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0만 번 산 고양이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평점 :
지인으로부터 토요일에 많은 동화책 꾸러미를 선물받았다. 그 책 중 한권인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대해 글을 쓰다가 날려 먹은 후, 더이상 의욕상실로 리뷰 쓸 마음이 나지 않았다.(꽤 길게 썼는데 말이지..쩝.)
딴 짓을 좀 하다가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었다. 예전 사노 요코의 이 동화책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그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름도 없는 얼룩고양이의 뚱한 표정..."난 내 거니까 날 건드리지마." 란 표정처럼 보여 신기했었다. 난 고양이를 한번도 길러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강아지들과 어린 시절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그 녀석들의 행동이나 표정이 나타내는 것을 더 잘 안다. 항상 달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고 남은 도시락반찬을 나누어 주고 싶은 녀석들. 함께 정을 나눈다는 것이 뭔지 잘 아는 녀석들이다. 광활한 대지를 뛰어다니던 자유와 원시성을 던져 버리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로 작정했던 개의 조상들이 어떤 마음에서 그와 같은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종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첫번째 동물이 아닌가 한다. 물론 개의 철썩같은 믿음을 배반하는 인간이 있어 그들의 삶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에 대해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닥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그러나, 잘 모르니까 이런 책을 읽는 것이다.. 도대체 고양이란 놈은 어떤 놈인가????
사노 요코가 보여주는 고양이는 '얼룩 고양이'이다. 100만 번을 산 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이 얼룩고양이는 백만번을 태어났다 죽으면서 수많은 주인들을 갈아치운다. (굳이 주인을 갈아치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고양이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은 이 고양이가 죽을 때 눈물을 흘렸지만, 이 고양이는 주인들을 모두 싫어했었기 때문이다.) 주인을 자처하던 인간들은 자신들 나름의 사랑법으로 고양이를 사랑했지만 이 고양이는 그 방법이 싫었던 모양이다. 생사의 굴레를 100만 번이나 돌면서 그 모든 기억들을 가지게 되어 더욱 매력적인 얼룩고양이가 되었고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고양이 목숨의 어느 한 때,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가 된다. 오직 자신만의 고양이...그런 자신이 너무 좋았던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이 찾아와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데도 차갑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여기서 난 고양이의 첫번째 특징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란 놈에게는 자기가 싫으면 아무리 친절하게 해주어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도도함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녀석,,그림 속의 뚱한 표정에서부터 알아봤다니깐... -_-)
이 도도한 얼룩 고양이는 전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난 백만번이나 죽어봤다고!"를 떠들어 대는데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 (드뎌 임자를 만난 거지..너의 방식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넌 몰랐냐? ) 어쨋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 앞에서 자존심 상한 얼룩 고양이는 매일 찾아가서 "너 죽어본 적 있냐?" 등등의 영적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나,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라며 공중돌기 세번을 하기도 하면서 쌩쑈를 펼치지만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또 고양이의 두번째 특징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호기심이다. 자기 자신을 무척이나 좋아라~하는 것들은 남에게 그렇게 어필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자신의 매력을 인정받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상대편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는 특성이 있다. 어쨋든 고양이 녀석의 두번째 특징을 알아내고는 이 녀석들과 지내려면 적당히 관심을 끊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자기 잘난 척을 해도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의 관심을 끌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한 얼룩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라며 하얀 고양이에게 물어본다.
그때서야 하얀 고양이는 "으응"이라고 대답을 한다.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줘 본 적이 없던 얼룩고양이는 자신을 낮추고 내 이야기가 아닌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만 사랑이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하얀 고양이 곁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얀고양이가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낳고 그 고양이가 훌륭한 도둑 고양이가 되어 뿔뿔히 흩어질 때도 함께 있었고 하얀 고양이가 죽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
고양이의 세번째 특징은 자신의 곁을 내어 줄 때는 자기 마음도 함께 내어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곁을 내어주는 것은 영원히 함께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내고 나니 '꽤 멋진 놈이잖아!'란 생각마져 드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에만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주문같은 것이 고양이에게는 있는 것 같아서 100만번이나 살고 죽고 하는 그 윤회의 피곤함에 시달리며 하나하나 스스로 만들었을 '도도함'이라던지 '호기심'이라던지 하는 고양이의 특징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사노 요코의 '100만번을 산 고양이'를 보고 나서 갑자기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란 말을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 녀석도 윤회의 굴레에 시달리며 스스로 체득한 '도도함'으로 나의 곁을 비켜갔지만 이젠 그 녀석의 차가움을 미워하지 않을란다. 생명들 모두 나름의 운명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느끼게 만들어준 이 동화책..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이리저리 우리의 편의대로 생각해버리고 사랑한답시고 그들을 가두어 두고 그들의 운명을 조절하려 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