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유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89
이재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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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말하거나 시간의 거리와 어둠의 깊이에 대해 진지한 눈길을 던진다. 이재무의 『경쾌한 유랑』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간극과 사물의 서늘한 표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연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어를 부리는 힘과 삶에 대한 어렴풋한 해석이 가능해진걸까. 언제나 그렇듯 그 깊이와 넓이가 부럽고 불가해한 힘의 근원이 궁금하다.

목적 없는 발걸음인 ‘저녁 산책’은 그래서 행복하다. 그러나 시인의 저녁 산책은 단순해 보이지가 않는다.


저녁 산책


숲 가운데 앉아 서산낙일 바라다본다

저 곳은 내 미래의 거처

누군가 부르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밭 일궈 골라낼 돌 아직 수북한데

벌써 홑이불 되어 고랑 덮어오는 산그늘 서늘하다

삶은 여윌수록 두껍게 죽음을 껴입는다

달군 쇠처럼 뜨겁던 속도 다 한때,

불 떠난 굴뚝처럼 식어가는데

그토록 오래 떠돌았으나

결국 나 또한 붙박이 나목에 지나지 않았던 것

맨살 추워 보이는 건초들아

너희도 사랑 잃고 추워 떨며

신음처럼 낮게 노래 불러본 적 있느냐

오고 가며 요란한 것들아,

사람의 한평생

산밭 산개한 자갈 두어 삼태기 골라내는 일밖에 무엇 있으랴



“이게 최선입니까?”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최선’이 ‘최선’일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인생과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듯 살아온 인생을 비교할 수는 없다. ‘간절’은 욕망의 극한을 말한다. ‘열정’은 또 하나의 한계가 된다. 그러나 적절한 ‘간절’은 없다. 그래도 시인은 ‘간절’을 이렇게 말한다.


간절

삶에서 ‘간절’ 빠져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다 먹어치웠나

‘간절’이 빠져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으므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므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간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가벼워지고 욕망도 원망도 분노도 사라진다. 우리가 ‘똥파리’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헤아릴 필요는 없다. 다만 똥파리의 욕망과 생활의 빨대에 눈길이 간다. 우리는 그 빨대를 어디에 꽂고 있는지.


똥파리

너는 욕망의 암벽 기어올라
마침내 정상 등극에 성공하여
날개 달게 되었다
바야흐로 너는 구질구질한
바닥을 버리고 수직 상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똥파리여,
너는 끝내 천출 벗지 못하였다
붕붕, 부산한 몸짓으로
진동하는 부패에 생활의 빨대 꽂고 있구나

지하철 칸칸마다 들어찬,
벽 기어오르고 있는 구더기들이여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모든 생명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무와 숲을 향한 열망만큼 뜨거운 시인의 욕망이 또 있을까. 순간과 영원 사이에서 유한과 무한 사이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건 결국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사랑’을 읽고 아픔을 배운다. 한 줄이 한 행(行)이 아니라 한 연(聯)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푸른 거처

나무 속으로 내 사랑 들어갔네

나무 속으로 들어간 내 사랑

잎으로 돋고 꽃으로 피어나

사계를 살았네

나무 속에는 푸른 방이 있고

나무 속에는 푸른 마당이 있고

나무 속에는 푸른 창이 있다네

어느 날은 서럽게 울고

어느 날은 환하게 웃고

어느 날은 명주 올보다 더

가늘게 귓속 골목을 파고드는 노래

저 나무 속 내 미래의 거처엔

오래전 내 곁을 떠나간

사랑이 살고 있다네 

 

숲 속의 나무와 길가의 가로수. 그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상황과 위치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차이를 말한다. 일렬종대로 세워진 균질화된 나무의 생태는 인간의 왜곡되고 조작된 기억만큼이나 슬프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재앙일 수 있다’는 시인의 전언이 아픈 까닭은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도 절망도 썩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가혹한 운명이라고 말한다.


일렬종대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재앙일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한 실물로 보여주는 저 가로수들

올해도 지루하게 동어를 반복하고 있다  

선천성 일급 장애로 봄이면 버릇처럼,

악착같이, 수평 향해 가지를 뻗어보지만

번번이, 욕망은 잔인하게 진압되고야 만다

지쳐 쓰러져, 탕진의 바닥에 누울 때까지

썩지 않을 희망, 썩지 않을 절망

저 가혹한 운명의 슬픈 우리 자화상



11100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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