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거나 말거나 내 아침은 시종일관 드립커피다. 곁들이는 음식은 빵일수도 쿠키일수도 떡일수도 있지만 여튼 아침의 나에게는 카페인이 함유된 뜨거운 액체가 필수다. 늘 말하는 거지만 카페인이 몸 속에 스며들어서 뭔가 정신이 빠릿해지는 기분이 들 때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렴 내일은 산삼보다 더 용하다는 대체공휴일이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 내 마음은 할결 더 너그러워진다. 카페인으로 각성된 정신을 노동이 아닌 휴식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얼마없는 횡재중의 횡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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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TV에서 연날리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어렸을 때 연만들기 하던 게 생각이 났다. 요즘은 어렸을 때 생각이 정말 자주 떠오른다. 폭삭 늙어버린 나를 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먹어서 흰머리 염색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아무튼, 학교 준비물이 연만들기 재료였다. 문구점에서 연만들기 재료를 사고 싶었었는데 아빠가 대나무를 깎아서 연살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근사한 방패연을 만들고 싶었던지라 연살이 6개는 필요했었는데, 손재주가 전혀 없었던 아빠에게 6개의 연살은 무리였다. 그래서 연살이 2개만 있으면 되는 가오리연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종이는 엄마가 오려준 창호지. 연살이 이쑤시게 만큼 가늘었어야 하는데 나무젓가락만큼 굵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연은 날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무거운 연살때문인듯 했다. 대나무를 깎는 아빠를 미심쩍어 하면서 아빠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게 문득 생각이 났다. 2020년 현재 이런 아빠는 매우 가정적이고 자상한 아빠의 표본일지 몰라도,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건 오직 가난해서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내 부모 두 사람은 돈이 들지 않는 모든 건 최선을 다해서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돈 드는 건 거의 해주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시절 바람이 부는 겨울날에는 누군가는 꼭 그 장소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면 나는 벙어리 장갑과 외투를 주섬주섬 껴입고 연 날리는 장소(나무도 없고, 전봇대도 없는 곳!!)로 달려나가 나도 좀 날려보자고 친구를 졸라서 잠시 잠시 연날리기를 할 수 있었다. 


또 겨울에는 얼음썰매도 많이 탔다. 원래는 위험하다고 못타게(얼음 녹아서 물에 빠져 죽을까봐)했는데 아빠가 어떤 땅주인과 협상해서 안전한 땅에 약간의 물이 고이게 하고 그게 얼게 만들어서 그곳에서 안전하게 썰매를 탔던 기억이 있다. 일년 내내 창고에 보관했던 얼음 썰매의 스틱과 썰매의 날 부분에 슨 녹을 사포로 반질반질하게 닦아낸다. 나는 아빠 옆에 쭈그려 앉아서 이런 저런 요구사항을 말한다. 아무튼 돈이 들지 않는 모든 요구사항은 체결된다. 하지만 손재주가 없는 아빠가 수선해준 썰매가 잘 나갈리가 없다. 친구랑 경주를 하면 항상 내가 졌다. 그러면 나는 또 집에 가서 아빠한테 썰매 날을 더 날렵하게 갈아달라, 아니 날을 바꿔달라, 스틱이 이상하다 스틱의 못을 다시 박아달라 이런 저런 요구를 했었다. 어떤 친구들은 눈썰매장을 가고 사람들은 스키라는 것도 타고 그랬었지만, 나는 계속 공터에서 얼음썰매를 탔었다. 군데 군데 녹이 쓴 날을 가진 핸드메이드 썰매로. 


이상하게도 요즘은 생전 떠오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나름 즐거웠던 일화들이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연을 날릴까?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연날리기 같은 건 필요가 없을지도.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는 연을 날려야 제 맛이긴 하지만 연날리기만큼 즐거운 무엇인가로 미래에 비하면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나름 즐거운 일화를 요즘의 어린이들도 만들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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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라면을 먹었더라면서 아빠 밥 해주러 집에 가야한다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엄마, 진짜 엄마를 보면 팔자는 셀프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같은 사람들이 제일 나빠. 상대방이 바라지도 않는 친절과 정성을 부담스럽게 퍼다주면서 내가 너한테 이만큼 해줬는데 너는 나한테 해주는 게 뭐냐 하는 사람들. 내가 남한테 이만큼 해주면 남도 나한테 이만큼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남에게 잘해주지마. 그렇게 주고 받지 말고 그 정성으로 엄마 본인한테 잘해줘. 각자 행복은 셀프로 추구하면 될 것을 뭣하러 그걸 주고 받으면서 서로 싸우면서 사니 못사니 니가 내 인생을 망쳤니, 내가 너 때문에 병이 났니 어쩌니 하는건지..." 라고 했더니 엄마는 "니는 말하는 게 꼭 법륜스님같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나와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꼭 "너는 정말 결혼 안해?"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결혼 왜 해야 하는데?"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내 대답이다. 그러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꼭 결혼해야 할 필요는 없지..."라고 말끝을 흐리고 마는데, 이번에 한 친구는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결혼하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 라고 하길래 "아마 불가능할거야. 나는 나 자신만이라도 정말 좋아하고 싶거든. 나는 나를 좋아해주고 챙겨주고 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쳐."


다들 마더 테레사도 아니면서 자신을 방임하면서 가족을 챙기는 걸 보면, 어휴 어버이연합이 박근혜 걱정하는 것도 이것보다는 덜 오지랖이겠다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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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 돈 다이>를 보면 죽은 자들이 좀비로 트랜스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말을 중얼거린다. 그 말은 그들이 인간이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이다. 커피를 좋아한 사람은 커피, 인터넷을 좋아한 사람은 wifi, 어린이 좀비의 경우에는 사탕이다. 그 영화를 보고 상영관을 나올 때 대부분의 한국 성인들이 좀비로 트랜스 되면 강남강남, 아파트아파트라고 중얼거리겠구나 싶었다. 아마도 나는 넷플릭스, 왓챠.


주변 동년배들이 하나 둘 아기를 낳더니 하나 둘 아파트를 구입한다. 뷰가 훌륭했던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브런치 카페의 뷰 절만은 이제 엘시티가 흉물스럽게 차지해버렸다. 그래도 아스라히 보이는 조선비치호텔과 그 옆의 동백섬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옛날의 해운대를 추억한다. 회사 절친의 남편은 아파트 구입 시기 때문에 반 년 넘게 전전긍긍했고, 그 와중에 해운대 조정지역 해제가 되었고 그때부터 아파트 값은 폭등하고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계약을 해버렸고 올해 10월 입주예정이라는 아파트가 저~~~기 아스라히 보였다. 친구가 "저기야, 저기." 하는 곳에는 아직 꽃단장을 하지 못해서 생얼을 드러낸 철근 콘크리트가 우뚝 솟아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남편은 knn에 가끔 나올 정도로 훌륭하므로 금방 푸어 3관왕에서 벗어날 것이다. 친구는 카 푸어, 베이비 푸어인데 이제 하우스 푸어까지 되었다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지금 본인이 어떤 심정인지를 털어놨다.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잖아. 나 빼고."


시골쥐에서 서울쥐로 완벽한 변신을 해버린 동생1은 "저런 애들은 가난해서 아파트에 못살아."라는 말을 우주의 진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고, 서울쥐가 되고 싶은 동생2는 서울에 아파트 산다라는 창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동생2 덕분에 김사과의 신작<0>의 동부이촌동 사는 언니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학벌 좋은 우아한 서울(동부이촌동) 언니가 자신을 상대해준다는 사실에 완전히 취한 것이다. 

-김사과 <0>-


하나뿐인 딸의 중학교 진학을 걱정하면서 동래 쪽으로 이사를 가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회사 선배를 보면서, 초중품아 때문에 돈을 더 투자하여 무리하게 아파트를 구입한 친구가 다른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내의 초등학교에 공동학구로 전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골조를 다 올리고 내부인테리어를 하는 새 아파트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이것은 푸어의 시작인가 리치의 시작인가를 몰라 맹수를 발견한 초식동물의 흔들리는 동공같은 표정을 짓는 친구를 보면서도, 충분한 노후자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죽을때까지 살려면 돈이 부족하다고 혼잣말을 내뱉는 부모를 보면서도, 가짜 서울과 진짜 서울을 구분하는 동생을 보면서도, 시골은 싫다며 서울이 좋다고 자신은 서울사람이 될 거라는 철없는 동생을 볼 때,


절대반지를 보면서 황홀경에 빠진 골룸이 떠오른다. 골룸이 되지 않으려면 아파트, 서울, 자식, 노후 이 4가지를 탐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최근까지도 노자가 말했던 상선약수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최상의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여 다투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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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나에게 있어서 은하철도999 혹은 공각기동대같았던 한 해였다.

내 육체의 나약함을 기계를 구입함으로서 보완했다는 말.

작년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못생겼지만 가성비는 끝내주는 로지텍 마우스가 죽었다.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더 이상 살아나지 않았다.

어른의 좋은 점을 굳이 꼽자면 더 이상 푼돈 때문에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올해의 마지막 선물(이었을 줄 알았지만 소비는 12월 31일까지 이어졌다)을 사주었다.

매직마우스와 매직키보드를 사주었고 그것은 로지텍에 비하면 매직이긴 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나에게 애플워치를 사주고 싶다. 그러면 운동하지 않을까???????)


작년의 소비 중에서 가장 혁명적이면서 성공적인 것은 단연 75인치 스마트tv다.

넷플릭스+왓챠=영생에 대한 사심!!!

나는 이야기 중독이라서.

집중력이 점점 낮아지다보니 소설로 사심을 채우기에는 힘들고 결국 영화나 드라마다.

출퇴근하고 잠자고 청소하고 이야기를 보고. 

만족스럽다.

넷플릭스나 왓챠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 앞에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난다면

나 역시 디오게네스처럼 

됐고, 이야기 시청이나 방해하지 마.

라고 말할 듯하다.

디오게네스도 요즘 태어났다면 일광욕 대신 이야기 시청을 했을 것이다.


새해목표 : 찜해둔 모든 이야기를 다 시청할 수 있길...물론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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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