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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인간이라 - 우리로서는 물론 이의가 전혀 없고말고. 언젠간 인간이 될 게 아닌가! 좀더 참고 좀더 버텨야 해. 1만 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 친구들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뭐니뭐니 해도 크게 보고, 지질학적 시대 단위로 시간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네. 그러면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인간의 시대가 올 때 그 자리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자취와 몽상과 예감뿐이지만 - 지금 인간은 그 자신의 선구자일 뿐.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사샤 치포츠킨, [달빛 산책] 중에서
위에서 언급한 문장은 이 책의 가장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글이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란 책을 어제, 오늘 읽고 가장 마음에 든 문장이었고, 로맹 가리의 생각이 집약된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맹 가리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미셸 푸코(Michell Foucault :1926-1984)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사고의 고고학이 잘 보여주듯 인간은 최근의 발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은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자일 것이다." 라고 말한 푸코는 지난 150여 년간 인간이 어떠하다! 라고 규정해온 지식체계의 총체, 혹은 앎의 단층(에피스테메)이 새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와 비슷한 내용을 로맹 가리도 사샤 치포츠킨의 글을 인용하며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로맹 가리와 푸코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려낸 15편의 단편들은 이 시대(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마치 카메라 앵글로 보여주듯 다루고 있다. 그 내용들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꼬리, 코를 주무르며 코끼리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모두 다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카메라 앵글이 파악한 인간의 군상은 여태껏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기묘한 모습의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로맹 가리의 상상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생각과 정의와 이론들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틀어지고 꼬여져 묘한 모습을 나타내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읽는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스스로 꺼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태계 프랑스인인 그는 이 단편 속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서 그 전쟁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 예로 단편 [어떤 휴머니스트]에서 '칼'은 나찌의 눈을 피해 어떤 누구보다도 자신이 신뢰하는 하인부부에게 자신의 재산을 잠시 맡아달라고 하고는 집의 지하실에 숨어들게 된다. 전쟁 중 그의 재산을 관리하고 그에게 꼬박꼬박 음식과 함께 바깥의 상황을 알려주던 하인부부의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지만 그들이 그에게 제공해주는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짓말에 그가 계속 속아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집 지하실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그는 하인부부의 한결같은 충성심에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바깥에서 책을 읽으며 지켜보는 독자들은 그의 재산을 모두 집어삼킨 채 호화로운 생활을 보내는 그 하인부부를 보면서 그의 어리석음과 하인부부의 '휴머니즘'의 이중성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심한 충격을 받고 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속에 나오는 '글루크만'이란 인물을 보도록 하자. 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 지휘관이었던 '슐체'에게 매일 고문을 당하다가 도망쳐 나온 그는 안데스 산맥의 꼭대기에서 라마 몰이꾼으로 15년을 숨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우연히 같은 수용소에 있었던 다른 친구에게 발견되어서 재봉사로 일하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밤마실을 다니게 된다. 그것도 음식이 잔뜩 든 바구니를 들고서. 친구는 그의 기행이 궁금해서 어느날 밤, 그의 뒤를 밟게 되었고 어떤 집 지하실에서 '글루크만'을 고문하던 '슐체'에게 술을 따르고 음식을 주고 있는 '글루크만'을 보고는 충격을 받게 된다. 도데체 왜 그와 같은 괴물에게 음식과 술을 주고 있나? 라는 질문이 머리속을 관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글루크만'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가 다음 번엔 잘해준다고 약속했다네!" 전쟁이 끝난지 15년이 지난 후에도 이 사나이를 따라다니는 악몽과 같은 기억과 전쟁속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해야했던 비굴한 모습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글루크만'을 따라다니고 있다. 오! 이 사나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새들이 왜 페루에 와서 죽는지를 인간이 파악할 수 없듯 인간또한 인간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DNA가 모두 밝혀지고 인간의 체성분 하나하나가 과학의 힘으로 낱낱히 해부된다고 해서 인간은 인간을 알 수 있을까?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로맹 가리는 이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15편의 짧고 재미있는 단편들 속에다 집약해 놓고 마지막 편인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를 통해 그로테스크한 인류의 미래의 모습(유익한 방사선으로 지표면과 대기가 비옥해진 덕택에 인류는 생물학적 침체기를 벗어나게 된 거란다. 그후 여러 차례의 가속화된 진화를 겪게 되었지.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그런 진화로 인해 우리의 모습이 바뀌고 다양해지고 ..[P254])을 내보이면서 현재 찬미되고 있는 과학과 이성에 대해 "아버지 시대의 인류는 이제 끝나버렸소.[P268]"라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
인간의 역사가 여태껏 지각변동을 겪듯 급작스런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놀라울만치 예리한 눈으로 파악한 로맹 가리는 미래의 인간들에게 어리석고 비열하며 전쟁과 광기와 소외에 흔들리는 선구자적 인간(여기서 의미하는 선구자라는 것은 앞서 살았던 인간이란 뜻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으로 비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위대한 작가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의 인간들을 위해 진실로 선구자(先驅者)가 되라'고 말해주는 작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