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노아 > 아찔한 감동
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낙에 소문이 분분했고, 공중그네도 아주 재밌게 읽었던 터라, 나는 기대가 아주 컸다.  그런데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아버지의 활약상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연금 문제로 싸우는 장면 등이 더 나올 거라고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짐작했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작품은 줄곧 재밌게 읽혔다.  아버지를 기대했지만, 어찌 됐건 작품의 주인공은 12살 소년 지로니까, 녀석에게 이야기의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작품은 사회고발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또 넓은 둘레에서 보면 엄연히 성장 소설이다.  12살 지로는 너무 피곤하다.  국가를 인정하지 않는 과격한 아버지는, 도통 일이라고는 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케첩 하나에도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란 어마어마한 명칭이 돌아온다.  제도권 교육을 신뢰하지 않아 학교를 꼭 갈 필요는 없다고 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도쿄에서 사고를 치고 남쪽 섬으로 가자고 한다.  말려줄 줄 알았던 어머니는 더 재빨리 가구를 정리하고 짐을 싼다.  속전속결!  지로의 가족은 누나를 제외하고는 바로 남쪽 섬으로 날아간다.

2권의 시작은 바로 이 시점이다. 이들 가족이 도착한 남쪽 섬은 아열대 기후의 이국적인 풍모를 지닌 곳이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이 섬은, 일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점이 많았다.  사람들은 모두 욕심 없이 살았고, 제 집처럼 제 가족처럼 돌보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베푸는 그 사람들에게 지로는 당혹함과 감격을 같이 느낀다.

그러나 사람이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것인지, 아버지는 이곳에서도 조용히 지낼 수 없다.  아니, 아버지의 탓은 아니다.  섬에 호텔을 지으려는 회사와 그것을 막으려는 섬 주민들, 그 한 가운데에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가 집을 지은 땅이 호텔을 지으려는 회사의 사유지가 되어있던 것.  이들이 섬의 집을 지키려는 한판 승부는 경찰과 기자와 주민 모두와, 심지어 유대계 캐나다인 외국인과 그의 강아지까지 합세하여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 모험이 되어버린다.

몹시 심각한 이야기인데도, 작품은 긴장감 대신 흥미진진함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갖추어야 할 긴장의 끈도 놓치는 법이 없다.  1편에서는 딱히 밑줄긋기에 쓰려던 내용이 없었는데 2편에서 몰아서 나온 것만 보아도 그렇다. ^^

가족들과 따로 놀던 누나가 섬에 돌아와 갑자기 부모님을 이해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개연성이 좀 떨어지지만, 가족들이 부모님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또 응원하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아버지를 챙피하게 여기던 지로는 어느덧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가 묘사하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볼 때마다 나는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조직 속의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그 울타리를 거부한다던지 벗어난다던지의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숙명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실 당연한 것은 없다.  그 울타리란 결국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내가 선택해서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게 돌이킬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닌 것이다.  제도권 교육에 너무 익숙한, 나란 사람의 머리 구조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아찔하기까지 했다.

애초에 국가라는 것이 왜 생겨났는 지를 생각해 보자.  처음엔 가족 단위의 생활을 했을 인간은, 부족 규모로 커졌을 것이고, 그 규모가 더 커져서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 '국가'라는 테두리가 필요해진 것은 침략에 대한 방어, 혹은 식량을 얻어내기 위한 침략을 위한 그룹이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자마 의원은 섬 사람들을 위한 호텔 건설이라고 연설을 하지만, 섬 사람들은 바라지 않는 풍요일 뿐이었다.  누나 요코도 말한다.  남쪽 섬으로 오니까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고... 언제나 문제가 되는 시작은 인간의 '욕심'이었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나라는 인간은, 그들처럼 대차게 남쪽으로 튀어!라고 외치지 못할 테지만,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아이들이 그 부모를 당당하게 여기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지지하고 싶다.  아버지가 지로에게 말했듯이, 아버지는 그렇게 살지만,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지로가 똑같이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지지하며 응원하여도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공중그네는 시종일관 유쾌했고, 인더풀은 그보다 많이 미지근했지만, 걸은 또 다른 이유로 통통 튀었지만 깊이는 많이  떨어졌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가 내보였던 모든 장점을 다 아우른 명작으로 탄생되었다.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나가기.  그러나 핵심은 놓치지 않기.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래도 그의 다른 작품들도 더 찾아봐야겠다.  정말 매력적인 작가와 작품을 만났으니,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멋진 마무리라 하겠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10-3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 선정도서인데, 마지막날까지는 읽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ㅠ.ㅠ

차력도장 2006-10-3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