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움직인다 창비시선 51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를 고독하게 날아온 돌이

지구를 파고들며 타오르듯이

갈 수 있을까 당신에게로

마주 보면 눈을 맞추는 글썽임

_「운석 찾는 사람」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던 김연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을 지났다. 익숙한 시인들도 이제는 그 그림자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손택수의 시집에 담긴 사유의 흔적,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손짓,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뭉쳐버린 폐지처럼 나뒹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저녁을 짓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의 이름으로

빛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시간, 매일 저녁이 지겨울 무렵에 문득,

혹시 내년 여름에도 수국을 볼 수 있을까.

수국

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피어나는 수국은

내 헛된 비유들에 대한 위로 같은 것,

꽃을 시늉하는

궁리에 궁리 끝의 작위여

작위의 찬란이여

헛것이라면 참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는 헛제삿밥의

고봉 같은 것이 있어

수국은 피어난다

나의 삶도 가설

나의 말도 헛것만 같을 때

지는 것이 꽃이라고,

아닌

꽃으로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심백서 - 오늘도 귀여운 내향인입니다
김시옷 지음 / 파지트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감성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한다. 이성은 자신이 감정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교집합은 언제나 ‘합리’와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면 위험하다. 가족, 연인과 친구 등은 이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대개 착각에 불과하다. 2차적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혈연, 지연 관계로 맺어진 1차적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은 감정으로 뭉갤 수 있으나 대개는 잘잘못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매 순간 고민한다. 감정의 영역인지 이성의 문제인지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그렇게 누적된 태도가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 삶의 무늬를 만든다.

4년째 연재 중인 화성문화재단의 「주간 책편지」 모임에서 직접 뵌 김시옷 작가의 책을 천천히 읽었다. 『소심 백서』는 대문자 I 성향들을 위한 위로와 조언과 거리가 멀다. ‘나’를 중심에 둔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유년부터 대학 시절, 직장생활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돌아보며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놀랍다. 생각보다 어렵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 사람의 글은 그대로 가슴에 스며든다. 어설픈 감동이나 공감이 아니라 메타인지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했다.

AB RH+, INTJ, HSP, Misophonia... 심리학부터 뇌과학까지 다양한 책들을 뒤적였다. ‘예민함’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아니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책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경험과 추측 혹은 뇌피셜 등 각자의 도그마를 만들어 가는 건 관심 없으나 객관적 이론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일은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극도로 예민한 청각을 지녔으나 둔감한 후각을 가졌고 특정 분야에는 몰입과 기억이 뛰어나지만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감성과 이성을 경계 지어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상관 관계에 머물지라도 인간은 자기 성찰을 멈추는 순간 낡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늙어도 낡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콤플렉스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킬레스 건이 어디인지 알고 공격하는 이의 잔인함을 파악하는 건 사회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김시옷 작가처럼 자기의 소심함을 무기로 내세우거나 핑계 삼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깨 겯고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책과 사람은 다르다. 일상에서 작가가 겪는 아픔과 고통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소심함과 조금 다른 예민함 덕분에.

단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그림, 반려묘의 이야기, 무해한 표정의 캐릭터, 재치 있는 대사와 감각적인 표현들이 잘 어우러진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조금 무뎌졌다. 소심해도 괜찮아, 예민하면 어때, 우울해도 힘을 내, 귀찮아도 일어 서,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쓸데없이 울컥하다가 겸연쩍게 킥킥거리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11월의 마지막 가을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본다. 《왕좌의 게임》의 대사가 다시 돌아왔다. winter is comi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 - 니체(Nietzshe)

물과 공기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띤 공공재다. 이렇게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이익을 앞세우는 자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목도한다. 하물며 공공재가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관계 앞에서 인간은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도덕과 가치 혹은 이념과 윤리를 표방하는 자들이 자기 속내를 들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증오는 대개 착각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으며 혐오에 동반된 감정적 사태다. 오스트리아의 법정신 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는 감정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온 저명한 정신과 의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간은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잔다. 그 모든 과정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불안, 우울, 나르시시즘, 망상, 중독 등이 벌어지는 원인은 대개 타인 혹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증오는 감정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문학, 철학을 넘나든다. 전공과 직업이 무엇이든 ‘인간’에 대한 탐구는 대단히 복합적인 인문학적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한다. 좁게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에서 넓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으며 대개 결론도 정답도 없다. 기존 이론과 주장에 대한 끊임없는 반박과 재규정을 통해 변증법적 통찰에 도달한 현재적 주장에 가까울 뿐이다. 논리적 증오와 이성적 분노,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돌아 자기 말과 행동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이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보다 범죄자의 자기 혐오와 증오를 오랫동안 관찰한 저자의 이야기는 건강한 삶과 공동체의 질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법과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인간의 진화, 혐오, 분노, 파괴, 절멸 등에 관한 사적 고찰로 이어지는 과정이 넓고 깊다. 증오의 뿌리를 찾는 일은 직업인으로 저자의 몫이겠으나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일은 일상에서의 벌어지는 LGBTQ, 외노자, 중국인, 장애인, 노동자, 경제적 취약계층, 탈모인, 비만인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혐오에 대한 개별 독자의 편견과 차별이다. 김지혜가 지적한 ‘선량한 차별주의자’ 정도라면 그나마 양반이다. 보이지 않는 각자의 프레임을 생각보다 좁고 견고하다. 신념이 확고한 자를 믿지 않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패러디하자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본능에 내재한 이디오진크라지idiosynkrasie에 불과하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문명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을 현대사회 공동체는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혐오 혹은 증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일까. 물론 저자의 희망과 결론 혹은 대안과 달리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또다시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패륜 행위를 공론화하며 규율과 질서를 마련하고 감시와 처벌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법률적 통제를 넘어 사회적, 관계적 대처는 매우 중요하다. ‘천성적 증오’가 아닌 ‘반사적 증오’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명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공자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철학자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염치’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맹자는 이미 기원전에 염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아니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 너무 뻔뻔해서 부끄러움이 오히려 나의 몫이어야 하는 자들을 향한 혐오와 증오는 괜찮아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에 저자는 무어라고 답할까. 물론 ‘범죄’ 영역에 국한된 성찰이겠으나 일상을 견디는 나, 아니 우리 모두는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문제가 다시 시작된다.

‘증오’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도의 철학 - 흔들리는 삶을 위한 16가지 인생의 자세
샤를 페팽 지음, 이주영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기 평가다. 삶은 계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닭도 아니다. 아재 개그가 아니라 사람마다 순위가 다르다는 말이다. 닭이 먼저라고 우기는 사람이나 달걀이 먼저라고 고집하는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생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나눌 뿐이다. 물론 타인의 평가, 사회적 관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 목표에 도달했는지,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학력, 직업, 자산, 결혼, 자녀, 건강 등으로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각자의 선택과 만족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육각형 인생을 원하지만 아무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인생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대개 혹독한 시련을 겪었거나 깊은 좌절을 맛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삶에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모두 녹아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척도에 걸맞은 성공이 아니라 이제 보다 ‘좋은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실패échec’라는 말은 ‘왕이 죽었다al cheikh mat’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왔다. ‘왕이 놀랐다shat mat’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전리품eschec’을 뜻하는 옛 프랑스어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어원이 어찌 됐든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인생의 비밀 중 하나다. 다만 그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과 태도는 각자 다르다. 물론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게 반응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성공과 자기 계발의 비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페팽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실전 철학,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성공한 삶을 위해서, 아니 좋은 삶을 위해서는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험, 겸손, 변화, 욕망, 질문, 발견 등 16개의 주제에 관한 쉽고 짧은 글에는 에픽테토스, 장 폴 사르트르, 가스통 바슐라르, 노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크 라캉 등 16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테니스 선수 안드레이 아가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 팝 가수 프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뻔한 성공 스토리와 지루한 철학 개념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편안한 동네 아저씨처럼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삶을 성찰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저런 일도 있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 듯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찾고 싶은 전리품은 무엇이냐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부는 바람에 기꺼이 흔들려도 뿌리 뽑히지 않고 버티는 힘, 그 단단한 태도가 바로 당신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닐까. 불확실한 희망 대신 확실한 실패가 오히려 시련과 실패를 견디는 방법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7년 딥블루에게 체스의 제왕 자리를 내준 게리 카스파로프는 대국 결과에 대해 ‘인류의 종말’이라 평했다. 10년 후인 2016년 체스가 아니라 바둑판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 서판은 2002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될 무렵 네트워크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몸을 풀던 시절의 생각들이다. 물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짐작할 뿐이다. 타인에 대한 오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인류가 느린 걸음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계속해서 바뀔 예정이다.

20세기 경제 공황을 파고를 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넘친다.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메카시즘의 광풍 등 사회적 혼란과 ‘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계속됐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로 촉발된 논쟁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로 극한 대립이 펼쳐진다. 사회생물학 인권과 평등, 사회 변혁을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오해한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시트의 태동, PC주의자들의 등장으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아니 어쩌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 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쌍욕을 먹던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뇌과학의 발달로 그 진정성에 대한 오해는 조금 풀린듯 싶다.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를 들고 참전했으나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육 가설에 대한 대담한 도전으로 비치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그가 아무리 멋진 파마머리를 휘날려도 계속될 예정이다. 자유의지와 운명론을 뒷받침하려는 목적도 없고,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만 과학적 논의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허수아비 오류 공격은 일상에서도 반복되는 가장 무지한 태도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종교적 교리, 이상적 사회주의, 인간에 대한 희망적 뇌피셜로 가득한 사람에겐 800쪽이 넘는 하드 커버 책은 대형 벽돌에 불과할 것이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에는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빈 서판 이론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은 고쳐 쓸 수 있는가. 교육과 문화, 전통과 사회화를 통해 전혀 다른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병원에서 애가 바뀌어 전혀 유전자와 무관하게 부모의 교육과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게 논쟁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다수의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스티븐 핑커는 긴 머리 휘날리며 친절하고도 꼼꼼하게 투머치 토킹을 이어간다. 선명한 주제, 확고한 신념, 틀림없는 이론과 무관한 심리학과 인류학, 진화의 증거들로 빈 서판으로 무장한 적들을 깨부술 수 있을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저자의 애처로운 호소와 설득을 구경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로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은 과연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본성이든 양육이든 변증법적 변화를 체험한 이들의 간증조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주장할 것이 뻔하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세상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도그마에 갇혀 나름의 합리성과 안정을 찾은 사람들에게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을 옹호하는 인지 과학자스티븐 핑커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비칠까.

“나는 여전히 인간의 전망은 유토피아보다는 비극 쪽을 향하고, 인간성이라는 비뚤어진 재목으로 똑바른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우리는 티 없이 맑지 않거나 황금처럼 빛나지 않으며, 낙원으로 돌아갈 길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다.”(2016년판 발문, 「인간 본성은 문제이기도 하고 답이기도 하다」) - 791쪽

결국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진짜 인간의 목소리, 즉 이성, 감정, 본능이 조화된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개 거의 모든 학문은 인간의 추체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해석하는 일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날이 얼마든 각성과 성찰을 통해 성숙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곧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본성과 양육과 교육과 문화가 어떻게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었을까. 아니 그걸 안 연후에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안물안궁이라면 할말 없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