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돌이 > 나를 부르는 숲에 내가 있다.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박3일정도의 등산이라도 챙겨야 할 건 많다. 먹을 것도 챙겨야 하고 여분의 옷 하나정도, 취사도구, 침구 등등... 남자들에게 텐트를 맡긴다 하더라도 짐의 무게는 장난아니다. 그래도 배낭을 꾸리고 등산로를 확인하고 갈곳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는 시간들은 즐겁다. 등산 초입-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기 전은 항상 왁자지껄하고 들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고 한 발 한발이 천근만근이고 심장은 쉴 새없이 뛰면서 얼굴이 새빨개 질 즈음 등에 맨 배낭은 천근만근으로 어깨를 짓누른다. 등산은 몇명이서 가든 결국은 혼자가는거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땅만 보고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길뿐..... 같이 가던 친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한다.

 "제기랄!!! 제기랄!!! 내가 미쳤다고 산에를 왔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힘든 산을 또 오자고 한거야? 아! 아이스크림 먹고싶다... 이 배낭만 버리면 정말 가뿐하겠다. 앞에 가는 저 놈은 무슨 기운이 남아돈다고 저렇게 빨리 가는거냐? 등등등...."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로 머리속이 하얘진다. 얼굴도 빨갛다 못해 하얘지고....

그러다 전망 좋은 곳이 나오면 모두들 한 자리에 누워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래도 기운 남아도는 놈이 농담한마디 던져주면 잠시 웃고.... 길은 아득하다.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으나 누구도 선듯 말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혼자 내려가기는 정말 겁나고 쪽팔리고.... 야영할 곳을 찾기도 전에 해가 지면 안되니까 무조건 걸어야 한다. 머릿속을 하얗게 비운채로...

그래도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란걸 산행에서만큼 절실히 느낄 수 있을까? 텐트 치고 불편하게 밥해서 맛없는 반찬도 꿀맛으로 먹으면 하룻동안의 고생이 모두 잊혀진다. 산위의 오싹한 추위도 피곤에 쩔어 잠이 들면 잊혀지고.... 다음날의 산행도 오늘도 해냈는데 뭐....

드디어 정상. 누가 정상을 정복하는거라 할까? 그냥 산은 거기 있고 사람들이 잠시 다른 길을 스쳐 지나왔던 것처럼 정상도 그냥 잠시 지나가는 길일 뿐이다. 그래도 산 정상에서 딱 1병 들고온 소주병을 꺼내 딱 한잔씩 나눠먹는 소주맛은 꿀맛이다. 남은 물에 커피믹스를 풀어 흔들어서 먹는 미지근한 냉커피도 꿀맛이고... 이 맛 한 번 보자고 산에 온것같다. 그리고 나도 참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은 여유롭다. 다리는 휘청거리지만 재잘대기도 하고, 주변에도 눈을 돌리고...

산행이란 결국 인간이 날것으로의 자신을 그대로 대면하는 시간이 아닐까? 지리하고 힘든 오르막의 시간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것이다.  대화도 힘들고 오로지 날것으로서의 내 자신과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그래서 정상에 잠시 있는 시간도 누구도 말은 안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시간이리라... 조금은 대견해 보이는.... 그렇다고 그걸 내놓고 말하기는 사실 쪽팔리니까 그냥 하늘을 보며 누워 말없이 그렇게 소주 한잔씩을 돌리는걸게다.

이 책의 저자가 숲에서 만나는 것도 그런 자신일게다. 거기가 거기같은 끊임없는 숲을 지나고 가끔은 위험에도 처하고 잠시 길을 잃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류의 책에서 기대하는 뭐 그렇게 드라마틱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전문 등산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산에서 만나게 되는 자기 내면의 온갖 감정들이 그대로 다가왔다. 이 책에 쓰여진 숲의 환경정책이나 미국의 역사적 장면들은 모두 들러리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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