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소녀 - 소설로 읽는 사랑철학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이정순 옮김 / 현암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어 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작가와 제목, 대강의 내용과 출판사 등 객관적 요소들을 두루 살펴보고 책을 산다. 그렇게 선택한 책이 기대했던 내용과 일치하고 그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정보와 깨달음을 줄 때 독서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즐겁다. 하지만 단 한권의 책만으로 그 작가를 평가하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요슈타인 가아더는 <소피의 세계>로 문명을 떨쳤지만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소설로 읽는 사랑철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오렌지 소녀>를 그의 두 번째 책으로 선택했다. <소피의 세계>도 물론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단상으로 읽혀 질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단순한 연애소설로 읽기 시작했을 때와 정반대의 느낌이다. 소설 형식으로 쓰였지만 이 책은 가장 객관적이고 철학적인 사랑이야기다. 남녀간의 이성적 사랑을 운명이라 믿으며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물론 그것이 생의 과정이고 가장 화려한 시절일 수 있으나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우연성과 감정의 변화를 냉철하게 짚어 나가고 있다.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정호승의 ‘첫눈’중에서)”라고 말하는 모든 연인들에게 사실 어떤 조언이나 감정의 절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 반대로 요즘이야 그런 감정의 편린들만을 따라가는 사랑을 하는 젊은이도 없다고 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오렌지 소녀>는 그의 다른 소설처럼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얀 올리브가 스무살에 만난 오렌지 소녀 베로니카와의 첫 만남, 두 번째 우연한 만남과 기다림 사랑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모든 사람들의 평범할 듯한 사랑이야기가 기본 서사 구조를 이룬다. 미술을 전공한 베로니카와 의사인 얀 올리브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행복의 절정에서 네살바기 아들 게오르그를 남겨둔 채 죽음을 맞이한다. 이 모든 사실은 11년 뒤, 게오르그의 유모차 밑에서 발견되는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현재의 15세 소년 게오르그에게 1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미래의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라는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다. 물론 그 오렌지 소녀는 게오르그의 어머니 베로니카이다. 지금은 외르겐과 재혼해서 살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게오르그는 차츰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야기 시작 부분에서 허블 망원경과 우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죽은 아버지와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우리들 삶의 과정과 생에 대한 아이러니가 우주의 변화와 아름다움 만큼이나 계속된다는 사실로 읽힌다. 언젠가 이 모든 것들과의 이별이라는 것은 생의 절대 진리이다. 그 규칙을 피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지금 이 모든 순간의 삶을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으나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미래의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로는 적당하다. 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아들에게 인생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와 그 편지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드넓은 우주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것은 게오르그라는 소설속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겠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누구나 한 번쯤은 지독한 이별의 고통을 경험한다. 단순한 생의 규칙이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없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잃어야 얻는다는 단순한 진리는 직접 체험의 과정 속에서 더욱 빛난다. 본격적인 사랑의 의미를 되묻고 진지하게 성찰하는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웠을까? 학생들에게 적당히(?) 권할만한 가벼운 소설이라서 부담없이 피해간다. 본질적인 문제를.

 

 

200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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