주의(民粹主義)다) 마오는 봉건경제에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농민 중심의 인민의 의지만 충만하다면 말이다. 마오는 1959년 경제발전에 관한 보고서의 제목을 ‘2년내 영국 추월’이라고 고치면서 사상과 정치교육을 통해 사회주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망상을 풀어놓고 있다. 그 비밀이 바로 인민의 의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힘이자 발전의 원동력인 인민. 그것은 반지성 혹은 반엘리트주의로서 문혁 당시의 홍위병의 난동은 이런 배경하에서 가능했다.

원초적 힘으로서 인민의 의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오의 인민주의는 ‘파시즘’의 논리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중국 전통사상에서 줄곧 강조되는 민본주의(민심은 천심)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인민은 물과 같으며, 각급 지도자들은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물을 떠나서는 안되며 물에 순응하고 물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즉, 대중을 질책하면 안되며, 대중은 질책할 수 없는 존재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배를 뜻하며, 권력의 원천이 인민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인민을 절대화할 때 실상 그것은 반인민주의가 되기 십상이다. 이때의 인민은 지금 여기의 구체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추상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중은 옳지만, 민중주의는 글쎄올시다?

중국혁명의 독자성. 마오는 한때의 후원자였던 소련과의 긴장속에서 독자적인 중국혁명의 길을 모색한다. 대장정 시기 다른 지도자들이 코민테른의 ‘지시’를 기다리느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마오는 '중국적 현실'을 내세우며 자신의 길을 간다. 사회주의 중국 이후에도 흐루시초프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면서(특히 1959년 핵잠수함 관련 갈등) 이른바 평화공존 5개항이라는 외교적 원칙을 천명하는데, 이는 1) 주권과 영토의 상호존중 2) 상호불가침 3) 상호내정 불간섭 4) 평등호혜 5) 평화공존 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주권국가에 대한 불가침 원칙을 뜻하는 ‘절대적 주권’ 개념이 추가되면서 마오의 외교독트린이 완성된다. 덩사오핑하의 중국에서도 이 원칙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는데, 1) 주권을 침해받는 국가가 이에 동의하고 2) 외국의 간섭을 유엔이 승인하고 3) 물리적 수단 이전에 정치외교적 협상이라는 세가지 조건속에서 수정가능하다. 이라크전이나 북핵문제 등 국제분쟁에 대해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태도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가능하다.

저자는 마오 사상이 근대적 성격과 탈근대적 성격 모두를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오가 근대적일 수 있는 이유는 서구의 자본주의적 근대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마오가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자 대안으로서 추구했던 것은 사회주의였다. “마오의 사회주의는 일종의 근대화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 근대화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왕후이의 말은 매우 적확해 보인다. 그는 마오를 ‘반근대적인 근대성’이라 평가하는데, 마오주의는 근대화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자본주의 근대화 방식에 대한 비판, 곧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오의 대안적 근대성에 대한 추구는 성공적이었을까. 문혁과 같은 사태를 보면 그렇지 않다. 주체의 해방은커녕, 개인숭배와 전근대적 억압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마오는 문혁이 70%는 성공, 30%는 과오라고 말한다.)

분명 근대성은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누구의 말대로 ‘복수의 근대성’이 존재할 뿐이다. 서구적 근대를 지향한 일본은 천황제의 발명이라는 일본적 경로를 거친다. 중국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라는 경로를 밟았다. 우리는? 알다시피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매우 불행한 경로를 밟았다. 현대의 중국을 서구적 근대의 시각으로 볼때 스펜서와 같은 이해방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실상이라기 보다 자기충족적 예견일 수 있다. 마오는 20세기 전반기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통한 중국적 사회주의를 열었고, 덩샤오핑은 20세기 후반기 자본주의의 중국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도대체, 이 놈의 나라는 자본주의인 것인가, 사회주의인 것인가. 학자들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니 ‘관료적 발전국가’니 하는 평가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평가기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중국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현존했던 ‘역사’의 잣대(그것도 서구적 기준의)를 갖고 이리저리 평가하는 것은 정말 몽매한 일이 아닐까. 우리는 과연 중국이라는 이 괴물(‘×’로서의 중국)을 어떻게 평가해야할 것인가.

 

2009년 다보스 포럼에 나온 중국학자는 “1949년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마오는 공자도, 맹자도, 마르크스도, ‘베이징의 아담스미스’도 아닌 그 모든 것의 복합체로서의 마오였다. 모두가 마오를 한물 간 정치가라고 떠드는 마당에 이런 책을 펴내 나같은 문외한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논리와 실천, 담론과 현실, 리더십과 민중, 이른바 ‘중국적’이라는 것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부디 책이 많이 팔려 신봉수 박사 같은 분에게 많은 위안과 보람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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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의 경험은 많지 않다. 당연히 외국의 헌책방을 가본 적도 많지 않다. 유럽의 경우는 이광주 선생의 책 같은데서 얼핏 분위기를 보았을 뿐이고, 일본은 유학을 했던 자들이  간다 헌책방 거리(神田 古本街)를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근대적 제책의 역사가 짧은 우리로서는 헌책방도 그만큼 부실한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외국의 헌책방은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할 터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서재에 고작 1천여 권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정도 규모는 지금으로 치자면 1만권이 넘는 분량에 해당할 것이다.  


문학사회학의 접근방법은 서적의 유통과 근대적 독자의 탄생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그런 접근은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초기의 ‘딱지본 소설’에 와서야 가능하다. 17세기 자본주의와 함께 출발한 서구의 근대적 책의 생산과 유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사회학적 접근방법이 문학과 사회의 상동구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인 서정주의 <화사집>이 5백부 한정본으로 출간돼 지인들끼리 나눠 가졌다는 사정을 생각해보면, 근대적 독서계층의 형성 어쩌고 하는 접근은 공허한 얘기다.

외국의 헌책방이 다를 것이라는 지레 짐작은 이런 맥락에서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간 외국의 헌책방은 영화로도 유명해진 파리의 'Shakespeare & co' 였다. 그 책방 앞으로 센강이 흐르고, 강둑에는 헌책 노점상들이 주욱 늘어서 책을 팔고 있었다. 서점 안에 있는 것보다는 노점 좌판에 놓인 책들이 더 낡아 보였고 종류도 다양해 보였다. 악보만 파는 노점, 소설책만 파는 노점 등, 지금도 이런 지는 모르겠다. 왜 서점의 이름을 ‘세익스피어 앤 코’로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제목의 간판을 나란히 달고 있는 두개의 가게가 인상적이었다.

헌책방 특유의 비좁고 퇴락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먼지 앉은 책들, 신간과 구간이 뒤섞여 있는 서가. 우리나라처럼 중고삐리들 참고서나 대중잡지 등이 보이지 않는 게 다르다면 다른 모습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서점의 2층 한구석에 때 묻은 담요를 반쯤 덮고 자고 있는 앳된 모습의 여대생이다. 책더미 사이의 좁은 마루 바닥에서 어깨와 배가 훤히 드러난 티셔츠를 입고 허연 목덜미를 드러낸 채 잠에 빠져 있는 여학생. 서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단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10여년 저쪽의 세월임에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릇 책이 있는 곳이란 비몽사몽을 오가는 사유와 몽상의 공간이 아닐 것인가.

아마도 그날 거기서 산 책은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의 영어본 두어 권, 르네 마그리트 화집 정도일 것이다. 파리를 알지 못하는 나를 거기로 안내한 유학생 부부는 파리가 나의 유별난 취미를 만족시킬 만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준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소설가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탐욕스런 눈으로 서가를 훑었는데, 정작 아무 것도 사질 않았다. 영어 소설을 밥 먹듯 게걸스럽게 읽어치우는 이 소설가의 책탐으로 보자면 국내 출간이 되지 않은 영어본 책들을 살 법도 한데, 그러기에는 지나치리만큼 검약(?)스러웠다. 귀국 비행기에 싣고 갈 캐리어의 무게를 걱정한 탓일까.

지난 7월 다시 파리에 갔을 때 이 곳에 들러 몇 권의 책을 사왔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클턴의 책, 보수적 인문주의자 매튜 아놀드 평전, 20세기 초 파리에 머물던 예술가들에 대한 책,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문 만화 버전 등. 약속시간이 임박해 좀 더 느긋하게 헌책을 뒤져보지 못한 게 아쉽다. 서점은 10여 년 전과 똑같았으나 달라진 것은 나와 내 일행들이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엔 혼자였던 것. 파리도, 세익스피어앤코도, 센강도 그대로였으나 나를 둘러싼 관계의 구조와 사슬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서 느낀 적막감과 쓸쓸함은 이런 변화에 대한 실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뉴욕에 갔을 때 들른 곳은 유니언 스퀘어 부근의 스트랜드(Strand) 서점. 벌써 5년째 아놀드 파머사에서 ‘우산’을 그리고 있는 사촌 동생은 제 오빠의 유난스런 취미를 짐작해서인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곳이 뉴욕이라서 그랬을까, 책값도 싸고 쌓인 책들의 더미도 많았다. 책을 사면 서점 로고가 새겨진 흰색 천가방을 덤으로 주었다. 사람들은 어느 코너의 책마다 북적댔다. 뉴욕답게 1, 2층으로 된 대형서점이라 그런지 작은 규모의 헌책방이 주는 포근하고 정겨운 아우라는 없었다.

여기서 산 책은 <누바 족의 최후, The Last of NUBA>,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If not now, When> 두 권. 앞엣 것은 레니 리펜슈탈이 찍은 누바족 사진집이고, 뒤엣 것은 레비가 쓴 장편소설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도 하나는 파시스트 예술가였고 다른 한명은 반파시즘 작가였다. 정치적 열광이자 이념으로서의 파시즘은 사라지고, 파시즘의 미시정치학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건 무슨 ‘흘러간 유행가’에 대한 탐닉일까.

리펜슈탈 사진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수잔 손탁이 쓴 <우울한 열정>에 실린 에세이 때문이었다. 히틀러의 선전영화 감독이기도 한 리펜슈탈은 미학으로 무장한 파시스트였다. 그것도 거칠고 투박한 파시스트가 아니라 세련되고 감각적인 파시즘 미학의 구현자였다. 손탁은 그녀에게서 ‘파시즘’을 괄호치고 ‘미학’에만 주목하는, 그리하여 그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열정적 예술가로 평가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보낸다.

<누바족의 최후>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리펜슈탈의 열광이다. 문명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원시적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벌거벗은, 그러나 매우 단단하게 단련된 신체. 이 사진집에 실린 ‘몸’들은 여성의 그것이 아닌 남성의 신체다. 이것은 리펜슈탈이 만든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올림피아>가 보여주는 신체의 미학과 빼닮았다. <올림피아>의 첫 장면 역시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 형태의 ‘몸’을 보여주는 그리스 조각이 아니던가.

 <누바족의 최후> 역시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점만 빼면 신체에 대한 그리스적 이상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파시즘의 재생신화와 관련된다. 윤리적 타락과 속물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를 부정하고(반근대), 인류문명의 시원적 공간으로 돌아가 새로운 문명을 건설(재생)하고자 하는 ‘의지’. 그녀의 사진은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렇듯 거기 스민 정치적 상상력은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다. 파시스트로서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열정적 예술가를 자처하고자 했던 리펜슈탈의 음험한 시도는 손탁에 의해 여지없이 폭로된다. 스트랜드 서점 서가에 꽂힌 <누바족의 최후>는 모두 세권. 이 책을 샀던 사람들은 그녀가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이 작가의 자살 소식이 실린 <뉴욕타임스>와 <뉴욕리뷰 오브 북스>  의 서평 기사가 오려진 채로 끼워져 있었다. 아마도 레비의 자살 소식이 실린 기사를 읽고 이 책을 샀나 보다. 그 자신이 반파시즘 빨치산이었던 레비는 그 경험을 이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가 자전적 수기임에 비해 이 책은 ‘소설’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그는 ‘시대의 증언’을 위한 글쓰기에서 ‘소설로서의 글쓰기’로 나아갔다. 자신이 겪은 잔혹한 경험은 소설 이전에 사실로서 기록되어야 했던 것이다. 소설은 ‘사실’ 이후에야 가능한 형식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에서 와서 그는 비로소 ‘소설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도 얼마전 출간 됐는데, 언제 ‘리뷰’를 올릴 수 있을까.)

파리와 뉴욕의 두 헌책방에 대한 기억은 이런 것이다. ‘물질’로서의 책은 활자가 찍힌 종이의 묶음이 아니다. 그 물질로서의 책이 실어 나르는 것은 콘텐츠와 저자-독자 사이의 내밀한 교류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아우라, 기억들이기도 하다. 책과 그 책을 함께 읽었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의 냄새. 그 기억의 매개로서의 책은 새것이 아니라 적당히 낡은 것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헌책방 순례가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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