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열쇠 - 철학
박이문 지음 / 산처럼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사유 방식을 철학이라고 부른다면 철학에 대한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렵고 딱딱한 그들만의 철학은 나에게 필요치 않다. 학문으로서 연구실에 박제된 철학은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용어와 개념에 대한 논리적이고 복잡한 진술들은 읽는 사람에게 중압감 내지 지적 허영으로 여겨진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하면서도 사고의 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철학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절실하게 필요하다.

  철학자 박이문의 <사유의 열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절하고 요긴한 책으로 볼 수 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사유하는 인간에 대한 연구와 탐구에 전력을 다한 연륜과 깊이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하다. 적절한 언어의 선택과 개념에 대한 일관된 깊이는 현대인을 위한 철학 사전으로서 손색이 없다.

  우리 인간들 사유의 도구는 바로 언어이다. 언어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철학이다. 인식의 틀과 사유 방식은 철학의 밑바탕이면서 동시에 완성된 하나의 학문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의사소통의 과정을 겪으며 생각을 공유하고 그 생각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철학의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의 기저에 철학이 존재한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쉽고 명료한 철학에 대한 어원 풀이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풀어나가야 할 나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사르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언어’와 ‘존재’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고 그 관계를 밝히는 일에 평생을 바쳐야 하는 일은 철학자의 몫이지만 그 깊이와 넓이를 확인하고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사유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일은 철학의 몫이다. 앎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역할은 언어가 존재하므로 가능하다.

  언어와 사유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가치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 의해 서술된 이 책은 단순한 철학 용어 사전과 구별된다. 일목요연한 연속선상에서 우리는 인류의 사상과 인식 방법에 붙여진 이름들에 대해 명징한 언어를 통해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이 책은 단순한 개념과 용어에 대한 지식들의 편린이 아니라 저자 박이문의 ‘주관’에 따라 해석되고 정리된 언어들과 만나게 된다. 득과 실을 판단하고 구별해서 취사선택하는 문제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특징이다. 나는 여기에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하나 하나의 개념들을 두 세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순서에 상관없이 찾아 읽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나가는 방식을 권한다. 본류에서 뻗어나간 지류들의 미묘한 관계들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 이후에 발간된 ‘과학’과 ‘종교’ 그리고 김성곤의 ‘문학’ 시리즈가 있지만 동일한 성과를 담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성곤 교수에 대한 믿음으로 ‘문학’편을 다음 목록에 올려 본다.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생명’의 계절에 삶에 대한 욕망과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보다 먼저 인간에 대한 성찰과 실존의 문제는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존재는 감성적 비애를 자아낸다. 개인의 존재가 사회적 존재로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을 되짚어 본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길잡이’라는 부제가 붙은 박이문의 <사유의 열쇠>는 인간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인류의 지성사를 일별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는 방에 들어가는 조그마한 열쇠 하나를 제공한다. 손에 잡힌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무엇을 보고 어디에 앉아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는 물론 독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060306-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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