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2 월


아래는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에서 아렌트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한 부분들이다!


내가 참을 수 없이 싫어하는 어느 잡지의 행사였다.

나는 공산주의에 열광하지도 않고 코스튬 파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냥 집에서 조용히 아리스토텔레스나 읽고 싶었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게 사람이랑 어울리는 거보다 만 배 좋다!




나흘째가 되자 검은 유리창 아래서 헛소문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갔다.

여1: 히틀러가 영국을 정복했대요.

여2: 린드버그가 미국의 수상으로 임명돼서 나치와 한 편에 섰대요.

여3: 교황이 나치 완장을 차고 다니는 게 목격됐대요.

여4: 오늘 저녁엔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온대요.


한나: '저건 다 쓸데없는 잡담이야. 옹알이보다 못한 소리지.'


하지만 마침내 합리적인 논쟁을 벌이며 함께 대화를 이어갈, 지각 있고 진실만 말하는 상대를 찾아냈다.

나 자신이었다.

사실 그래서 나는 남들이랑 대화랄까 잡담이랄까 티타임이랄까 

아무튼. 

하지 않는다. 

일단 너무 재미없고, 그 대화 속에 있으면 뇌세포가 파괴되고 사람이 똥멍청이가 되는 것 같기 때문에.

온라인에서도 하나마나한 덕담을 주고받거나 예의상의(?) 공감 누르기 같은 거 딱 질색이고, 솔직히 너무 멍청해 보인다. 

아무튼 그래서 나도 자 나신과의 대화의 방식으로 일기를 쓴다.

남이랑 대화하느니 그냥 일기 쓰면서 내 생각을 나와 주고받고 정리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정신건강에도 좋은 거 같아서이다.




나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품위를 지키라고 말했다.

한나: 여기서 자존감을 잃어선 안 돼요. 화장을 하세요. 머리도 매만지고요. 여러분은 변함없는 여러분 자신이에요.

이 구절은 너무 반갑고 좋아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외모를 꾸미고 관리하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분명 있다는 것을 한나 아렌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청결 그 이상의 관리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행위이다!! 




경비병의 잔인함이나 교도관의 우둔함, 발에 잡힌 물집보다 나를 화나게 하는 건 동료 수감자들이 잘 모르면서 재잘거리는 어뚱하고 어이없는 낙관주의적 환상이었다. 그들은 자존감을 버린 주제에 환상만 불들고 있었다.

여1: 다들 기운 내. 이 정도면 괜찮은 처지잖아!

여2: 말린 생선을 겔피테 피시로 생각하고 먹어봐.

여3: 얼굴 찡그리지 말고 활짝 펴!


난 내게 남겨진 유일한 자유를 행사하고 싶었다.

한나: '저런 건 품위가 아니야. 달콤한 거짓말은 격렬한 욕설만큼이나 우릴 죽이는 독이라는 걸 모르나?'

나에게 긍정을 강요하는 놈들이 제일 싫다. 태어난 것은 축복이고,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고 어쩌고 저쩌고, 문화는 진보하고 있고 어쩌고 저쩌고. 믿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인간은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이고 믿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너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은 불행할 뿐이야 라고 말하는 백치들 정말 싫다.



그리고 내가 빠져든 가장 의외의 책은 통속적인 탐정 소설이었다.

매그레

(매우 많은 페이지가 지난 뒤)

남편: 아, 그건 그렇고. 마르세유에서 어떻게 그런 놀라운 탈출 계획을 세웠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네. 방 열쇠랑 호텔 프런트와의 말싸움이랑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냈어?

한나: 아, 그거. 내가 왜 여름 내내 그렇게 탐정 소설을 파고들었다고 생각해?

남편: 기분 전환용이었겠지. 현실의 공포를 잠시라도 떨쳐내려고.

한나: 아니야. 프랑스 경찰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어. 생각이 가장 중요하니까.


어느 저명한(?) 탐정소설 혹은 수사물 소설 매니아가 매그레 시리즈는 좀 지루하고 꼰대 같다고 해서 매우 실망한 적이 있는 나는 매그레의 범인들이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서 좋아한다. 타고나길 범죄자로 타고난 주인공들은 사실 너무 시시하다. 예들 들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의 주인공같은 놈들. 하지만 <화차>의 주인공이라면 다르지. 그래서  한나가 탈출을 기다리는 무료한 나들들을 매그레 시리즈를 읽으면서 보낸 점이 매우 반갑고 좋았다. 약간의 동질감이 더 들었달까. 그것에 더해서 요즘 내가 <배상훈의 크라임>을 숨 쉬듯 듣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크라임을 듣는 이유는 인간이 얼마나 열악한(멍청하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 존재인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싶어서이다. 범죄, 수사, 재판의 모든 과정의 열악함. 굳이 범죄를 저지르는 열악함. 수사를 제대로 안(못)하는 열악함. 시야가 좁은 판사와 어째 좀 무능한 검사. 아무튼 열악함의 대환장 파티. 



p.s.

14살이 될 무렵, 나는 칸트의 저서를 전부 섭렵했다. 하지만 답을 모르는 일들은 여전히 있었다. 그래서 칸트가 읽은 책들까지 모조리 읽어보기로 했다.

독일어를 읽을 줄 아는 독일계 유대인 한나 아렌트. 부럽구먼. 내 이해력이 더 문제겠지만, 번역된 칸트는 도무지 못 읽겠던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버리지 않고 소장은 하고 있다 ㅠㅠ



그 밤이 지나기 전에 가면 쓴 남자는 내게 청혼을 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권터 슈테른.

학계와 예술계, 재계를 아우르는(그리고 유대 혈통인) 베를린 최고 명문가의 장남이었다.

그는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연주하고

테니스를 완벽하게 치며

우리 엄마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내 앞에 저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사기결혼일 텐데
리플리 증후군 걸린 전청조 같은 범죄자일 텐데, 
한나 아렌트에겐 저게 실화라뉘 ㄷ ㄷ



사람들은 나에 대해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 그들은 내가 어딘가 덜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세상에서 우리 엄마 한 사람만 빼고). 사실 나는 정말로 바보가 맞다. 그리고 이건 아마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력을 기울여야 똑똑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5분 만에 '이해'하는 것도 나한테는 5시간이 걸린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알고 싶어서다. 이해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전혀. 그냥 내가 똑똑해 보이니까 시기할 뿐이다. 비밀을 하나 더 알려줄까? 그들이 하는 말은 어찌나 무식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은 정말로 멍청하다. 미안하지만 대다수가 구제 불능의 바보다. 나를 퇴학시킨 선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 그들이야말로 진짜 바보다.

내 주변에서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이 무지로 인해서 고통받는 것을 그저 방관하고 있다.

내가 일기까지 정성껏 쓰고 있는 걸 안다면 다들 놀라 자빠질지도.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혼자서 인생의 미션들을 해치우면서 하루하루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을 시기질투한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반려동물도 없는 내가 그들보다 더 화창하게 웃으면서 매일을 살아가는 걸 시기한다.

유감스럽게도 난 혼자 있는 게 훨씬 더 좋다. 

그리고 지금 혼자라서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멍청이들이 멍청한 소리를 내는 걸 듣지 않아서 매우 쾌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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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1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하다니!! 흥 칫 뿡! 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엄마는 내가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이상해졌다고 생각한다.˝
저도요 ㅋㅋㅋ

먼데이 2024-08-13 16:40   좋아요 1 | URL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쟝님 덕분에 잼나게 읽었어요.
그런데 발터 벤야민에게 반해 버렸다능 ㅋㅋ
발터 벤야민이 나치에게 적발되자 독약을 먹고 죽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나에게만 원고를 준 것이 매우 낭만적이었어요!!!!

책을 읽어서 이상해진 게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라서 책을 읽는 건데 ㅋㅋㅋㅋ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요.

공쟝쟝 2024-08-13 21:10   좋아요 0 | URL
아아 그랬지요. 벤야민 ㅋㅋㅋ 저는 잘 모르지만 먼데이님에게 반함을 선사한 그에게 부러움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