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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우리 신화 - 우리 신들의 귀환을 위한 이야기 열두 마당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 오후, [살아있는 우리 신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해가는 오래된 상징구조. 이 구조를 헤쳐가면서 느끼게 되는 열 두 마당의 흡입력. 문장에 스민 유머러스한 해학과 기지도 독특한 재미일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에 얽힌 관계들은 때론 놀랍기까지 하다. 정말이지 등장하는 신들마다 보편적으로만 생각했던 강력하고 무서운 신의 이미지가 아니라 대개가 귀여우리만큼 '순수'하다. 게다 영웅의 힘을 빌어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도전적인 의지도 활기차다. 공간을 아우르는 스케일도 크고 자료를 통해 상상력을 부과했겠지만 각 사연의 배경이 불교색채가 혼합되어 몽환적이리만큼 문학적이다.
신화는 신성(神聖)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신성, 이란 것이 반드시 우리 삶과 동떨어진 높은 곳에서 명령 - 이것은 단지 억압일 뿐이다 - 하듯 고고하고 위대하게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평범한 인물들의 절실한 사연과 능력이 보여주는 힘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신성, 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간절함이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게 해서 살아나갈 힘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신성이다. 그 신성이 '나를 넘어서는 어떤 힘과 하나가 되어 자기를 초월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변화한다. 자기를 초월하면서 맺힌 것을 풀어갈 때 신성은 이루어지게 되는 법. 결국 나를 버리고 이타적인 삶 - 이타적인 삶 또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분이다 -을 지향했기 때문에 그 고통이 배가되었고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결국은 불투명했던 자아를 찾게 된 것은 아닐까. 마치 한 인간의 성장사를 비유한 것처럼. 특히 남성지배적인 구조 속에서 여성들의 희생적인 삶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혜로웠지만 오랫동안 고통속에서 인내하며 나를 버렸던 여성들의 삶은 무심한 남성들을 혹은 강력한 힘과 권위를 부여받은 신의 위치를 뛰어넘는다. 사실 시대적인 배경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솔직히 그네들의 삶의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더러 있지만 신화는 여성들로 상징되는 약자들 혹은 민중들의 내세의 삶과 소망을 기원한 듯 보인다. 거기에서 우리 신화의 신성, 그것의 간략적인 특징이 담겨져 있다. 우리 신화의 신성은 강한 자보다는 약한 자에게서, 고귀한 존재들보다는 낮고 버려진 자들의 삶에서 온다.
제주도의 신화가 특히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주도 신화가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적인 특성이 닿아 있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생각. 아무래도 문명이 닿지 않은 신화의 원시성이 그대로 살아있기엔 제주도만큼 괜챦은 지역도 드물 것만 같다. 제주도 이외의 미발굴지역의 신화에도 진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기회가 있으면 한겨레 전래 그림동화책에도 관심을 가져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