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학의 탄생 - 철학, 종교와 충돌하다
미셀 옹프레 지음, 강주헌 옮김 / 모티브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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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 여부를 아직까지도 논쟁의 중심에 두고 있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다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끝난 이야기로 믿었으나 아직까지도 열심히 외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교사 미셀 옹프레는 <무신학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 ‘신학’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저돌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신들이 그의 표적이 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주된 목표물이다. 여기서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인 개신교를 포함하고 있으나 주로 카톨릭이 논의의 중심이다. 역자는 이것을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지구상의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공통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 종교의 대상이 모두 신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닮았다는 데 있다. 그게 왜 중요하냐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미셀 옹프레의 주장은 신의 허구성과 종교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들은 학술 논문과는 다른 방식이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수라는 인물의 실존 여부와 역사성을 검토해 왔던 모든 논의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철학과 과학의 입장에서 바라본 종교와 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철학과 역사 그리고 고고학과 해석학, 언어학에 이르기까지 신화를 바탕으로 종교가 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왔는지 밝히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호기심 차원의 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종교가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신의 존재에서부터 그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경전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성과 과학, 논리와 철학의 눈으로 신과 종교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최근 ‘행복’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관적이고 모호한 개념의 ‘행복’은 에피큐러스 학파의 ‘쾌락’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행복과 쾌락의 지속성 여부가 물론 중요하다. 또한 물질적 쾌락인지 정신적 쾌락인지 육체적 쾌락인지 그 대상과 범위,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하다. 이런 시대에 신과 종교는 오히려 현실적인 행복과 즐거움들을 억압한 대표적인 수단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무신론이다.

무신론은 역사 속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도 없으며 드러내 놓고 논의의 중심에 세워 진 적도 없다. 인류가 이룩해 온 수많은 진화 과정 속에서도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하나가 종교와 신의 존재이다. 미셀 옹프레는 ‘무신론’이라 명명한 이야기들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개의 축을 통해 그 진위를 드러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는 제쳐두고 작가의 논의를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생활의 중심에서 그리고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나 패러다임의 대 전환을 이루기 위해 한 권이 책을 읽으라는 말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정관념이나 맹목적인 믿음과 신념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물론자이며 무신론자이고 급진주의자이며 냉소주의자’인 나같은 사람에겐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에겐 큰 거부감이나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읽다가 팽개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종교의 유무에 따라서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 있으니 그저 무심히 읽어보는 정도가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동아일보사에서 출판된 <예수는 신화다>는 책을 독실한 크리스찬들에게 적극 권장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읽은 사람들은 책을 쓴 사람이 아니라 나를 욕했다. 그따위 책을 권해 줬냐고. 감리교와 가톨릭의 수장들이 ‘믿음’을 통해서냐 ‘선행’을 통해서냐 하는 논쟁을 끝내고 신의 구원에 대한 합의에 대한 선언문을 우리나라에서 발표할 예정이라 시점에서 <무신학의 탄생>이라는 책이 갖는 의미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신과 종교도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논의할 수는 없을까? 과연 인간에게 절대자가 필요한 것인지 궁금하다. 가까운 사람과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충고는 이 책에도 적용될지 모르겠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추천하기가 머뭇거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킬킬거리며 속시원하게 읽은 책이다.


06072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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