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미국산 쇠고기의 방문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왔다. 뼛조각이 발견되는 상자만 반송하겠다는 조건이었는데, 1차 검사 결과 전량 통과한 모양이다. 신문에서 발표한 대로라면 다음주 중에는 시중에 'Made in USA' 도장이 박힌 붉은 쇠고기가 동네 마트까지 진출해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식품관련 업체에서 대형 트럭 몇 대분으로 공장 창고에 비축하는 일이 시행되겠다. 내가 친구와 절교 직전까지 관계를 악화하면서 반대한 한미 FTA는 솔직히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친구가 주장한 것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제2의 도약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내 주장은 다르다. 도약의 기회, 국민 소득 증대, 경제 발전 다 좋은데,


1)왜 이리 서둘러서 공청회 한 번 없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2) 식량을 내주고 자동차를 얻어서 소득은 증대할지 몰라도 식량전쟁이 집문을 부수고 쳐들어오면 어떡할거냐, 그 땐 자동차의 엔진이나 문짝을 뜯어 찌개를 끓이고 삶아 먹어야 하는가?

3)그런고로 식량은 곧 주권이며 생존이다


라는 내 의견에 친구는 중상류층답게 이젠 한 국가의 고유 먹거리를 찬양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로 일관했다. 말이 안되는게 1차 생산자인 농촌의 몰락을 눈앞에 두면서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 자동차 산업과 IT산업을 키워야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 식량은 이제 다국적 혼합체일 뿐이다. 라는 논리로 1차 생산자를 절망의 늪에 밀어 넣은 국가와 전형적인 도시 중상류층인 내 친구의 '메트로폴리탄의 경제 원칙'이다. 농촌의 사망을 매일 접하는 이 땅에서 '농촌 구조 조정' 하는 발언을 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식량의 다국적화'라는 무서운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외치는 내 친구는 모두 이 땅의 사람들이다.

 

 

 

 

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렇지 않게 '식량의 불가피한 다국적화 사업'을 주장한 친구에게 위의 책들을 권했다. 읽을 것인지 안 읽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중, [굶주리는 세계]와 [쌀과 민주주의]는 직접 사줬다. 그 친구가 내가 준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해도 최소한 제목만은 기억할 것이다. 제목을 기억하면 한번쯤은 자신의 풍요로운 밥상이 세상의 모든 밥상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는 깨달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우리는 폭력의 세기에 여전히 살고 있다. 그것도 밥상을 차리는 과정에서 폭력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장악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물 부족으로 몇 년간 신음을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초원위의 대규모 농장에서는 드넓은 초원 위로 스프링클러 수천 개가 물을 뿜으며 돌아간다. 케냐정부는 '국가의 경제발전, 국민의 소득증대 향상'을 위하여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았다. 결과는, 가뭄과 식수 고갈이며 농촌의 몰락과 도시 서민의 영세민화가 누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화의 폐단을 케냐까지 가서 찾지 않아도 내 집 앞을 지나가는 곡물사료트럭에서 확인한다. 미국의 곡물회사 카길사의 사료트럭은 하루에도 너댓번은 동네를 왕복한다. 축협에서 지원하는 지역자체 곡물사료 공장이 있지만 카길사는 최저가 공급으로 영세 축산농가를 공략하고 있다. 사료가격은 축산농가의 이윤과 직결되는 문제다. 밥상을 차리는 쌀값의 영향관계와 동일하다. 내가 염소 농장을 집어치운 이유는 한마디로 완전 '개털'식의 대차대조표에 절망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한 가지를 공개한다. 그러니까 2년 전인 2005년 아직 직장인이던 시절에 퇴직 후 염소농장을 계획한 것은 염소공급가격이 지금처럼 바닥이 아니었다. 다 큰 염소일 경우 보통 마리당 20만원이던 시절, 그 이전에는 비정상적인 가격인 50만원까지 호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20만원까진 아니었어도 15만원은 받았다. 큰 이익은 아니지만 손해 보는 장산 아니다. 그럭저럭 공과금 납부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사 먹는 수준은 된다. 큰 욕심 없이 안빈낙도로 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우리 집 염소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염소가격은 절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절벽으로 나뒹굴었다. 보통 6개월 정도 성장한 염소가 7만원이라는 '껌 값'이 되고 말았다.


7만원이면 중상류층의 내 친구가 하룻저녁에 별 다섯 개 호텔에서 사 먹는 스테이크 한조각과 프랑스산 30년짜리 와인 한 병 값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나는 7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 6개월 동안 염소 사료와 볏단을 사 먹이고,  팔이 떨어져 나가라 축사를 청소하고, 기생충 약과 설사약을 먹여야 한다. 6개월 동안 내 노동의 대가와 염소 한 마리의 생명가치를 합한 것이 7만원이다. 식량의 다국적화, 오픈아이즈(열린 눈)으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 친구가 백화점에서 50% 할인 가격으로 구입했다는 샤넬 투피스 한 벌 값의 1/10에 불과한 7만원. 나는 맑스 신봉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좌파도 아니지만 인간의 삶은 '계급'으로 결정된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 친구와 나는 '돈'으로 갈린 '계급'의 차이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와 내 친구의 사적인 영역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발표되고 난 이후 한우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300만원 하던 송아지가 지금 150만원으로 떨어졌다. 더 떨어진다. 송아지 값의 하락은 축산농가의 감소를 불러 올 것이다. 사료 값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테니 거미줄에 매달린 배고픈 거미의 심정으로 얼마나 더 많은 축산농가의 대출이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우는 그동안 왜 고공행진을 했던가. 실질적으로 소득이 증가한 계층은 한우농가가 아닌 유통업자다. 그들이 1차 한우 생산자로부터 사들인 쇠고기를 최종 소비자의 시장바구니에 담길 때까지 중간에서 취한 엄청난 유통증가 비용은 200%에 달한다. 미안하지만 이것보다 적은 수치는 결코 아니다. 한우 농가는 축사에 소 숫자가 증가했지만 '6시 내 고향'에서 보여주는 잘살고 근심 걱정 없는 '박정희식의 농촌 쇼'에 유린당하고 있다. 농가의 어두운 얼굴은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할 수 없는 비인기종목이다. 그렇다면 왜 유통업자들은 중간에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가. 그들의 이유를 들어보자. 유통관리비가 많이 든다. 는게 이유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몇 백%의 이윤을 취하면서 저 막연하고 모호한 설명을 이해하라는 말이다.


정부는 몰랐을까. 몰랐다면 귀먹고 눈 먼 정부이며, 알았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자 범죄 방조죄가 성립된다. 국민의 목구멍에 밥숟가락 넘기는 일을 방해한 것이 범죄 아니면 무엇인가. 미국이 그토록 집요하게 쇠고기 문제에 집착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한우 가격이 비싸므로 싼 미국산 쇠고기로 공략하면 100% 시장 장악에 성공한다. 유통업자의 폭리와 정부의 무사 안일한 자세 앞에서 축산 농가의 미래는 더욱 장막이 짙어 보인다. 그동안 한우 유통가격을 조절하지 못하고 소비자에게 비싼 가격으로 공급했던 대가는 곧 한 폭의 잔인한 그림으로 펼쳐질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된다고 단세포 발언을 하던 일부 국민들도 시간이 흐르면 곧 미국산 쇠고기를 시장바구니에 집어넣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안전'문제다. 즉 미국산 쇠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키워지고 생산되어 포장을 완벽하게 처리한 후 내 장바구니에 담겨진 것인가. 이 문제 제기는 지난번 MBC의 충격적인 미국 축산 산업 현장을 취재하면서 대중화로 불거졌다. 미국산 쇠고기가 먹는 사료와 약물, 환경과 도축과정을 충격으로 접한 후 다소간 시간이 흘렀다. 서민들은 '그것은 지옥의 풍경이었다'로 흥분했었지만 곧 그들의 밥상 위에는 바로 그 공포의 쇠고기가 오른다. 다시 방법을 찾는 통로로 들어가 보자. 애국심에, 민족의 단결심에 호소하는 일도 약발이 다 했다. 대안이 없을까.....농촌은 생계 걱정으로 밤마다 불면을 염병처럼 앓고 있다. 축협 같은 직접 연결 시스템이 '페어 트레이드'를 가동해서 유통업자의 막대한 이윤폭리를 차단하고, 소비자 단체에서는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아이템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와 네가 1차 생산자의 식량문제가 인간의 주권이자, 생존권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제발, 국익을 위해서 1차 생산자가 희생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말이나 삼가자. 뿌리 없이 열매 맺는다는 사기를 치지 말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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