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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 - '모든 읽기'에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 지음 / 스마트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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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같은 독서 초보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최고의 독서법 책. ‘뇌의 가소성‘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두고 숙련된 독서가로 향할 수 있게끔 도와줬다. 덕분에 용기내어 꾸준히 독서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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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펭귄클래식 24
가스통 르루 지음, 홍성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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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봤지만, 뮤지컬, 영화, 소설 그 어떤 장르도 접하지 않고 흘려 넘겼다. 매우 유명해서 얼추 들은 줄거리로 내용을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나 오래전 명성만으로 샀던 책이 눈에 들어와, 아는 척하더라도 읽고 아는 척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오페라 극장의 지하에 사는 기인이 한 여배우를 사랑해서 벌이는 기묘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읽고 나니 오페라의 유령 '에릭'이 안타까웠다. 인간이 악해지기 위해선 편견과 시기, 두 단어만 있으면 될 듯싶다.

 

  줄거리는 앞에서 적은 것처럼 오페라 극장의 지하에 사는 기인 '에릭'이 여배우 '크리스틴 다에'를 사랑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단순히 사랑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고 에릭의 억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에릭의 과거를 안다면 에릭에 대한 감정이 다소 변할 것이다. 작곡, 건설, 함정, 노래 등등 다방면으로 능력이 출중한 에릭의 외모는 추했고, 부모는 에릭을 외면했다. 오히려 에릭의 외모가 받는 멸시를 통해 돈을 벌기도 했으니(추한 외모로 노래를 부르는 에릭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살아 있는 시체'라고 소개해 돈을 벌었다) 에릭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을까.

 

  그나마 에릭에 대한 소문이 페르시아 왕성에 퍼져 성 안으로 들어갔으나, 후에 출중한 능력으로 함정 가득한 비밀 궁전을 만든 에릭이 다른 왕에게 능력을 사용할까 걱정된 페르시아 왕은 에릭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불쌍하게 여긴 페르시아 인이 에릭을 구해준다. 페르시아에서 도망친 에릭은 터키로 가지만 같은 꼴을 또 당하고, 마지막으로 파리의 오페라 극장 지하에 살면서 여러가지 일을 꾸민 것이다.

 

  살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고, 무엇이 착한 일이고 무엇이 나쁜 일인지에 대한 감각이 없는 에릭이지만, 크리스틴 다에가 진심으로 에릭을 동정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장면에서 에릭의 순수함을 찾을 수 있었다. 성장기 동안 멸시과 편견, 시기가 아니라 사랑으로 보듬어졌다면 위대한 예술가로 성장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전에 읽은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도 그렇고 1세기 전에 쓰여진 이 책도 그렇고, 편견에 대한 격강심을 다시금 내 가슴속에 새겨준다. 세잎클로버의 세상에서 네잎클로버란 유전 형성이 잘못되어 태어난 존재다. 하지만 우린 나폴레옹의 일화만 가지고 '행운'이라 여기고 있지 않은가. 여러 불편한 요인을 가졌지만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선례로 삼아 편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행운' 같은 존재라고 생각을 전환한다면 어떨까 싶다. 내 자신 귀한 줄 알면 다른 사람도 귀한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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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신이 없다
데이비드 밀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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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나 독실한 신자도 있고, 종교에 무심한 무신론자도 있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입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종교인이면서도 무신론적인 제도와 기술에 동의할 수 있고, 무신론자이면서도 종교적 우연에 기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여러 관점이 필요에 따라 절충하며 사회를 구성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시각이다. 즉, '종교인이냐 무신론자냐' 선택지는 최소한 내게 있어서 믿고 안 믿고의 차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할 수 없는 순간이 오곤 한다. 바로 교조주의자들의 어거지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 머물지 않고 미성숙한 종교관으로 타인의 삶을 침해한다. 또한 자신의 믿음에 극한으로 도취된 나머지 자신이 보고 듣는 것만을 진실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선과 후를 구별하지 못하고 결과에 원인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답답한 것도 답답한 것이지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그 종교를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감정적인 예지만, 이런 마음이 생겨 이런저런 무신론 책을 찾다보면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것 같다. 교조주의자들의 논거가 논리적으로 완전해서 본인은 허점을 못 찾았다 하더라도, 시대의 무신론 지식인들이 왜 신을 믿지 않고, 왜 종교를 비판하는가하는 책을 보면 그들의 논리가 너무나도 완벽하게 오류투성이라 본인이 허점을 못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약장수의 사기성 짙은 멘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데이비드 밀스의 이 책은 과학적 논거를 통해 교조주의자들의 오류를 짚어준다. 내가 그 동안 불신했지만 확고한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채워넣었다. 여기서는 기독교만을 다뤘지만, 내 삶을 침해하려는 교조주의 세력이 대부분 기독교라 그런지 훨씬 설득력있게 읽었다.

 

  신이 있다면 그는 지구의 재앙과 아름다움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우주를 탐사하고 수억 광년 떨어진 별을 볼 수 있다하더라도 얼마나 더 많은 별이 있을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만약 교조주의자 말대로 신이 우주를 비롯한 모든 것을 창조했고 그렇게 큰 우주를 만든 신이 이 조그만 별에만 온 신경을 쓰며 자신을 믿는 사람만 구원하고 믿지 않는 사람을 고통준다는 것은 그 신과 종교가 치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교조주의자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의심되고 거슬린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여긴다. 다만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이라는 사실만 의식한다면 독자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책 역시 믿고 안 믿고의 단순한 문제이기 때문에.

 

  편중되지 않은 독서를 해야 더 견고한 분별력이 생기리라 믿는다. 마찬가지로 분별력을 키우면 편협과 편중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알게 될 것이고, 편중한 신을 받아들이기란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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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중동사 - 5천 년 중동과 이슬람의 역사를 한눈에 읽는다 하룻밤 시리즈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이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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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  전시회를 다녀오게 되면서 중동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서 중동이라고 하면 석유가 많은 지역, 광활한 사막 지역, 학생 때 배웠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정도밖에 아는 게 없었다.그래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심하다, 중동에 대해 백지 상태인 내가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골랐다.

 

  중동사를 알게 되면서 여러모로 세계사에 대한 내 좁은 식견이 바뀌었다. 언제나 유럽과 중국 중심으로 세계사를 들여다 봤으나, 유럽이 강해진 건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산업혁명 이후이고, 중국은 아시아 내에서만 영향력이 강했다.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은 중동, 즉 이슬람문화권이었다. 실크로드를 이용해 세계 전역과 교역을 했고, 조로아스터교나 이슬람교를 통해 강력한 왕조를 이루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 같은 경우에는 당나라에서 '현교'라고도 불렸으니 교류의 범위가 얼마나 넓었는지 알 수 있다.

 

  중동사 중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이슬람교가 생각보다 최근에 창시된 종교라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대부분은 기원전에 창시되었다. 그래서 이슬람교 역시 기원전부터 존재했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무함마드가 7세기 경에 창시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도의 수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다고 한다. 과연 셀주크 투르크나 오스만 투르크가 중세를 휘어잡았는지 알만 했다.

 

  그와 더불어 중동의 쇠락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중동 전체를 지배한 오스만 투르크는 오랜 시간의 평안을 누리다 내적으로는 지배층은 부패해 내분이 일어나고, 외적으로는 지속 발전한 서양에게 추월당해 무너졌다. 세도 정치기가 지나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개화시기를 놓친 안타까운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이후 중동은 서양 열강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되다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도되는 현대의 중동 문제는 지역 내부의 종파나 정파 싸움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시발점이 근대의 서양 열강에게 있다. 그 여파는 지금 시대의 테러리즘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퍼져나갈지, 혹은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해지면서 우려도 생긴다.

 

  비록 읽는 속도가 느려 하룻밤이 아닌 사흘밤이 걸렸지만, 개인적으로 나 같은 중동 무지렁이도 쉽고 흥미롭게 중동사의 개괄적 흐름을 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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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강병융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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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편견과 선입견이 굉장히 심하다. 어떤 사람의 생애를 모르면서 지레짐작하여 내 스스로 결론짓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 순간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더니 내 언행이 딱 부합한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김없이 나의 편견(선입견)을 떠올렸다.

 

  선천적으로 코가 없는 안면장애를 갖고 태어난 'Y'를 중심으로 그 주변 사람들의 사건·사고와 전혀 관계없을 것만 같은 사건·사고를 신문기사 형식으로 나열한 소설이다. 따로 놓고 보면 개별적인 기사들을 쭉 읽어나가면 퍼즐조각 맞춰지듯 전반적인 큰 그림이 그려진다. 그림은 'Y'가 받는 편견(선입견)으로 인해 씁쓸하게 퍼져나가는 마인드맵이다.

  코 없는 장애인이며 동성애자 아빠를 가진 'Y'는 집단 따돌림과 폭력 속에서 성장한다. 학창시절 내내 괴롭힘을 당하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서울 명문대에 진학하지만, 대학교에서 마저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 'Y'를 버티게 해준 건 책. 야구, 같은 처지의 친구('뚱뚱하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한 '이상기'는 본드나 니스 흡입으로 견뎌냈다.)의 대학진학을 위한 차량절도 등도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어릴 적 'Y'의 가슴에 나비 떼를 풀어놓은 첫사랑 'D'에게 어린 'Y'가 쓴 편지를 전해줄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Y'가 'D'를 만났을 때 얻은 건 기다린 순간의 이행이 아닌 무시과 경멸이었다. 오랜 기다림이 무너진 'Y'는 상실감과 어릴 적 풀어놓은 나비 떼, 술김을 버무려 아동성폭행을 저질렀다. 한 순간에 흉악범이 되고 제어할 수 없는 나비 떼를 저지하기 위해 화학적 거세도 자원하지만 'Y'는 평범해질 수 없다. 결국 'Y'는 스스로 물리적 거세를 하고 만다.

 

  여기서 범죄에 대한 시선을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느낀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범죄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편견과 선입견의 산물이라고 느꼈다. 허구 세계의 사건인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을 느끼는 건 나 역시 그 문제와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 가장 와닿는 편견(선입견)의 부작용은 책을 고를 때다. 너무 얇거나 너무 두꺼우면 내용을 떠나서 거부감이 든다. 혹은 실제로 읽어보면 만족스럽지 않은데 작가의 명성만 보고 덥석덥석 짚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내가 이걸 왜 샀지, 하며 읽은 책이 내 인생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외모나 주변상황에 대한 편견(선입견)으로 인해 흉악범이 되고, 죄책감 앞에서 거세를 한 'Y'의 내용을 너무 가벼운 예로 빗댄 것 같아 미안해진다. 하지만 소설에 이입해 이것저것 나의 편견과 선입견을 까발리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질 것만 같아 속으로만 반성하는 중이다. 예외적으로 편견이나 선입견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안 좋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섣부른 일반화가 아닌 좀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주관을 갖고 싶다는 내 작은 각오를 다짐해본다.

 

  마지막으로 실제 기사에 소설의 허구성을 오버랩시켜 만든 패러디물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몇몇 사건은 사회적으로 심각했던 기억이 있는 만큼 마음 편히 읽진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고 심각하게 읽기엔 서술상 익살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어 더디게 읽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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