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적, 엄니!!
이번 토요일,일요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의 집'이라 처음 부르게 된 곳에 한꺼번에 와주신 날이었습니다. 집안 일에는 젬병인 나에게 그들을 대접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슈퍼를 왔다갔다하고 그들과 먹을 식사를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할 꺼리를 머리속에서 그려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일상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던가요? 그런 즐거움을 오랬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그런 번잡함 속에서 툭탁거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마실 커피를 타는 시간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요? 쌓여있는 일들에 묻혀 보지 못했던 '파랑새'는 그렇게 내 주변에 존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니께서는 이런 일회성 행복에 빠져 즐거워하는 자식에게 '가지고 있는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옹졸함'을 무척이나 탓하셨었지요. 꾸중듣는 것을 피곤해하는 자식의 속내까지 꽤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빠지는 살에 대해서 '밥은 잘 먹냐?'라고 물으신 것도 엄니셨지요.
적이라서 그렇게 속속들이 아시는 겝니까? 자식새끼는 당신의 속내를 짐작할 수도 없는데, 왜 자꾸만 당신 눈에는 모든 것이 들켜버리는 것인지요? 숟가락 갯수와 젓가락 갯수가 넉넉치 못한 것, 이부자리가 달랑 내 편위대로 하나인 것, 오늘을 살면서 내일 아침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 무계획성, 그런 것들을 꼬집어 내시는 엄니가 저는 너무 불편했습니다. 꾸중하면서도 가슴 아파하는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려서 그런지 당신의 그런 마음이 절 더 불편하게 했습니다.
가져오신 대추로 너 먹일 약 달여야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당신께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젠 좀 그만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깐."
"알아서 한다는 것이 그렇냐?"
아~ 당신과 나의 싸움은 이렇듯 뻔한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늦은 시간 당신은 가기싫어 주억거리고 있는 자식을 끌고 약 달일 들통과 내일 식단에 쓸 찬거리를 샀고, 저는 또 그것을 말없이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릇들을 정리하며 "잠자리가 바뀌니 잠이 안온다."시며 저랑 대작을 원하시던 엄니. 심심한 와인으로 잠오기는 글렀군...하시면서 당신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가요.
아침 일찍, 잠 속을 헤매고 있는 자식에게 밥을 해 먹이고, 놀러온 자식의 친구를 붙잡아 앉히고 당신은 똑같이 용돈을 주셨지요. 둘다 어리둥절해 하고, 친구녀석은 더욱더 놀라서 "어머님~ 이러시지 않아도..."라고 말을 흐리는 사이, 당신은 화통하게 웃으시며 "너~ 교수되면 더 좋은 거 선물해주면 되지 않겠냐?"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아직 '전임강사'의 꼬리를 달고 아득바득 학생들과 싸우고,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던져주는 교수의 압박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날아와 준 친구녀석은 너무나 먼 꿈인 "교수"라는 말을 쉽게 내뱉으면서 그 때, 멋진 선물까지 기대한다는 엄니의 믿음에 너무나 황송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라고 그 녀석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지요.
떠나시는 마당에도 들통속의 대추와 생강을 잘 달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자주 마시라는 말을 하신 엄니. 친구녀석처럼 착하게 어르신에게 "예~"하는 이쁜 짓은 죽어도 하지 않는 자존심만 쎄고 어리버리한 자식에게
"건강해라~ 믿는다.'"한마디만 던져 놓고서 당신의 일이 기다리는 곳으로 황급히 택시를 불러 가셨습니다.
아~ 난 당신을 '나의 사랑하는 적'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적이 될 수 있을런지요. 당신에게 무조건 백전백패하는 제가 그래도 '적'이라고 당신을 부르는 것은 당신의 걱정이 더이상 미치지 않도록 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에 항상 이유를 달아서 "왜? 왜 그렇게 해야하는데?"라고 말하는 싸가지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저이지만 결국 당신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혜속에서 나온 말대로 저는 결국 들통 가득히 물을 붓고 대추와 생강을 달이고 있으니까요.
약을 달이는 달콤한 냄새가 나의 집을 진동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적, 엄니!! 당신의 젖냄새같은 그 냄새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봄, 당신이 남겨주신 그 약을 마시며 상대할 수 없이 엄청난 당신과 대등해지기를 꿈꿀 것입니다. 좀 더 건강해지면 그런 저의 모반의 꿈들이 더욱 구체화 되겠지요. 그 때까지는 계속 상대도 안되면서 당신을 향해 도발을 일삼는 자식과 겨루기 위해 당신도 더 튼튼해지셔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흰머리가 늘어버린 것을 저 또한 보아버렸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