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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 리디아! 어린이책을 볼 때마다 난 내 나이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하려면 너의 또래가 되어야 할텐데 너의 생각과 웃음을 함께 공명하기에는 나는 나이 먹어 버렸다. 그래도 서평의 형식을 빌어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너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 "순수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한복판, 걸을 때마다 퉁~퉁~ 소리가 날 것 같은 철제 계단을 오르고 올라 옥상에 숨겨진 너의 비밀정원에서 환하게 웃으며 모종삽과 키 큰 해바라기 화분을 들고 서서는 넌, "어서오세요~"라고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지. 지인이 건네준 책 표지에서 널 처음 보고는 나도 그 철제 계단을 밟고 퉁퉁~ 소리를 내며 그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단다. 예전 우리집도 옥상이 있었거든. 아주 아주 오래된 2층집인데 계단은 나선형 철제 계단이었고, 그 계단을 밟고 올라서서 세탁기에서 막 꺼낸 뽀얀 빨래들을 몇 줄 안되는 빨래줄에다가 널곤 했었어. 여름철이 되면 하얀 구름들이 피어오르고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빨래들이 나부낄 때, 옥상의 한 켠 모서리에 누워서 바람을 느끼곤 했었지. 거기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소원을 비는 종이학을 동생들을 패가면서 잔뜩 접어선 유치하기 짝이없는 소원들을 빌면서 공중에다 뿌리곤 했었어. 학들은 날지 못하고 밤하늘 창공을 가르며 곤두박질쳤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달님과 별님들을 바라보고 또 옥상에 누워 있곤 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몇 개 사라져 버린 종이학을 보면서 소원을 싣고 하늘로 날아올랐을 거란 생각으로 마음이 들떠 하루종일 깔깔~웃곤 했었어.
옥상...나에게 옥상은 그런 곳이었어. 벼락치는 날에는 번개를 보기 위해 올라가고, 백과사전에서 봤던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던 곳. 그런 옥상에서 뭔가 깜찍한 일을 벌이고 있는 널 보면서 갑자기 나도 옥상이 그리워지지 뭐니.. 옥상!! 고소공포증 때문에 아래 내려다 보는 것을 끔찍해하면서도 가끔 도망치고 싶을 때 찾던 그 옥상 말이야..도시 속에도 그런 곳이 있어. 너도 알지? 리디아? 비밀스럽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만의 공간, 나의 비밀장소, 나의 유토피아, 나의 천국 말이야.
리디아! 난 어려워진 살림살이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님과 할머니와 긴 포옹을 나눈 후 헤어져서 도시의 거대한 플랫폼에 도착해 서 있는, 조그마한 너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외삼촌에 대한 단서라고는 엄마와 같은 모습의 코를 가진 남자라는 것 뿐이었고, 작은 너에게 도시는 너무나도 커 보였어. 두렵지 않았니? 결코 웃지 않는 외삼촌에게 가방을 넘기는 너의 모습은 왠지 두려워 보이기도 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단다. 그런데, 넌 용감하게 도시를 둘러봤고 집집마다 화분이 놓여있다는 것을 발견해 내곤 "내가 일할 이 골목에 빛이 내리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 오~ 리디아! 나는 너의 말을 듣고 무척 부끄러워졌다. 나의 눈으로는 도시속에서 그런 빛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 어쩌면 나이 들어버린 만큼 내 눈에는 더께가 씌어져 버린 모양이다. 무표정으로 내 주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들도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새벽녘 집 주위에서 울려퍼지는 오토바이들의 경적소리 "빠라빠라빠라밤"이나 이웃집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는 귀를 막으면 그 뿐,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런 나에게 이 도시 속에서 '빛을 찾는다.'라는 일은 도시속에서 따스함을 찾는 일만큼 어려운 일일 거 같다. 어쩌면 도시의 차가움은 내가 걸어 잠근 마음의 문 때문이겠지만 말이지.
리디아! 작은 소녀, 리디아! 넌 용감하게 도시속에서 살아가더구나. 외삼촌의 빵집에서 빵을 반죽하고 네가 아는 꽃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네가 좋아하는 꽃을 여기저기 심으며 빛을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 가면서 말이지. 너의 순수함, 너의 꽃에 대한 아름다운 애정은 이웃들까지 전염시켜서 너에게 꽃을 심을 화분과 그릇을 주며 널 '원예사 아가씨'라고 부르게 했고, 도시는 더이상 크고 낯선 도시가 아니라 리디아의 꽃이 피어 있어 누구나가 꽃향기를 맡고 행복해 하는 도시로 변해 있더구나. 어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리디아, 넌 해낸거야! 그런 일을 해내고도 넌, 그 도시에서 웃지 않는 오직 한사람, 너의 외삼촌을 위해서 옥상에다가 외삼촌을 초대하는 파티를 벌여 외삼촌을 불러 들였어.. 어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그런 파티였고, 아름다운 파티였다.
리디아! 그렇게 도시를, 사람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다시 시골마을로 돌아가게 된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난 세상에서 임무를 끝낸 천사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어. 그 커다란 외삼촌을 작은 두팔을 벌려서 꼭 안아주는 너. 그리고, 그런 소중한 너를 기차 플랫폼에서 꼭 끌어안고 있는 외삼촌은 아마 결코 서로를 잊지 못할테지..그리고, 네가 만들어준 작은 기억들을 기억하며 도시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꽃을 키워갈거라 생각해.
리디아! 순수함을 잃어버린 나또한 마음의 문을 열어 내 마음의 꽃밭을 용감히 가꾸어 가면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좋아질까? 나이만 먹고 의심만 많아져 버린 나지만, 너의 웃음과 네 순수함이 만들어 놓은 그림책 속 아름다운 세상을 믿어보기로 했다. 순수한 너의 눈에 비쳤던 그 빛, 그리고 그 빛을 믿고 열심히 만들어 갔던 너의 발자취의 진실함이 그걸 증명해주었으니까. 물론 네가 외삼촌에게서 따뜻한 미소와 포옹을 받을 때까지 오랜시간을 기다렸듯이 결코 빨리 이루어지거나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루어질거란 작은 희망을 품게 된 것은 네가 나에게 보여준 빛이다.
리디아! 작은 천사! 파라다이스를 보여준 소녀야! 안녕! 이 안녕은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안녕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