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평전 -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의 삶과 죽음
강주상 지음 / 럭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평전은 개인의 일대기를 서술자의 평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객관적 사실들을 고증하고 자료를 열거하여 구성하는 전기와 다른 특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전에 허구fiction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실fact를 바탕으로 하되 서술자의 해석과 평가 적절한 분석들이 더해지면 한 사람의 생애가 오롯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인과 관계를 적절히 구성하고 배열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훈련된 글쓰기와 철저한 고증만이 책을 빛나게 한다. 단순한 사실들의 연대기적 나열은 읽는 사람의 눈꺼풀을 끄집어 내린다.

93년에 출간된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아니었다면 이휘소라는 사람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가 영화처럼 극적일 수 있다는 것은 가끔 소설보다 훨씬 더 영화같은 현실을 접하는 우리들을 당혹케한다. 핵무기와 관련된 박정희와 이휘소의 관계나 미국과의 상황들이 모두 현실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휘소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소설을 소설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은 기각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마찬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유족측은 패소했다.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명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명예에 대한 해석이 각자 달랐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사람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유족들에 대해 당연히 부담을 갖는다. 그것에 대한 기준도 정답도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늘 충돌이 일어난다.

강주상은 이휘소의 제자로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다. 이휘소의 평전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가 그의 전공 때문만은 아니다. 이휘소에 대한 가장 많은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평전을 써서도 안된다. 직접 곁에서 이휘소를 지켜보고 그와 관계를 맺은 사람으로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믿지만 평전은 강주상의 의도와 다른 종류의 것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휘소의 뛰어난 능력에 대한 부분이다. 약관의 나이에 도미해서 석박사 과정을 거쳐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으로 일하며 오펜하이머와 교류하고 페르미 연구소에서 일했던 과정을 통해 그의 뛰어난 수학적 계산 능력과 분석 능력 등 이론 물리학의 세계적인 학자가 되는 과정을 영웅적인 시선으로 서술한다.

둘째, 이휘소의 능력과 업적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의 전공 분야를 알려야 한다. 이 책의 상당부분이 이론 물리학에 관한 강의로 채워져 있다. 무식한 나로서는 하품을 하며 억지로 읽었다. 과학 잡지의 기자처럼 독자들에게 알기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으면 길게 쓰지 말아야할 부분이었다. 차라리 리처드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학 이야기>처럼 일반 독자와 무식한 대중을 상대로 한 이야기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겠지만 평전에서는 무리한 내용 전개로 밖에 볼 수 없다.

셋째, 핵물리학자로 의문사 했다는 오해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미망인을 비롯해서 강주상 본인등 이휘소의 지인들은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설처럼 영화처럼 비쳐지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본문 내용과 동일한 내용의 부록까지 부쳐 ‘강주상의 회고’와 ‘소문과 억측들’까지 덧붙이는 기이한 형태의 평전이 되었다.

세가지 목적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다면 즐겁고 유익한 책이 될 수 있었으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간 듯 보인다. 이 책은 ‘강주상 지음’으로 되어 있으나 필자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끝까지 ‘강주상은...’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본문 188페이지 단 한번 “필자는 ‘그렇다’고 믿는다.”는 문장이 나온다. 나머지는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다. ‘이휘소 평전을 쓰면서’에서 강주상은 이 책을 ‘전기’라고 여러 번 표현한다. 책의 제목까지 헤매고 있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프롤로그’가 다시 덧붙혀진다. 알 수 없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짧은 책이다. 상당한 허점과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이 책은 출판사의 편집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크게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휘소의 생애를 일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장소의 이동과 시간의 변화만으로 그의 생애를 그가 남긴 업적과 직장으로 나누고 있어 설득력이 약하다. 유족과 지인들의 입장에서 2006년 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책일 수도 있지만 소설속의 이휘소가 아닌 이론 물리학자 이휘소를 전면적으로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은 책이다. 주관적, 감정적 서술이 드러나는 부분들을 삭제한다면 전기에 가까운 책이다.


0609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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