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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스무살에 중국 작가 양 말의 '피어라 들꽃'을 읽곤 많은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었다. 소설은 총 2부작이었는데 중국 공산당이 패배를 딛고 승리를 쟁취해가는 일종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설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변혁기 젊은 공산당원들의 치열한 역사적 고민들이 담긴 주인공들의 대화가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었다. 이후로 너무도 인간적인, 다잉 호우잉을 접했고 이번에야 제대로 루쉰 선생님을 만났다. 공통적으로 모두 중국의 격동근대사를 살다 가신 분들이라는 점에서 느낌이 새롭다.
철통같이 견고한 중국사회 - 특히 중국 청년들- 에 보내는 차분하고 지성적인 목소리와, 나처럼 어려운 문장에 익숙하지 않은 책맹들에게 잔잔한 깨달음을 줄 수 있게끔 쉽고 재미난 예시들이 많았다. 맘에 든다. 이 책은 지식인들이 범하기 쉬운 '민중'을 무지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차별적이고 의도적인 계몽, 을 독촉하는 거북스런 어휘완 멀어도 상당히 멀어 뵌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시선으로 중국의 개혁을 염원하는 루쉰 선생님의 아름답고 뜨거운 고백들은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놀라웠던 것은 선생의 산문집이 출간된 때가 1920년대인데 당시 루쉰 선생님의 외침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거다.
몇 주전 출근길, 버스 안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3. 18학살 사건에 연루된 류허쩐군에 대한 회고를 접할 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우연챦게도 버스 안에서는 내 옆 좌석, 앞 좌석, 뒷좌석에도 온통 젊은 대학생들이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에게 나의 이러한 표현은 좀 부당한 편견에 속하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지금의 내 나이보다 십 년 넘게 어린 젊은 사람들에게 모호한 반발감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작은 상황에서 미래를 유추해 낼 수 있듯이 심심챦게 마주치는 그들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고와 행동 그리고 언어에 더러 실망도 많이 했었다. 이것이 기성세대로 진입해버린 가쟎은 권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내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비난과 권위로 똘똘뭉친 나.
루쉰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나는 두 가지를 배웠는데 하나는 청년을 끌어안지 못한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 곧 가능성만은 남겨두자, 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페어플레이가 가능한 세상을 위해 지금은 '페어'할 수 없다는 것. 똥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고 과거청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수구세력들과 아직도 친북이네 또 용공이네, 라고 운운하는 극우보수들이 판치는 한국사회에서 페어플레이는 없다. 아니,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