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서실 당번이었다. 방학 중 도서실 여는 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 막내 챙겨서 어린이집 보내고 아이들에게 점심무렵 학교로 나오라고 이야기한 뒤 학교로 향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학교에 도착하니 9시 40분이다. 날씨도 추운데 양말만 신고 도서실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보니 괜히 미안해진다. 빨리 문 열어서 난방 틀어줘야지 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열쇠가 없다. 교무실도 뒤져보고 도서실 주변도 샅샅이 살펴보는데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겨우 행정실에 있는 열쇠를 찾아왔다. 정말 나이가 든 모양이다. 도서실 열쇠를 행정실에 뒀다는 이야기를 분명 들었는데, 언제 그렇게 까먹었는지...
문을 열자 싸늘한 기운이 퍼져나온다. 난방부터 틀려고 하는데 이번엔 기름이 없다. 행정실에 전화를 하니 주사 아저씨가 휴가여서 배달할 사람이 없으니 직접 가져가야 된단다. 아이를 셋이나 업고 안고 키웠는데 한말들이 기름통 하나 못옮길까 싶었는데, 계단 때문에 쉽지가 않다. 하필 도서실이 삼층에 있을 건 뭐람...
기름을 넣고 난방을 돌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컴퓨터 수업이 끝난 모양이다. 책을 반납하고 새로 대출받아 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도서실에 앉아 책을 읽고 가는 아이도 많다. 컴퓨터 수업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아이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도서실을 드나든다. 굳이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일부러 도서실에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들이 많다. 난방도 되고, 최근에 신간도 많이 들여 놓아서 읽을거리가 풍성해진 탓일 거다.
11시가 넘어가니 이제 엄마들이 도서실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로 저학년이나 유치원생을 둔 엄마들이다. 함께 책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큰애 도서대출증으로 동생이 볼 그림책을 대출받아 가기도 한다. 이런 엄마들은 거의 매일 학교 도서실을 찾는다. 개학을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 찾아오기가 꺼려지는데 방학땐 별 걱정(?)없이 학교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바람도 쐬어주고 책도 읽어주고 얼마나 좋은가.
급하게 나오느라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배가 고프다. 마침 큰애가 김밥을 사들고 들어온다. 도서실 안쪽 컴퓨터실에 점심상을 차렸다. 컵라면과 김밥. 학기중엔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는데, 방학 중 점심은 자체 해결을 해야 한다. 도우미도 혼자라 도서실 비우기가 애매하니 이렇게라도 점심을 떼워야지 뭐. 큰애에게 도서실을 잠깐 맡기고 점심을 먹었다. 난방이 되는 도서실과 달리 냉기가 흐르는 교실에서 밥을 먹자니 손이 절로 떨린다.
12시 30분, 도서실도 한가해져 집에 가서 읽을 책을 고르려는데, 한 아이가 들어온다. 쭈빗쭈빗 사진을 내밀며 도서대출증을 만들어 달란다. 회장이 뭐라고 했는데, 만들어 주랬던가 주지 말랬던가, 기억이 안난다. 지금 대출증 만들어주면 책 빌려서 볼 거니?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한다. 그래 대출증 만드는 게 뭐 어렵니, 만들어줄테니까 책 많이 빌려서 봐야 된다. 확답을 받고 대출증을 만들었다. 웃는 얼굴로 책을 빌려가는 아이를 보니 기분이 좋다. 함부로 만들어줬다고 회장한테 잔소리 듣는 건 아닌지 몰라...
1시 40분, 도서실 문 닫을 시간이 지났는데 모녀가 나갈 생각을 않는다. 대출불가인 책을 마저 읽고 가고 싶은 모양인데 막내가 집에 올 시간에 들어가려면 5분내로 정리하고 나가야 된다.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문 닫아야 되는데요. 마지막으로 책 대출해주고 난방 끄고 불 끄고 문 잠그고 학교를 나왔다.
이 노릇을 다음 주에 한번 더 해야 된다. 요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올해에도 도서실 도우미를 다시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고. 도서실 도우미는 될 수 있으면 1학년 엄마 중에서 뽑아 6년동안 하게 해야 된다고 이야기한 전과(?)가 있어서 올 한 해도 도우미 노릇을 해야 될 모양인데, 귀찮다. 나이가 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