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세미나가 있는날이었다. 나름 세미나에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핸드폰도 진동으로 바꿔 놓고 열심히 연자의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띠디딕"하며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질~ -_-;; 뭐냐? 이 조용한 시츄에이션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 끌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황급히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넌 나한테 안대 이젠 우리 준* 포기해]
'안대는 무슨 안대? 안돼. 면 안돼. 지..-_-;; 그런데, 니가 포기하라는 우리 준*라는 녀석은 나도 모르는 인간인데 내가 어떻게 포기하냐? 뭔가 인연의 실마리라도 있어야 포기를 하던지 말던지 할꺼 아니냔 말이다.-_-^'
날씨도 더운데 이런 문자를 받고 나니 연자의 강의 내용이 머리속 스팀열로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녀석,, 절박했군. 그런데, 문자로 협박한다고 포기하겠냐? 만나서 머리 끄댕이라도 잡고 싸운 후 되는지 않되는지 함 대어보던지, 아니면 쌍다리 걸치고 있는 그 준*라는 녀석의 정강이 뼈라도 걷어차서 딴 쪽으로 뻗어있는 다리를 잘라내던지 해야지..이런 식으로 손 안 대고 코풀려고 하는 시츄에이션은 안먹힌단 말이야.'
문자메시지 밑에 오롯이 붙어있는 전화번호를 쳐다보고는 전화해 주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었다.
'전화 해줄까? 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두었다.
2."넌 나한테 안돼." 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난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힘의 우열을 가리는 것을 솔직히 좀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린애들이 힘의 우열을 따질 때 하게 되는 발언들을 생각해서 그런 모양이다. " 우리 아빠는 돈 잘 벌어." "우리집 대따 커." "우리 집에는 로보트도 있어." 등등의 발언들...모두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발판삼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직업, 차, 미모, 가방끈 등을 빌미로 "넌 나한테 안돼"라고 이야기 하는 녀석을 보면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이 '넌 그런 것들을 쌓아올린 것이 남 위에 군림하려고 쌓아올렸던거냐?'라고 반문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곱씹어봤을 때 나에게 문자를 보낸 녀석은 유치하더라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좋아하는 녀석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몸을 부풀리고 아름다운 털을 들이밀고 먹이를 물어와 유혹을 하는 본능적인 행동을 그저 유치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녀석에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일텐데... 그리고, 사랑은 원래 그렇게 유치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유치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3. [넌 나한테 안대 우리 준* 포기해]라는 문자를 다시 보았다.
삐꾸나서 정작 라이벌에게 도달하지 못한 문자 메시지.
덕분에 답 메시지를 받지 않은 채 녀석은 오늘은 편한 잠을 잘까? 아니면 또다른 전략을 짜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역시 3자는 편하다. 이렇게 관전평이나 늘어놓을 수 있다니..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