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인간이라 - 우리로서는 물론 이의가 전혀 없고말고. 언젠간 인간이 될 게 아닌가! 좀더 참고 좀더 버텨야 해. 1만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 친구들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뭐니뭐니 해도 크게 보고, 지질학적 시대 단위로 시간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네. 그러면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인간의 시대가 올 때 그 자리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자취와 몽상과 예감뿐이지만 - 지금 인간은 그 자신의 선구자일 뿐.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사샤 치포츠킨, [달빛 산책] 중에서

위에서 언급한 문장은 이 책의 가장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글이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란 책을 어제, 오늘 읽고 가장 마음에 든 문장이었고, 로맹 가리의 생각이 집약된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맹 가리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미셸 푸코(Michell Foucault :1926-1984)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사고의 고고학이 잘 보여주듯 인간은 최근의 발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일 것이다." 라고 말한 푸코는 지난 150여 년간 인간이 어떠하다! 라고 규정해온 지식체계의 총체, 혹은 앎의 단층(에피스테메)이 새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와 비슷한 내용을 로맹 가리도 사샤 치포츠킨의 글을 인용하며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로맹 가리와 푸코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려낸 15편의 단편들은 이 시대(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마치 카메라 앵글로 보여주듯 다루고 있다. 그 내용들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꼬리, 코를 주무르며 코끼리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모두 다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카메라 앵글이 파악한 인간의 군상은 여태껏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기묘한 모습의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로맹 가리의 상상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생각과 정의와 이론들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틀어지고 꼬여져 묘한 모습을 나타내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읽는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스스로 꺼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태계 프랑스인인 그는 이 단편 속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서 그 전쟁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 예로 단편 [어떤 휴머니스트]에서 '칼'은 나찌의 눈을 피해 어떤 누구보다도 자신이 신뢰하는 하인부부에게 자신의 재산을 잠시 맡아달라고 하고는 집의 지하실에 숨어들게 된다. 전쟁 중 그의 재산을 관리하고 그에게 꼬박꼬박 음식과 함께 바깥의 상황을 알려주던 하인부부의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지만 그들이 그에게 제공해주는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짓말에 그가 계속 속아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집 지하실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그는 하인부부의 한결같은 충성심에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바깥에서 책을 읽으며 지켜보는 독자들은 그의 재산을 모두 집어삼킨 채 호화로운 생활을 보내는 그 하인부부를 보면서 그의 어리석음과 하인부부의 '휴머니즘'의 이중성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고 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속에 나오는 '글루크만'이란 인물을 보도록 하자. 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 지휘관이었던 '슐체'에게 매일 고문을 당하다가 도망쳐 나온 그는 안데스 산맥의 꼭대기에서 라마 몰이꾼으로 15년을 숨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우연히 같은 수용소에 있었던 다른 친구에게 발견되어서 재봉사로 일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밤마실을 다니게 된다. 그것도 음식이 잔뜩 든 바구니를 들고서. 친구는 그의 기행이 궁금해서 어느날 밤, 그의 뒤를 밟게 되었고 어떤 집 지하실에서 '글루크만'을 고문하던 '슐체'에게 술을 따르고 음식을 주고 있는 '글루크만'을 보고는 충격을 받게 된다. 도데체 왜 그와 같은 괴물에게 음식과 술을 주고 있나? 라는 질문이 머리속을 관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글루크만'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가 다음 번엔 잘해준다고 약속했다네!" 전쟁이 끝난지 15년이 지난 후에도 이 사나이를 따라다니는 악몽과 같은 기억과 전쟁속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해야했던 비굴한 모습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글루크만'을 따라다니고 있다. 오! 이 사나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새들이 왜 페루에 와서 죽는지를 인간이 파악할 수 없듯 인간또한 인간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DNA가 모두 밝혀지고 인간의 체성분 하나하나가 과학의 힘으로 낱낱히 해부된다고 해서 인간은 인간을 알 수 있을까?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로맹 가리는 이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15편의 짧고 재미있는 단편들 속에다 집약해 놓고 마지막 편인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인류의 미래의 모습(유익한 방사선으로 지표면과 대기가 비옥해진 덕택에 인류는 생물학적 침체기를 벗어나게 된 거란다. 그후 여러 차례의 가속화된 진화를 겪게 되었지.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그런 진화로 인해 우리의 모습이 바뀌고 다양해지고 ..[P254])을 내보이면서 현재 찬미되고 있는 과학과 이성에 대해 "아버지 시대의 인류는 이제 끝나버렸소.[P268]"라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  

인간의 역사가 여태껏 지각변동을 겪듯 급작스런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놀라울만치 예리한 눈으로 파악한 로맹 가리는 미래의 인간들에게 어리석고 비열하며 전쟁과 광기와 소외에 흔들리는 선구자적 인간(여기서 의미하는 선구자라는 것은 앞서 살았던 인간이란 뜻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으로 비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대한 작가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의 인간들을 위해 진실로 선구자(者)가 되라'고 말해주는 작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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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좋은 시절 다 끝났군.

잠정적인 백수의 니나노 판도 오늘이면 끝이란 생각에 마음만 바쁘다.

거기다 3월달의 호랑방탕한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카드고지서..컥!! -0-;;

4월은 허리띠 졸라매는 달, 로또 사는 달, 빡세게 일하는 달이 될 전망이라

누가 말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을 벌써부터 실감하고 있다.

아~

까칠한 인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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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3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꺼칠한 인생입니다.
인생, 거 뭐 있습니까.--;;

클레어 2005-04-01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4월이군요. 좋은 4월 보내십시오. 여우님..
 
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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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안녕! 리디아!  어린이책을 볼 때마다 난 내 나이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하려면 너의 또래가 되어야 할텐데 너의 생각과 웃음을 함께 공명하기에는 나는 나이 먹어 버렸다.  그래도 서평의 형식을 빌어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너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 "순수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한복판, 걸을 때마다 퉁~퉁~ 소리가 날 것 같은 철제 계단을 오르고 올라 옥상에 숨겨진 너의 비밀정원에서 환하게 웃으며 모종삽과 키 큰 해바라기 화분을 들고 서서는 넌, "어서오세요~"라고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지.  지인이 건네준 책 표지에서 널 처음 보고는 나도 그 철제 계단을 밟고 퉁퉁~ 소리를 내며 그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단다.  예전 우리집도 옥상이 있었거든. 아주 아주 오래된 2층집인데 계단은 나선형 철제 계단이었고, 그 계단을 밟고 올라서서  세탁기에서 막 꺼낸 뽀얀 빨래들을 몇 줄 안되는 빨래줄에다가 널곤 했었어. 여름철이 되면 하얀 구름들이 피어오르고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빨래들이 나부낄 때, 옥상의 한 켠 모서리에 누워서 바람을 느끼곤 했었지.  거기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소원을 비는 종이학을 동생들을 패가면서 잔뜩 접어선 유치하기 짝이없는 소원들을 빌면서  공중에다 뿌리곤 했었어. 학들은 날지 못하고 밤하늘 창공을 가르며 곤두박질쳤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달님과 별님들을 바라보고 또 옥상에 누워 있곤 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몇 개 사라져 버린 종이학을 보면서 소원을 싣고 하늘로 날아올랐을 거란 생각으로 마음이 들떠 하루종일 깔깔~웃곤 했었어.

옥상...나에게 옥상은 그런 곳이었어. 벼락치는 날에는 번개를 보기 위해 올라가고, 백과사전에서 봤던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던 곳. 그런 옥상에서 뭔가 깜찍한 일을 벌이고 있는 널 보면서 갑자기 나도 옥상이 그리워지지 뭐니.. 옥상!! 고소공포증 때문에 아래 내려다 보는 것을 끔찍해하면서도 가끔 도망치고 싶을 때 찾던 그 옥상 말이야..도시 속에도 그런 곳이 있어. 너도 알지? 리디아?  비밀스럽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만의 공간, 나의 비밀장소, 나의 유토피아, 나의 천국 말이야. 

리디아! 난 어려워진 살림살이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님과 할머니와 긴 포옹을 나눈 후 헤어져서 도시의 거대한 플랫폼에 도착해 서 있는, 조그마한 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외삼촌에 대한 단서라고는 엄마와 같은 모습의 코를 가진 남자라는 것 뿐이었고, 작은 너에게 도시는 너무나도 커 보였어. 두렵지 않았니? 결코 웃지 않는 외삼촌에게 가방을 넘기는 너의 모습은 왠지 두려워 보이기도 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단다. 그런데, 넌 용감하게 도시를 둘러봤고 집집마다 화분이 놓여있다는 것을 발견해 내곤 "내가 일할 이 골목에 빛이 내리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 오~ 리디아! 나는 너의 말을 듣고 무척 부끄러워졌다. 나의 눈으로는 도시속에서 그런 빛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 어쩌면 나이 들어버린 만큼 내 눈에는 더께가 씌어져 버린 모양이다. 무표정으로 내 주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들도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새벽녘 집 주위에서 울려퍼지는 오토바이들의 경적소리 "빠라빠라빠라밤"이나 이웃집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는 귀를 막으면 그 뿐,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런 나에게 이 도시 속에서 '빛을 찾는다.'라는 일은  도시속에서 따스함을 찾는 일만큼 어려운 일일 거 같다. 어쩌면 도시의 차가움은 내가 걸어 잠근 마음의 문 때문이겠지만 말이지. 

리디아!  작은 소녀, 리디아! 넌 용감하게 도시속에서 살아가더구나.  외삼촌의 빵집에서 빵을 반죽하고 네가 아는 꽃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네가 좋아하는 꽃을 여기저기 심으며 빛을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 가면서 말이지. 너의 순수함, 너의 꽃에 대한 아름다운 애정은 이웃들까지 전염시켜서 너에게 꽃을 심을 화분과 그릇을 주며 널 '원예사 아가씨'라고 부르게 했고, 도시는 더이상 크고 낯선 도시가 아니라 리디아의 꽃이 피어 있어 누구나가 꽃향기를 맡고 행복해 하는 도시로 변해 있더구나.  어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리디아, 넌 해낸거야!  그런 일을 해내고도 넌, 그 도시에서 웃지 않는 오직 한사람, 너의 외삼촌을 위해서 옥상에다가 외삼촌을 초대하는 파티를 벌여 외삼촌을 불러 들였어.. 어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그런 파티였고, 아름다운 파티였다.  

리디아! 그렇게 도시를, 사람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다시 시골마을로 돌아가게 된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난 세상에서 임무를 끝낸 천사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어. 그 커다란 외삼촌을 작은 두팔을 벌려서 꼭 안아주는 너. 그리고, 그런 소중한 너를 기차 플랫폼에서 꼭 끌어안고 있는 외삼촌은 아마 결코 서로를 잊지 못할테지..그리고, 네가 만들어준 작은 기억들을 기억하며 도시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꽃을 키워갈거라 생각해.

리디아! 순수함을 잃어버린 나또한 마음의 문을 열어 내 마음의 꽃밭을 용감히 가꾸어 가면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좋아질까? 나이만 먹고 의심만 많아져 버린 나지만, 너의 웃음과 네 순수함이 만들어 놓은 그림책 속 아름다운 세상을 믿어보기로 했다. 순수한 너의 눈에 비쳤던 그 빛, 그리고 그 빛을 믿고 열심히 만들어 갔던 너의 발자취의 진실함이 그걸 증명해주었으니까. 물론 네가 외삼촌에게서 따뜻한 미소와 포옹을 받을 때까지 오랜시간을 기다렸듯이 결코 빨리 이루어지거나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루어질거란 작은 희망을 품게 된 것은 네가 나에게 보여준 빛이다.

리디아! 작은 천사! 파라다이스를 보여준 소녀야! 안녕! 이 안녕은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안녕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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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 선생을 만났을 때 ‘지금 한국은 엄청난 위기에 있기도 하고, 이것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알몸 박정희』와 『알몸 대한민국 빈손

김대중』을 쓰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었거나, 문체가 지나치게 직선적이어서였는지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내용은 비해서 그랬다는 것이지, 전혀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상천 선생은 ‘지금 독도를 둘러싸고 있는 한일 간의 대립문제가 한미일 안보체제를 바꿀 수 있는 커다란 문제인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거나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 문제를 비롯하여 박정희 현상,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빛과 그림자, 교육 문제, 월드컵 등 10여개의 주제로 나눠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대담을 해서 인터넷에 게재하자는 제안을 하셨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 대담은 그 첫 번째인 독도를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한 얘기인 ‘독도가 한미일 안보체제를 바꾼다!’이다.


최상천 선생은 특유의 감상적이고, 직설적인 어투로 ‘한승조나 지만원 같은 사람은 극우세력이 아니라 민족자학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고, “일본 정치인들이 망언을 일삼고,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시마네 현의회가 ‘독도의 날’을 조례로 제정하고, 이런 일본의 우경화가 우리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미일 안보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를 칠 수 있는 기회이고, 약한 고리를 치는 전략은 과거사 청산인데, 그 핵심 포인트는 대일 개인 청구권 지원이다. 이를 통해서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잔학상을 드러내고, 반성도 없고 배상도 없는 일본 정부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일본의 우경화도 상당히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진정으로 자국민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고, 남북공조와 한중공조를 통해서 자주 외교를 펼치고, 나아가서는 자주적 국제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독도가 한미일 안보체제를 바꾼다!


▼ 지승호(이하 지) - 일본 시마네현의회는 ‘다께시마의 날’을 지정했고(3.16), 일본 대사나 극우 정치인들이 공공연하게 망언을 일삼고, 한국의 극우들도 덩달아서 민족자학적인 망발을 하고 있습니다.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찬양한 글을 일본 극우 잡지에 실은 것이나, 지만원 씨가 한승조 씨의 논조를 옹호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나, 한국민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왜 이러는 겁니까?


* 극우가 아니라 민족자학세력이다


▲ 최상천(이하 최) - 좀 정확하게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승조, 지만원 같은 사람들을 ‘극우’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극우는 반드시 배타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극우의 이념이나 심리는 방어적인 국수주의거나 공격적인 민족우월주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 머리와 가슴에는 민족주의는커녕 민족의 그림자도 없어요. 자나 깨나 일본이 근대화의 은인이고, 미국이 대한민국의 구세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사대주의와 민족자학이 골수에 박힌 사람들이에요.


한민족은 도무지 자립 능력이 없고, 일본이나 미국의 보호를 받아야 안전하고 행복한 종족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죽하면 3.1절이나 8.15에 성조기 흔들며 ‘미국 찬양 데모’를 하겠어요? 이들이 극우라면, 한국 극우가 아니고 ‘미국 극우’거나 ‘일본 극우’죠.


▼ 지 - 왜 하필이면 요즘 같이 예민한 시기에 망언이 터져 나오는 걸까요? 혹시 일본 극우, 미국 극우와 장단을 맞추는 것 아닙니까?


▲ 최 - 장단을 맞춘다! 그 말 참 그럴 듯 합니다. 한국의 민족자학세력은 원래 독재 권력의 하수인 집단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이들은 독재정권의 요구에 따라, 장단에 맞춰서 행동하는 집단이었어요. 어용학자들은 독재체제의 이념과 정책을 제공하고, 제도언론은 독재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관변단체들은 공공연하게 폭력과 테러와 관제데모를 하면서 독재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에 자기 정체를 확실하게 드러낸 한승조도 대표적인 유신체제 이데올로그(체제이념 제공자)였잖아요.


그런데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어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러지는 ‘민주화정권’ 10여 년 동안 권력의 비호도 사라지고 재정지원도 거의 끊겨버렸어요. 이렇게 되니까 독재 하수인 집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독재 하수인 집단으로 있을 때는 그들 내부의 차이나 색깔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친일파냐, 친미파냐, 반북파냐, 기독교냐, 유교(가부장파)냐 따위 진짜 정체는 별로 드러나지 않고, 어용 집단이라는 성격만 드러났죠. 하는 일도 아주 단순했어요. 민주화세력, 진보세력을 향해서 “저놈이 빨갱이다. 저놈 죽여라”는 공격만 하면 되니까 자기 정체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죠.


이런 식의 “저놈 죽여라” 따위 공격만 일삼는 집단은 상대방의 정체만 문제 삼을 뿐 자기의 정체는 드러낼 필요가 없었어요. 이런 정체 숨기기는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김대중은 빨갱이다”는 주장을 요리조리 각색해서 물고 늘어지고,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자나 깨나 노무현을 씹어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대통령 죽이기’의 절정은 역시 탄핵이었죠.


대통령 탄핵은 수구세력이 일 년 넘게 ‘노무현 죽이기’를 한 것의 하이라이트거든요. 그런데 이게 나라사람들의 힘에 의해 뒤집혀버렸어요. 헌법재판소도 여론에 순응했고요. 이렇게 되자 수구세력은 표적을 잃어버렸어요. 함부로 공격하다가는 여론에 포위되어버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과거에는 독재정권이 가장 무서웠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여론보다 무서운 게 없습니다. 민족자학세력이 기댈 곳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와 보수 기독교밖에 없는데 요즘은 한나라당도 외면해요. 조선일보와 기독교는 뻥만 쳤지 별로 도움이 안돼요. 지금 한국의 민족자학세력은 너무너무 외롭고 배가 고파요.


그러면서 특이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증상인데, 하나는 독재정권의 하수인 집단으로 뭉쳐있던 민족자학세력이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이념에 따라서 분열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일본숭배 군국주의세력, 미국숭배 반공 기독교세력, 전통적 가부장세력 등등, 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죠.


* 한승조의 SOS


▼ 지 - 분열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 최 -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기의 노선과 행동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고, 친미 데모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일본의 도발에 대해서도 입장을 안 내놓을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이 과정에서 색깔을 안 드러낼 수가 없죠. 한승조 망발사건도 그래요. 한승조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자유시민연대는 한승조 씨를 제명해버렸거든요. 미국숭배 반공주의와 일본숭배 군국주의는 족보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는 겁니다.


독재정권이 던져주던 먹이가 없어진 것도 한 요인입니다. 수구는 요즘 배가 고파요. 그러니까 각개 전투를 해서라도 자금을 확보해야 해요. 그럴 때는 분파별로 행동할 수밖에 없죠. 자금 확보를 위해서 각자의 색깔에 따라 미국 쪽, 일본 쪽, 기독교 쪽에다 러브콜을 보내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죠.


▼ 지 - 한일관계가 아주 민감한 시기에 한승조 씨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찬양한 것도 그런 의도가 있는 것 아닙니까?


▲ 최 - 나도 그렇게 봅니다. 수구세력의 국내 기반은 갈수록 약해지고, 다음 대선에서도 깨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졌던가 봐요. 한승조 씨의 “공산주의? 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단죄의 어리석음 : 日韓倂合을 재평가하자”라는 글도 그런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호소할 곳도 별로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일본 우익한테 SOS를 타전한 거죠.


▼ 지 - 그래서 한승조씨가 직접 일본어로 써서 일본 우익 잡지에다 실었군요.


▲ 최 - 그렇습니다. 한국의 수구세력에게 호소하는 글이라면 당연히 『월간조선』 같은 데 실어야죠. 그런데 일본 정통 우익 잡지 『正論』에다 실은 겁니다. 누구한테 호소하는 글인지 확실하잖아요. 내용도 그래요. 한국이 러시아나 서양한테 안 먹히고 일본에 먹힌 게 운수대통 한 것이고, 조선인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축복해야 하고, 근대화를 시켜준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어요. 일본 우익도 이웃 나라 눈치 보느라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얘기죠. 일본 우익이 안 까무라치고 베기겠어요?


▼ 지 - 한승조씨의 커밍아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좀 오버한 것 아닙니까? 국내에 알려지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 최 -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절체절명의 위기의식 때문에 앞뒤를 가리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요?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에도 깨지고 수구세력은 망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으로 일본 우익한테 긴급구조를 요청한 거라고 봅니다. 결과는 수구세력의 죽음을 재촉한 꼴이 되고 말았지만요. 한승조씨, 지만원씨가 이뻐 죽겠다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자발적으로 홀딱 벗다니, 너무너무 고맙다고 그래요.


▼ 지 - 그렇다면 그들의 정직성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어떤지 훤히 알면서 그런 파격적 커밍아웃을 하는 건 놀라운 정직성 아닙니까?


▲ 최 - 얼른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하다면 좀 더 일찍, 한국인을 상대로 밝혔어야죠. 일본 우익 잡지에다 밝힌 건 의도가 불순해요.


▼ 지 - 이 일로 인해 논쟁이 치열하고, 많은 국민들이 어이가 없어 하는데요.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 최 - 앞으로도 이런 자폭적인 커밍아웃이 계속되겠지만, 지금 정도의 주목은 못 받겠죠. 이제는 ‘미친놈 잠꼬대’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사회에서 독재정권 하수인 집단, 민족자학세력이 퇴장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이 분열되고, 분열되면서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폭로하고, 그러면서 몰락의 길을 질주하고 있는 겁니다.


부시의 일방주의, 독도 문제, 이런 문제들을 통해서 한국에는 민족자주세력, 평화세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주평화세력이 커질수록 미국 사대주의 세력, 일본 사대주의 세력, 미국 일본 다 섬기는 곱빼기 사대주의세력은 갈수록 미친놈 취급을 받겠죠.


특히 젊은 세대한테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민족자학세력은 퇴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익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새로운 우익이 등장하겠죠.


▼ 지 - ‘새로운 우익’이 무슨 말씀입니까?


▲ 최 - 한국인의 이데올로기는 90%가 민족주의이고, 심리적으로는 99% 이상이 민족주의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토양에서는 반드시 우익 정치세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진보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봉건성, 파시즘, 민족우월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까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80%나 되잖아요. 한국에는 민주화운동가는 수없이 많아도 진짜 민주주의자는 드뭅니다. 운동권 중에서도 80% 이상은 민주주의자라기보다 민족주의자입니다.


▼ 지 -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세요.


▲ 최 - 지금 주제가 아니니 ‘한국 민족주의의 힘과 함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얘기합시다.


* ‘독도 문제’를 보려면 한미일 안보체제를 보라!


▼ 지 - 요즘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요동치고 있는데요?


▲ 최 - 독도문제의 핵심을 지금까지 정부가 잘못 짚고 있었습니다. 첫째, 한국정부가 ‘독도는 우리 땅’이니까 문제를 안 일으키는 게 최고라는 식의 ‘조용한 외교’ 노선을 고집했는데 그게 한계에 왔습니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조용하려고 해도 일본이 가만 놔둬야 말이죠.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서 국제사법제판소에 가져가려는 속셈이라고 하는 말도 옳지 않습니다. 한국이 안 가면 그만이니까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 지 -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조용한 외교’만 고집한 겁니까?


▲ 최 - ‘조용한 외교’를 액면 그대로만 보면 곤란합니다. 동북아 국제질서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이 한미일 안보체제에 묶여 있다 보니까, 한국 정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일우호관계나 한미일 안보체제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려고 해요. 웬만하면 한미일 관계에는 불협화음을 안 내려고 했죠. 다시 말해서 한미일 안보체제는 한국 정부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라는 얘기입니다.


▼ 지 -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무현 정권은 독도 문제를 정면 대응하고 있거든요. 독도 관광을 전면 허용하고, 한일관계 자체를 재정립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까? 이건 ‘성역’ 침범 아닙니까? 노무현 정권은 이전 정권하고 다른 겁니까?


▲ 최 -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관계에도 불협화음이 제법 많았잖아요.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개발을 계속하고 전기도 보내고 있어요. 불협화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주성을 발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독도 문제에서는 더 그래요. 노무현 정권의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이고, 한일관계는 외교관계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독도문제는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주성이 걸린 문제로, 한일관계, 나아가서는 한미일 안보체제보다 상위의 테제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불협화음 정도가 아니라 한일관계를 손상하더라도 독도문제는 절대로 밀릴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이 이전 정권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문제인식입니다.


▼ 지 - 노무현 정권이 자주 정권이라는 뜻입니까?


▲ 최 - 아직 자주 정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자주 국가를 추구하는 정권’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전 정권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 노선을 국방 방면에서 표현한 것이 ‘협력적 자주국방’인데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까지는 한국의 지배 엘리트한테는 아예 자주독립국가라던가 ‘국가의 자주성’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미국은 절대자요 하늘이었고, 미국의 요구는 천명(天命) 이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을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건 천명을 어기는 행위, 천벌을 받을 짓이었어요. 중국왕조와 조선왕조의 〈천자국 - 제후국〉 관계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은 ‘미국에 반대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경이로운 미국 추종 국가’로 유명했고, 미국도 한국을 ‘미국이 키운 모범 국가’로 선전했고요. 그래서 미국에 버림받을까 안달하고, 한미일 안보체제에 목숨을 걸었어요. 냉전체제, 분단체제에 안주하는 반공국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미국의 보호와 한미일 안보체제는 숙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한미일 안보체제는 미국 주도의 〈미일한 반공동맹〉을 벗어나지 못했죠.


▼ 지 - 김대중 정권 때부터 변화가 일어났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요?


▲ 최 - 김대중 정권 때부터 많이 달라집니다. 첫째, 대한민국을 반공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바꾸기 위해서 ‘국민의 정부’를 자칭합니다. 둘째, 남북의 상호부정과 대결에 기초하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민족화해를 추구하는데 그 결실이 6.15공동선언입니다. 셋째, 국제적 냉전체제와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4강 외교를 추구합니다.


이런 과정에 미국도 바짝 얼었어요. 김대중 정권을 엄청나게 압박합니다. 김대중이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맺고 국방장관 회담을 정례화하자, 부랴부랴 클린턴이 한국으로 날아올 정도로 다급했어요. 김대중이 계속해서 남북화해를 추구하고 미국의 MD(미사일 방어체계)를 거부하자, 부시 정권은 노골적으로 김대중을 짓밟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주권국가의 원수를 ‘this man’이라고 비하했겠어요.


이렇게 김대중이 한국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한국 언론이 한 짓을 보면 참으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조중동은 미국 편에 서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조롱하기 바빴어요.


그렇지만 김대중 정권은 대한민국의 자주성을 강하게 밀고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우선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과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김대중 정권이 한미일 안보체제의 핵심이랄 수 있는 〈미일한 반공동맹〉의 구조를 심하게 흔들어놓은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김대중의 공로입니다.


* ‘약한 고리’를 찾아라!


▼ 지 - 노무현 정권과 미국의 관계는 김대중 정권 때보다 더 불편한 것 같습니다. 불협화음이 끊긴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 최 -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좀 더 명확하게 대미 자주화를 추구했습니다. 후보시절부터 대미 자주노선을 공공연하게 예기했잖아요. 집권 후에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죠. 그러나 별로 성공하지는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이라크 파병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겁니다. 여건상 미국을 거부하기는 어려웠겠죠.


그런데 한일관계에 관한 한 더 세게 자주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3.1절 때 일본한테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해야한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 지 - 대한민국의 자주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김대중 정권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상당히 유보했지만, 노무현 정권에 와서 적극적으로 자주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 최 - 그렇습니다. 한국이 민주화도 이루고, 아이엠에프 경제위기도 극복하고, 월드컵도 치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결과죠. 시민 차원에서는 미국에 대한 종속성도 빠르게 극복해가고 있습니다. 2002년의 촛불 반미시위가 자주와 평화의 바다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이런 시민적 자주평화 역량을 짊어지고 노무현이 세게 나갈 수 있는 겁니다.


▼ 지 -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자주화를 추진한다면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까요?


▲ 최 - 아주 멋진 발상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주화를 가로 막고 있는 근원이 한미일 안보체제 아닙니까? 한미일 안보체제에서 한미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한미행정협정이고요. 이 체제에 묶여 있는 한, 미국이 짜놓은 판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외교 전략이란 걸 가질 수도 없습니다. 미국이 다 짜놓았으니까요. 전쟁이 일어나면 문제는 더 심각해요.


전시 군사통제권을 미국이 가지니까 한국군은 미군의 예하부대가 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이 조선(북한)을 침략하거나 중국과 전쟁을 하면 한국 영토는 미군 기지가 될 수밖에 없고, 한국 군대는 전쟁에 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한국군 통수권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미합중국 대통령입니다.


이런 여건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새판 짜기도 불가능합니다. 죽으나 사나 〈미국 대 중국〉 대결구도의 하수인 노릇밖에 못 합니다. 아예 이 판에서 빠져 나오던지, 하다못해 상당한 정도의 자주성이라도 가져야, 한반도 평화협력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 지 - 한국이 한미일 안보동맹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가 있을까요? 그게 현실성 있는 이야기입니까?


▲ 최 - 어디에나 약한 고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한미일 안보체제에는 세 개의 축이 있는데, 미일관계, 한미관계는 단시간 안에 변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북아지역은 불원간 인구, 경제력, 군사력에서 세계 중심이 될 게 확실합니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동북아에서 쫓겨나면 미국 패권주의는 끝입니다. 그러니까 미일관계, 한미관계는 미국 패권주의의 핵심적 과제입니다.


일본도 그래요. 중국의 급성장이 두렵고, 한중동맹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미일동맹은 미국한테나 일본한테나 아주 중요해요. 한국도 미국과 갈등관계에 빠지며 아주 어렵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동북아에서 물러가버린다면 참 어려워질 것입니다. 상당한 힘을 가진 통일한국이 되기 이전에는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각축장이 될 우려가 아주 높습니다. 그러니까 동북아질서에 큰 변화가 없는 한 한미관계, 미일관계는 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한미일 안보체제의 약한 고리! 그게 바로 한일관계입니다. 한일관계 중에서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입니다. 이 고리를 이용해서 한미일 안보체제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 개인 청구권에 길이 있다


▼ 지 -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어떻게 요리해야 합니까?


▲ 최 - 대일 청구권 문제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합일협정은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청구권, 개인 청구권을 모두 포기한다는 ‘청구권 포기각서’에 지나지 않았어요. 박정희 정권은 국가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 개인 청구권도 막아버렸습니다. 대신 쥐꼬리 만한 경제협력자금만 받았어요. 무상 3억, 유상 2억이니까 단 돈 3억 달러에 청구권을 팔아먹은 거죠.


▼ 지 - 그렇다면 한일협정을 파기하지 않는 한 청구권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습니까?


▲ 최 -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청구권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에 헌납하는 게 가능합니다. 박정희 정권이 민족을 팔아먹은 짓이지만 그러니 어쩌겠어요? 어쨌거나 대한민국 정부가 한 일이니까 억울해도 돌이키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까지 일본에 헌납하는 건 명백한 월권입니다. 개인 청구권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권리인데 국가가 대신할 수는 없어요. 한일협정에서 정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무회의나 국회가 결정할 수도 없어요. 일본이 결정하는 건 더 말이 안 되고요. 그 누구도 개인의 청구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개인 청구권은 개인이 당한 피해를 배상받고 보상받는 것이니까 순전히 개인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권한을 대행하자면 반드시 청구권을 국가에 위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 지 - 개인 청구권을 막고 있는 한일협정 제2조는 원천 무효라는 얘기입니까?


▲ 최 - 맞아요. 3월 17일 정부의 대응조치 발표를 보니까 정부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이번 대응조치는 ‘전향적인 조치’ 정도가 아니라 혁명입니다.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드디어 대한민국이 ‘나라사람에 의한, 나라사람을 위한, 나라사람의 민주국가’로 거듭나고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나라사람을 지도하고 동원하고 감시하고 족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국가가 나라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원하겠다고 나섰잖아요. 박정희 정권은 일본제국의 폭력 앞에서 끌려가고, 강제노동을 하고,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총알받이가 된 사람들의 권리를 자기들 멋대로 박탈해 버렸습니다. 민족을 팔고 인륜을 짓밟는 짓이죠. 40년 후 노무현 정권은 개인 청구권을 보호하고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나는 이것이 40년 동안 한국인이 이룬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을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독재자의 사유물에서 나라사람의 나라로 바뀐 것입니다.


▼ 지 -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여론을 의식해서 쇼를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일본보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배상할 것은 배상하라”고 한 것도 실질적인 조치가 없으면 말로만 끝날 게 뻔하지 않습니까? 개인 청구권 지원이 구두선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요? 빈번한 사과 요구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일본의 한 특파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정상적인 외교관계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반문을 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언론들은 이런 말을 크게 보도하고요.


▲ 최 - 나도 노무현 정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 양극화가 더 심화된 것을 보면 노무현 정권이 누구의 정권인지 의심될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이 일본과 관련해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고 봐요. 노무현 정권 와서 친일진상규명위원회,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 과거사 청산 위원회를 줄줄이 설치하는 걸 보면 짐작할 수 있잖아요.


이런 과거 청산의 압권이 개인 청구권 지원입니다. 이 약속을 안 지키면 정부가 아니라 사기꾼집단이죠.


▼ 지 - 정부 차원에서 개인 청구권을 지원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최 - 우선 정부 차원에서, 가능하면 대통령 직속으로 ?한일협정 및 대일 청구권 연구팀? 같은 걸 만들어서 체계적인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일 청구권의 내용과 전략이 수립되면 다음 순서는 공식적으로 ‘한입협정 제2조 무효화’를 선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 청구권자들을 지원하는 일인데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국가에서 개인 청구권을 집단적으로 위임받아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는 경우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개인 청구권자들의 일본 법원 소송을 대행하거나 지원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원폭 피해자의 경우에는 미국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미국 법원에도 제소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강제 징용된 당사자와 전사자 자손들,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 노동에 동원된 사람들,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과 미국 법원에 대대적인 집단 소송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 남북공조, 한중공조가 중요하다


▼ 지 - 그런데 한국 정부가 대일본 개인 청구권을 지원하면 한미일 안보체제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 최 - 아주 큰 변화를 일으킬 겁니다. 우선 개인 청구권 문제가 불러올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첫째, 일본제국주의 침략상을 드러내고 일본의 우경화를 상당히 제어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개인 청구권을 대행해도 그렇고, 대대적인 집단소송을 하면 더 극적이겠죠.


그래서 강제 징용, 강제 노동, 위안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아보세요. 일본 열도가 들끓지 않겠어요? 반성도 없고 정당한 배상도 없는 일본에 대한 국제 여론도 악화될 수밖에 없죠. 집단소송 자체가 국제적 이슈가 되고요.


둘째, 이 과정에서 조선(북한)과 중국도 개인 청구권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민족공조도 되고, 한중공조도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나라당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거부했다가는 당이 존립하기도 어려울 테니까요.


▼ 지 -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 전 상황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 아닙니까? 독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일협정에서 개인 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일본한테 배상과 보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 정부나 기업이 대신 보상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잖아요.


▲ 최 - 그건 최악의 방법이죠. 그렇게 할 바에는 가만있는 게 낫습니다. 당연히 가해자가 배상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한국 정부가 하는 건 말이 아니죠. 이런 식의 편법은 한미일 반공동맹에 흠집을 내서 안 된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이런 강박관념에서 빠져 나온 건 정말로 잘 한 일입니다.


아까 얘기로 돌아갑시다. 남북공조, 한중공조는 개인 청구권 문제를 넘어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반대하는 한국, 조선, 중국 3국의 협력과 연대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군국주의 반대 3국 연대’까지 나가지 않고 남북공조, 한중공조만 이루어져도 엄청난 일입니다. 한미일 안보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난 거죠. 이 과정에서 한국은 한미일 안보체제에서 빠져나와 자주적인 국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 지 - ‘군국주의 반대 3국 공조’만 일어나도 이것 자체가 한미일 안보체제의 심각한 균열이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손아귀를 벗어나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인 조선과 손을 잡고 미국 ‘최대의 가상 적’ 중국과 협력한다는 것 자체가 대형 사고다, 이런 말씀인데요. 미국이 가만 두겠습니까?


▲ 최 - 미국도 쉽지 않을 겁니다. 일본 정부가 국제여론의 표적이 될텐데 내놓고 일본을 두둔할 수도 없고, 한국에 그만두라고 강요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 지 - 한조중 3국 공조가 된다면 그런 외교는 이미 한미일 안보체제를 벗어난 것이고 일종의 ‘사안에 따른 자주외교’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최 - 그렇습니다.


▼ 지 - 한일협정을 개정할 필요는 없을까요?


▲ 최 -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 청구권 행사는 한일협정과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개인 배상을 떠맡고 나서는 경우인데, 이런 사태는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 지 - 대일 청구권을 정부가 지원하면 심각한 외교마찰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 최 - 당연히 어렵겠죠. 그러나 대한민국이 진정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더 이상 기민(棄民) 정책은 안 됩니다. 나라사람의 해외활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보호와 지원정책’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나라사람을 보호하는 정부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나라사람의 생명과 재산과 권리를 지키는 게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 아닙니까?


이번 개인 청구권 문제가 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개인 청구권을 적극 추진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나라사람의 인식도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당신들의 나라’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이 되는 거죠.


* 한 차원 높게 대응하자


▼ 지 - 최 선생님 말씀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정치인들이 망언을 일삼고,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시마네 현의회가 ‘독도의 날’을 조례로 제정하고, 이런 일본의 우경화가 우리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미일 안보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를 칠 수 있는 기회이고, 약한 고리를 치는 전략은 과거사 청산인데, 그 핵심 포인트는 대일 개인 청구권 지원이다. 이를 통해서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잔학상을 드러내고, 반성도 없고 배상도 없는 일본 정부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일본의 우경화도 상당히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진정으로 자국민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고, 남북공조와 한중공조를 통해서 자주 외교를 펼치고, 나아가서는 자주적 국제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대충 이런 얘기가 되는 겁니까?


▲ 최 - 아주 잘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노무현 정권이 아주 기민하게 전기를 잡았어요. 이런 능력을 보면 국방에서 ‘협력적 자주국방’을 추구했듯이 외교에서도 ‘협력적 자주외교’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얼마나 강력하게 추진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 지 - 혹시 더 하시고 싶은 얘기가 없습니까?

 

▲ 최 - 왜 없겠어요. 제가 얘기에 목마른 사람 아닙니까. (웃음) 먼저 독도 문제인데요.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차분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일시적으로 흥분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일본 우익보다 더 우익적인 대응은 곤란합니다. 말하자면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정부가 천명했듯이, 인권과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고, 불행한 과거사를 진정으로 청산하고,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 지 - 정부는 독도 관광을 허용하겠다고 하는데요.


▲ 최 - 아주 잘 하는 일입니다. 관광뿐만 아니라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가 독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나라사람들이 안심을 합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야 우리가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쪽이 한국의 영공, 영해를 침범하거나, 독도 촬영을 강행하는 등등 일본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합니다. 며칠 전에 아사히신문의 경비행기가 들어오는 걸 막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죠. 이런 것을 강경대응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닙니다. 상호존중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초보적인 조치죠.


▼ 지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없으십니까?


▲ 최 - 다시 한 번 경계해 두고 싶습니다. 일본은 민족주의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시민들도 거의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독도 문제 자체보다는 한국의 과격한 반응에 더 관심을 가진 것 같아요. 그래서 한류 열풍에도 거의 영향이 없다고 그래요. 이런 건 배울만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도 일본한테도 배울 건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성숙한 대응을 할 수 있고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 수 있습니다.

 

글의 출처 : http://www.mediamob.co.kr/tr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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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덕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생후 보름만에 찾아온 원인 모를 열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7살이 되던 해 시각장애자 특수학교인 인천 혜광학교에 입학해 초중고 과정을 마쳤다. 혜광학교 입학직후 교내 브라스밴드에서 북을 연주하면서 음악과 처음 만났다. 중1때 학교 재정문제로 브라스밴드가 해체되면서 사물놀이에 입문, 장구채를 잡았다.  

고1이던 1989년 혜광학교 동창 3명과 함께 제1회 '세계 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에 출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이 대회는 당초 서서 하는 '선반'과 앉아서 연주하는 '앉은반'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가르는 방식이었으나, 멤버 모두가 시각장애인었던 까닭에 선반 연주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들의 놀라운 연주에 감동한 심사위원들이 즉석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예정에도 없던 '특별상'을 신설해 시상했다.  

이를 계기로 동 대회는 2회부터 '선반'과 '앉은반'을 분리해 시상하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후 이듬해인 1993년 이들은 '다스름'이란 팀이름으로 동 대회에 다시 출전,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고 전제덕은 MVP를 받았다. 이후 '다스름'은 팀이름을 '사물 천둥'으로 바꾸고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로 활동했다.

전제덕이 하모니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라디오방송을 통해 우연히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의 연주를 듣고 나서부터다. 투츠 틸레망은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연주에 깊은 감동을 느낀 전제덕은 투츠의 음반을 모두 섭렵, 재즈하모니카를 독학으로 터득했다.

 전제덕은 현재 국내 유일의 재즈하모니카 연주자다. 세계적으로도 재즈하모니카 연주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하모니카 마스터'가 된 그는 놀라운 연주력으로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오래전에 이미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연주력에 주목한 많은 대중가수들이 음반 세션으로 그를 초청해 조성모, 박상민, 조규찬, 이적, BMK, 김정민 등의 음반에 참가했다. 또한 영화 '똥개' '튜브' 등 많은 OST음반에도 참가했다.

전제덕은 서정적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재즈의 즉흥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 2003년 재즈보컬 말로의 3집음반 '벚꽃지다'에 음반세션으로 참가해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영혼까지 흔들만큼 짜릿하고 영롱한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한국의 투츠 틸레망'이란 별명을 얻었다.

 들숨과 날숨을 이용해 연주하는 악기는 하모니카가 유일하다. 그래서 하모니카는 인간의 체온에 가장 가깝다.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이 악기의 음색은 그 주인인 전제덕을 닮았다. 하모니카는 불과 한 뼘 남짓하지만, 전제덕의 하모니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크기와 깊이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전제덕은 하모니카를 만나 온전한 기쁨을 얻었고, 하모니카는 전제덕을 만나 온전한 생명을 얻었다.

 
전제덕 1집 중 우리 젊은 날..

 
 

따듯한 햇살 아래서 그의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봄날..

우리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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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3-2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갈게요.
얼마 전 텔레비전 윤도현 프로에 나왔는데 한번 보고 필이 꽂혔어요.^^

클레어 2005-03-2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세요. 추천 감사합니다. 쓸쓸하던 하모니카음색에서 따스함을 찾아낸 그의 감수성이 전 좋더군요.

파란여우 2005-03-2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페이퍼에서도 언급했던 실력있는, 가수입니다.
주로 신촌에서 놀고 있지만
팬층은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날씨가 흐린 날 그의 하모니카를 들으면...아뛰......가슴이 착 가라앉습니다....^^

클레어 2005-03-3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에 따라 가슴을 다르게 울려주는 하모니카란 악기가 참 멋진 거 같아요. 요즘 같은 좋은 봄날에는 햇살을 받으며 마음껏 가슴을 활짝 펴 볼륨 업하시길..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