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아영엄마 > 어찌 그다지도 남루하고 박복한 삶들인지...
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문학전집 1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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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기찻집'으로도 불리는 장석조네 집에는 과연 몇 가구나, 그리고 몇 사람이나 살고 있는 것일까? 책을 다 읽었으나 솔직히 이를 명확히 짚어내지를 못하겠다. 오영감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내 성금네, 끝방에 사는 양은 장수 최씨와 아내인 나주댁, 겐짱이라 불리는 박씨와 부인, 그리고 화가의 꿈을 지닌 박씨의 동생, 폐병쟁이 진씨와 그의 딸 등등 내가 꼽아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 집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거대한 덩치를 밑천으로 삼아 살다 간 육손이 형 광수와 똥지게꾼인 그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어지간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터라 솔직히 누가 누구지 조금 헛갈려서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본 적도 있다. ^^;-뒤에 실린 해설을 읽으면 그 점이 어느 정도 정리되긴 한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장석조네에서는 화장실도 번호표를 받아 줄을 써야 사용할 수 있는, 아침 댓바람부터 생존(?)을 위해 치열한 눈싸움, 몸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냄비 하나, 밀가루 한 포, 돈 몇 푼을 얻기 위해 부대끼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들의 보잘 것 없는 삶을 눈앞에 그려 보니 지금의 나의 삶은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가 싶어진다. 앞서 언급한 여러 인물들이 표출하는 삶의 이야기들에 안쓰러워하고, 답답해하고, 속상해 하고, 우울해 했다. 어찌 그다지도 남루하고 박복한 삶들인지... 책의 제목이자 이 글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석조네'는 저자가 어린 시절 실제로 살았던 곳이라고 하던데 내가 살고 있는, 이 책 제목을 따라 하자면, 정원빌라네 사람들도 나름대로 책 한 권은 너끈히 엮을만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에 나오는 대사는 거의 대부분이 사투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지방의 사투리든 간에 그 속에는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절절히 녹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또는 지인의 글에 댓글을 달 때 사투리-얼마간은 지방색 불명(?)의..^^;-를 종종 사용하는 편인데 그 속에는 상대에게 지닌 애정과 친근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과 나의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그나저나 책표지에 붙어 있는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분홍 딱지에 눈이 가 쳐다보고 있으려니 과연 청소년들이 이 책에 나오는 사투리 중 몇 할이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 김소진, 책에 실린 사진 속의, 94년의 그의 모습에서 풍기는 도시인의 차분한 이미지는 <장석조네 사람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질펀한 사투리들과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소진 전집>을 펴내며.. 라는 첫머리 글의 말미에 적힌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이는 단 한사람이지만 그를 이곳으로 불러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글에는 요절한 작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김소진이라는 작가와 조우하였으며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건만 앞으로 내가 접할 수 있는 그의 흔적(작품)의 목록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못내 서운하다. 유재하의 노래가 내내 그리움처럼 남아 있는 것처럼 김소진, 그의 작품 또한 하나의 그리움으로 내 마음 속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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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0-20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르기도 하셔라.. 어찌 알고 이렇게 퍼오셨대요. 일년이나 늦었지만 그래도 한 개 썼으니 차력당에서 쫓겨나지는 않겠죠? ^^;;(리뷰가 허접해도 봐주셔용~)
 
 전출처 : 진/우맘 > 사랑에는 패자만 있다
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품절


그때 인수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제발 감정이 단선적인 것이기를, 사랑이든 미움이든 한 가지 감정만 느낄 수 있기를.....-56쪽

편안하고, 아득하고, 그리고 하염없었다. -90쪽

인수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시간이 서울과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시간이 휘몰아치는 폭풍이나 격랑 같은 것이라면 지방 소도시의 시간은 미풍처럼 느리고 부드러웠다. 서울에서는 늘 시간에 쫓겨다닌 것 같았는데 여기서는 시간을 데리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친구처럼 곁에 머물며 잠을 깨워주고, 쉬어야 할 때임을 알려주었다. 나무 그림자가 이동하는 광경처럼, 꽃망울이 벙그는 모습처럼 시간의 구체적인 실체가 눈앞에 보이는 때도 있었다. -132쪽

사랑에는 패자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감정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면 첫번째 사랑은 두번째 사랑에 대한 패배자일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사랑은 영원히 그 첫번째라는 자리를 쟁취할 수 없고, 늘 첫번째 사랑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또한 패배자였다. -138쪽

"몸에서 음악 소리가 나고, 소리에서 색깔이 나오고, 그 색에서 다시 향기가 퍼져요. 봐요, 당신 살 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
인수는 서영의 팔을 들어 코 가까이 대주었다. 특별한 냄새를 맡지는 못했지만, 인수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서영은 그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140쪽

이별이나 단절 같은 것이 눈빛으로, 침묵으로 전달될 때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수는 처음 알았다. 이제 만나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그저 이별의 칼날이 깊숙이 찌른 상처 하나만 잘 다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차가운 눈빛으로, 냉담한 무언(無言)으로 통보받는 이별은 한층 복잡했다. 그 속에는 단절의 고통뿐 아니라, 끊임없는 미련, 신호를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 아직도 여지가 남아 있을 듯한 희망....들이 뒤섞여 있었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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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우맘 > 외출

 2005.10.12. - 올해의 57번째 책

★★★★

김형경의 책은 항상, 쉽게 읽고 오래 앓는다...

맞아, 사랑에 있어서는 모두가 패자.

우울하지 않은 결말임에도, 작가가 던진 너무도 직설적인 화두와 명제 때문에, 어제 오늘 계속...계속...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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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실습을 할 때였다. 병원의 다른 과들과 비교를 한다면 응급의학과만큼 삶과 죽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과도 없을 것이다. 그 장인 응급실은 그야말로 존재하는 지옥과도 같고, 천국과도 같다. 희비가 하루에도 여러 번 교차하는 장소이다. 통곡소리와 놀란 가슴을 한 사람들의 허망한 발걸음들, 저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놀란 눈을 한 사람들의 모습, 평소의 자기의 모습을 잃은 몸들, 흥건한 피로 젖은 몸들, 떡진 머리와 부족한 잠과 피로에 지쳤지만, 눈들만은 칼날 같은 의료진들의 모습, 그 모든 삶과 죽음에 무뎌진 의료진들의 입을 맴도는 농담들, 그 가운데 상태가 좋아지거나 가벼운 진단으로 웃음도 곳곳에 보이는 곳이 내가 본 응급실의 풍경이다. 매력적 이였다. 어느날 오랜만에 찾아 온 여유로운 응급실에 앰블런스가 요란하게 등장하고, 두 남녀가 실려 들어 왔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의식은 명료하게 있었다. 교통사고였고, 심각한 부상을 입지도 않아 보였다. 기본적인 검사들이 들어가고, 엑스레이 결과 여자의 늑골이 부러지면서 간을 찌르고 있었다. 신속하게 치료계획이 세워지고, 환자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이 환자들,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괜찮다고, 집에 연락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뭐 이런 말들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냥 돌려 보낼 상황이 아님을 다시 설명하고, 신속하게 치료를 해야 하는 문제임을 설명하는 의료진에게 두 남녀는 조용하게 자신들의 관계와 가족들에게 알려지면 안되는 상황임을 설명했고, 결국 교통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로 인해 다친걸로 하겠다고, 집 가까운 병원으로 지금 바로 가서 치료 하겠다며 유유히 응급실을 나갔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짐작 가능한, 그들은 소위말하는 불륜이였다. 절차상 필요한 기본적인 자료들에서 나오는 상황들을 가족들에게 알릴 수는 없는, 그래도 그들은 보기 좋았다. 푸핫^^ 뭐가 보기 좋았냐고? 누가봐도 친밀한 부부로 보였으니까. 그만큼 그들은 서로가 필요 했을테니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오래전 그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다행히 부상이 심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유희를, 일상에서의 외출을 더 즐겼을 것이고, 그래서 더 풍요로워졌는지, 더 행복한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도 그들의 가벼운 사고는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책 속 두 남녀는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 그들의 입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고, 사고가 난 차에 남겨진 소지품들로, 핸드폰의 문자들로, 디카의 동영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남은 배우자들에게 말하는 상황이니 사고를 당한 그들의 입장은 말 할 것도 없고, 남겨진 그들의 배우자들에게도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이다. 믿어의심치 않던 사랑하는 배우자들의 교통 사고, 그 사고가 출장도 뭐도 아니라는 것, 핸드폰에 남겨진 두 사람의 다정한 문자메세지들, 동영상에 담긴 사랑스런 배우자들의 몸과 웃음만이 말을 해 주는 상황에 놓인 남겨진 또 다른 두 남녀의 가슴속에 치미는 사랑의 배신, 믿음의 저버림, 상처받은 가슴, 분노가 글로 절절하게 풀어진다.

남편이 저렇게 여자를 향해 다정하게 웃을 수도 있고, 말을 할 수도, 사랑스럽게 여자를 탐할 수도 있는 남자였다는 것을 알아버린 남겨진 여자, 서영. 늘 자신에게는 점잖고, 조용하고, 은은한, 자신이 보던, 사랑하던 남편의 모습이 저 동영상과 문자 메세지와 비교했을땐 갑자기 너무 차갑게 느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혼란과 걱정과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을 거침없이 느껴야 하는 여자.

노란색을 연상시키면서, 늘 밝고, 자신감 넘치며, 사랑스럽게 안겨오던 자기만의 한 마리 새같던 와이프가 저렇게 다른 남자의 품에서도 저렇게 밝게 웃고, 그리워 한다고 행복감이 밀리듯 말하고, 품으로 파고든다는 것을, 자기만 느낄 수 있던 것들이 아니였음을  느껴야 하는 남자, 인수.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 말없이 누워있는 남녀와 남겨졌으나 역시 만신창이가 된, 모든 것이 산산히 조각나버린 또 다른 남녀. 현실을 벗고, 외출을 떠나듯 떠난 두 남녀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지만, 자의라기 보다는 환경에서 버티고, 견디기 위해서 옮기던 발걸음이 어느새 자신들도 현실에서의 외출이 되어 버림을 알아 버리는 남은 두 남녀. 그들안에서 세워지고, 무너지고, 다시 피어나고, 다시 뭉개지는 감정과 사랑의 절절함이 이 책의 전부다.

쓰.....사랑. 그거 참 어렵고, 참 귀찮고, 참 어이없고, 참 헛헛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난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해서라고 생각한다. 쓸모 있는 용도로서가 아니고, 나에겐 너라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다른 누구도 아닌 '너' 라는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정주고, 대충 맞춰준다고 서로간의 사랑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탄탄한 현실은 이뤄질 것이다. 탄탄한 관계는 아마도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탄탄하다고 믿던 관계라는 것이, 그 정성들여 이뤘다는 것이, 이렇게 속절없는 사랑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 아마 그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지배적이고, 헛헛하지만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음.... 한 물체가 있다. 그 물체를 비추는 빛이 있다. 그 빛이 그 물체를 드러내준다. 그 물체의 면적과 부피, 두께, 무게, 사이즈를 그 빛이 얼마나 잘 비춰주는지는 어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표면은 늘 표면에 머물다 말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의 빛으로도 역광을 받으면 그 물체는 한 없이 우울하게 보일 것이고, 여러개의 빛으로도 그 물체를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 물체가 있고, 그 물체를 비추려는 빛이 있다는 것만을, 그 행위에만, 그 자세에만, 그런 것들에만 의미를 두고 살기엔 공허하고, 외롭다.  그러던 물체 하나가 빛을 만난다. 그 빛이야말로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그 빛으로 따뜻하고, 빛으로 헛헛한 곳이 채워지고, 빛으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빛으로 나 이상이 되는, 빛으로 충만한 기분이 든다면, 그 빛이 요란하지도, 벅찰만큼 많은 양이 아닐지라도, 적당한 빛 하나에 뭔가가 다행스럽고, 충분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어쩜 사랑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필요' 란 말은 여기에 있다. 저런 필요성. 저걸 느낀다면 저건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몸의 유희나 시간의, 감정의 낭비에 가까운 일들에 붙이는 사랑을 나는 사랑이라 명명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서 닿고, 스치고, 무엇으로도 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끝없이 그리운 것이, 같이 있어도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안고 있어도 안고 싶어 안달을 하는 그런 가슴이, 팍팍한 가슴에 생겨나는 것, 몇 시간을 너를 향해 달려 가서 고작 몇 분을 보고 돌아올 지언정 그렇게 가야한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  그래서 그 가슴으로 현실에서 외출하듯 떠나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 모든 가슴은 추억이 되거나 영원한 기억이 되거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될지언정 그 모든 일에 흐르는 그대로 둘 수 있는 것. 그것.

이 책을 읽으면서 김형경의 문장들을 접하면서 난 그 가슴이 작가의 가슴에도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그 모습이, 구질거린다기 보다는 어딘가 묘하게 풍기는 사람이 있다. 나이 지극하지만, 눈빛이 서글픈 사람을 보면, 가슴에 구멍을 안고 사는 사람같은 사람을 만나고, 느끼게 되면 말하지 않아도, 섞는 말 몇 마디에도 그 서글픔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다른 말들에 섞여 나오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그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사랑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젖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그런 사랑은 필요하다. 그것으로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는지, 더 허망해 지는지를 아직 나는 알지 못한다.

외출.....영화는 보지 않기로 한다. 책으로 충분한 기분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던 작가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그 노력 이상을 했다고 보여진다. 영화와 거의 동시에 나온 이 책은 아마도 영화에 가려지거나 영화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접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상업적인 전략이라는 시각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때론, 스크린의 장면보다 글이 더 많은 것을 던지기도 하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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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영화와 소설이 만났을때, 감독 허진호-작가 김형경



[한겨레] 불륜이란 생각 지워…동기 순수하다면… <외출>의 김형경(44) 작가가 만났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두 작품은 제목뿐 아니라 인물도 공간도 상황도 공유한다. 그러나 같은 인물, 같은 설정이라도 두 작가에 의해 각각 만들어진 인물과 이야기는 다른 질감을 지닌다. 허 감독의 <외출>에서 상처받고 금지되는 사랑을 바라보는 두 개의 상반된 시선이 충돌한다면 김 작가의 <외출>에는 이제 막 시작되는 사랑의 풋풋한 생명력이 감지된다. 9일 비 오는 오후, 지난 겨울 삼척 촬영현장에서 인사를 나눈 이후 두번째 만난 두 사람은 영화 <외출>과 소설 <외출>, 그리고 영화와 소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형경(이하 김)=영화계에서 <외출>의 소설 작업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 지 궁금해요. 문단에서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전례가 없던 일이니까. 허진호(이하 허)=소설 <외출>을 읽으니까 소설과 영화는 전혀 다른 매체라는 게 뚜렷이 보였어요. 소설적인 표현방법을 영화에 차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내 영화에는 불친절한 부분들, 즉 생략된 디테일들이 소설에는 치밀하게 묘사돼 있잖아요. 예를 들어 영화에서도 부분적으로 소설처럼 나레이션이 나오거나 자막이 들어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 거죠.

b>김=나도 비슷한 걸 알게 됐어요. 영화에서 인수의 아내가 깨어났을 때 서영이 밖에서 작은 사각의 창문으로 병실 안 인수의 뒷모습을 보는 장면이 등장하잖아요. 영화는 이 한 장면으로 서영이 느끼는 단절감를 선명하게 드러내주죠. 이처럼 영화가 하나의 장면으로 심장 깊은 곳에 꽂는 이미지의 충격은 언어 백 마디로도 따라갈 수 없는데, 반면 언어의 심리라고 할까, 등장인물들의 미세한 심리적 변화들은 영상으로 전부 표현되기 힘들죠.

=글이 가지는 어떤 깊이랄까, 영화가 시간상의 제약같은 이유로 설명해주지 못하거나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부분에서 소설과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 덕분에 영화의 표현방식에 대한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영화 잘 봤습니다(웃음). 허 감독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전작들을 포함해 왜 모든 영화에 엄마가 없는가예요. 또 어머니가 없는 대신 남자주인공이 부엌에 서 있는 장면이 늘 나오는데요(<외출>에서는 편집에서 삭제됐음-편집자), 우리나라의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지 않는 장면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여느 남자 주인공 영화에서 여자는 피사체같은 존재인데 비해 허 감독은 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b>허=어머니가 등장하지 않는 건 우연인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는 정말 좋으신 분이고(웃음), 어떻게 보면 <봄날은 간다> 이야기가 어머니에서 시작됐거든요. 어머니가 노래방에 가면 그 노래만 부르는 데 환갑잔치 때 부르시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동네 아주머니들하고 고스톱 치는 것도 좋아하시고(웃음). <봄날은 간다>를 촬영할 때, 이영애씨가 감독님이 은수였군요, 상우 입장인 줄 알았더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요. =확실히 가부장제가 주입하는 남성상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요. 감독님 페미니스트인가요? b>허=여자를 좋아하는데(웃음), 페미니스트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인물들에게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반면 영화에서는 두 가지 시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따뜻하게, 예쁘게 보이려는 것과 추하게 보이려는 시선.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서 나는 것같아요.

이를테면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가기까지 손을 잡거나 뽀뽀하는 과정을 다 찍었는데 편집에서 뺐어요. 보는 이들의 이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기 싫었거든요.

b>김=불륜이라는 자의식이 있었던 건가요?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두 가지 시선에 대한 것이었어요. 정말 아름다운데 왜 추할까 하는. 이를테면 둘이 자러 들어갈 때는 추한데 같이 잘 때는 너무 예쁘잖아요. 디카에서 목격한 배우자의 불륜장면은 비린내가 났지만 그들도 잘 때는 이렇지 않았을까. 이런 대비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이 만나지만 차마 모습을 안보였던 것도 두 가지 생각이 부닥쳐서였어요. 다시 만나서 기쁘지만 둘은 기억 때문에 행복할 것같지 않았거든요. =나는 불륜이라는 생각을 아예 지우고 썼어요. 또 하나의 사랑이라는 시선에서. 불륜은 제도가 만들어 놓은 거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에 들어가서 동기만 순수하게 보면 된다, 제도나 조건은 중요치 않다, 다만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랑을 한다는 그런 느낌으로 썼어요. 중간중간에 ‘그들(서로의 배우자들)도 그랬을까’라는 생각 정도만 했던 거죠.

‘추하지만 예쁜것’ 그 간격 얘기하고 싶어 =그런 따뜻함이 나도 참 좋은데 왜 이렇게 차가워졌는지는 모르겠어요. 특히 경호가 죽기 직전에 연락을 받는 화면처리는 감독이 마치 단죄하듯 만든 의도성이 보이거든요.

그 공간에서 고스톱 치는 것이 자연스럽긴 하지만 그 장면에서 재미만이 아니라 냉정하게, 잔인하게 보고 싶었던 부분이 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가 사춘기적인 사랑이라면 <봄날은 간다>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20대의 사랑이었고, <외출>은 30대 초반의 기혼이라는 설정이 조금 더 진도 나간 걸로 볼 수도 있을 것같아요. 허 감독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전보다 더 많이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얼마 전에 일본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리메이크작을 보내왔어요. 에피소드나 이야기 흐름이 원작과 거의 비슷한데 지금 보니 착한 영화더라고요. 그 작품을 할 때도 나이가 꽤 있었는데 당시의 시선과 지금 시선의 격차가 굉장히 커서 내 영화를 보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지금에 비하면 그때의 시선이 지닌 온도가 훨씬 높았다고 할까요. 이 영화를 보면서 ‘만약 거꾸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선이 차가워지면 깊이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행복한 일은 아닌 것같아요.

b>김=나는 반대인 것같아요. 오히려 옛날에는 냉소적으로 사람을 봤는데 나이 들면서 편해지고 웬만한 건 이해가 됐죠. 이번 소설에서도 난 두 사람이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런 닫힌 공간에서 배우자에게 그런 일 당하고 나면 얼마든지 사랑을 할 수 있겠다는 이해가 있었어요. 허 감독도 조금 더 살아보시면 바뀔 겁니다.(웃음) 반면 소설로 풀어가는데 가장 큰 도전이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게 가능할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상처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하는 질문이였죠.

=복수심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난 두 사람이 사랑해서 잤다는 생각을 안했어요. 두 사람이 호텔에 가기 전까지의 과정 찍은 걸 다 들어냈던 데는 그런 의도가 있었어요. 횟집에서 둘이 술 마시다가 인수가 복수할 거야 그러잖아요. 둘에게 그런 마음이 분명히 있었을 것같아요.

사실 둘이 자는 시점도 더 앞으로 당기고 싶었는데 놓쳤어요. 반면 둘이 사랑을 느끼는 감정묘사는 전작들에서 해봤던 게 있어선지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죠.

b>김=옛날에 했던 얘기니까 여기서는 생략하고, 그냥 자자? (웃음) b>허=편집기사가 그러더라구요. 아니 도대체 유부남 유부녀가 왜 이렇게 빨리 안 자는거야?(웃음) =영화에서는 많이 생략된 두 사람의 감정-사랑이 시작될 때의-을 소설에서는 자세히 쓴 것처럼 이번 작업은 일종의 빈칸 채우기같은 즐거움이 있었죠. 시나리오나 영화는 불친절한데 그 빈 곳들을 채우는 적합한 이야기가 떠오를 때 느끼는 희열이 있었어요. =소설에서 서영이 ‘냉장고에 물 있습니다’라고 메모를 써놓은 부분을 보면서 아쉬워서 무릎을 쳤어요. 만약 영화를 만들기 전에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에서 그 부분을 분명히 표현했을 것같아요. 나는 왜 그런 것들을 생각 못하고 어떻게 하면 둘이 빨리 자게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만 고민했을까?(웃음) =다음 작품은 구상하셨나요? 어떤 사랑의 이야기가 될지.

=아직 정확하게 결정은 안했는데, 좀 더 온도를 낮추든지 아니면 높이든지 해야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게 무슨 얘기지?(웃음) 어쨌든 이번에는 좀 빨리 만들고 싶어요. 사실 만드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 안걸리는 데 어떤 이야기할까 결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새 작품은 얼마나 많이 쓰고 계세요? =저는 꾸준히 써요.

한동안 공백도 있었지만 최근 몇 년은 일년에 한편씩 꼭 썼어요. <외출> 의뢰받을 때도 다른 작품에 들어가 있던 상태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죠? 영화가 생활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잘 안돼요. 직장생활 같지야 않겠지만 몇 시간 찍고 가정으로 돌아가고 그런 분리가 안돼요. 만드는 것 자체도 힘들고. 행복해지는데 불편한 점이 있어요.

=저 어마어마한 단어(행복)를 일상적으로 쓰시다니(웃음). 우린 꿈도 안 꾸는데.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죠. 일상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 =영화 스태프들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영화 촬영 기간이 고되니까 끝나면 행복해지겠지 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차라리 찍을 때가 낫다.

=소설 쓸 때는 다음 생에 태어나면 이 골 빠지는 짓 안 해야지 하다가도, 끝나고 나면 마음 바뀌는 것과 비슷하네요.

정리/김은형, 전정윤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b>시나리오가 어떻게 소설로 ‘외출’ 했나 음악감독 “이 영화를 소설로…”
문지사 통해 작가 김형경씨 섭외…
김씨 ‘영화와 다른’ 소설버전 집필
영화의 마케팅 상품이 아닌 ‘본격소설’ <외출>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영화 <외출>의 음악을 만든 조성우 음악감독. 허진호 감독과 대학동기이면서 친한 친구인 조 감독은 <외출>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감독에게 전했다. 감독이 흔쾌히 동의하자 조 감독은 친구인 문학과지성사김수영 주간과 상의를 했다. 두 사람은 이 작업이 논쟁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작품만 좋다면 아무도 시비붙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작가 섭외를 했다.

“새로운 형식실험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시나리오에 대한 호감으로 이 작업을 수락했다”고 작가 김형경씨는 말했다. 2월 말 시나리오를 받은 김씨는 7월 말 소설을 완성할 때까지 촬영현장인 삼척에 한번 갔던 것 말고는 일부러 감독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의견을 들으면 내 상상력에 제한을 받을 것같아서”였다고. 대신 김씨는 편집되지 않은 촬영분 필름을 네 차례에 걸쳐서 검토했고 그래서 소설에는 인수가 시장을 봐오는 장면 등 영화에서 잘려나간 부분이 일부 복원돼 있기도 하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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