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 반민주주의자에 대한 민주주의 재판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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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학교 다닐 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말을 배웠다. 성인의 경지에 오른 철학자가 한 말이므로 무조건 옳다고 믿었고, 그것이 독재 정권의 통치 수단에 교묘히 이용됐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1995년에야 교과서에서 그 말이 사라졌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라는 이야기와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는 화인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철학의 수호자로서 아테네인들에게 누명을 쓰고 죽은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철학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그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좀 더 공부하거나 좀 더 깊게 고민해 볼 일이다.

  하늘이 아니라 땅이 움직인다고 처음 주장하기 시작한 코페르니쿠스의 이야기를 듣는 심정은 어땠을까? 박홍규의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다. 우리가 ‘이성’의 철학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철학의 아버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저자는 차근차근 조목조목 따져나가고 있다.

  최근 많은 교양인(?)들을 위해 백과사전 요약식의 책이 화제가 되었었다. 바로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이다. 저자는 우선 이 책을 인용하며 슈바니츠가 유일하게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비판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대화법은 진정한 의미의 대화도 아니고 막가파식 대화법으로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추궁하는 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끊임없이 물어 늘어지는 대화법을 통해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사실 하나를 깨우쳐 줄 뿐이라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이런 놈을 만나면 말을 하지 않거나 주먹질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소크라테스 철학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물론 비판할 만한 철학도 없는 사상가가 소크라테스라고 말한다. 글 한줄, 책 한권 남기지 않은 철학자를 제자 플라톤의 저술에 의해서 되살려내고 그의 사상을 해석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철인 정치를 주장한 반민주주의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한나 아렌트와 칼 포퍼에 의해 명확하게 구별된다. 그 문제는 두 사람의 저서를 통해 확인하면 될 문제고 이 책에서는 크세노폰의 <회상>, <변론>과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등이 주된 참고 문헌이 된다. 이외에도 그리스의 희곡들과 그리스 민주주의에 관한 투키디데스의 <전쟁사>, 헤로도토스의 <역사>등 충실한 자료 분석을 통해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반민주의자다. 이것이 저자의 결론이고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이다. 그의 철학과 죽음에 대한 오해가 2천 4백년이 지나도 바로 잡히지 않고 비민주적인 철학과 철학자들에 의해 추앙되어 온 사실을 비판한다. 그래서 저자는 직접 그리스 아테네를 여행하고 소크라테스가 재판받은 장소를 확인하며 그리스의 하늘과 땅과 그 곳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한 인문주의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에 대한 바로 알기는 이렇게 시작되면서 그의 선언대로 소크라테스와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하는 의미의 선언문으로 읽을 수 있다.

  모든 인물이나 사상은 그것이 존재했던 시대의 사회사와 연관지어 하나의 고리에서 바라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 역시 그가 살았던 당시의 아테네 민주주의와 무관하게 다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소크라테스 재판이 마치 정치적인 희생양을 만든 재판인 양 다루어져 왔다. (본문 42페이지)

  이것을 밝히기 위해 저자는 소크라테스 재판의 의미를 면밀히 검토한 후 가장 많은 부분에 그리스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검증하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대한 분석과 부당함을 제시한 후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그리스 민주주의의 파탄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맺는다.

  책 전체의 논리성은 저자 나름의 방식임으로 문제 삼을 것이 없고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통념을 완전히 되엎을 만한 이러한 주장과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들을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에 대한 저자 개인의 경험과 반감은 이 책과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제도에서 드러나는 전문 재판관의 문제를 그리스의 민중재판 과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 이를테면 배심원 제도나 참심제도 -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방법론까지 폭넓 현실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 전체에 밑줄을 긋는다.

  비판이라는 말은 가치 중립어이다. 비난과 구별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건전한 비판의식과 활발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사상의 자유가 밑바탕이 된 사회에서 논의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제 좀 더 폭넓은 시각과 주장들이 나와 줄 것을 믿는다. 어렵지 않게 소크라테스에게 한발 다가섰다가 그의 실체를 확인하고 두 발 물러서게 만든 재미있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박홍규의 교수의 한마디가 이 책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같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게 주눅(?) 들었던 많은 사람들, 쓸데없는 존경심을 품었던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민주주의 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언행을 한 소크라테스의 반민주적 행위는 응당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언행 때문에 그가 고발당하고 사형에 처해진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민주국가에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회의를 느끼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그리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최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횡세서 그나마 차선의 방법이고,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푼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여전히 믿음과 희망의 대상이 될 만하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신념에서가 아니라 반민주주의자로서 민주주의를 적대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런 민주주의는 옳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본문 80)


200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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