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 > 역사와 기억은 다른가
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섭다. 무서워서 잠이 안 왔고,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도 없었고, 무서워서 불을 끌 수도 없었다.
무서워서 침묵이 싫었고, 무서워서 TV를 틀었다.
무사히 아침을 맞았을 때의 안도감이라니.
난 다행히 어둠 속의 푸른 손을 보지도, '시간이 없어'라는 환청을 듣지도 않았다.
아, 안도의 한숨.

소설의 결말대로라면 사실 내가 겁먹을 이유는 없다.
푸른 손들을 떠나보내는 씻김굿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하지만 씻김굿이 곧 화해와 용서의 대단원이요, 끝일까.
작가는 끝까지 기억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래. 결코 지난 날들을 잊어서는 안 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기억해. 기억해야만 해. 하지만 친구야. 그 기억 때문에 네 영혼을 피 흘리게 하지는 마."

작가는 역사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그가 남긴 구절을 보면 결국 역사를 잊지 말라는 호소가 배어나온다.
기억은 희미해질 수도 있고, 덧칠이 될 수도 있지만,
역사야말로 시효나 유통기한이 없기 때문.
하기에 4.3항쟁이나 보도연맹사건이나 5.18을 기억하는 사람만 백년여관의 독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역사를 알거나 모르는 사람이 백년여관의 독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뒤숭숭했던 밤을 보내고 아침 햇살 속에 씻김굿 대목을 다시 보니 뒤늦게 서운함이 밀려온다.
나로선 푸른 빛으로만 남은 존재라 하더라도 보고 싶은 이들이 있기에.
하기에 나의 씻김굿은 아직 이르며, 백년 여관 안에 그들이 남아있는지 정신차릴 일이다.
올해는 노수석 열사 10주기라고 참으로 부지런히 문자가 날라오고, 이메일이 날라오고 있는데,
수고한다고, 내가 혹시 도울 일은 없냐고 전화 한 통이라도 넣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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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젊은 레이서들 어디로 갔을까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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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표지에 은박으로 제목을 크게 써 넣은 독특한 표지의 책은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살까말까 여러 번 망설이다가 구입한 책이다. 수록한 글들은 대부분 다른 책에서 만났던 것들이다. <궁핍한 날의 벗>, <뜬세상의 아름다움>, <옛 공부의 즐거움>, <열하일기>, <연암집>에서는 17,18세기의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을 여러 번 중복으로 만날 수 있다. 중복으로 만난 이들의 글 모음집을 또 다시 구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날을 기렸다. 하지만 좋은 것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하물며 그것이 옛 공부를 위한 구실이라면 말해 무엇 하랴.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이 책은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꽃에 미치고 장황에 미치고 돌에 미치고 담배와 책과 그림에 미친 사람들. 별과 물고기와 술과 음악과 앵무새와 비둘기에까지 미쳐서 살다 간 사람들. 세상일의 얻고 잃음에 마음을 두지 않은 사람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일에 미친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미치는 것의 정체성을 모른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근원을 알 수 없다. 좋아하면 눈에 잘 보이고 그 때 보는 것은 이전과 다르다는 것. 거기까지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미치는 것의 충분조건으로 부족하다. 미치는 것은 그 이상의 상한선을 치고 뚫는 뜨거움이다. 좋아하는 극점을 뚫고 나가는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열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치는 것의 다른 말이자 비교적 점잖은 표현이다. 그런데 미치는 것에도 점잖은 것이 있을까 싶다. 사전적 의미로 ‘미치다’는 자동사로써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다.


잠시 딴 이야기 몇 줄만 쓰자. 처음으로 옛 사람들의 이야기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연암클럽의 화려한 멤버들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겠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홍대용, 정철조, 백동수. 이 중에서 박제가와 이덕무, 유득공은 서얼출신이다. 서얼출신의 사람들과 사심 없이 어울리는 연암에게 매료되어서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은 무조건 멋있다는 관념을 신봉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이 주는 포스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연암클럽의 수장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고 나자 연암의 시대 전체가 통틀어 나를 미치도록 잡아 이끌었다. 광기의 시대. 새 것과 낡은 것의 혼용, 충돌과 대립이 실험영화처럼 신선했다. ‘감각적인 고전’이 조선에도 존재함을 알았고 조선의 18세기는 여느 시대와 분명 차별성을 두고 있다. 이들의 미친 이야기는 조선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다.


미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개 불우한 삶을 살다 간다. 헤피엔딩이라는 행복한 결말로 그들은 역사의 전면에 성공인물로 칭호를 받지 못한다. 음지에서 살다가 음지로 묻혀진 이름들. 그들은 죄인과 역적, 서얼과 천대받는 계층의 이름으로 살다간다. 위대한 패배자란 어떤 부류를 일컫는지 모르겠다. 다만, 후대에 그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지고 싶은 이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너무 늦은 것이 흠이지만 세상은 언젠가는 ‘알아 줄’ 날이 오기 마련이다. 돌고 도는 게 세상의 이야기다. 저자도 어둠 속에 묻힌 그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싶었단다. 죽어서나마 빛을 만나는 호사를 누리게 될 줄이야!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 1억만 번(실제로는 11만 3천 번)을 읽기도 한 성실한 둔재 김득신의 이야기는 책에 미친 사람들에게 책읽기의 명제에 관하여 되씹을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밤에는 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누가 까닭을 묻자 ‘잠에서 깨어 가만히 손으로 문지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네.’라고 대답했다.”-(55쪽)

 

자신의 거처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 짓고, 제사 지내다 말고 좋은 시상이 떠올라 제상에 올린 술까지 자기가 마셔버리면서까지 글에 미쳤던 둔재 김득신의 이야기는 글을 쓰는 일보다 읽는 일, 나아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는 정도에서 최고 상한가를 보여준다. ‘책을 읽어 부귀를 구한다는 것은 모두 요행의 꾀일 뿐’이라고 말하는 가난한 서얼 이덕무의 한마디 말은 책읽기를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욕망을 채우려는 수단과 도구로 삼는 일을 경계하는 잠언이다. 현대는 잠언이 사라진 시대라고 누가 그랬던가. 잠언이 사라진 세상을 사는 일은 팍팍하고 재미가 없으며 괴팍하다 못해 어지럽다.


달밤이 좋아서 거문고를 들고 술병을 들고 한 밤중에 거리로 나가 음악회를 열만한 친구도 없고, 소낙비 오는 쾌청한 여름 날 폭포 아래 정자로 함께 놀러 갈 벗이 없는 세상. 벗들은 저마다 돈벌이에 바쁘고 책 읽고 글 쓰는 식자들은 강의하러 다니기에 바쁘다. 문인의 권력은 정치가의 권력만큼이나 세상에 가하는 횡포가 격렬하다. 그에게 있어 글이란 사회적 권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부화뇌동의 도구로 쓰이는 글로 자신의 이름을 등재하는 현대인들.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미친 삶의 이야기는 이 책의 표지글씨체처럼 공간으로의 그침이 없이 분방하다. 어느 시대건 차별이 없는 시절은 없고, 힘의 균형은 매번 평균점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역경을 무엇에 미쳐 홀릴 것인가. 이것은 자신을 가둬 놓고 있는 담벼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음의 감옥, 세상에서 이것만큼 무지하고 무서운 것도 없다.


자신을 뛰어넘고 시대를 뛰어 넘으려던 18세기의 광기로 펄펄 뛰던 젊은 레이서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부기-

책은 막힘없이 읽어 나가기에 재미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존의 여타의 책으로부터 중복된 글을 많이 만난 까닭에 감흥이 처음과 같지 않았다. 저자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해설은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만 첫 만남처럼 들뜨지 못함은 비단 책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나와 너무 늦게 만났다. 아쉽지만 별점이 이러한 이유로 감해짐에 서운하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쉽고 단아한 문체로 길잡이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릇 잘 쓰는 글이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쓰는 것이 아니던가. 머리맡의 등불처럼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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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쳐야 하는 시대에 미치게 하는 책!
    from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2007-12-21 01:40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결국 "미쳐야 미친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다." '狂'이라는 이 한 글자는 광인(狂人), 즉 미친놈을 의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 狂은 단순한 미친놈은 아니다. 단순한 미친놈이 아니면 무엇인가?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 이런 말이 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진리를 아는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사
 
 
 

(구)폭스입니다.  
새해라서 제가 닉네임을 바꿨습니다.
사실 뭐~ 제 서재 들르시는 분들도 이제 많이 줄어들어서 그 동안 찜 해두었던 이름을 바꿔서리...죄송합니다.
아 선정도서요. 나일롱 회원을 이리 또 찾아주시니 감사함을 뒤로하고^^*
'백년여관'하겠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그럼 이만 휘리릭~~~

2006-02-01
모카신(구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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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사랑한다 사랑한다 정말?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애팔래치아 종주를 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애팔래치아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여 중독된 사람이라면,
애팔래치아를 지키기 위해 나라 일에 나서줬으면 좋겠다.

만약 향후 5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4도 상승한다면 뉴잉글랜드 이남에 있는 전 애팔래치아 산맥의 숲은 사바나로 바뀌게 된다. 이미 나무들은 놀라운 속도로 죽어 가고 있다. 참나무와 밤나무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소나무도 사라지고 있으며 붉은전나무와 단풍나무 등도 그 뒤를 따를 조짐이다.

라고 늘어놓은 뒤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따라가는 대신,
애팔래치아 산맥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적는 작가가 난 못마땅하다.

미국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차를 몰고 가야 마주칠 수 있는 것이 돼 버렸고,
미국이기 때문에 자연은 양자택일적 제안-정복의 대상이냐, 신성시되는 곳이냐-이 돼 버렸고,
미국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 들어가면 언제나 사람들에게 피살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도전했던 것만으로 만족하는 건가.

재미난 책이라 별점을 3개 주었지만,
마지막 남은 위대한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감동적인 호소라는 추천기에는 동의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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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나를 부르는 숲

⊙제 86권

 1.2005년 12월

 2.도서관

 3.앗! 한 권 빼먹었다.
    지난달에 이책도 읽었다.
    차력독토 12월 선정도서였는데.......ㅡ.ㅡ;;

 처음 이책을 이주의 리뷰란에서 책 표지만 보고서 나는 이책이 숲의 생태학에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리뷰를 읽어볼까? 생각하다 나중에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읽어야지~~ 라는 생각에 잠깐 뒤로 젖혀두고 계속 그상태로 지나왔으니 내기억속엔 여전히 이책은 숲의 생태학이라는 책의 선입견에 사로잡혔다.
 헌데....선정도서로 진열된 것을 보고 의아하여 얼른 도서관에 가서 검색해보니 이책이 있었다. 그래서 부랴 부랴 들고와서 얼른 읽어보니 생태학 책이 아니라 일종의 여행기록문이라고 해야하나? 여튼...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종주에 나선 일종의 수기라고 볼 수 있겠다.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져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운동하는 것자체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그래도 취미생활로 언젠가는 등산을 결정해보고 싶다라는 강한 욕구에 휩싸이는 순간들이 있다. 뭐 거창하게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절대 사양하고...낮은 산....그러니까 동네 뒷산 정도를 등산이라고 명명하여 휴일에 가족과 함께 오르내리는 상상을 여러번 해보곤 한다.
여지껏 내가 등산이라고 해본 것들이 아마도 네 다섯 번 밖에 되진 않지만 산을 오를때는 정말 짜증이 왕창 치솟지만 막상 산 정상에 올라서면 그황홀감에 빠져버리게 되고 내맘이 넓어지게 되어 모든 것을 잊고야 만다. 아마도 이런기분에 등산매니아들이 생기는 것인가보다.

 암튼....그러한 관심이 있어서인지?
이책은 더욱더 재미나게 읽혀진 듯하다.
그리고 실로 곳곳에 작가의 재치가 넘쳐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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