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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어서 글쓰기에 관한 책은 수집가의 마음으로 사 모은다. 읽는 책은 대부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지만, 가끔 몸서리 처지게 과거의 내가 현재를 사로잡는다. 그럴 때마다 달래주기 위한 방편으로 작법서를 읽는다. 대부분 읽고 나면 두 가지 감정을 갖게 된다. 하나는 공허함이고 다른 하나는 절망감이다. 전자는 더 이상 과거의 나만큼 상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후자는 아무 글도 못 쓰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선택이었다. 몇 달 전 중고서점에서 눈에 띄어 미련으로 구매했고, 무력하게 지내는 일상을 달래주려 구매한 지 한참 만에 읽었다. 평소라면 역시 공허함과 절망감에 자기비하를 중얼거려야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감정이 생겼다. 두 감정의 지분이 50:50에서 33:33으로 줄고 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싶은 감정이 남은 34를 차지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표현 방법 중 내게 주어진 방법은 말하기와 쓰기 두 가지뿐이다. 어찌 되었든 개발해야만 한다. 34 지분의 감정은 그것을 자극하면서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글쓰기는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동기를 부여했다. 다행히 이 책은 작법서이면서 글쓰기 기술보다는 작가로서의 태도에 중점을 맞춘 터라 나의 동기를 이행하기에 적합했다.
※글쓰기의 네 가지 어려움
그동안 아주 오만방자하게 살았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잘 쓰진 못해도 꾸준히 끄적거려왔으므로 기본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고 쓰고 갈아 없앴기에 남아 있는 습작품이 거의 없지만(당시 작가는 이런 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머저리 과거의 나 자식……).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돌아본 나는 아무런 기본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었다. 아니, 방구석 여포처럼 그냥 머릿속 작가였다. 쓰는 연습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한 자리에서 오래 쓰는 게 좀이 쑤셨고, 그마저도 쓰는 시간이 극히 적었다. 감정 기복이 하단으로 수직하강한 시즌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실천은 하수구에 흘려보낸 멍청이였다!
나의 멍청함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끝낸 후,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글쓰기 무지렁이 상태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처음부터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더 이로울 것 같았다(약간 리셋 증후군 환자 같지만 기우겠지?). 기본적인 전제는 다른 분야와 똑같다. ‘단기간에 높은 진전을 이룰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글쓰기의 네 가지 어려움을 포함한다.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 ‘한 책 작가’,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작가’, ‘기복이 심한 작가’.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은 작가는 일필휘지해야 한다는 오류에서 나온다. 물 흐르듯 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쓰지 못하면 작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짓게 된다. 저자는 이 어려움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가르침은 소용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첫 책 성공 후 다른 책을 쓰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미 이야기를 풀어내는 기술은 있으나 처음만큼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조바심이 낙담으로 바뀌어 절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길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어려움이 뒤섞인 형태인 세 번째 어려움은 첫 작품 후 긴 휴지기를 보내고 나서 다음 글을 쓰는 경우이다. 쉬는 기간이지만 쉬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욕구는 넘쳐나나 단 하나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고통으로 기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완벽이라는 거의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 더러는, 드물긴 하지만 일종의 과도한 허영심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p.33)’
마지막 어려움인 ‘기복이 심한 작가’는 기술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조금 쓰고 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기술적인 부분을 보완하면 도움될 수 있지만, 진짜 어려움은 작가의 자신감 부족, 경험 부족 등이 원인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법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34)’
전문성을 빼고 본다면 나는 네 가지 어려움에 다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첫 번째 어려움인 듯하다. 전공으로 배웠어도 쓸 줄 모른다는 압박감에 글쓰기 자신감이 바닥을 기어 다닌다. 나는 글쟁이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야 했다. 그래서 아주 초보적인 수준부터 다시 시작했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시작
작가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있다. 하나는 예술가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비평가 자아이다. 글을 쓸 때는 예술가 자아가 활개를 치도록 하고, 수정할 때는 비평가 자아가 나서도록 조절해야 한다. ‘실제로 글을 쓸 때는 비평가 자아가 곁에 오게 해선 안 된다.(p.62)’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잔소리하기 때문이다.
자아를 일단 분리해 두고 내가 먼저 손댄 행동은 눈 뜨자마자 글쓰기이다. 눈을 뜨는 즉시 머리맡에 둔 공책과 볼펜을 들고 생각나는 대로 쭉 쓰는 것이다. 의식이 차츰 각성해 더는 쓸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아무런 글이나 마구 쓴다. 그 후 읽지 않고 바로 덮어둔다. 비평가 자아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글쓰기가 익숙해졌을 때, 그때 돌아봐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다음 단계로 제시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부담이 없어서 15분 글쓰기를 병행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15분 동안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다. 이때는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다. 펜보다는 타자기에 익숙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역시 검토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작성한다.
현재 진행하는 마지막은 타자기에 익숙해지는 연장선으로 필사를 하고 있다. 전에는 노트에 펜을 들고 했었는데, 틀리면 지우고 고치는 것도 스트레스고 손가락 아픈 것도 스트레스라 그냥 워드로 옮겨 적고 있다. 기본적인 목적은 타자에 익숙해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여기까지가 도러시아 브랜디 선생의 말씀에 따라 내가 행동하고 있는 수준이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차츰 반경을 넓혀야 함은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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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1930년대에 쓰인 작법서라는 사실에 놀랐다. 글쓰기에 대한 개념은 거의 한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법서이면서도 글쓰기 기술이 아닌 작가의 태도가 주제여서 마음을 다잡는 데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 쓰는 사람이고 싶다면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비록 꿈이 꿈으로써 저버려도, 꿈이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공상의 여지를 남겨준 달까. 이마저도 없으면 아마 나는 ‘소설이 무슨 소용이야? 책이 무슨 소용이야?’라는 무서운 생각에 침잠할 것만 같다. 단순히 삶의 연장으로라도 이 미련 맞은 꿈을 계속 꿀 예정이다. 여전히 작법서를 모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