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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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본인은 책을 읽을 때 보통 등/하교길에서 지하철 내에서 보는 편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지하철은 '지옥철'로 변하고 앉아서 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남자'이고 이 책의 표지는 분홍색 배경에 외설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덕택에 지하철에서 꼭꼭 숨겨서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이 책의 제목과 표지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아직 20대 중반에 이를때까지 연예를 못해본 입장에서 20대 미혼 여성의 성과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이진'과 절친한 친구 'B', 'R' 그리고 사랑과 우정 사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Y'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K'가 등장한다. 일단 주인공 이진은 나이트클럽에서 고무장갑이라고 불리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가 아닌 여자와 함께 살고 있으며 생모와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관계이다. 이렇게 주인공이 상처를 주는 것이나 받는 것을 겁내는 것은 어머니의 부재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에 비해 주인공의 친구 'B'는 반대이다. 그녀는 오래 전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나서부터는 클럽이나 나이트로 대표되는 [꿈]이나 [원나이트]를 자주 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사랑하거나 호감을 가지는 남자와 원나이트를 하지는 않는다. 오직 싫어하는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할 뿐이다. 그리고 'R'은 쉽게 쉽게 연예와 사랑을 하고 연예와 사랑을 실패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각각 다른 사랑/연예관을 가지고 20대 초반 여성들을 각각 대표하고 있다. 

 이에 주인공 옆에는 2명의 남자가 있다.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Y'가 있는데 주인공은 사랑과 연예를 통해 상처 받거나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Y'와 연인이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는 한편 주인공은 'K'라는 인물과 문자를 주고 받는데 이렇게 주고 받는 문자가 각 챕터 앞에서 꼭 등장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K'란 과연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주고 받는 문자는 연인관계가 아니라 마치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것과 같이 틀에 박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약 'K'의 존재가 없었다면 단언컨데 이 소설은 <2008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K'는 주인공이 신청한 <문자 서비스>이다… 사랑하기를 겁내는 주인공이 고독감에 못 이겨서 통신사를 통해 신청한 서비스로 매일 아침마다 가상의 인물과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인 것이다. 이에 대한 오해 때문에 'Y'와 갈등도 빚지만 결국에는 헤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비록 지하철 내에서 남자가 읽기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20대 여성의 사랑과 연예에 대한 고민을 있는 그대로 잘 보여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연예를 못해본 입장에서 나에게 20대 여성의 생각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K'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사랑받기는 원하지만 상처 받기는 싫어하는' 사람의 본성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다. 글쎄? 누구나 '사랑받기는 원하지만 상처 받기는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테고 이 책의 결말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대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다만 한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본인의 경우 책 중간에서 소개한 다양한 연예관을 가진 사람 중에서 평생 혼자 살 것 같은 연예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나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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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망상 - 만들어진 신이 외면한 진리
알리스터 맥그라스 외 지음, 전성민 옮김 / 살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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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7년에 국내에 번역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만들어진 신]을 기억하는가? 국내에 번역될 때는 <만들어진 신>이라고 제목을 번역했지만 원래 제목은 [The God Delusion]이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등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 그가 [만들어진 신]으로 종교에 대해서까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에 대한 신학 과학자의 답변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제목부터 [도킨스의 망상], 즉 [Dawkins Delusion?]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나왔다. 결국 [만들어진 신][도킨스의 망상]은 종교에 대한 과학의 도전과 이에 대한 반격이다. 그런 만큼 어느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2권의 책을 같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였으며 원래 무신론자였다가 군대 다녀와서 기독교를 쭉~ 믿어오다가 [만들어진 신]을 읽고나서 많은 시험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미리 밝히도록 하겠다. 그런만큼 이 책에 대한 견해도 많이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미리 고백한다.

 

 일단 이 책의 추천사를 살펴보면 포항공대 김경태 교수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지성인은 오히려 '하나님은 계시다'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라고 하는데 자신을 비롯한 이른바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계시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오히려 자신의 '지성'을 과신하는 듯한 오만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역자 서문에서 이 책은 도킨스가 전개해 온 그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모두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기독교의 신은 어째서 믿을 만한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p.8~9)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 왠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또한 비종교인에게 신의 존재와 신을 믿는 믿음의 정당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다름 아닌 종교인들의 삶일 수 밖에 없다(p.11)는 것도 오히려 현재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이 그리고 그렇게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신을 믿었던 적은 역사상 결코 없었다."(p.16)라고 주장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신을 믿어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는가는 제쳐놓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신을 믿든, 아니면 무신론자인 글쓴이가 다시 신을 믿게 되었든 그것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신]에서 단 한가지 배울 점을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선택할 "열린 마음"을 글쓴이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p.17) 또한 도킨스가 무신론적 근본주의에 빠져있다는 지적(p.20)과 이런 무신론적 근본주의가 종교적 근본주의와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는 지적(p.23)도 일견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은 유아적이다"라는 도킨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인생 후반기에 신을 발견하게 되는지 설명해야만 한다'(p.33)라고 주장하는데 글쓴이가 정말 이에 대한 답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을까?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고 하면 이에 대한 대답이 될련지 모르겠다. 그러나 도킨스가 이른바 "모태신앙"같이 어린이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지적한 것과 같이 글쓴이가 "무신론"을 어린이에게 강요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p.34)고 지적한 점은 일리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킨스가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p.35)는 점 또한 약간은 위험한 생각이지만 지적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킨스가 자료를 잘 찾아보지 않고 인터넷 검색에 의지했다는 지적(p.37) 또한 훌륭한 지적이며 비개연성이 비존재를 수반하지 않으며 쟁점은 신이 있을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신이 실재하느냐 안하느냐에 있다는 지적(p.45) 또한 일리 있다. 그러나 비록 도킨스가 무신론을 권하기 위해 "경험적으로 더 잘 맞는다"라는 논증 방법을 사용했다(p.41)고 지적하는 것은 옳지만 이것이 반대로 경험적으로 더 잘 맞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는 논증 방법 또한 문제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2장에서는 [과학은 신이 없음을 증명했는가?]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일단 2장 초반부에서 과학적 탁월함이 무신론적 믿음과 같은 것은 아니다는 글쓴이의 날카로운 지적(p.55)이 있다. 그리고 자연과학들은 귀납적 추론들에 의지(p.57)한다는 지적을 통해 어떤 일련의 관찰들이라도 다수의 이론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글쓴이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도킨스의 견해를 '순진'하다고 비판하는데 그러나 나는 아직 과학이 설명 못하는 것이라도 언젠가는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래와 같은 질문을 과학이 답할 수 없기 때문에 성립된다고 하는데(p.63) "모든 것들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우리 모두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충분히 과학, 특히 진화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NOMA에 대한 도킨스의 비판에 대해 POMA를 주장하며 특히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지휘한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신앙의 원리들은 과학의 원리들과 보충적이다"라고 말하는데(p.66) 의문이다. 사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  종교계에서 많은 비판과 우려를 받았으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콜린스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종교계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많은 과학자들이 신을 믿는다(p.67)고 하는데 이는 도킨스의 '진짜' 과학자들은 무신론자들이어야 한다(p.70)는 주장한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많은 과학자가 믿는다고 신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종교를 배척하고 파괴한 스탈린과 히틀러가 무신론자라고 지적(p.70)하는데 실제 히틀러는 기독교인이었다는 학설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또한 도킨스가 세계는 합리주의와 미신 이렇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진다는 것에 대해 흑백논리라고 비판한 점(p.75)은 일견 수긍이 가지만 신이 있다 없다는 문제에서 '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카톨릭 교황이 생물학전 진화의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명했지만 아직도 개신교에서는 진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p.78)는 점은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 증거 아닐까? 하지만 2장 마지막에서 도킨스가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적 극단주의자들만 강조했다는 지적(p.80) 도킨스가 명심해야될 것이다.

 

 이제 3장에서는 [종교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일단 글쓴이는 종교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도킨스의 주장은 고도로 이론화된 추측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p.91) 하지만 종교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이론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고도로 이론화된' 추측이라 함은 그 자체가 이미 보편적 타당성을 가졌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가 '보편적 특징'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p.97) 이건 전형적인 '물타기', '논점 흐리기'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어떠한 믿음을 수반하지 않고도 '종교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며 그 예로 불교를 드는데(p.101) 일단 이 주장 자체가 사실인지는 둘째치고라도 주장 자체에서 옹색함이 느껴진다. 이런 점은 이어서 p.102~103사이에서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여 독자를 헷갈리게 만든다는 느낌마저 가지게 한다. 또한 과학에서 다수의 원인들이 나타나는 것은 정상이라는 점(p.105)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종교도 다수의 원인들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절대적 신 뿐만 아니라 이른바 '기득권층'의 의도가 개입했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발언이다. 아니면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 외 '다수의 원인'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종교적 믿음의 타당성은 과학적 추론에 의해 실증될 수도 없고 논박될 수도 없다"라는 베르고트의 주장(p.106)은 종교라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런 자세가 중세 시대에 이른바 예술과 과학의 암흑시대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도킨스의 주장 자체가 '신이 없다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순환론적 논증이란 지적(p.92)은 타당하며 정신바이러스와 meme에 대한 비판(p.107~113)은 전공자 입장에서 속이 시원할 정도로 날카로운 지적이다. 분명 위 2가지 개념은 정통 생물학에서 전혀 인정받고 있지 않는 개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4장은 [종교는 악인가?]라는 제목으로 종교의 선/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일단 종교가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가운데 '종교만 폭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p.128)와 스탈린을 예로 들면서 '무신론도 폭력과 관계있다'(p.129)고 지적하면서 현대의 종교의 잘못된 점에 대한 도덕적인 비판은 무신론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p.130)은 100% 옳은 주장이다. 그리고 일부 미국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테러의 원인은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이라는 지적(p.132) 또한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글쓴이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자체가 초월적인 것을 찾는다는 것과 타자화는 인간 본성이라는 주장(p.133)과 함께 '종교'가 타자호를 위한 한가지 기준으로 단순히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 자체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도킨스의 성경에 대한 비판 중에서 특히 구약에 대한 비판에 대한 글쓴이의 반론(p.139)은 정통 개신교계에서 좋아할만한 100점짜리 답안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 말고 도킨스가 주장했던 '성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었으며 단지 오기였을 뿐이다'라는 주장 같이 증거에 근거한 도킨스의 지적에 대한 반론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궁금한 점은 글쓴이는 정통 기독교가 '예수가 전적으로 인간이었으며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지는 않았다고 이해한다'(p.140)고 주장하는데 이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인데 다수의 기독교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종교 형식은 임시적이고 인간적인 제도라고 지적(p.144)하는데 카톨릭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도 의문점이다. 결국 글쓴이 자신도 '성경무오류설'을 믿지는 않는 것(p.146)으로 보이며 신의 말씀이 나타난 성경 자체에 오류가 있다면 성경에서 증거하는 '신'이라는 것의 존재도 의문시될 수 밖에 없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만들어진 신]에 대한 일부 타당한 비판도 있지만 여전히 그 또한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신은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논지를 펴고 있다. [만들어진 신][도킨스의 망상]을 통해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중 1개의 책만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위 2권의 책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진리'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은 다른 점은 다 우이독경이 되더라도 반드시 명심해야 될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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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3 -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
이태원 지음, 박선민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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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어보를 찾아서] 3권에서는 흑산도에서 발견되는 생물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마무리하고 우주 관측에 대한 것과 과거 조선에서 과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 또한 흑산도를 벗어나서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를 탐사하는 기행문의 성격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히 조선 후기에 많은 이들의 피를 부른 "천주교"에 대한 서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글쓴이는 과거 대부분의 학자들은 언제나 중국 문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중국 문헌에 나오는 이름들을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은 오랜 세월 동안 줄기차게 시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p.47) 하지만 중국의 지식을 받아들인 것을 비판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던 정약전과 이청이 중국에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마땅히 찾아볼 만한 자료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고 정약전과 이청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당시 제대로 된 정보의 공유 체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상들의 실학 사상이 근대 학문으로 연결되어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p.75)

 

 이런 글쓴이의 아쉬움은 천문학에 대한 부분에서도 이어진다.(p.103~154) 특히 이미 17세기의 "케플러의 법칙"을 발표하고 이를 기초로 뉴턴이 미적분과 운동법칙을 이용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해 놓은 것은 우주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과학과 인간의 힘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낳게 되었고 결국 세계사를 뒤바꿀 과학 혁명을 이루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p.119)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현재에서는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가치 중립적 입장에서 계속된 과학발전은 환경오염, 대량 학살 무기 계발 등

엄청남 부작용을 낳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른바 "반성하는 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본격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어떤 차이가 이런 과학 발전의 차이로 이어졌는지 분석하기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동양의 관념적인 철학이 과학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지만, 서양의 경우에는 관념적인 철학이 오히려 과학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p.141)는 것을 글쓴이는 지적하고 있다. 예컨데 서양에서는 자연을 연구하여 그 성징을 밝혀내는 것을 피조물에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가는 수단이라고 해석해서 '신의 뜻에 다가가기 위해서' 과학에 힘을 기울였으나 동양에서는 오직 과학이란 오직 윤리 이념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윤리 실현을 위한 지나칠 목적성이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p.149) 이런 글쓴이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이런 점을 밝히는 것도 선조들의 업적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므로 소중한 교훈과 함께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갈 열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권에서 본인이 가장 관심이 있었던 생물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전어]이다. 본인은 전형적인 도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고등어, 꽁치, 갈치가 아는 생선의 전부였는데 스타크래프트의 오영종 선수의 별명인 "가을 전어"를 통해 전어라는 생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왜 오영종 선수의 별명이 "가을 전어"인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영종 선수도 사계절 중 가을에만 유독 성적이 좋았는데 이를 비유하여 "가을 전어"라고 별명을 부른 것 같다.

 

 그리고 글쓴이는 흑산도에서 벗어나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를 답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들 형제의 고난의 원인이 된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정약용이 특별히 아꼈던 제자이면서 많은 책의 실질적인 공저자이면서 [현산어보]에 있어서 방대한 주석을 포함시킨 "이청"이란 인물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정약종을 제외한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다지 천주교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다만 당시 지배층인 노론에서 남인 소속인 정약용을 내치기 위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 때문에 정씨 형제는 낯선 유배지에 고생을 하게 되었으며 정약용이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이청"은 70세까지 과거에 급제를 못해서 이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에는 워낙 과거제도에서 부정부패가 심했던 시절이라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급제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아마 이청도 이런 케이스였다고 생각한다.

 

 3권부터는 좀 더 글쓴이의 생각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서양에 비해 과학 발전이 느린 동양에 대한 비판과 [현산어보]의 흔적을 쫓는데서 벗어나 정씨 형제의 유배지를 찾아가서 그들이 흔적을 되짚어 본 점은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 3권에서 어느정도 [현산어보]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 되는 듯 하다. 이어지는 4권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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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2 - 유배지에서 만난 생물들
이태원 지음, 박선민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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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산어보를 찾아서] 2권 부터는 단순한 '흑산도 해양 생물 도감'에서 벗어나 현산어보를 좀 더 현대적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해석하려는 글쓴이의 의도가 돋보인다. 1권에서는 현산어보의 글쓴이인 정약전의 흔적을 찾기 위해 흑산도에 도착한 후 글쓴이의 전공이니만큼 이곳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해양 생물에 대해 설명하기 바뻤기 때문에 [현산어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2권에서는 초반부터 주자의 성리학(p.19~31)을 조망함로써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글쓴이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특히 주희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학과 윤리학을 통합하려고 시도했으며 이를 통해 신분제 사회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을 위계화하고 이를 사회 모델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고 제시한다.(p.22) 하지만 정약용은 성리학을 뛰어넘어 "성기호설"을 주창함으써 선과 악은 오직 이성과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며 어떤 동물에게도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산어보]가 자연과학적인 속석이 농후한 특별한 책이 될 수 있었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동양에서는 종교적인 윤리와 자연 법칙을 분리하여 생각함으로써 자연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려는 노력이 쇠퇴했다고 분석(p.30)하여 자연과학을 발달시킬 수 있는 환경과 토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단순히 흑산도의 "해양" 생물에만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동백나무와 나비에 대한 서술도 하고 있다. 특히 조선 나비 연구에 독보적인 존재인 "남계우""석주명"을 소개하면서 당시 자연 과학의 발달 모습을 잘 소개하고 있다.(p.57) 특히 석주명 박사가 나비 개체 변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한 것은 현재 보아도 놀라운 성과이다. 특히 배추흰나비 앞날개 길이의 변이곡선이 오직 1개의 정규 분포를 이루기 때문에 한 종이라는 연구 결과는 생명공학을 전공한 본인의 입장에서도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도 이렇게 자연과학이 발달했는데도 왜 현재 우리나라는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자연과학이 쇠퇴하고 말았을까? 아무래도 IMF 시절에 가장 먼저 짤린 것이 연구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우수한 인력이 이공계 진학을 회피하고 전부 의대나 약대에 몰리고 있는 점이 이런 상황을 가속화 하는 듯 하여 씁쓸하다. 또한 석주명 박사는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는데 언어의 사용은 그 나라의 국력에 비례하는 법이다. 결국 현재는 "영어"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한글"도 역사속에나 남는 언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 밴댕이(p.140)과 식혜와 식해(p.407)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밴댕이 속"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얼마전에 인천 연안부두에서 밴댕이 회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 때에 비로소 "밴댕이"가 해양 물고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 당시에는 정말 맛있었는데 지금도 생각만하면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그리고 흔히 식혜와 식해를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경우에도 가자미 식해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식혜인 줄 알았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에서는 좀 더 현산어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려는 글쓴이의 노력이 돋보인다. 계속해서 이 책을 통해 흑산도의 생태계에 대해 알아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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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1 -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
이태원 지음, 박선민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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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책은 내가 참석하고 있는 독서클럽에서 [자산어보]를 읽으면서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추천한 책이었다. 사실 [자산어보]는 그렇다쳐도 '단지 오래된 책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 어떻게 책으로, 그것도 5권짜리 책이 될 수 있을지 굉장히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이 책 1권을 만나는 순간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왜 독서클럽에서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했는지 그리고 2002년 TV, 책을 말하다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 중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렇게 높은 평점을 주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은 생물교육을 전공한 글쓴이가 7년에 거쳐서 [현산어보]에 나온 생물들의 정체를 규명하고 정약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매달렸으며, 몇 차례에 걸쳐 신지도, 우이도, 흑산도를 답사한 끝에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책 곳곳에서 글쓴이의 노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글쓴이의 노력은 책 아래에 포함된 수많은 삽화사진들, 그리고 [현산어보]의 내용과 실제 흑산도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비교를 통해 현산어보에 나온 생물들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1권에서는 정약전의 흔적을 찾기 위해 흑산도를 찾은 직후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인 [현산어보를 찾아서]보다는 현산어보에 수록된 생물을 찾는데에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단순히 현산어보에 수록된 생물의 현재 학명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현산어보]의 저자인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 현산어보를 집필하게 되었는가와 이렇게 수중 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과정, 그리고 현산어보가 현대에 가지는 의미가 아닌가? 단순한 "수중 생물 도감"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고등어 회유에 대한 놀라운 성찰>(p.296)이란 곳에서 정약전이 가지고 있던 고등어 어군의 움직임에 대한 거시적인 지식은 서양 학문처럼 체계화되지 않았고, 결국 고등어의 풍흉이 교대로 반복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며 당시의 학문 풍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학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는 풍토란 꾸준히 쌓여온 지식과 사회, 경제적인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기본 문화와 경제적 밑바탕을 강조한 점은 [현산어보]를 현대적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비록 1권에서는 [현산어보]의 현대적 해석보다는 "수중 생물 도감"에 치우친 듯한 느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의 노력을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잠시 살펴본 2권에서부터는 현대적 관점에서 능동적 해석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만큼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 또한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나름 그 가치가 있는 법이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이 책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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