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부 스와핑이 그렇게나 충격이냐??

안그래도 오늘 '부부 스와핑 문제' 때문에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른바 "식욕"의 시대가 가고 "성(性)"이 화두인 시대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회는 이렇게 빠르게 움직여 가고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들의 사고는 '성(性)'이란 부분에 얼마나 경직 되어 있는가?  오늘 인터넷 뉴스를 접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온통 '충격, 부부 스와핑' 내지는 ' 5000명의 회원이 부부 스와핑 사이트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나' 등과 같은, 예전 '썬데이 서울'이라는 B급 잡지에나 어울릴 만한 제목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나마 이와 같은 사회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논의의 장'으로 끌어낸 것은 오마이 뉴스 밖에 없었다.

 

스와핑, 사생활인가 도덕 불감증인가?   오마이뉴스 [사회]  2005.03.22 오후 18:21

한탕주의, 터트리기식 보도를 나열하고 있는 뉴스들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예전의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분명히 그들의 보도처럼 충격적인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나이제한과 함께 유료회원만 모집한 그 '스와핑 사이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했다는 사실을 두고 "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하는 것이 '사회의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의 임무가 아닐까? 오마이 뉴스에서나마 '스와핑'이란 문제를 두고 사생활인가? 도덕 불감증인가? 란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역활을 했고, 나는  그 뉴스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위에 링크를 해놓은 것을 직접 클릭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인터넷 누리군(네티즌)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으로 갈라져 있다. 가장 수위가 높은 법적 처벌 문제를 언급하는 것에서 부터 도덕적 비난은 받을 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현 사회의 '타락'에 대한 언급 등등... 윤리에 대해서는 고딩이 때 들은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법보다는 좀 더 유연하면서도 더 많은 부분을 포용하는 것이며 사회의 변화에 의해, 사람들의 사고의 변화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동성연애'와 같은 것이 그런 사회의 변화 속에서 바뀐 윤리의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성연애'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오랜 시간을 거쳐 바뀌게 된 것과 같이 이 '부부 스와핑'이라는 부분도 오랫동안 사람들 속에서 회자되며 오늘 우리들에게 주었던 '충격'이 아닌,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2. 사랑???섹스????

밤 10시를 기다려서 kbs의 감성과학다큐멘터리 - 사랑 2편(섹스 37.2)을 보았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인체중 가장 쎅쉬한 것은 '뇌'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모두들 다른 섹쉬한 부위들을 떠올리는지 한동안 침묵을 하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어쨋건, 사랑이라는 형체도 없는 그 무엇을 인간들은 표현하고자 무진장 애를 쓰며 살았다. 그 덕분에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고 미술이 나왔으니 우리는 예술의 근원인 사랑이란 에너지의 엄청난 힘을 책을 통해, 또는 음반을 통해, 또는 그림들을 통해 매일매일 섭렵하고 있는 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랑'을 과학적인 분야에서 접근했다는 자체가 무척이나 신선했다.

연인의 손끝이 닿을 때의 느낌이 전기신호로 바뀌고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어 시상하부 및 대뇌피질을 자극하고 뇌하수체라 불리는 곳을 또한 자극하여 호르몬 신호로 바꾸어 심장을 더욱 고동치게 하고, 땀을 샘솟게 하며, 생식기를 규칙적으로 수축시키고, 촉촉한 성분비물을 방출하게 만드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대뇌피질 내에서도 자극된 신경조직들은 눈동자를 키워 연인의 모습을 더욱 세밀하게 보게 만들고 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뇌의 부분을 자극시켜 연인을 통해 이와 같은 쾌감을 얻을 수 있음을 재인식함으로써 친밀감을 더욱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섹스'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보다 더욱 밀접한 '소통'이라고 말을 했다.  이와 같은 섹스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가 함께 나왔는데, 위험하고 척박한 원시시대에 자손을 번식시키고 서로간의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 고도로 발전된 메커니즘이라는 것과 여성의 배란기 때 여성의 신체의 변화(성욕이 강해지고 여성호르몬의 역활로 더욱 얼굴이 희고 입술은 붉고 눈동자가 또렷해져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또한 여성의 체온은 배란기 때 37.2도로 약간 상승하는데(보통 체온은 36.5) 이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후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온도, 즉 사랑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온도라고 한다.

그러나, 원활한 섹스를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여성지에서 볼 수 있는 '성테크닉'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연인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이 다큐멘터리는 묻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6쌍의 부부들에게 서로의 성감대를 민감한 순서대로 적어보고, 그 후 그 답안지를 바꾸어서 채점을 해보라고 했는데,  그 부부들은 서로의 성감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신의 몸에서 민감한 부분을 찾아내고, 연인의 몸에서 민감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생일선물로 자신이 좋아하는 선물을 이야기 하듯 연인에게 자신의 성감대를 알리는 것 또한 서로가 만족스러운 섹스에 이를 수 있음을 조언해주었다.

쾌락과 생명잉태의 두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섹스'...섹스= 사랑인가???라는 단순한 도식에 대해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연인의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다시 바라봐야 할 거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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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을 하다가 이웃이 고양이 언어를 번역해 놓은 것을 보았다.

 니양 X 100

뭐 중요한 일하고 있었는가? 그냥 잊어버리게. 인생 뭐 별거있겠나.

 

야옹 X 100

고통없는 삶이 어딨겠나. 거기에 비하면 고양이 울음은 껌값이라네.

 

빠깔룽X100

내 지루함을 자네가 달래주기를 바라지는 않네만, 이 권태를 좀 나눠가짐세.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지않나.

 

니야니야

내 하는게 바쁘네만, 자네에게 잠시 쪼개어 주겠네.

 

와~아웅X100

인내가 독이 되는 경우는 없다네. 참고참고참고 사는게 인생이라네.

 

정서불안 고양이와 정서불안 남자가 함께 한 일주일.

왠만한 비꼬는 말은 참을 수 있는 인내를 기르고 있다....

 

이 분을 보면서 든 생각 하나, "세상은 넓고  재주가진 사람도 많구만. 고양이 언어까지 번역하다니.."

빨랑 나가서 지나가는 고양이를 붙잡아 대화를 나눠 봐야겠다...

니야니야~ 빠깔룽~ 니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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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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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으로부터 토요일에 많은 동화책 꾸러미를 선물받았다. 그 책 중 한권인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대해 글을 쓰다가 날려 먹은 후, 더이상 의욕상실로 리뷰 쓸 마음이 나지 않았다.(꽤 길게 썼는데 말이지..쩝.)

딴 짓을 좀 하다가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었다. 예전 사노 요코의 이 동화책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그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름도 없는 얼룩고양이의 뚱한 표정..."난 내 거니까 날 건드리지마." 란 표정처럼 보여 신기했었다. 난 고양이를 한번도 길러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강아지들과 어린 시절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그 녀석들의 행동이나 표정이 나타내는 것을 더 잘 안다. 항상 달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고 남은 도시락반찬을 나누어 주고 싶은 녀석들. 함께 정을 나눈다는 것이 뭔지 잘 아는 녀석들이다. 광활한 대지를 뛰어다니던 자유와 원시성을 던져 버리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로 작정했던 개의 조상들이 어떤 마음에서 그와 같은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종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첫번째 동물이 아닌가 한다.   물론 개의 철썩같은 믿음을 배반하는 인간이 있어 그들의 삶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에 대해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닥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그러나, 잘 모르니까 이런 책을 읽는 것이다.. 도대체 고양이란 놈은 어떤 놈인가???? 

사노 요코가 보여주는 고양이는 '얼룩 고양이'이다. 100만 번을 산 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이 얼룩고양이는 백만번을 태어났다 죽으면서 수많은 주인들을 갈아치운다. (굳이 주인을 갈아치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고양이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은 이 고양이가 죽을 때 눈물을 흘렸지만, 이 고양이는 주인들을 모두 싫어했었기 때문이다.) 주인을 자처하던 인간들은 자신들 나름의 사랑법으로 고양이를 사랑했지만 이 고양이는 그 방법이 싫었던 모양이다. 생사의 굴레를 100만 번이나 돌면서 그 모든 기억들을 가지게 되어 더욱 매력적인 얼룩고양이가 되었고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고양이 목숨의 어느 한 때,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가 된다. 오직 자신만의 고양이...그런 자신이 너무 좋았던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이 찾아와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데도 차갑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여기서 난 고양이의 첫번째 특징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란 놈에게는 자기가 싫으면 아무리 친절하게 해주어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도도함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녀석,,그림 속의 뚱한 표정에서부터 알아봤다니깐... -_-)

이 도도한 얼룩 고양이는 전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난 백만번이나 죽어봤다고!"를 떠들어 대는데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 (드뎌 임자를 만난 거지..너의 방식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넌 몰랐냐? ) 어쨋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 앞에서 자존심 상한 얼룩 고양이는 매일 찾아가서 "너 죽어본 적 있냐?" 등등의 영적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나,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라며 공중돌기 세번을 하기도 하면서 쌩쑈를 펼치지만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또 고양이의 두번째 특징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호기심이다.  자기 자신을 무척이나 좋아라~하는 것들은 남에게 그렇게 어필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자신의 매력을 인정받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상대편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는 특성이 있다. 어쨋든 고양이 녀석의 두번째 특징을 알아내고는 이 녀석들과 지내려면 적당히 관심을 끊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자기 잘난 척을 해도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의 관심을 끌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한 얼룩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라며 하얀 고양이에게 물어본다.

그때서야 하얀 고양이는 "으응"이라고 대답을 한다.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줘 본 적이 없던 얼룩고양이는 자신을 낮추고 내 이야기가 아닌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만 사랑이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하얀 고양이 곁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얀고양이가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낳고 그 고양이가 훌륭한 도둑 고양이가 되어 뿔뿔히 흩어질 때도 함께 있었고 하얀 고양이가 죽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

고양이의 세번째 특징자신의 곁을 내어 줄 때는 자기 마음도 함께 내어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곁을 내어주는 것은 영원히 함께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내고 나니 '꽤 멋진 놈이잖아!'란 생각마져 드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에만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주문같은 것이 고양이에게는 있는 것 같아서 100만번이나 살고 죽고 하는 그 윤회의 피곤함에 시달리며 하나하나 스스로 만들었을 '도도함'이라던지 '호기심'이라던지 하는 고양이의 특징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사노 요코의 '100만번을 산 고양이'를 보고 나서 갑자기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란 말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 녀석도 윤회의 굴레에 시달리며 스스로 체득한 '도도함'으로 나의 곁을 비켜갔지만  이젠 그 녀석의 차가움을 미워하지 않을란다. 생명들 모두 나름의 운명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느끼게 만들어준 이 동화책..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이리저리 우리의 편의대로 생각해버리고 사랑한답시고 그들을 가두어 두고 그들의 운명을 조절하려 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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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3-3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해요. 반가운 마음에 인사 남기고 갑니다^^

클레어 2005-03-3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이라크의 아이들은 이름이 있다
그들은 이름없는 존재가 아니다
이라크의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이 있다
그들은 전쟁 사망자통계의 숫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라크의 아이들은 미소가 있다
그들은 음침한 존재가 아니다
이라크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생기있고 명랑하게 웃는다
이라크의 아이들은 희망이 있다
그들은 희망없는 존재가 아니다

- 데이빗 크리거, '이라크 아이들은 이름이 있다'
 
 
 
이라크 전 발발 2주년.
 (어제가 전쟁발발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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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적, 엄니!!

이번 토요일,일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의 집'이라 처음 부르게 된 곳에 한꺼번에 와주신 날이었습니다.  집안 일에는 젬병인 나에게 그들을 대접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슈퍼를 왔다갔다하고 그들과 먹을 식사를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할 꺼리를 머리속에서 그려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일상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요? 그런 즐거움을 오랬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그런 번잡함 속에서 툭탁거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마실 커피를 타는 시간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요? 쌓여있는 일들에 묻혀 보지 못했던 '파랑새'는 그렇게 내 주변에 존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니께서는 이런 일회성 행복에 빠져 즐거워하는 자식에게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옹졸함'을 무척이나 탓하셨었지요. 꾸중듣는 것을 피곤해하는 자식의 속내까지 꽤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빠지는 살에 대해서 '밥은 잘 먹냐?'라고 물으신 것도 엄니셨지요.

적이라서 그렇게 속속들이 아시는 겝니까? 자식새끼는 당신의 속내를 짐작할 수도 없는데, 왜 자꾸만 당신 눈에는 모든 것이 들켜버리는 것인지요? 숟가락 갯수와 젓가락 갯수가 넉넉치 못한 것, 이부자리가 달랑 내 편위대로 하나인 것, 오늘을 살면서 내일 아침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 무계획성, 그런 것들을 꼬집어 내시는 엄니가 저는 너무 불편했습니다. 꾸중하면서도 가슴 아파하는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려서 그런지 당신의 그런 마음이 절 더 불편하게 했습니다.

가져오신 대추로 너 먹일 약 달여야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당신께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젠 좀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깐."

"알아서 한다는 것이 그렇냐?"

아~ 당신과 나의 싸움은 이렇듯 뻔한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늦은 시간 당신은 가기싫어 주억거리고 있는 자식을 끌고 약 달일 들통과 내일 식단에 쓸 찬거리를 샀고, 저는 또 그것을 말없이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릇들을 정리하며 "잠자리가 바뀌니 잠이 안온다."시며 저랑 대작을 원하시던 엄니. 심심한 와인으로 잠오기는 글렀군...하시면서 당신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가요.

아침 일찍, 잠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식에게 밥을 해 먹이고, 놀러온 자식의 친구를 붙잡아 앉히고 당신은 똑같이 용돈을 주셨지요. 둘다 어리둥절해 하고, 친구녀석은 더욱더 놀라서 "어머님~ 이러시지 않아도..."라고 말을 흐리는 사이, 당신은 화통하게 웃으시며 "너~ 교수되면 더 좋은 거 선물해주면 되지 않겠냐?"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아직 '전임강사'의 꼬리를 달고 아득바득 학생들과 싸우고,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던져주는 교수의 압박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날아와 준 친구녀석은 너무나 먼 꿈인 "교수"라는 말을 쉽게 내뱉으면서 그 때, 멋진 선물까지 기대한다는 엄니의 믿음에 너무나 황송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라고 그 녀석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지요.

떠나시는 마당에도 들통속의 대추와 생강을 잘 달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자주 마시라는 말을 하신 엄니. 친구녀석처럼 착하게 어르신에게 "예~"하는 이쁜 짓은 죽어도 하지 않는 자존심만 쎄고 어리버리한 자식에게
"건강해라~ 믿는다.'"한마디만 던져 놓고서 당신의 일이 기다리는 곳으로 황급히 택시를 불러 가셨습니다.

아~ 난 당신을 '나의 사랑하는 적'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적이 될 수 있을런지요. 당신에게 무조건 백전백패하는 제가 그래도 '적'이라고 당신을 부르는 것은 당신의 걱정이 더이상 미치지 않도록 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에 항상 이유를 달아서 "왜? 왜 그렇게 해야하는데?"라고 말하는 싸가지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저이지만 결국 당신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혜속에서 나온 말대로 저는 결국 들통 가득히 물을 붓고 대추와 생강을 달이고 있으니까요.

약을 달이는 달콤한 냄새가 나의 집을 진동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적, 엄니!! 당신의 젖냄새같은 그 냄새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봄, 당신이 남겨주신 그 약을 마시며  상대할 수 없이 엄청난 당신과 대등해지기를 꿈꿀 것입니다. 좀 더 건강해지면 그런 저의 모반의 꿈들이 더욱 구체화 되겠지요. 그 때까지는 계속 상대도 안되면서 당신을 향해 도발을 일삼는 자식과 겨루기 위해 당신도 더 튼튼해지셔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흰머리가 늘어버린 것을 저 또한 보아버렸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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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2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눈물 나잖아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추천 단추를 눌렀답니다.
기특하지 않아요?^^

클레어 2005-03-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특하십니다. 하하~(그런데, 울다가 웃으며 어째어째 된다고 그러던데...( ")a ㅋㅋ)

로드무비 2005-03-2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과 자식 친구에게 똑같이 용돈을 나눠주는 엄마.
정말 멋지네요.
아침부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클레어 2005-03-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엄니께서 쫌 멋지시긴 합니다.. 아마 따라갈라면 똥줄이 빠질듯..에효~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