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이야기의 이론과 해석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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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삶을 보라.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면 매일매일 시점이 다른 시트콤을 보게 될 것이다. 태어나고 죽고 다치고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고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을 하거나 이별하며 잠 못 이루고 미친 듯 달리며 행복하게 미소짓고 맛있게 먹으며 슬퍼하고 기뻐하며 화내고 울부짖고 싸우거나 병들고 떠나거나 사라진다. 소설은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가장 방대하고 익숙한 갈래의 문학이다.

이야기는 역사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닿아있다. 서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편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고 듣고 전달한다. 사실이든 허구이든 가리지 않고 이야기가 가진 매력은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 갈래 안에 포섭되어 있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어느 갈래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확대 재생산 된다. 하나의 창작물은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로 재탄생하며 매체가 갖는 특성 때문에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어쨌든 시대를 막론하고 이야기 즉 서사의 힘은 막강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 특히 ‘소설’을 읽는 힘에 대해서는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불이 나게 외웠다가 까먹었던 소설의 이론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물이나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저 재미있게 스토리만 읽어낼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 그렇게 소설을 소비한다. 하지만 조금 더 꼼꼼하게 그리고 천천히 소설을 음미하는 방법은 없을까?

소설에 관한 이론서를 읽는다고 해서 소설이 더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두운 밤에 정원을 산책하는 것보다 밝은 빛을 따라 길을 걷는 것이 더 많은 꽃과 나무와 풀들을 보게 된다. 인물과 갈등이 소설을 읽는 중심 축이다. 물론 인물들이 엮어내는 사건이 본격적인 소설의 흐름을 형성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작가가 창조한 인물의 성격과 핵심 갈등이 소설의 뼈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한 사건들이 배열되고 적절한 시공간 배경과 다양한 장치들이 마련된다. 하나의 완벽한 구조물이 형성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협력해야 하는 것처럼 소설은 각 부분과 요소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하다고 해서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구성과 인물만으로도 인상적이고 깊은 감동을 주는 단편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사건 전개가 이루어지는 데도 지루한 소설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의 재미는 사건의 독특함이나 신선함에서 올 수도 있지만 인물의 성격, 배경에 대한 치밀한 묘사, 유려한 문체, 유기적이고 정교한 구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교향곡과도 같다. 작가의 능력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완전하게 탄생시키는 창조자이거나 조정자로서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이는 능력에 달려 있다.

독자에게 소설을 읽어주는 서술자는 작가와 또 다른 소통자의 역할을 한다. 한 편의 소설이 탄생되고 그것이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작가의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어야 하는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소설들을 읽고 또 읽으며 울고 웃는다. 그렇다면 과연 소설을 읽는 목적이 ‘재미’만을 위한 것일까?

소설을 읽는 과정은 그것을 쓰는 과정을 닮았는데, 실제로 독자는 눈으로 읽고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자처럼 종합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여, 마음속으로 자기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 최시한, <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22쪽

모든 책읽기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소설은 소설 속의 허구적 인물의 삶을 관찰하며 나를 돌아보고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쓰는 과정을 닮아있다는 소설 읽기의 과정에 관한 최시한의 지적은 적확해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을 돌아보고 내 삶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소설을 읽는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교훈과 성찰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 소설은 아니지만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소설을 읽는 것은 어쩌면 나를 읽는 일이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이론을 통해 소설의 즐거움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이 책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효용가치가 있다. 소설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자세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읽고 싶은 독자라면 어려움 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오발탄’, ‘역마’, ‘눈길’ 등 다양한 한국소설을 통해 소설의 기본 구조와 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이해하기 쉽다. 소설을 분석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아닐지 모르지만 충분히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필요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보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길가의 풀꽃과 나무위의 새들을 살펴보듯이 길을 가면서도 충분히 경치를 즐기는 일은 가능하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에게 사건 너머의 소설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의 기본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새겨본다.

독자의 기본 자세. 첫째, 스스로 읽어야 한다. 둘째, 인간과 삶의 모습을 깊이 느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셋째, 작품 자체의 질서와 논리에 충실하게 읽어야 한다. - 최시한, <소설, 어떻게 읽을 것인가>, 24쪽 
 

10062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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