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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 그리스인들의 별자리 신화
데이비드 W. 마셜 지음, 이종인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2020년 2월
평점 :
어린 시절,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수십 번도 더 보는 유형이었다. 그중 한 축을 담당했던 책이 『만화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였다. 타이탄과 올림포스 신의 싸움,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 아르고호 원정대, 프로메테우스의 불, 판도라의 상자,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 세 여신 간의 황금사과 신경전으로 촉발된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의 여정 등등. 읽은 지 꽤 지난 지금에도 굵직굵직한 내용은 눈에 선하다.
또 다른 과거를 회상하자면, 해군 복무했을 때 별을 본 기억이다. 출항하면 일주일 동안 서해에 머무는데, 날이 맑으면 뭍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별들이 검푸른 하늘을 가득 메운다. 몇몇 별은 아주 밝게 빛나는데, 그것들은 나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복기하게 만드는 별자리였다. 확실히 구분했던 별자리를 꼽자면 오리온, 카시오페아, 작은 곰, 백조였다(어느 계절에 봤는지는 모른다. 형태만 기억난다.). 당시에는 담배를 피웠는데, 새벽 당직 끝나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 그렇게 ㅈ 같을...이 아니고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데이비드 마셜의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는 이런 두 가지 추억을 적절히 버무려 행복한 독서를 선사했다. 아는 별자리 신화는 복습했고, 모르는 별자리 신화는 새로 배웠다. 동시에 서양철학의 근간이 그리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그들은 신화 단계에서부터 철학적이었다.
※별자리: 신의 메시지 - 헌신
그리스인들은 대체로 별자리가 인간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별자리는 인간들이 따라야 할 윤리적 지침이 되었다. - p.4
우리 각자에게는 탄생 별자리가 주어진다. 나의 별자리는 사자자리다. 이를 가지고 운세를 보기도 하고, 관련된 물건을 사기도 한다. 동양의 십이간지처럼 정체성을 부여하는 다른 수단이 될 때도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별자리를 ‘황도십이궁’이라 불렀고, 지구를 둘러싼 천구에 자리 잡았다고 여겼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별자리가 천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전하는 메시지로, 인간으로서 ‘지향’할 것과 ‘지양’할 것을 구분해주는 기준이었다.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헌신에 대한 찬양과 그에 대한 보상’과 ‘배신에 대한 응징과 그에 대한 경고’. 전자에는 사랑, 용기, 희생, 겸손 등이 포함되었고, 후자에는 오만, 불신, 탐욕, 속임수 등이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의 최고 덕목은 ‘아레테arete’였다. 아레테란 삶의 모든 면에서 균형 있는 태도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취한다면 인간이라도 별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자리가 마차부자리로, 에레크테우스라는 청년을 기념한다. 에레크테우스는 누구보다 빠르게 마차를 모는 걸출한 육체 능력을 지녔음에도 아테나에 대한 겸손하고 독실한 신앙심을 유지했다. 자신의 잘난 점을 부각하여 타인을 깔보는 오만함 대신, 타인을 이끌며 위대한 신앙심을 가질 수 있도록 헌신함으로써 아레테를 이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인간으로서 생을 마치고 별자리에 올라 귀감이 된 것이다.
인간이 아닌 별자리도 있다. 크로노스의 위협으로부터 제우스를 지키고자 어머니 레아가 아기를 보모 염소에게 맡긴다. 아말테아라는 보모 염소는 제우스 말고도 자식인 쌍둥이 염소, 고아인 아이고케로스라는 염소를 함께 보살핀다. 아말테아의 아래서 헌신과 사랑으로 성장한 제우스는 성인이 되자 신의 왕좌에 앉기 위해 형제를 구하고 아버지 종족인 타이탄과 전쟁을 하게 된다. 험난한 과정에서 제우스는 형제나 다름없는 용맹한 염소, 아이고케로스의 도움을 받으며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최고 신의 자리에 앉는다.
최고 신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보모 염소였던 아말테아는 아레테를 이룬 인물의 왼쪽 어깨에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가 되었고, 아이고케로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염소자리가 되었다. 헌신은 이처럼 자신의 열과 성을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다.
※별자리: 신의 메시지 – 배신
아폴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밤하늘에 까마귀 별자리를 두어 신들보다 자신의 탐욕을 먼저 챙기려는 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 p.88
고대 그리스인이 추구했던 가치가 헌신이었다면, 경계했던 것은 ‘배신’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심리에는 앞서 얘기했던 오만, 탐욕, 불신, 속임수 등이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길들인 벨레로폰은 괴기한 키마이라(키메라)를 죽이고는 신과 동급이라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곧장 올림포스로 올라갔다. 신들의 환호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제우스는 말파리를 보내 페가수스를 괴롭혔고, 벨레로폰은 괴로움에 날뛰는 말에서 추락했다. 다행히 덤불 덕에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을 비참하게 떠돌다 죽었다. 벨레로폰에 대한 별자리는 없지만, 이후 제우스의 총애를 받고 하늘로 올려진 페가수스자리를 보면서 벨레로폰에 대한 교훈을 되새길 수 있다.
또 다른 경고의 별자리는 오리온자리이다. 사냥꾼의 수호자리라 불리는 신성한 별자리가 어째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오리온은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사냥 실력으로 처녀의 신인 아르테미스마저 반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사랑보다 사냥을 더 좋아하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연애보다 헬스에 인생을 바친 헬창이었다. 단호박인 오리온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훔친 여인은 분명 있었다. 아틀라스의 딸들인 플라이아데스였는데,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이 겁먹고 끝까지 오리온의 사랑을 거부했던 것이다.
사랑을 거절당한 오리온은 충격에 빠져 더욱 사냥에 몰두했다. 슬픔을 숨긴 몰두는 심화되면서 허세를 가져왔고, 곧 세상 어떤 짐승도 사냥할 수 있다고 외쳤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그런 허세를 견딜 수 없었고, 거대한 전갈을 불러 오리온을 공격하게 했다. 오리온은 용맹하게 전갈을 대적했으나 독침에 당할 수는 없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처녀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최고 신에게 간청해 하늘의 별자리로 올려보냈다. 그러나 제우스가 괜히 최고 신이겠는가. 뒤이어 전갈도 하늘로 올려보내 오리온을 뒤쫓게 만들었다. ‘전갈자리는 지상에서 그 별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만하지 말아야 몰락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p.122)’
이외에도 신들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며 만든 별자리도 있고,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한 별자리도 있다. 또 생물과 관련된 별자리뿐 아니라 무생물인 별자리도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천체에서 반짝인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일관되게 헌신과 배신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만을 꺼냈으니 누군가의 호기심 자극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가 안 되었던 현대의 별자리 형태
이 책에서 고대 별자리 신화도 재밌었지만, 고대의 별자리와 현대의 별자리 모양 차이도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당최 현대 별자리를 보면서 ‘저게 어떻게 사람이고, 동물이고, 어떻게 봐야 물건이야?’라는 생각을 매번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대에는 별 무리를 그림으로 봤다면,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실용적 사고가 주류를 차지했고, 기록이 쉽게끔 묶음으로 치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대와 현대의 별자리 취급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말한다. “천문학의 과학적 연구와 함께 고대의 별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희망 때문(p.218)”이라고. 개인적으로도 고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별자리가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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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별자리 신화, 2부는 현대의 별자리 형태, 3부는 고대인들의 농사, 목축, 항해를 도운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앞의 두 부분은 잠깐이나마 언급했지만, 3부는 스킵했다. 노잼이라 간신히 읽었기 때문이다. 역사 덕후는 아니라서 고대인의 생활상까지는 관심 없었다. 내 흥미는 아직도 신화를 선호한다.
이 책을 읽으니 몇 년 전에 사두었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눈에 띈다. 서사시 형식이 어색해서 미뤄뒀는데 이참에 살살 읽어볼까. 신화적 상상력은 모든 상상력의 원형인 만큼 흥미가 고갈되지 않는다. 상상력이 궁할 때는 별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