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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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간디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즉 간디만의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었다. 간디의 유토피아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p.8),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p.12),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p.40~41), 마을 스와라지(p.61),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p.66), 비폭력과 탈중심화(p.70), 보호무역(p.94), 전인교육(p.113) 등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삶이 [이상적인 삶]인지 부터 의문점이 생기고 또한 과연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간디도 자신의 꿈꾸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p.108) 분명히 고백하건데 아직 젊은 나로서는 간디처럼 <이상주의>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본인도 전세계 사람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지만 이럴 때 대부분 알고 있는 체게바라의 명언이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그래서 나는 과연 간디의 꿈꾸는 삶이 [불가능한 꿈]인지 하나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먼저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단일 세계 정부 수립이 최선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단일 세계 정부 구성의 시초가 될지도 모르는 UN을 보면 현실 정치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1학년 시절에 현재는 호주대사로 임명된 정치외교학과 김우상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는 UN도 미국의 단일패권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만약 UN(united nations)이 속된 말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경우 UC(united country)라도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개인적으로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어서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도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p.13) 그래서 대안으로 “국가를 분산시키는” 마을 스와라지를 제시하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국가를 분산시킨” [마을 스와라지]가 바로 또 다른 [국가]가 아닌지 궁금하였다. 대체 두 개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마을 스와라지]라 함은 단순히 이름만 바꾼 [국가] 자체가 아닐까? 그냥 단순히 권력만 분산시킨다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치 [마을 스와라지]에 대해 간디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과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 그럴까?



또한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는 굉장히 기계와 산업화를 반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특히 사악함은 산업주의에 내재하는 것이어서 산업을 아무리 사회화해도 그 사악함을 제거할 수 없다(p.42)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초창기 [천민 자본주의]로 인해 많은 사악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의 [천민 자본주의]는 많은 도전을 받으면서 점진적으로나마 사악함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간디가 다시 살아난다면 산업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특히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많은데 개인의 지적 능력은 오직 인류에 봉사하는데 쓰여져야 한다(p.66)는 간디의 견해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간디도 너무 앞서 나가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간디로 아래 글을 쓰고 나서 아차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디는 우리의 시간의 대부분은 육채노동에 바쳐져야 하고, 오직 조금만이 독서에 주어져야 한다(p.67) 라고 주장하는데 뭐 이건 반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p.69)을 주장하는데 이 부분의 논리도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간디는 평등한 분배가 이상이므로 공평한 분배를 차선으로 추구하는데(p.68) 과연 부자들의 재산 신탁과 공평한 분배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이라 함은 평등한 분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재산 신탁한 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사회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나중에 사용하고 돌려줄 것인가? 절대 그럴 일을 없을 것이니 한마디로 그냥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말의 유화된 표현 아닐까?



이어서 비폭력과 탈중심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폭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농업적으로 조직된 인도는 육해공군을 잘 갖춘 도시화된 인도보다 외국의 침입을 받을 위험이 적다(p.70)라고 주장하는데 이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는지 궁금하다. 과연 인도는 과거에 농업적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는 도시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인가? 그리고 인도가 왜 현재 다른 나라의 무시를 받지 않는가? 그것은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간디가 주장하는 보호무역(p.94)은 개인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원래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해 경험이 미천한 관계로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에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을 통해 영국이나 미국이 IMF, 세계은행, WTO 3인방을 통해 각 국에 강요하는 자유무역의 허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나라들도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울 때까지는 보호무역을 하였으며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는 자유무역을 다른 나라에 강요함으로써 올라올 때 사용한 사다리를 치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이탈림, 혹은 전인교육(p.113)으로 대표되는 간디의 교육관에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간디는 지력의 올바른 교육은 오직 손, 발, 눈, 귀, 코 등 신체기관의 적절한 운동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p.113)고 말하고 있다. 즉 적절한 지능 발달에는 몸과 마음의 교육과 함께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추구한 교육 목표인 전인교육(全人敎育)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빼자고 주장(p.117)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는 판에 이런 주장을 했다가는 미친 사람 소리 듣기에 딱 좋을 것이다. 본인은 현재 영어가 일종의 학벌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어가 이른바 상류층으로 편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으며 영어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것은 너무 앞서간 생각이다. 영어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오는 논문의 대부분은 영어로 작성되고 있으며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입장에서 영어라 함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본어와 같이 인도의 문화를 왜곡할 수 있으며 당시 [친영파]의 주요 출세 수단이었던 만큼 이를 배척한 간디의 생각은 이해되지만 현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적인 생각으로 간디가 주장한 이상적인 삶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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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시클 다이어리 - 누구에게나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 순간이 온다
정태일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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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글쓴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여행하는 [평범한 여행기]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취직을 위한 TOEIC책과 함께 책가방에 넣고 중앙도서관에서 보기 시작했을 때 글쓴이의 처지과 너와 오버랩되었다. 사실 우리 학교 교훈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과 같이 [진리 추구][자유]는 군대를 갔다오고 4학년 졸업반인 상태에서는 구름 위에 뜬 소리처럼 들렸다. 눈 앞에 닥친 취업을 위해 나도 글쓴이처럼 TOEIC책을 옆구리에 끼고 아침부터 중앙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취직을 위해 TOEIC을 공부하면서 나의 어렸을 때 꿈과 대학교 신입생 때의 각오는 이미 나의 마음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나의 고민과 같은 고민을 글쓴이는 더 많이 했음을 이 책에서 알 수 있었다. 29살에 40번이나 서류전형 탈락을 겪으면서 글쓴이는 좌절회의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면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필중이 아저씨를 만나서 잃어버린 [꿈][열정]을 찾기 해 60일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책에서도 평범한 [여행기]와 같이 유럽을 여행하는 다양한 사진과 에피소드들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으며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도움이 될 여러 가지 조언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 자전가가 보편적인 운송수단이면서 자동차 운전자보다 모든 신호에서 한발 더 빠르다는 것과 잘 구성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나라 자전거 전용도로의 경우 고작해야 인도에 줄만 그어놓는 수준에 불과한데 유럽의 경우에는 아예 자전거만 다니는 도로, 말 그대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나 이 책이 기존의 [평범한 유럽 여행기]와 차별되는 점은 [유레일 패스]를 통하여 기차로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박물관이나 성 같은 것이 보이는 것 뿐이 아니라 유럽의 시골 모습이나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스드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실패자' 취급을 받는 취업 장수생이 자신의 [꿈][열정]을 찾기 위해 스스로 힘든 자전거 여행을 선택하여 결국 60일간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여러가지 교훈을 배우고 다시 사회에 도전할 [열정]을 얻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평범하고 식상한 유럽 여행기에 지쳐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글쓴이나 나와 같이 눈 앞에 닥친 취직 때문에 [꿈][열정]을 잃어버렸다면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잊어버린 꿈과 열정을 찾아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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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평전
클로드 B. 르방송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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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우리가 토번(土番)이라고 부르는 [티베트]에서 큰 민중 봉기가 있었다. 올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여러가지 고민할 변수가 많았던 중국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 민중 봉기는 비록 [완전 독립]이라는 소기의 성과는 얻어내지 못하였지만 티베트 국민의 독립 열망을 세계에 널린 알리게 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국내에서는 <언론>이란 여러가지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국내 불교단체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고자 하였지만 이를 불허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정확히 <티베트 문제><달라이 라마>에 대해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교적 제 3자의 입장인 프랑스의 동양학자이자 저널리스트가 달라이 라마에 대해 평전을 서술한 만큼 우리를 현혹시켰던 [선입관][편견]을 벗어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나의 기대는 충분히 절반 이상 만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달라이 라마의 삶을 시간의 순서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제도가 시작된 정치, 역사학적 분석과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티베트에 대한 문화적인 분석도 같이 포함되어 있어서 티베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은 마치 독자가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글쓴이의 질문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답변을 듣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전통][종교]의 알 수 없는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글쓴이는 현실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티베트 독립]과 종교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환생] 등에 대해 거침없는 질문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답변 또한 '우문 현답'이라는 오래된 고사성어가 이야기하는 그대로이다.

 

 이 책을 통해 <달라이 라마>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굉장히 많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티베트 독립을 원하면서도 [비폭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첫 손가락에 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전히 독립운동에 있어서 과연 [비폭력]이 효과적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이에 비해 <달라이 라마>가 설파하는 [중도(中道)]라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특히 요새 나를 둘러싼 상황이 [중도(中道)]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보면 같은 책을 봐도 독자의 상황과 지식 수준에 따라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은 다양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최초로 프랑스어로 쓰여진 것이 1986년이고 게다가 중역본인 만큼 현재 달라이 라마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리고 과연 번역이 성공적이었는지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글쓴이도 [서양인]인 프랑스인인 만큼 악명 높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력 아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아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맞아 [티베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서구의 물질 문명이 우리에게 채워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양 '정신 문명'의 최고봉인 <달라이 라마>를 간접적이로나마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으로써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직접 대한민국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과연 기독교를 신봉하는 대통령 아래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을지… 그 때까지 이 책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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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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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본인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글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에 소로우의 대표작인 <월든>을 전부 읽었으며 이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인 <시민의 불복종>이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책이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와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한국의 사상가 함석헌 선생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요근래 <촛불시위>를 통해 과연 '시민의 불복종'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 굉장히 궁금하였다.
 

 이 책은 시민의 불복종, 돼지 잡아들이기, 가을의 빛깔들, 한 소나무의 죽음, 계절 속의 삶, 야생사과 이렇게 총 6개의 다른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 중 첫번째 <시민의 불복종>은 최초 출판되었을 때는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이였으나 <시민의 불복종>이란 이름으로 더욱 더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주장하며 모든 정부가 때로는 불편한 존재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정의'인 정부는 있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며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주장한 것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투표는 일종의 도박이므로 불의의 법들이 존재하면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라고 독자에게 묻고 있다. 이에 대한 글쓴이의 답은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하나의 방법으로 글쓴이가 취한 것과 같이 불의의 전쟁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세금을 내지 않는 것 등이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기득권자들은 스스로 법을 만드는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불의의 법을 지키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설사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단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양심과 생각이 지시하는데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말을 그대로 적용시키면 현재 <촛불 시위>도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며 과거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는 전부 '테러리스트'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요새 어떤 국회의원이 집시법을 강화하는 법률을 국회에 상정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문제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는 세금이 '이라크 전쟁'을 뒷받침하는데 쓰인다는 점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외 글쓴이의 글들은 자연에 대한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일종의 [노장 사상]을 느낄 수도 있었는데 글쓴이가 공자에 대해 박식한 점을 가만하면 어느정도는 '노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소로우 특유의 위트있는 문체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은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결국 '요새 시절이 하 수상'하고 촛불시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시민의 불복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과거 멕시코 전쟁을 통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글쓴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나름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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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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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월든>이란 책을 알게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본인이 개인적으로 2007년 최고의 책으로 꼽는 <지식e>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월든>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껏해야 [자연 보호]를 강조하는 평범한 책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동안 자연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교육 혹은 잔소리를 들어왔던가? 그런 잔소리를 듣기에도 머리가 아픈데 괜히 시간과 노력을 들어서 스스로 다시 한번 '뻔한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에 독서클럽에서 이번주에 읽어야할 책으로 <월든>을 선택하게 되었다.
 

 결국 본의가 아니게 <월든>을 만나게 되었는데 일단 생각보다 두꺼웠다. 기껏해야 [월든 호수]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옮긴 책인데 왜이리 두꺼울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역자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마치 [로빈슨쿠르소]를 보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이 책의 글쓴이는 정말로 '위트'가 많고 '반어법'에 뛰어나서 중간중간 웃음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월든 호수의 자연을 독자가 직접 월든 호수를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문학적으로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월든>의 뛰어남은 이런 1차원적인 <월든 호수>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데에 그치지 않는다. 글쓴이는 더 나아가 19세기에 팽배하던 물질문명자본주의, 그리고 국가의 횡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이 책을 통해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글쓴이가 <월든>을 쓰게 된 목적이 바로 자신이 아무런 연고나 도움 없이 물질문명에서 벗어난 삶을 추구하여 이런 삶이 오히려 더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물질문명의 허구를 고발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쓴이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삶의 질은 떨어지게 되고 소모한 힘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휴식과 영양을 필요하게 된다는 것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반전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면서 기존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국가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거북했던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글쓴이 자신이 <월든>에서 인도의 '베다 경전'이나 공자의 '논어'등을 수 없이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을 미개인이라는 둥, 문약한 중국인이라는 둥, 아랍인보다 우리가 더 우수하다는 둥 [백인 우월주의], 혹은 [우생학]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꾸준히 받게 되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글쓴이가 주장하는 '노예 해방'도 자신이 흑인과 동등한 인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뛰어난 인간으로서의 자비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자신은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로서 이렇게 좋은 삶을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물질문명에 빠져 사는 것에 대한 우월감이랄까? 아니면 왠지 독선독단에 빠져있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민감해서일까?

 

 이렇게 비록 비판 받을 점이 있지만 이 책은 현대에는 긍정적인 면을 좀 더 중요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재도 [인종주의]가 알게 모르게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환경파괴][물질문명]에 대한 경고로써 이 책의 존재가치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참고로 많은 <월든> 번역본이 존재하지만 이 책이 가장 잘 번역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옮긴이가 직접 월든호수도 방문할 정도로 노력을 많이 하였으니 혹시 잘못된 번역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이라면 이 책과 함께 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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