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31 토요일.


이다혜: 비슷하게 굴러가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6시에 일어날 필요는 없는데 10시에라도 매일 일어난다. 이건 되게 중요한 거예요. 저도 종종 생각하는데 루틴이라고 하는 게 결국은 우리는 구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단 말이에요. 내가 하고 싶건 하고 싶지 않건 때가 됐으니까 하는, 그게 몇 시에 일어나는 것, 몇 시에 자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누구를 만나거나 만나고 왔으면 제때 씻거나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가 제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은근히 도전적인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렇게 하잖아요. 아 오늘 못 나가겠다. 내지는 아 오늘 만나기 싫다. 아니면 너무 귀찮으니까 그냥 미루자. 이런 식으로 해서 내 기분에 맞춰서 하루 일과가 굴러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는 게 자유롭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동시에 그런 시간이 쌓이면 약간 내가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되게 힘들지 않나 라는 생각 많이 하고.

< 315화 마음만 새롭게 먹지 말고 시작을 하자 feat.이다혜 / 영혼의 노숙자>


아직도 '순종하는 신체'에서 정차 중이다. 3부 규율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읽기가 매우 힘든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난가? 나인가? 나였나? 하는 의심 속에서 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나는 외면 중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기 자신을 항상 감시하여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하는, 내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되지 않도록 하는 마음가짐으로 자기 통치를 해 나가게 됩니다. 그런 것으로서 근대적 개인은 성립한 것입니다. 즉, 자신이 비정상적인 '자'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불안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좀 더 행동적인 세계가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이 충분히 성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 3 푸코: 사회의 탈구축 / 현대사상 입문 / 지바 마사야 >

질문1) 과잉 사회화 & 자기 통치 & 수신 & 대타자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질문2) 타인에게 복종하긴 싫지만 스스로에게는 복종하고 싶은 것(루틴, 갓생)은 자기 통치 & 단일하고 강력한 픽션이 주는 안정감(혹은 긍정적 대타자)인가?

2024년 현재 푸코가 주장하는대로 살면 생존이 불가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세상은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조선시대처럼 해뜨면 일어나서 밭 메고 논 갈고 해지면 잠잘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닌 것이다. 수면시간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수면보조제를 처방받는 신세가 되는 것이 2024년 인 것이다. 

모든 것이 과잉 그 자체인 시대에 자기 통제 없이 살라는 것은 인생을 망가뜨려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 시간과 체력 빼고 모든 것이 무한이다. 한 달 1만원 내외면 무제한으로 영화를 볼 수 있고, 도서관에서 무제한으로 책을 빌려 볼 수 있고, 싸고 맛있는 음식들, 알리나 테무에서의 쇼핑 등. 

유한한 것은 시간과 체력 뿐.

내 생활의 제 1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평균 8시간 수면 시간을 지킨다 이다. 
그래서 매일 밤 수면시간 측정과 기록을 위해서 미밴드를 차고 잔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질병과 감염에 대한 의학적 감시가 다른 일련의 모든 통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즉, 탈주병에 관한 군사적 통제, 상품에 관한 세무상의 통제, 의약, 하루분의 식량 할당량, 실종, 치료, 사망, 꾀병에 대한 행정상의 통제 등이 그렇다. (중략) 규율로부터 의학적으로 유용한 공간이 탄생하였다.
<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미밴드 앱에 가보면 지난 몇 년간의 내 수면 기록이 모조리 다 저장되어 있다. 셀프 의학적 통제와 감시. 
네비 앱에 가보면 지난 몇 년간의 내 주행 기록이 모조리 다 저장되어 있다. 최근에 생긴 습관 하나는 내가 내 주행점수를 통제하는 것. 안전 운전이라는 핑계를 대긴 하지만 운전 점수 100점을 받는 것이 게임 같달까. 주행 점수에 관심이 없었을 때는 내 기분대로 운전을 했었다. 특히 과속. 과속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 운전이고 문명이긴 하지만 과속을 하지 않고 각 도로마다의 규정 속도대로 안전운전을 하는 자동차들을 보면 역시 이것은 과잉 사회화, 감시 사회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 

자기 통제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성취감)이 좋기 때문에 나를 루틴(시간표)에 끼워 넣는다. 
또는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천했을 때의 성취감 혹은 쾌감이 좋기 때문에 목표를 정하고 실천한다. 
그래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계획과 실천으로 채워져 있다. 
내가 나를 잘 통제하고 있다는 픽션이 주는 안정감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단, 타인이 나를 통제하는 것은 딱 질색이다.
나를 통제할 자격이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
하지만 푸코는 자기 통제 혹은 자기 감시가 더 나쁘다고 하는 것 같다...

기원전 551년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난 공자는 수신제가치국어쩌고라고 했고, 인생에 방탕이나 나태라고는 없는 나는 수신 두 글자에 매료되었지.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하여 미혹되지 않는다 하였건만 20세기의 서양백인남자 푸코는 나를 미혹하는구나!! 

자기 통제, 자기 감시 그리고 수신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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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8-3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배려(돌봄) / 자기 통제 사이의 심원하고도 거대한 공백이 있지요. 거기를 채우는 관점을 계속 업데이트 할 필요가 있는 ... 그런 ‘근대‘와 ‘근대이후/전‘이 혼합되어 있는 픽션 오브 코리아 ㅋㅋ
먼데이님 말대로 루틴 없음 리추얼 없음이 문제적일 수도 있지만.... 과도한 사회회로서의 루틴, 리추얼 도 문제는 문제죠. 즉. 봉건이후(-저는 봉건을 살았습니...-) 근대에서부터 나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권력의 형태가 확 드러나거나 가시화되지는 않는 특정할 수 없는 ‘규범(이라고 쓸게요, 혹은 내면의 감시하고 처벌하는 시선...)‘으로의 전환을 여러 자료들을 통해 추적해나가고 있는 책이랍니다. 우리는 왜 어찌하다 셀프통치하는 자(근대인)로 만들어져 버렸는가?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겐가.
저에게 가장 재밌는 부분은 몇장이었더라... (기억이 잘 안나는데..) 권력-지식 을 묶어주는 도구로서 ‘평가‘가 기능한다는 거였어요. 한국의 정규교육을 거쳐오고 매번 별점을 다는 문화 안에서 ‘평가‘라는 시선을 내 안에 아니 가질 수는 없으므로..... 푸코에게 미혹되는 먼데이님~ 판옵티콘까지 꾹 참고 힘내보세욧!

먼데이 2024-09-01 12:41   좋아요 0 | URL
평가도 3부에 나와요. 전 평가는 수능 공부하면서 자력으로 깨달았어요. 특히 문학에서. 국가가 정해주면 그게 훌륭한 문학이고, 내가 그걸 외워야 하니까요. 내 생각엔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하니까.

하지만 수신과 수오지심을 좋아하는 동양인으로서 자기 통치(수신), 자기 감시(수오지심)는 매우 충격적이라고요. 흑흑. 공자, 맹자 다 때려부수는 미셸 푸코 ㅠㅠ

하지만 푸코의 심정은 알 수 있어요. 저도 쇼핑몰에서 개모차(?)를 타고 있는 개를 보면 ‘저건 아니잖아.‘ 하는 굉장히 서글픈 기분이 들거든요. 심지어 큰 개가 얌전히 개모차를 차고 있는 걸 보면, 아 저게 푸코가 말한 근대인이구나 싶어요. 길들여진 것들...순종하는 신체가 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