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글 없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글에서 시작된다

이 글도 쓰임이 있어야 한다

쓰임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6gOblRd8DKA

<오늘 나는 / 이랑>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천!! 채!!!!! 다!!!!!!!!!!

이랑은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음악 전공자들로부터) 차별을 받았(는)다고 했(한)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요즘 매일 아침 내가 제일 먼저 듣는 노래는 이랑의 <오늘 나는>이다. 

이랑의 신곡 <오늘 나는>을 들으면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화장을 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특히 가사!!, 마음이 비장해지고, '어떻게든 오늘 하루도 보란 듯이 살아내겠다!' 하는 각오가 솟구친다!

나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실제로 들어본 적도 없는, 사용해 본 적도 없는 타자기 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 <어톤먼트> ost를 좋아한다. 특히 1번 곡이 좋다. 1번 곡은 타자기 소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일기를 쓸 때 자주 듣는다. 요즘은 영화 <arrival> ost를 제일 많이 듣지만. 이전에는 어톤먼트였다. <오늘 나는>도 타자기 소리로 시작해서 더더욱 좋다!!


196 

그들은 읽었습니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읽은 것을 굽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반복합니다. 그것이, 그것만이 '혁명의 본체'입니다.


104

책을, 텍스트를 읽는 것은 광기의 도박을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어버린 이상 그것에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87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뜨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성전입니다. 성전을 바꿔 읽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꿔 쓰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고독한 싸움'밖에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쓰기(=읽기)에 대한 이랑의 노래 가사는 200% 와닿는데, 사사키 아타루의 읽기(=쓰기) 애찬은 매우 심하게 거부감이 든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빠가 자세히 설명해 줄게" 하는 어투로 읽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읽을 수 있었던 혁명전사 남자들 냄새, 정액 냄새. 먹물 마초남의 가르치려 드는 듯한 태도. 그래서 싫다. 싫어서 이 책을 산 지 최소 5, 6년은 되었을 거 같은데 그때 몇 바닥 읽고 내버려 뒀다가 이번에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역시 싫다. 가수 이랑의 노래 가사와 맥락은 같은데 너무 싫다. 번역 송태욱 씨의 번역이 잘못인 걸까? 사사키 아타루는 가르치려 든 적 없는데, 번역 송태욱이 가르치려 들었던 걸까?


한글을 모르던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책과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변사처럼 다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아했다. 일기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늘 일기를 썼고, 용돈기입장을 배운 후로는 늘 가계부를 썼다. 즉, 나는 이야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을 하는 걸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일기쓰는 걸 좋아하지만, 남들보다 잘 쓰는 글은 주장하는 글이다. 아무튼 나는 대화보다는 읽기를, 대화보다는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읽고 쓰는 것은 나의 소확행 정도이지 성전을 읽고 혁명을 읽으키는 대확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읽고 쓰는 것이 비장하고 거대한 무엇이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 책, 쓰기는 개인적인, 사적인 것일 때 빛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터나 니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의 글(?)도 의심한다.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는다. 특히 니체는 내 취향이 아니다. 정말 싫다. 그래서 니체를 옹오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편.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만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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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6-2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덕분에 들었습니다. (우리 이랑으로 찌찌뽕 한 사이임ㅋㅋㅋ)
- 대략 이부분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은 즉슨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 말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들린다.˝

여기를 듣고 그냥 이번에도 울컥했어요. 저도 집중할 시간에... 일의 효율성 극따집니다. 왜냐면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에... 아.. 이랑이 정희진 공부 듣는다고해서 맙소사! ㅋㅋㅋㅋ 이랑은 천재. 천재가. 맞습니다.

덧, <잘라라>의 어느 부분에서 맛이 딱 떨어졌는 지 알것도 같은, 괜히 동조하고 싶은 덧붙이려다가 말게 되지만... 그럼에도 책 전체를 옹호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자면. 저의 읽기는 이러해요. 300페이지 중에 단 한 줄이라도 내게 걸린다면. 그만이며 성스러운 독서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꽂힌 부분은 ‘읽을 수 없는 것을 읽는다‘이며, 정말로 읽게 되면 미쳐버리는 것이며, 그래서 결국엔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나를 읽는다.는 거죠. 저는 큰 혁명을 바라지는 않고요. 그렇게 읽는 종족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 니체도 아타루도. 성별 꼬장꼬장 다 떼고. ‘그렇게 읽는(것에 미친) 종족‘이기에 옹호합니다. 저를 싫어하진 말아주세요~ ㅋㅋㅋ

2024-06-29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29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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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1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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