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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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두꺼운 책을 읽었다. 문학을 하도 안 읽어 버릇했더니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읽고 있었을 수도 있으나, 그나마 위기절정부터는 깊이 몰입해 읽어 7월의 독서 시간을 아꼈다. 역시 소설의 꽃은 위기와 절정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강점이라면 등장인물 성격과 그에 따른 행동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주로 다루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좋아한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천천히 읽었는가. 그녀의 세 번째 작품 맨스필드 파크도 묘사가 뛰어나고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위기부터 시작해 발단으로 돌아가는 요즘 소설과 달리 옛 소설 특유의 느릿한 발단,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고 변명한다. 거기다 집중력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아니, 이게 제일 컸구나. 아무튼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분이시지만, 제인 오스틴 선생께 나의 소홀한 태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맨스필드 파크는 워드 가의 세 자매 결혼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중 둘째(레이디 버트럼)가 결혼을 제일 잘했고, 첫째(노리스 부인)는 보통이며 막내(프라이스 부인)가 가장 가난하다. 막내의 질투로 세 자매간의 사이가 틀어졌다가 사는 것에 비해 자식이 늘어난 프라이스 부인이 화해를 청하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세 자매는 친교를 회복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노리스 부인이 막내에 대한 배려인 척하며 버트럼 경에게 막내의 딸을 집안에 들여 후원하는 것을 적극 추천, 그 결과로 우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포츠머스의 가난한 집을 벗어나 맨스필드 파크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이 벌이는 일들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며 종국에는 각자에게 걸맞은 결론으로 끝맺는다.

 

굵직한 등장인물을 나열하자면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와 버트럼 가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 버트럼’,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럼 경과 부인인 레이디 버트럼’, 첫째 아들 톰 버트럼’, 첫째 딸 마리아와 둘째 딸 줄리아’, 패니의 첫째 이모인 노리스 부인’, 노리스 부인의 남편이 죽고 목사관의 새 주인으로 온 그랜트 부부’, 그랜트 부인의 남동생 헨리 크로포드’, 여동생 메리 크로포드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이야기를 이끈다. ‘패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입양되듯 온 탓에 눈치도 보이고 무시당해 굉장히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버트럼 일가 중 누구도 패니를 사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일하게 둘째 사촌오빠인 에드먼드가 패니를 배려하여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산책도 함께 했다. 그는 패니를 위해 자신의 세 마리 말 중 하나를 패니가 탈 수 있는 얌전한 암말로 교환까지 해 올 정도로 사촌 동생을 위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패니의 마음을 차지한 유일한 남자는 에드먼드뿐이었다.

 

에드먼드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재산에 대한 욕심도, 사교계에서 주목받고 싶은 욕심도 없다. 망나니 같은 형을 두었으니 아버지 버트럼 경이 사업으로 안티과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 대행으로 집안을 돌보았다. 집안의 평판에 위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예의 없는 언행을 극도로 경멸했다. 그러나 아무리 올곧은 심성이라도 사랑의 마수에 걸려들면 눈앞이 흐려지는 법이다. 맨스필드에 크로포드 남매가 오자 에드먼드는 메리 크로포드의 건강미 넘치는 외모와 활달한 성격에 매료되고 만다. 패니는 옆에서 그런 에드먼드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니, 이유인즉슨 에드먼드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바로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크로포드 양 역시 에드먼드를 사랑하긴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는 재산에 욕심을 내지 않고 차남에게 주어지는 목사 서품을 받아 영지의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크로포드 양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메리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외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의 예의 없는 언행은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지방 목사는 재산도 얼마 없으며 사회의 시선에서도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에드먼드 앞에서 목사직을 비꼬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에드먼드는 완강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에드먼드에게서 관심을 끄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인품이나 외모가 너무 훌륭한 그였다. 크로포드 양이 관심을 완전히 접지 않자 에드먼드는 자신이 설득하면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고 욕심을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의 생각은 전부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톰이 중병을 앓고, 그녀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와 에드먼드의 첫째 여동생이자 러시워스 부인인 마리아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에드먼드가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톰의 병환을 에드먼드가 목사직을 포기하고 재산 상속받는 기회로 삼기를 바랐고, 또 눈만 감으면 야반도주도 아무 일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불손한 태도에 에드먼드는 절망했다. 그는 그녀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것이 그녀의 성정은 원래 착하나 가정교육과 주변 사람이 망쳤다고 되풀이했다. 그것도 잠시, 대부분 시간이 약인지라 에드먼드는 크로포드 양을 잊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목사직에 전념했다.

 

가장 악독한 인물은 그 나물에 그 밥인 크로포드 양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이다. 이 자식은 극에서도 그렇지만 읽고 있는 나도 기만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식이다. 그랜트 부인의 동생으로 찾아온 헨리는 누나의 소개로 버트럼 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랜트 부인은 마리아에겐 약혼자가 있으니 동생인 줄리아와 잘해보기를 바랐다. 헨리의 바람기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등장하자 마리아와 줄리아 모두 그에게 반했다. 잘생기진 않았으나 다부진 몸매와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과 행동이 숙녀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었다. 한번에 눈치챈 이 자식은 대놓고는 줄리아에게, 은밀히는 마리아에게 관심을 줬다. ‘대놓고은밀히가 나란히 있으면 십중팔구 진심은 후자에 통한다.

 

크로포드 양은 헨리에게 장난치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경고하지만 진심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기남의 특권 정도로 여겼다. 헨리는 결국 마리아와 줄리아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맨스필드 파크를 떠난 것이다.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사랑하진 않지만 예정되어 있었던 러시워스 씨와 결혼했고, 줄리아는 원래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채간 언니에게 고소함을 느끼며 상처를 회복했다. 헨리가 사라지면서 맨스필드 파크에 평화가 깃들었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부인이 되어 신혼여행을 떠났고, 마음이 풀어진 줄리아도 따라나섰다. 집안에는 에드먼드와 패니, 이모부와 두 이모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헨리가 돌아왔다. 그는 마리아와 줄리아가 없자 패니가 상당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패니는 자신의 매력에 넘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패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떠나기로. 패니를 대할수록 그의 마음은 진심이 되어갔다. 유혹되지 않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는 패니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들이댔으나 차차 그녀를 배려하며 행동했다. 그녀가 대화를 거부하면 즉각 멈췄다.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면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오빠 윌리엄이 진급에 거듭 실패하자 자신의 숙부이자 제독인 크로포드 경을 설득해 윌리엄의 진급을 도왔다. 윌리엄이 복귀할 때 그는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함께 가기를 청했다. 패니가 포츠머스의 본가에서 지낼 때 (그녀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 친부모 집이었지만 힘들어했다.) 그녀를 찾아와 위로해주고 맨스필드 파크로 돌아갈 때는 자기 남매와 함께 돌아가기를 청했다. 패니는 그의 지속된 호의에 점차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감정이 차차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도 이 자식에서 어쩌면으로 변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자식은 개자식이 분명했다. 결국 마리아와 야반도주하며 버트럼 가에 먹칠한 것이다. 결국, 패니의 안목이 옳았다. 한순간 패니와 헨리의 이어짐을 응원한 나 자신에게도 쌍욕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헨리의 자폭으로 맨스필드 파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되찾으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번외로 가장 싫었던 인물은 패니의 첫째 이모 노리스 부인이었다. 나서기 좋아하며 잘되면 자기 덕분, 안 되면 남 탓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또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뭐 하나 하면 생색이란 생색을 그렇게 낸다. 패니가 쉬는 꼴은 한순간도 참지 못하며 패니가 말을 하면 배은망덕한 존재로 여긴다. 사실 패니를 들였던 것도 자신의 남편 노리스 씨가 중환에 시달리기에 그가 죽으면 적적할 테니 일단 버트럼 가에 들여 키우다, 노리스 씨가 죽으면 자신과 함께 살면 된다는 이유로 버트럼 경을 설득했었다. 그러나 정작 노리스 씨가 죽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패니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뭐 덕분에 패니의 결말이 아름다웠지만, 그 행태가 괘씸했다. 노리스 부인의 결말은 그에 걸맞았다. 마리아와 러시워스 씨가 맺어진 것은 노리스 부인의 노력이었다. 가장 아낀 조카도 마리아였다. 그러나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노리스 부인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 책임으로 이혼하고 온 마리아와 함께 다른 지방으로 이사해 생활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오냐오냐 키워진 터라 교만하고 예의가 없는데, 둘의 케미는 기대할 만한 정도이리라.

 

소설은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므로 여성 작가의 작품인 만큼 당시 사회의 여성상이나 생활상을 중심으로 봐도 재밌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표면적으로 즐긴 까닭에 내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인물과 사건뿐이다. 이렇게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우니 그것으로 됐다고 여긴다.

 

이성과 감성은 읽고 나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자매 중 하나는 이성적이고 하나는 감성적이어서 둘 사이의 갈등이 벌어졌다가 각자에 맞는 상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감정만 남고 내용은 증발했다. 오만과 편견은 정말 즐겁게 읽어 두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도 올곧은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헨리 같은 한량 위컴이 나온다. 다만 여기서는 제목답게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해하면서 시작되어 그 오해를 푸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맨스필드 파크보다 오만과 편견이 더 재밌었다. 묘사에 있어서는 이 책이 더 나은 것도 같고. 어쨌든 오스틴 선생의 책은 읽는 재미가 확실하니, 구비해둔 다른 소설 몇 권도 차차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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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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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가엾게 여긴다. 제일 안타깝고, 제일 불쌍하고, 제일 억울하다. 또 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게 여긴다. 제일 멍청하고, 제일 무능하고, 제일 답답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태도로 문학을 읽는다. 문학은 대체로 이런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있으니 읽는 책마다 내 얘기 같아 주인공과 상황에 나 자신을 곧잘 투영한다. 주인공은 인간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니 여기에 공감하는 내 모습은 가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지하 인간처럼.

 

소설 속 주인공이자 화자인 지하 인간은 젊은 시절 속세에 질려 지하로 물러난 인물이다. 그는 지하에서 일명 모두 까기를 시전하며 여러분은 멍청하고 자신은 합리적이라고 합리화하며 지낸다. 전면에 나서면 비웃음당할 것이 뻔하니 그곳에서 글로써 세상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1부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하에서 쓴 이야기이고, 2부는 그가 어째서 지하생활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풀어낸다.

 

내가 그와 동일시한 부분은 상당히 찌질하다는 점이다. 아싸의 특징은 다 가지고 있다. 자기만 잘났고 다른 사람은 무시해도 그만인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이 무시하는 타인에게 멸시당한다. 그는 속으로 복수를 생각한다. ‘이런이런 상황에서 나는 저런저런 행동을 할 거야!’ 생각은 아주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문제는 생각에서 그친다는 것뿐.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겁도 나고 걱정도 된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너희가 가여우니 이번만 참아 준다. 다음부터는 내가 어울리나 봐라.’ 그 후 그는 타인들과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어하고 이 생각의 고리는 반복된다. 전형적인 아싸가 인싸와 어울리고 싶어하는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젊을 적 모습일 뿐이다. 지하생활자가 된 후, 여전히 젊은 시절의 분노와 열등감을 지니고는 있지만, 사상은 진화했다. 그는 세상을 복잡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러분2x2=4라는 사실에 집중하고, 세상은 수학적이라며 단언할지 모르지만, 지하 인간이 보기에 인간이란 족속은 일관성이 없어서 2x2=4와 같은 답을 항상 가져오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므로, 2x2=4처럼 답이 있는 공식화는 살아가는 게 아닌 죽어가는 일이 된다.

 

「그리고 누가 알겠느냐마는 (장담할 순 없으니까.) 인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모든 목적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이 끊임없는 과정에, 달리 말해 삶 자체에 있는 것이지, 어차피 2x2=4가 될 수밖에 없는 목적 자체에, 즉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x2=4는 이미 삶이 아니라, 여러분, 죽음의 시작이 아닌가. - p.56」

 

그의 찌질한 젊은 시절과 복잡계적 시선이 무슨 상관인가. 갖다 붙이기 나름이겠으나 젊은 시절 그의 찌질함은 표면적인 부분이고,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지 않다. 생각이나 감정이 마음대로 조종이 되던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거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 속내의 알 수 없음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지금은 정답으로 여겨지는 말들이다.

 

젊은 시절 그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 표현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관성과 정답을 지향하는 세계에서 그의 변덕은 수치스러운 행위였기에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거나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괴로워했고 외로워졌다. 보편적인 시선에 어긋난 그가 대화할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친구 잡으러 갔던 유곽에서 리자를 만났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골려줄(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배려였던) 작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아무도 그를 의지하거나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으나 리자는 예외였다. 그는 신이 나서 그녀를 자신의 집까지 초대했다. 다음날 자신의 섣부른 결정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하인과 싸운 도중에 리자가 찾아왔고,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와 그녀를 속였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이번에는 몹쓸 말을 내뱉어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리자는 슬픔에 잠긴 채 그의 집을 떠나고, 그는 뒤늦게 후회하며 쫓아가지만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이 또한 공식화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불러온 결과였다.

 

적어도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인 듯하다. 생각으로는 굉장히 이성적이지만, 감정에 휘둘려 당치도 않은 말로 기회를 날려버린다. 혹은 자존심으로 인해 기회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덕이나 갈등이 없다면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 변덕을 부정하고 일관성을 옹호하기보다, 차라리 변덕을 인정하고 반성해 변덕의 폭을 좁히는 게 더욱 살아있는 결정이리라.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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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읽는 문학마다 현재 나의 감정을 대변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읽는 것일까. 한때는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등한시했다. 지금은 도피 차원에서 문학을 읽고 있다. 뭐로 보나 진지하게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세상 살아감에 있어 기술만으로 살 수 없고, 이성만으로 살 수 없으니 정신에 지지대를 세워주기에는 문학이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게 아닌가. 물론 이 생각도 지하 인간의 말처럼 언제 또 변해 문학을 등한시할지 모르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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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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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음식이 갑자기 생각날 때는 그것이 함유한 영양분을 우리 몸이 필요로 한다는 설이 있다. 어느 날 평소에는 찾지 않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지면 그 음식 속 영양분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근거 없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내가 데미안을 손에 집었을 때가 꼭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꽤 오랜 시간 멀리했다가 다시 친해지고자 집에 쟁여둔 세계문학전집(민음사)을 하나씩 읽기로 마음먹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 첫 번째였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제목을 하도 들어서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어 더욱 익숙했다. 친숙하지만 전혀 모르는 이 책은 독서 구미를 당겼다. 그리고 뒤늦게 읽은 나 자신이 조금 안타까웠다. 딱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었으므로.

 

간략한 줄거리로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단면만을 가르치는 반쪽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 전체를 인식하면서 세상의 격정을 버티고 사랑을 배우며 주체적인 자아가 되는 성장소설이다. 그의 모든 각성은 데미안으로 시작되어 데미안으로 지속하며 데미안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 p.83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체로 이분법적으로 학생을 구분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모범생과 문제아, 인싸와 아싸 등등. 중간지대가 없었다. 이런 구분은 어릴 적 나를 가르친 말들에서도 존재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착한 짓과 나쁜 짓, 깨끗함과 더러움, 말을 잘 듣느냐 안 듣느냐……. 어린 싱클레어가 어렴풋이 느낀 환한 세계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두 세계는 경계가 맞닿아 있으면서도 경계가 확실했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다른 한쪽을 말살하려 든다. ‘환한 세계에 있지 않으면 다른 세계의 존재이며, ‘환한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나에게 있어 세계의 구분은 나 자신을 규정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현실을 영어 가능영어 불가능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치자. 나는 영어를 바라지만 불가능에 있으므로 항상 가능을 보며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발버둥은 쳐보지만 이내 지쳐버리고 심화된 불가능으로 나를 몰아댄다. 결국, ‘영어 가능세계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예는 내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을 따르지 못해 여태껏 나를 망치며 지내왔다.

 

그러나 데미안의 말대로 세계를 구분이 아닌 온전한 하나로 인식하면 나의 삶에서 잘못된 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달이 앞면만 보인다고 뒷면을 부정할 수 없듯이, 내가 보는 세계의 앞면만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p.85)’기에 내가 따를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p.116

 

무가치함에서 벗어나 보다 온전한 자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건재한다. 산다는 것은 행동의 문제이고, 가능성은 행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행동반경에는 세계 한쪽만 존재하지 않는다. 방황 속에서 목표를 이룩하기 마련이고, 이룩한 결과는 다시 방황의 씨앗이 된다. 이는 합일의 단계이기도 하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정신일도 하사불성(情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환한 세계다른 세계를 하나로 합하여 인식해야 비로소 자아는 굳건해질 준비를 마치게 된다. 새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꿈틀대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알에서 나오지 않은 새는 새가 아니다. 알 속에서 아무리 새의 형상을 갖추었다 한들 날아오르지 못한다면 과연 새라고 할 수 있을까. 상식이 아니라 본질에서 말이다. 알은 새를 규정한다. 진정한 새가 되기 위해서는 알을 깨고 나와 훨훨 날아가야 한다. 신에게로, 압락사스에게로.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를 규정하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싱클레어는 이렇게 정의했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 p.172

 

압락사스는 세계를 구분 짓는 신이 아니다. 세계 그 자체인 신이고, 어떠한 가능성도 받아들이는 신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자신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어주는 신이다. 한마디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앞서 근거 없는 설을 언급한 까닭이 여기 있다.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실리적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신적 버팀목이랄까. 그동안 나는 구분된 세계에 맞춰서 나를 재단하고 조립하려고 했다. 맞지 않는 퍼즐에 억지로 끼워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고들 하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가 알 속의 새로 사는 세계에서는, 하나하나가 구분 지어지는 세계에서는 규정된 채로 사는 게 맞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고독도, 고통도 감내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 p.191

 

마지막으로 에바 부인이 과정의 고됨을 하소연하는 싱클레어에게 말했듯이, 지향하는 꿈이 전부라고 집착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알을 둘러싸는 일이다. 새 꿈이 생기면 다시 둘러싸려는 알을 깨부수고 날아가야 한다. 결국, 살아가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는 세계와의 투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함의 속성이 빠른 망각임을 감안하면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아직 나는 알 속의 새다. 그리고 어제까지 나는 알 속이 안전하다고 여겼다. 깨부술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알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내 괴로움의 근간이었다. 아마도 내 괴로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부서질 알이라면 애초에 둘러싸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는 사소하나마 깨뜨리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싱클레어처럼 내가 새로 태어나려는 일은 어렵겠지만, 에바 부인 말대로 내가 충실할 꿈을 찾는다면 길은 쉬워지리라. 그 여정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감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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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가 하는 일 - 도서 편집의 세계
피터 지나 외 엮음 / 열린책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편집에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또는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를 붙인 편집가(編輯家)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책날개에서

 

스스로 책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저자와 출판사, 표지, 장르 외에는 크게 관심 있지 않았다. 사실 책은 위에 언급한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그러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다가 편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를 설득하러 다니고, 돈이 되지 않는 장르에 대해 편집가와 대표가 언쟁하고, 유명한 표지 디자이너를 섭외하려 애쓰고, 파쇄되는 책들을 보며 슬퍼하고, 자신이 메인 편집가가 되어 나온 책을 보고 기뻐하고, 그 책의 저자 소개가 잘못되어 분노하고 등등(더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보고 관뒀음). ‘정말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했다. 접한 지는 꽤 됐는데 이유 없이 미루다가 얼마 전에 읽었다. 드라마에서 내가 본 과정은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물론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서 후 편집가에 대해 내가 느낀 점은 출판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그야말로 책날개에서 언급했듯 단순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 아닌 하나의 업을 뜻하는 ‘-()’를 붙여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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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따라 편집하는 방식도, 출간하는 책도, 원하는 저자도 전부 다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선 편집가는 하는 일이 엇비슷해 보인다. 저자를 발굴하거나 책을 입수하고, 내용을 검토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하고, 마케팅, 표지 디자인, 교정교열, 교정쇄 검토, 인쇄, 판매처 공급 등 그 과정에 참여하거나 꿰고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출판의 A부터 Z까지 편집가의 손을 거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인 사람을 원하는 것처럼, 편집가는 자신이 맡은 장르의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출판 전반에 대한, 아울러 시장에 대한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 책과 관련된 일에서 혹시 이런 일도 하나?’ 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아마도 그런 일까지도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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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란 저자가 자신이 쓴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통과되면 책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편집가가 출판을 기획하고 그에 걸맞은 작가를 찾아 작업하는 일 말이다. ‘원고 청탁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문학에 한정된 관례인 줄 알았다(이래서 아는 만큼 보이는 듯.). 가끔 , 이런 주제의 책도 있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책이 편집가가 기획한 도서인 듯하다.

 

또 편집가는 의외로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책과 관련된 직업인데 독서 시간이 부족하다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내져 오는 원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제출된 원고뿐 아니라 웹에서 떠도는 글도 확인해야 하므로 편집가 입장에서는 볼 게 넘쳐나다 못해 대홍수일 것이다. 그래서 편집가는 퇴근 후 홀로 있는 시간대에 가방에 쟁여둔 원고 뭉치를 꺼내 읽는다고.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일해도 부유해질 수는 없으니, 부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직업을 고르라는 편집가도 있었다. 독서량이 줄어들고 출판 시장은 타이트해지는 현실이니까. 우리나라 어느 출판사의 블로그에서도 막내 편집가가 비슷한 글을 올렸다. 이쪽에서 일하고 싶다면 돈보다 자부심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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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서 출판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책은 사보기에 어려움이 있어 책방을 이용했는데, 요즘은 만화는 웹툰으로, 소설은 전자책으로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의 영역이 더욱 커졌고, 아마존 킨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제는 전자책 시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글쓰기에 대한 장벽이 매우 낮아져 어디에나 글이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출판사는 시류에 발맞춰 움직여야 한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에 대한 적응은 필수요소이다. 더불어 편집가는 곳곳에 퍼져 있는 글들을 확인하면서 숨겨진 대작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기본값이 되었다. 출판 시장의 디지털화는 기술적인 면도 편집가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가령, 소비가 잘 되는 장르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늘어지고 어느 부분에서 집중하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이 중요해졌다. 그런 정보 분석을 할 줄 아는 편집가가 이제는 더욱 중심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앞서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고 했는데, 책과 관련된 직업마저 정말 다방면으로 기술과 지식이 있어야 먹고사니즘이 해결되는 시대가 될 듯하다. 차라리 꿈에 그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얼른 도래했으면 좋겠다. 인간으로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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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라는 직업은 흥미롭다. 뭔가 시대랑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며 받으니까. 현직으로 종사하고 있다면 괴로움이 상당하겠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대단하고 재밌어 보인다. 자신이 편집한 책이 출간되는 기쁨과 자부심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고 할까. 워낙 게으른 성격에 무기력해서 뭐 하고 싶은 일 따위 없었는데, 출판 쪽은 한번 해보고 싶어진다.

 

책 안에는 26편의 편집가 글이 있다. 내가 너무 뭉뚱그려 감상문을 썼으니 편집가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읽어봐서 해되진 않을 듯하다.

 

이 책은 미국의 출판계여서 한국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다음 기회에는 한국 편집가가 쓴 책을 읽어봐야겠다. 괜스레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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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어서 글쓰기에 관한 책은 수집가의 마음으로 사 모은다. 읽는 책은 대부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지만, 가끔 몸서리 처지게 과거의 내가 현재를 사로잡는다. 그럴 때마다 달래주기 위한 방편으로 작법서를 읽는다. 대부분 읽고 나면 두 가지 감정을 갖게 된다. 하나는 공허함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감이다. 전자는 더 이상 과거의 나만큼 상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후자는 아무 글도 못 쓰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선택이었다. 몇 달 전 중고서점에서 눈에 띄어 미련으로 구매했고, 무력하게 지내는 일상을 달래주려 구매한 지 한참 만에 읽었다. 평소라면 역시 공허함과 절망감에 자기비하를 중얼거려야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감정이 생겼다. 두 감정의 지분이 50:50에서 33:33으로 줄고 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싶은 감정이 남은 34를 차지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표현 방법 중 내게 주어진 방법은 말하기와 쓰기 두 가지뿐이다. 어찌 되었든 개발해야만 한다. 34 지분의 감정은 그것을 자극하면서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글쓰기는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동기를 부여했다. 다행히 이 책은 작법서이면서 글쓰기 기술보다는 작가로서의 태도에 중점을 맞춘 터라 나의 동기를 이행하기에 적합했다.

 

글쓰기의 네 가지 어려움

 

그동안 아주 오만방자하게 살았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잘 쓰진 못해도 꾸준히 끄적거려왔으므로 기본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고 쓰고 갈아 없앴기에 남아 있는 습작품이 거의 없지만(당시 작가는 이런 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머저리 과거의 나 자식……).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돌아본 나는 아무런 기본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었다. 아니, 방구석 여포처럼 그냥 머릿속 작가였다. 쓰는 연습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한 자리에서 오래 쓰는 게 좀이 쑤셨고, 그마저도 쓰는 시간이 극히 적었다. 감정 기복이 하단으로 수직하강한 시즌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실천은 하수구에 흘려보낸 멍청이였다!

 

나의 멍청함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끝낸 후,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글쓰기 무지렁이 상태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처음부터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더 이로울 것 같았다(약간 리셋 증후군 환자 같지만 기우겠지?). 기본적인 전제는 다른 분야와 똑같다. ‘단기간에 높은 진전을 이룰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글쓰기의 네 가지 어려움을 포함한다.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 ‘한 책 작가’,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작가’, ‘기복이 심한 작가’.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은 작가는 일필휘지해야 한다는 오류에서 나온다. 물 흐르듯 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쓰지 못하면 작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짓게 된다. 저자는 이 어려움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가르침은 소용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첫 책 성공 후 다른 책을 쓰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미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은 있으나 처음만큼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조바심이 낙담으로 바뀌어 절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길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어려움이 뒤섞인 형태인 세 번째 어려움은 첫 작품 후 긴 휴지기를 보내고 나서 다음 글을 쓰는 경우이다. 쉬는 기간이지만 쉬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욕구는 넘쳐나나 단 하나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고통으로 기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완벽이라는 거의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 더러는, 드물긴 하지만 일종의 과도한 허영심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p.33)’

 

마지막 어려움인 기복이 심한 작가는 기술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조금 쓰고 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면 도움될 수 있지만, 진짜 어려움은 작가의 자신감 부족, 경험 부족 등이 원인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법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34)’

 

전문성을 빼고 본다면 나는 네 가지 어려움에 다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첫 번째 어려움인 듯하다. 전공으로 배웠어도 쓸 줄 모른다는 압박감에 글쓰기 자신감이 바닥을 기어 다닌다. 나는 글쟁이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야 했다. 그래서 아주 초보적인 수준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시작

 

작가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있다. 하나는 예술가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비평가 자아이다. 글을 쓸 때는 예술가 자아가 활개를 치도록 하고, 수정할 때는 비평가 자아가 나서도록 조절해야 한다. 실제로 글을 쓸 때는 비평가 자아가 곁에 오게 해선 안 된다.(p.62)’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잔소리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일단 분리해 두고 내가 먼저 손댄 행동은 눈 뜨자마자 글쓰기이다. 눈을 뜨는 즉시 머리맡에 둔 공책과 볼펜을 들고 생각나는 대로 쭉 쓰는 것이다. 의식이 차츰 각성해 더는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아무런 글이나 마구 쓴다. 그 후 읽지 않고 바로 덮어둔다. 비평가 자아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글쓰기가 익숙해졌을 때, 그때 돌아봐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다음 단계로 제시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부담이 없어서 15분 글쓰기를 병행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15분 동안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때는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다. 펜보다는 타자기에 익숙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역시 검토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작성한다.

 

현재 진행하는 마지막은 타자기에 익숙해지는 연장선으로 필사를 하고 있다. 전에는 노트에 펜을 들고 했었는데, 틀리면 지우고 고치는 것도 스트레스고 손가락 아픈 것도 스트레스라 그냥 워드로 옮겨 적고 있다. 기본적인 목적은 타자에 익숙해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여기까지가 도러시아 브랜디 선생의 말씀에 따라 내가 행동하고 있는 수준이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차츰 반경을 넓혀야 함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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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1930년대에 쓰인 작법서라는 사실에 놀랐다. 글쓰기에 대한 개념은 거의 한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법서이면서도 글쓰기 기술이 아닌 작가의 태도가 주제여서 마음을 다잡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면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비록 꿈이 꿈으로써 저버려도, 꿈이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공상의 여지를 남겨준 달까. 이마저도 없으면 아마 나는 소설이 무슨 소용이야? 책이 무슨 소용이야?’라는 무서운 생각에 침잠할 것만 같다. 단순히 삶의 연장으로라도 이 미련 맞은 꿈을 계속 꿀 예정이다. 여전히 작법서를 모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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