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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처음에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은 차라리 1권과 2권을 함께 묶어서 양장본으로 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그림을 넣기 위해 반들반들한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이 경우 양장본이 아닌 경우 쉽게 제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권과 2권 따로 내놓은 것 역시 따로 따로 판매하여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주석 선생 사후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에서 유고를 모아서 출판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하나로 묶어서 내는 것 역시 좋은 모양새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유고를 묶어서 낸 것이기 떄문에 1권에 총 12개의 옛 그림이 소개된 데에 비해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가 미상의 <이채 초상> 이렇게 6개의 작품만 소개되고 있다.
일단 가장 먼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소개했던 내용이라 특별히 따로 언급할 것이 없지만 글쓴이는 일제 시대 일본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 작전에 의해 한국 호랑이가 멸종된 것은 한민족의 정신, 그 기개와 기상이 허물어졌음을 상징한다(p.22)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과연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호랑이를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유전적으로 극히 미비한 것이나 나는 호랑이 보다는 인간의 생명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호랑이의 수난은 굳이 일제 시대가 아니더라도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인다. 또한 글쓴이는 <송하맹호도>의 표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다. 은은한 옥색의 우리 나라 전통 표구가 아니라 화려한 비단으로 치장된 표구로 인해 그림 관람에 적잖은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일본식으로 표구된 옛 그림을 대할 때에는 원래의 여백이 좀 더 넓었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감상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p.55)
그리고 <마상청앵도> 역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이미 살펴본 바 넘어가도록 하고 이 책으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선의 <금강전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금강전도는 한마디로 '이상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으며 이상한 형태로 '제시'를 배열해 쓰고, '기년명' 그리고 '작품 제목'과 '작가 호'를 따로따로 적은 관지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아래 사진은 문화재청 홈피에서 가져온 것인데 제시 윗부분이 짤려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이를 주역의 심오한 이치가 담긴 그림이라고 평가한다. 즉, 아래 그림을 살펴보면 태극을 세워놓은 모양이고 제시 역시 주역으로 해석하여 조선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다가올 이상세계를 기원하다는 깊은 뜻까지 담았다고 보는 것이다.(p.135) 덕택에 책에 갑작스레 주역 내용이 나와서 당황을 하였으나 같은 그림을 보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그림을 보는 기쁨이 아닐까? 다만 조금 억지로 주역을 꿰맞춘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해석은 나름 일리있고 흥미있다.
그리고 글쓴이는 [조선과 이조]라는 글을 통해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렵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p.207) 이렇게 아주 열변을 토하시던데 나는 이 문장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고 남의 춤을 추는 것은 과거 우리의 전통 옷, 음악, 술, 춤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짐에 따른 당연한 결과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뛰쳐진 것에 대해 반성은 없고 단순히 시대 한탄만 하고 있으면 불만만 많은 늙은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또한 현재 우리 나라가 주체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오늘날 젊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세대인 글쓴이 세대 사람들 잘못에 있다. 마지막으로 나라가 백년 못가도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라라라면 차라리 망하는게 좋은 것이다. 이렇게 가끔 맹목적으로 전통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만 보여주는 글쓴이의 글을 읽을 때면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오주석 선생 사후 처음 유고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유고를 책으로 묶는 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문장의 흐름 역시 다듬어 지지 않았는데 과한 손질을 하면 고인에 대한 누를 끼칠 가능성이 높아 그 작업이 굉장히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의 도움과 편집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미리 알지 못하면 유고라고 알 수 없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책이 나온 것에 대해 독자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기쁠 따름이다. 다만, 다시는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누군가 오주석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