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민음사 2008
P.163
르느아르 그림 속 통통하고 편안한 여자를 모딜리아니 그림에 나오는 가늘고. 길고, 신경질적인 여자로 상상하는 것만큼 힘들었다.
p.268
막대한 유산이 다시 상당한 불로소득을 가녀와 '평생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혹은 슬프게 말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신물을 읽으며, 니샨티쉬에 있는 아파트 창문에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는 파리나 밀라노에서 산 멋진 옷을 천천히 입고, 면도를 하고, 정성스럽게 콧수염을 빗고, 하루의 유일한 일인 힐튼 호텔의 로비나 제과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두 시간을 보내려고 나가곤 했다. 한번은 그가 아버지에게 아주 중요한 비밀이라도 말하듯, 눈썹을 치켜뜨며,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이해해 달라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왜냐하면 유일하게 거기에서만 나 자신이 유럽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p.301
만약 수영을 할 있어 수면으로 올라가게 된다면, 이 도시의 온갖 슬픔에도 불구하고 보스포루스와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즉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p.377
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그 외관뿐 아니라 도시에 있는 집 내부와 그 실내 풍경이라는 것을 외국인 여행자들은 이스탄불에서 가장 많이 잊어버리게 된다.
p.427-8
고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고민들로 고심하거나 삶에서 기쁨이아 심오함을 추구할 때 자동차나 집이나 배의 창문을 통해 보았던 모습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삶은 음악이나 그림이나 이야기처럼 변화무쌍하게 끝이 날 테지만, 우리 눈앞에서 흐르는 도시의 모습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꿈속에 나오는 추억처럼 우리와 함께 남을 거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p.450
아주 늦게 시작된 폭풍은, 날이 어두워지고 방 안이 아주 캄캄해져 우리 둘 다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어떤 한계도 느끼지 않고 우리를 먼 곳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가 누워 있던 긴 의자에서는 배의 탐조등 빛이 어두운 물과 방의 벽에서 호기심 가득 차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