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메시지 > 미국, 넓은 땅에서 골랐다는 놈이 -메시지

미국, 그 넓은 땅에서 골랐다는 놈이

부시냐!!! 그러니 맨날 부서지고 부시는 일만 벌이는 게지. 좀 쫓아버려라!

표지부터 웃음을 유발하는 이 책의 진가는 톡 쏘는 미국 특유의 콜라맛이다.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자꾸 마시게 하더니만 결국 이를 썩이고, 건강을 헤치는 콜라처럼, 웃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으나 결국 부시라는 등장인물이 속을 썩이고, 성질을 건드려 화병을 도지게 한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미국. 미국이 재체기만 해도 독감에 걸린다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책의 내용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가 없기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도대체, 15명의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에게 테러 공격을 받은 부시는 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싸우는가. 부시 세력이 바보이든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소수이면서도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보수세력을 등에 업은 부시가 바보일리는 없다. 오히려 자신을 싫어하는 상대 세력을 세뇌시켜 바보로 만드는 엄청난 꽁수를 부리는 인물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전 국민을 슬픔과 두려움으로 몰아넣은 테러를 교묘하게도 자신의 집권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치밀한 인물이다.

그러나 모두가 부시의 꽁수에 속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무어라는 한 작가가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없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석유라는 보물을 얻으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섭게 달려드는 부시에게 깊은 태클을 걸었다. 그리고 그 태클은 일단 부시에게 커다란 치명상을 준 듯 싶다. 부시는 아직까지 무어의 태클에 대해서 묵묵무답이다. 사실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한 말 모두를 기억하는 질문자를 만났으니 거짓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비켜가기가 최고의 방법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무어의 태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가 만든 세금인하 법안덕에 많은 돈을 얻게된 무어는 부시 낙선의 그날까지 물질적인 노력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 무어의 의견에 동의하는 이유가 단지 전쟁광 부시를 끌어내리려 한다는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정권과 결탁하거나 괴뢰정권을 만들어 힘없는 국가의 국민들을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기존의 정책을 포기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야한다는 주장에 더 큰 공감을 하는 것이다. 일한만큼 얻고, 얻은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지구 전체의 환경을 생각하며, 인류 전체를 공존의 대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무어의 주장에 더 큰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사실 부시가 이번 재선에서 떨어지고 다른 누군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하더라도 미국의 기본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무어는 자신이 바라는 온전한 나라를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한 욕망이 인류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가를,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가 극히 암울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비통함에 빠지게 한 책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 각자가 무슨 일인가 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을 발달시키는 영양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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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첫 페이퍼가 리뷰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President's Day (대통령의 날)

미국의 고유한 공휴일로, 학교와 공공기관은 쉬나, 직장의 경우 대개 무급휴일이다. 유래는 18세기 말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워싱턴은 현행 달력으로는 2월 22일에, 그 당시 달력으로는 2월 11일에 태어났기에 주에 따라 날짜가 달랐다. 또한 주에 따라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생일인 2월 12일을 기념하기도 했다. 지금은 매년 2월 세번째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로 정하여, 모든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도저히 리뷰쓸 시간이 안 나서. 리뷰 대신 상식 올립니다. 북한이나 중국보고 우상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결국 미국도 영웅이 필요한가 보네요. 개천절 대신 Columbus Day를 만든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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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다연엉가 > 기억을 더듬으며....

어제 저녁에 쓴 글이다. 그냥 여기에 요렇게 한 자 남길란다.굳이 리뷰가 아니더라도 차력사들 괜찮겠제^^^

 

퇴근할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문을 닫고 일어서서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기가  머뭇거려진다. 창밖엔 비가 많이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이면 더욱더 무덤을 안고 있는 둘리가 떠오른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편안한 세상을 맞이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어느 단편집에서의 손가락 무덤이 생각났었다. 어떤 말로 나열하기 보다는 손가락 무덤이라는 제목 자체에서 난 전율을 느낀 기억이 있다.

책을 손에 놓은 지가 몇주가 지나고 있다. 지금쯤은 나의 어릴적 꿈과 희망의 둘리가 되살아 날만도 하건만 아직도 슬픈 둘리가 뇌리속에 박혀 있어 그 책의 파고듬의 강도가 깊었는가 싶다. 한 번 읽고 아직까지 나의 손에 돌아오지 않은 책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욽어 보고 싶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캄캄한 밤이면 더욱더 그렇다.

둘리를 읽고 난 뒤 침울한 나에게 누군가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해 달라!!! 죽고 싶다고 연발하는 자에게 벼랑의 끝에선 자에게  뒤에서 살짜기 밀어버리기 보단 꼭 붙잡아 주는 이를 만나고 싶다. 우리의 머리속은 참으로 희안하여 자꾸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면 들수록 늪인것을 이 둘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현실이 고달프고 험난해도 이 책속의 상황으로 될 지언정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자... 쓰레기를 뒤져서 개미떼가 새까맣게 달려든 사과 한 조각을 집으면서 입으로 꽉 베어먹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잊지 말자.  인간인것을 알면서도 가면을 쓰서 인간인것을 망각하고 벗어 던져서 비로소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인간은 되지 말자. 그때는 벗지 못한 자에게 먹히는 상황이 될지라도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은 되지 말자.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쓸 만은 참으로 많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쓸려고 달려드니 이 책이 비로소 그립다....... 일요일 돌아오면 그 때 내 다시 한 번 읽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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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우리의 친구 둘리가…

환상성을 현실에 끌어들이는 기법을 오롯이 글로 쓴다면 극단의 결과가 나온다. 성공하면 백년을 고독하게 보낼 필요가 없는데,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감히 현실 소재를 뛰어넘는 것을 끌어들여와 글쓰기를 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런 점(환상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의 즉물성이 확실한 만화는, 매력 만땅(왠지 만땅이라는 어휘를 쓰고 싶다)의 예술이다. 이 만화집에 실린 모든 단편이 고르게 재밌고 울림이 있다. 현실과 환상의 병치를 작가는 아주 능숙하게 구사한다. 너무 능숙해서, 갈고 닦은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의 처녀작이 작품집의 맨 뒤에 자리한다. 아닌 게 아니라 터치가 투박한 것이 아마추어 냄새를 팍팍 풍긴다. 나는 그 냄새나는(?) 처녀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재해석, 해체, 그리고 감추며 드러내기! 감추며 드러내기는 미메시스+낯설게하기이다. 훌륭한 기본기와 플롯은 작가의 덕목일진저. 그 덕목을 갖춘 작가가, 그것도 신인이, 패기 넘치게, 기존의 꽉 막힌 체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진선미를 보았나. 이렇듯 우리가 알지만 낯선 소재… 가 작품집 전체를 관통한다.

리바이어던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용가리가 되겠고 일어 중역하면 고질라쯤 되겠다. 그것은 대체로 생명체로 상징되어 왔다. 권력자들은 대부분 인간들이니. 이 작가는 그 괴물을 기계로 환치시켰다. 맹목적인 선함의 강요는 단선적인 이데올로기가 된다. 선이 선으로서 기능하는 건 악이라는 관념과의 비교 때문이다. 그래서 선/악은 절대적일 수 없다. 절대적일 수 없는 게 절대적(모두가 착하게 살았답니다)이 된다는 것은 곧, 다른 관념을 억압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일 게다. 이 작품의 리바이어던이 눈달린 컴퓨터라는 것은, 정보(눈)와 이성(컴퓨터)을 통제한다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 따르면, 옛날의 대중은 나쁜 놈이 누군지를 인식했다. 처리할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권력자들은 직접적 억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은 누구를 향해 돌을 던져야 할지를 모른다. 문화 산업이란 것으로 대중들의 생활 양태를 조작한다. 그러니까, 무비판적인 대중의 양산, 그것이 현대의 권력자들이 문화 산업을 키운 주목적이다(문화 산업의 최강대국이 단연 미국이고, 그것을 무지막지하게 수출하는 까닭이 이거다). 어쩌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런 점(얘기를 길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점)에서 리바이어던은 잘 다듬어서 서사화 해도 괜찮을 듯한 우화이다.   

선택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다. 근래에 읽은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남자고교, 군대, (남성들만 득시글대는) 노가다판을 거친 청년(마초의 탄생!). 청년도 나름대로 애저린 서사를 지니고 있을 게다. 가난한 고학생이며 불안한 가정에서 자랐다든지… 헌데 작가는 그런 너저분한 사연을 생략한다. 환경이 좆이건 지랄이건, 사람은 살면서 수차례의 탈태(?) 기회를 부딪친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물질적인 게 아닌 정신적인) 것이 비루하다고 느끼면서도 자기가 가진 것을 고집하는 인간이 대다수다.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서, 청년은 친구를 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곤충학자의 시선을 느꼈다. 아무쪼록 그런 관찰력과 과감함을 더욱 업그래이드 하시길.

앞에 실린 세 작품은, 재미로 치면 월등했지만, 마무리와 구성이 엉성하게 느껴졌다. 보고 난 후 이런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사건을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독자를 잡고 이끌어가는 능력도 있다. 헌데 왜 그런 식으로 끝내지? 엮은 매듭을 감당 못하는 듯했다.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로 보내버리거나, 죽여버리거나, 변신시키거나, 회개하는 것 ㅡ 가장 불필요한 마무리 서사다. 나는 사실 둘리의 마지막 장면을 봐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젊은 만화가 중에, 이런 방면에 공력을 쏟는 작가가 있다는 건 기대되는 일이다. 기대는 곧 미래. 미래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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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파리 > 비가 내리면 무지개가 뜬다!

 

  최석규의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6개의 이야기와 3개의 쪽만화로 이루어져 있는 만.화.책.이다. 그러나 10분만에 뚝딱 훑어 보고서 "다 읽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만.화.책이 아니었다. 나는 한 장 한 장 힘겹게 책장을 넘겼고, 세 번째 이야기인 <공룡둘리>를 읽고선 책장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마주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책을 덮은 후 의자 위에 둔 것을 남동생이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교과서가 우일하게 보는 책인 놈이, 만화책도 겨우 바둑만화나 쪼금 봤던 놈이 꽤 오랜시간 앉아서 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동생은 "웃기네!"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학교로 갔다.

  일주일간 애써 외면했던 나는 그 말에 의아심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책장을 들췄다. 내가 처음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은 '죽음지향성'이었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 파생되는 업'이었다. 그 업의 무게에 눌리운 나는 이 책이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 현실을 외면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었다. 그러므로 남동생의 "웃기네!"라는 감상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뭐가 웃기단 말인가?

  다시 찬찬히 이 책을 읽었다. 이 번에는 다행히도 마지막 장까지 읽어 나갈 수 있었다. 6개의 이야기와 3개의 쪽만화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책의 곳곳에서 '죽음지향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웃겼다. 웃기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가정이었다. 그것도 실현성이 매우 낮은 가정이었다. 마법을 부리는 초능력 공룡 둘리가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을 짤리는 일을 하러 갈리 있겠는가? 24년이 지난 지금도 둘리는 여전히 초능력으로 아이들을 꿈꾸게 하고 있다.

  --- 라고 나는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규석이 들려주는 하나 하나의 가정들을, 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어린 시절, '나'에게 꿈과 환상을 품게했던 <아기 공룡 둘리>까지 동원하여, 세상이 보여주는 위선에 속지말라고 이야기 한다. 이제 그만 가면을 벗어 던지라고 이야기한다. 제사를 지내 새로운 태양이 매일 뜨는 것이 아니라, 오늘 떠 있는 태양은 어제 떴던 태양이며, 내일 뜰 태양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가 뜬다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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