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384
권혁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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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즐길 수는 없다. 우리는 힘겨운 순간을 지나고 환희의 기쁨을 맛보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고 결과를 알 수도 없어서 인생을 부조리극에 비유하는 지도 모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운명은 순간순간의 인간의 목을 조른다. 4월 훈풍에 꽃은 피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변덕이 죽끓듯한다. 또 다시 봄이 찾아오고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그러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귀를 더럽히고 떠나갈 것이다.

권혁웅의 『소문들』은 뒤틀린 인간의 마음과 생각들, 세상의 수많은 소문들이 난마처럼 뒤엉켜 있다. 아니, 그 뒤엉킴은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시를 통해 통렬한 풍자와 시원스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아름답고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내는 일만이 어찌 시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삶이 그렇지 않은데…….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 있으니 이를 무족마(無足馬)라 한다 인적 끊긴 지 오래인 인가의 굴뚝을 끌어안고 살다가, 성체가 되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긴 혀로 수염에 붙은 침이나 귓속의 귀지를 핥아 먹는다 한 마리에 천 냥이나 하는 귀한 짐승이어서 특별히 이 짐승 기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를 말전주꾼이라 부른다 - ‘소문들-짐승’ 중에서

허허실실의 진이 개무시진이다 팔문금쇄진에는 휴(休) 생(生)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라는 여덟 출구가 있다 이 가운데 개문으로 적을 유인한 후에 도륙하는 진이 개무시진이다 적군이 이진에 빠지면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바닥없는 절망에 이르게 된다 - ‘소문들-진법(陳法)’ 중에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소문들’ 연작은 전통적인 언어유희의 방법을 차용하며, 시대를 이야기한다. 이 시대가 아니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시가 아프게 다가온다.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만큼 당대를 이해하고 현실을 담아낸 시는 우리에게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시는 무언가. 여전히 현실 속에 감추어진 속살을 드러내고 생의 이면을 들춰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부대끼는 수많은 일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가고 그 흐르는 시간의 갈피 사이사이에 숨은 의미를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할 때 우리는 시를 읽는다. 권혁웅은 이 시집을 통해 정제된 언어와 섬세한 감수성에 기대지 않는다. 비틀고 뒤엉킨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짚어내고 시대와 현실을 뒤먹인다.

그의 심장은 목덜미 어디쯤에 있었다

언덕 위에는 기나긴 논증처럼 모텔이 서 있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것은 한쪽 눈이 가느다란 빚쟁이로 보였다
구름을 대출하는 자, 선이자를 떼고
강물에 기댄 자, 지류 하나를 끌어다
제 믿음의 보증을 세울 테지만
나는 신품성사(新品聖事)도 회상도 없이
사랑하는 자의 피가 먹고 싶어서
그 사람을 당뇨 환자로 거기에 세워두었다
설탕에 켜켜이 재워둔 사람이란
인연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쏟아져 얼룩으로 남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는 사례의 하나로 불려 나와
다음 증명에서 부정될 테지만 아무것도
추증(追增)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자의 심장이 목덜미쯤에서
펄떡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잠은 태지(胎紙)처럼 얇아져 뒤척이다가
구겨질 거라 생각했다
언덕이 복리이자처럼 부풀어
그가 잠든 곳을 가리고 있었다

자본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 간 자리는 치유하기 힘들다.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경쟁과 이기심으로 가득하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위로하지는 말자. 인간의 삶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모든 일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청명한 달이 비치는 것 같은 담박한 인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빛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때로는 시대의 ‘광풍(狂風)’ 앞에 온몸을 던질 줄 아는 기개와 어떤 상황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초연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죽음은 모든 인간의 숙명이다. 비갠 후, 교교한 달빛 아래 맑게 빛나는 한 잔의 술을 떠올려 본다. 사위는 적막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다라면 또 어떤가. 권혁웅의 시는 혼탁함을 오히려 청아한 목소리로 걸러내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읽혔다.

광풍제월(光風霽月)
죽은 할아버지를 배웅하러 갔다가
할머니는 초승달에 온몸을 다 긁혀서 돌아왔다
십이지장처럼 표면적을 넓힌 할머니,
표정 없는 표정이 십 리에 걸쳤다

머리를 들어낸 자리에서 새어 나오는 한숨은
바람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네
독방 안에서 촘촘하던 월명(月明)이여 폐활량과 병목 구간에서 잠간씩 빛나던 담배와 자차분한 늦은 식사여 시든 젖꽃판이 부르던 원왕생이여

저기 칠성판을 타고 할머니 강을 건너시네  

- '기록 보관소 C구역' 중에서


11040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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