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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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근래 가장 잘 팔리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십중팔구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해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분명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수요가 늘은 면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 책을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가 눈이 멀고 만 시대가 그려진다. 한 번 눈을 감고 생각해보라. 만약 내 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 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눈이 멀게 된다면? 과연 이 상황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앞서서 인간 이성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인간 본성이 과연 '추악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그 미래가 바로 <현재>라는 것이 글쓴이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주장이다. 이 책 마지막에 의사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란 거죠."  

이런 의사 아내의 말이 바로 글쓴이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물론 극소수의 사람은 예외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2MB 정부가 서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기득권 보호에만 힘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익'이란 이름으로, 혹은 '체념'이란 이름으로 침묵한다. 바로 우리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아닐까?

 여기까지가 글쓴이의 의도겠지만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 바로 올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역사나 현실을 왜곡시켜 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컨데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에 맞게 역사나 현실을 왜곡시켜서 '본다'. 이 중에서도 실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똥을 음식으로 보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지만 자신의 이익에 맞게 실제 보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바로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 아내"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 아내"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눈먼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눈먼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람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모두가 눈 멀어 있고 나만 눈이 멀쩡하다면 나는 일종의 <신>이 될 것이다. 눈먼 사람들의 먹을 것을 언제나 뺏어 먹을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그들을 때리거나 죽일 수도 있고 소설 속에서처럼 먹을 것을 무기로 자신의 욕망을 쉽게 채울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2MB를 비롯한 한나라당/뉴라이트 일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 초반에는 안과 의사가 최초 눈먼 사람들을 진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최초 눈먼 사람의 눈은 지극은 정상이므로 시신경을 통해 시각 신호를 받아들이는 <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을 향해 "너희들의 뇌는 문제 있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너희는 전부 미쳤어"라는 작가의 독설을 교묘하게 숨겨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미쳐 있을까?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수용소 안에서 까패 집단이 식량을 독점하고 이를 무기로 수용소 안의 여자를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너무 힘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남자들이 먹을 것을 위해 여자들을 그들에게 넘겨 주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여자들은 "그들이 남자를 원하면 당신이 가겠나요?"라고 되묻는다. 만약 나라면 나의 아내 혹은 어머니, 딸을 먹을 것을 위해 그들을 지옥 속으로 던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남자를 원하면 내 몸을 지옥 속으로 던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나의 생각을 솔직히 밝히겠다. 나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아내의 몸을 댓가로 구차한 삶을 이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상황이라면 나는 깡패 집단 전부, 혹은 단 한 명이라도 함께 죽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뒤에 아내에게 닥칠 보복을 생각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솔로였다면? 여자들은 나하고 관계가 있는 여자들이 아니니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녀들의 선택을 존중했을 것이다. 혹여 몸을 팔 수 없다고 하든 몸을 팔고 나서 얻은 식량은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든 말이다. 역시 매인 것이 없는 '솔로'는 굉장히 편하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괴로워하며 선택할 필요 없이 오직 타인의 선택만 기다리면 되니 말이다.

 정말 이 책은 이 시대 속에서 생각할 것들을 많이 던져 주는 소설이다. 눈먼 자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이 소설이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1위라는 점은 희망적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도 눈먼 사람들이 눈을 뜨지 않는다는 점은 정말 비관적이다. 다만 나는 볼 수 있지만 눈먼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책 맨 마지막 장에 쓰여있는대로 "끊임없이 눈이 있으면 보고 볼 수 있으면 관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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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9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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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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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독서실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대학 배치표>를 보게 되었다.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여 학벌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내가 다니는 학교와 학과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연계에서 당당히 '생명과학' 혹은 '생명공학'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이른바 <Life science>를 유망한 학문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 나라도 미국과 같이 종교 근본주의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교육은 점점 경시되고 있는 듯 하다. 본인의 경우도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으로서 진화론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책의 글쓴이인 장대익 선생과는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상태이다. 장대익 선생과 최재천 박사가 함게 번역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현재 쉽게 풀어쓰는 일에 잠시 몸 담고 있는데 아마 최종본이 나오기 전에 통섭의 번역자로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통섭의 경우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대익 선생이 과연 진화론을 대중 수준에 맞게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 이었다. 역시 나의 기대대로 이 책을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일반 생물학] 수준의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일반 생물학을 수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책을 읽지 않는 일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진화론]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의 구성으로 특이한 점은 가상으로 현재 진화론의 쌍두마차인 굴드도킨스의 토론을 통해 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글쓴이 장대익 선생은 뻔뻔하게 그 토론의 제목을 [다윈의 식탁]이라고 정하고 서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장대익 선생은 굴드보다는 도킨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큰 맥락에서 나도 도킨스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화의 속도와 양상><진화와 진보>에 대한 토론에서는 굴드의 의견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이 책의 내용을 하나 둘 살펴보면 생물학, 그 중에서도 특히 진화론이 받게 되는 공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예컨데 언어의 기원에 대해 '단지 그럴듯한 이야기 just so story'라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설명하려고 한다든지(p.37),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을 동일시하여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도킨스에 대해 유전자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는 것 등이다. 분명 유전자 환원주의는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많다. 하지만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유전자 환원주의가 경험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증거가 없는 한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단순히 거북하고 불쾌하다고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다윈에게는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 책에서는 그 해결책으로 <해밀턴 규칙(Hamilton's rule)>이 소개되어 있다. 즉 "rb-c>0"이라는 규칙인데 r=유전도, b=이득, c=손해 라는 것으로 이타적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의 전설적 생물학자 홀데인 J.B.S Haldane이 선술집에서 했던 "나는 2명의 형제나 8명의 사촌의 생명을 위해 언제나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유명한 일화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TFT 전략>이란 것도 소개하면 "먼저 배신하지 않되, 상대방의 배신에는 즉각적인 응징을 하고, 상대방의 이전 배신들에 대해서는 눈 감아 주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상대방과 다시 만날 확률이 일정 이상되면 항상 배신을 때리는 전략에 비해 더 이득이 됨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로써 이기적 유전자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딱딱한 진화론적 논점을 굴드와 도킨스의 토론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쉽게 설명해 준 책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도킨스의 다른 책들을 읽는다면 서양 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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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모든 것의 시작 - 우리 시대에 인문교양은 왜 필요한가?
서경식.노마 필드.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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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 시대에 인문 교양은 왜 필요한가?"라는 화둘 가지고 서경식, 노마 필드(Norma field), 카토 슈이치(加藤周一) 3명이 '03.7.12에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란 특별강연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특히 서경식 선생은 머릿말에서 교양과 괴리된 일본 대학생들에 대해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정답이 '왜' 정답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그것도 한 가지 사고방식이지요"라는 상대주의적, 양비론적 태도를 보이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일을 멈추고 있다고 서경식 선생은 안타까워한다. 이로써 점점 신자유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인간의 "기계화""야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계화""야만화"가 계속될수록 국가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이를 위해 맹목적인 애국심(쇼비니즘)과 내셔널리즘을 강화하여 계급적 모순과 복지예산의 삭감 같은 절박한 현실적 문제에서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쉽다는 것이다.(p.79) 그 결과 '인간은 덕과 지혜를 구하기 위해 산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라는 신념에 의지하며 살아온 쁘리모 레비(Primo Levi)같은 인간이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이는 결국 자신의 외부에 참혹한 현실이 존재한다고 해도 애써 그것을 못 본 척 하는 '역逆 아우슈비츠'에 같히고 말 것이라고 서경식 선생은 주장한다.(p.207~211)

 이 같은 현실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2MB와 공정택으로 대표되는 '쓰레기'들은 자신들의 입 맛에 맞게 역사 교과서를 뜯어 고치고 경제난을 핑계로 부자들만을 위해 세금을 감면하고 의료 보험을 민영화하려고 시도하는 등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 안달이 나 있따. 솔직한 내 심정으로는 그런 쓰레기들만 난지도에 마아서 따로 나라를 만들어 지들끼리 살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 듯 나도 대한민국을 떠날 생각이다. 그 이후 대한민국이 전쟁터가 되든 말든 절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양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자유>, <상상력>, <차별에 대한 반대> 이렇게 3가지 화두를 이야기한다. 본인은 시청 앞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외쳐도 잡혀 가지 않아야 진정 <자유>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막걸리 보안법'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다. 혹시 나도 잡혀가는 것은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이제 일명 '최진실법'까지 제정되면 인터넷 언론 자유는 그 종말을 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토 선생과 서경식 선생의 대담 중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의논하는 대목이 있다.(p.105~106) 흔히 우리는 영어로 대표되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실용적인 목적으로 한정하거나 특권층의 대물림 수단(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시킬 수 있는 집안)으로 외국어가 이용되므로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생가간다. 그런데 카토 선생은 외국어를 공부함으로써 나 스스로 가둬두고 있는 국가와 사회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각이나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진정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아닐까?

 비록 이라크 전쟁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 이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지만 이럴수록 인문 교양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인문 교양은 다시 밝은 미래를 인류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그 대답을 스스로 찾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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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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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운명이란 것이 존재할까? <e-멋진 책세계> 12월의 인물로 칼 세이건(Carl Sagan)을 선정해서 국내에서 번역된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읽고 '08.12.9(금)에 상암동 독서 아카데미에서 독서 모임을 가졌는데 바로 다음날 12월 20일이 칼 세이건 서거 12주기가 되는 날이였고 12월 20일 네이버 오늘의 책에 바로 이 책 [코스모스(Cosmos)]가 선정되었다. 이를 보면 흔히 어떤 알지 못하는 미지의 힘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기 쉽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비과학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던 칼 세이건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우연이 모여서 필연처럼 보이게 된 것 뿐이겠지….

 어쨌든 이 책은 수많은 권장과학도서 목록에 언제나 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양장본의 경우 엄청난 크기와 두께, 그리고 학생으로는 심히 부담스런 가격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에 2006년에 칼 세이건 서거 10주기를 맞아 저렴한 가격의 보급판이 출판되었고 평소 눈독 들이던 책이었기 때문에 지름신의 가르침을 쫓아 이 책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인간적으로 너무 두꺼웠다. 자그만치 700여 쪽 두께에 달하는 책을 보고 주눅이 든 나머지 자신있게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주의 광활함에 비해 지구가 얼마나 자그많고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칼 세이건도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대 중요는 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라고 말하고 있다.(p.36) 얼마 전에 적외선 우주 복사를 연구할 끝에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 가량이라고 밝혀졌다.(약 ±1% 오차로 이를 밝혀냈는데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본인의 경우 이를 알고 나서 힘들거나 화난 일이 있을 때마다 우주의 나이와 본인의 수명을 비교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이 있는 혜성 충돌에 대해 살펴보자. 얼마 전에 <딥 임팩트(Deep Impact)>란 영화가 큰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지구에 혜성이 충돌할 때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인데 실제 중생대 공룡 멸종을 이로써 설명하려는 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점은 걱정 안 해도 좋다. 그 이유는 목성이 그 거대한 크기 만큼이나 강력한 중력으로 혜성이나 소행성이 내행성계로 향하는 것을 한 몸 희생해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혜성 조각 6개가 목성과 차례대로 충돌한 적이 있었다. 과연 이 사건에서 목성과 혜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책은 딱딱할 수 있는 우주 과학을 여러가지 시적 표현을 동원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압권이 바로 "새로운 진리의 아버지는 바로 시간이다"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비록 칼 세이건이 직접 쓴 표현이 아니고 1638년에 쓰인 존 윌킨스의 [달세계의 발견]에 있는 내용이지만 이 짧은 말 속에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말 같다. 과연 인류는 언제쯤 이렇게 광활한 우주의 끝을 알게 될까? 언제쯤 인류 외의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있을가? 이에 대해서는 오직 진리의 아버지인 시간만 믿고 꾸준히 진리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효한 것 같다.

 이어서 칼 세이건은 6장에서 네덜란드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16~17세기 네덜란드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개방적 사고와 생활양식 그리고 물질적 풍요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과 개척의 정신은 네덜란드를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그 대표적 인물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이다. 데카르트도 그가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는데 그는 직접 굴절 망원경을 제작하여 다른 행성의 크기를 잰 인물이며 추시계를 발명하고 증기 기관의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등 놀라운 인물이었다.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 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비록 과거와 달리 자꾸 학문이 분화되어 더 이상 이런 팔방미인이 존재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통해 자꾸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외계 문명을 찾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데 이에 대한 칼 세이건의 설명이 흥미롭다(p.620~621) 인류는 우리보다 진보한 외계 문명과 접촉하면 그들이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킬까봐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칼 세이건은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으며 그래서 우리의 외계 문명 접촉에 대한 공포감에는 우리 자신의 죄의식이 담겨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성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진보된 문명이 있다면 그들은 문명으로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다른 문명과 잘 어울려 사는 법을 획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야 말로 인류의 종말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칼 세이건은 과학하기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두 가지 규칙을 이야기한다.(p.660)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되도록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과학하기에 있어서 절대 진리일 것이다. 이런 절대 진리가 무시된 경우는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 익히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은 멀게만 보이던 우주를 잘 소개해주는데 성공했다. 괜히 영어로 쓰인 과학 서적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수많은 오타가 보이는데 보급판을 내면서 번역자가 수정했다고 하지만 계속 보이는 오타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다음에 개정판을 낼 때는 책임감을 가지고 오타와 비문을 수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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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안인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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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칼 세이건(Carl Sagan)'을 처음으로 알게 된 시기는 군대를 다녀온 직후인 대학교 3학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평소 무협/판타지를 제외하고는 책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2년 간의 군생활 기간 동안 '글자', '운동', '먹을 것'의 부족한 공급 때문에 이것들에 대한 엄청난 갈망을 가지고 전역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남들보다 2년간 뒤쳐졌다는 생각은 살인적인 독서량을 통해 단시간에 <잃어버린 2년>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책 앞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발견하게 된 책이 바로 <코스모스(Cosmos)>였다. 권장 과학교양도서 목록에 있었던 이 책은 중앙도서관에서 수많은 예약자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나를 놀라게 했으며 힘들게 손에 넣은 책은 엄청난 크기와 두께, 무게로 인해 단 1쪽도 읽지 못하고 대출 기간이 다 되어 반납하게 만들었다.

 <코스모스(Cosmos)>는 책 수집벽이 있는 나로서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으며 이미 그 두께에 질렸기 때문에 칼 세이건을 만나는 일은 하염없이 뒤로 미뤄졌다. 그러던 중 저렴한 보급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름신의 가르침을 받들어 구입하게 되었으나 보급판 또한 700쪽에 달하는 양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e-멋진 책세계>의 '08.12월 인물로 칼 세이건이 선정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칼 세이건의 책들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읽게 된 책이 비록 칼 세이건의 저작은 아니지만 일종의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칼 세이건 -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이다. 그런데 이 책 또한 700여 쪽이나 된다! 물론 평전의 두께가 그 사람의 위대함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과학자'의 평전이 이렇게 두꺼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이 책은 세이건의 생애와 연구성과, 관련 인물, 심지어 사생활마저도 글쓴이의 엄청난 노력과 연구 끝에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이란 인물에 대해 드는 생각은 그는 굉장한 자유주의자이고 과학의 대중화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하였으되 과연 과학자로서 유능하였는가는 의문이다. 주류 과학계가 그동안 칼 세이건을 이미지와 행운에 근거해 그를 공명심에 빠진 뻔뻔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이런 지적은 일리가 있어보인다.

 그렇지만 칼 세이건을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할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론들에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피하라고 권했는데(p.211) 이는 자신의 이론이 무너질 때 그 사람도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학생들로 하여금 이를 경계하기 위해 한 권고였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돈? 명예? 사랑? 과학자들처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어떤 특정한 이론이나 가치 기준 아래 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만약 자신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것들 - 돈 또는 명예, 혹은 그 어떤 무엇이든 -이 사라진다면 우리 역시 무너져버리지 않겠는가?

 이어서 칼 세이건에 대한 극단적 평가의 원인인 대중화와 독창적 연구와의 괴리는 정말 좁히기 힘든 것 같다. 대중화가 인기가 없는 원인이 칼 세이건은 단순한 시기심 때문이라고 말했지만(p.464) 실제 원인은 대중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 연구를 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주류 과학계의 인식이었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 나라 과학계에서도 지배적인 정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이나 대중적 책 집필이 정당한 연구 성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비록 독창적 연구 성과네은 못 미쳐도 어느 정도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성은 자기 자신을 재빨리 소모시키는 기묘한 진화라고 여겼던 슈클로프스키의 생각(p.557)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견해는 역사상으로 개발된 신무기는 반드시 사용되어져 왔고 우리는 끝없는 군비 경쟁 끝에 스스로 개발한 무기로 우리 자신을 태워 없앨 것이고 그 때문에 우주가 텅 비어 있으며 인류도 결국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지성을 자기 자신을 소모시키는 진화라고 여긴 슈클로프스키의 생각은 우리에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 준다. 과연 인류는 이런 암울할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텅 빈 우주는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나의 수명 안에 이런 미래를 맞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보지만 인류 최후의 순간을 직접 맞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칼 세이건을 정말 잘 연구한 책이다. 책 뒤의 참고 문헌과 논문만 봐도 글쓴이의 노력에 감탄을 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에도 오타와 비문(非文)이 보이는데 700여 쪽에 달하는 책의 분량과 번역자에게 생소한 분야라는 것을 감안하면 수용할 만한 수준이다. 다만 개정판이 나오면 이를 수정해서 온전한 <칼 세이건>을 만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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