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플라워 (Broken Flowers, 2005) 
미국  |  코미디  |  105 분  |  감독 짐 자무시 (Jim Jarmusch)

<천국보다 낯선> <커피와 담배> <데드 맨>이 모두 좋았기 때문에 짐 자무시가 감독한 영화라면 꼭 보고 싶었다. 그가 감독한 영화라면, 칙칙하고 지저분한 공간도 활력과 암시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브로큰 플라워>, 이 영화는 내내 화면이 11월의 흐린 날처럼 침침하다. (어찌나 침침하던지 영화 보다가 내가 벌써 노안이 왔나 생각했다. ㅠ.ㅠ) 침침한 화면에 음악만이 파고든다. 영화 속 존스턴의 친구 윈스턴이 말한 바로는 ‘이디오피아 음악’이.

왕년의 돈 후안 돈 존스턴 역을 맡은 빌 머레이(Bill Murray) 아저씨는 귀엽고, 존스턴과 윈스턴의 대화는 재미있는데, 옛 애인들을 찾아다니는 존스턴의 여정은 맥이 없다. (사실 그 나이에 옛 애인이 다섯 명뿐이라면 그다지 돈 후안이라고 하기도... -_-a) 젊은 날에는 히피였다가 지금은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 그럴듯한 모델하우스에서 사는 두 번째 애인 도라처럼.

아, 그거였나? 레이서였던 남편과 사별하고 지나치게 과감한 딸을 둔 과감한 엄마 로라(밝고 적극적인 중년 여성?), 그리고 지금은 얌전하게만 보이는 도라(중산층이 된?), 동물과 ‘대화’할 줄 알게 된 카르멘(자연주의자가 된?), 숲속의 빈터에서 약간은 거칠게 사는 듯한 페니(이 사람은 '아픔'을 상징할까?),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한 사람. 젊은 시절 열정의 행방은 이러하다고, 보여주려는 것이었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실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분홍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니 로라의 딸은 분홍색 실내복을 입고 나타나고, 도라는 특이하게도 분홍색 명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카르멘은 분홍색 바지를 입고 일했고, 페니의 집 마당에는 분홍색 엔진을 단 스쿠터가 있고 분홍색 타자기가 버려져 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련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애증일 수도 있다. 존스턴이 들고 간 분홍 꽃다발은 해답을 끌어내 주지는 않고, 옛 애인들 각각의 생활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돈 존스턴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다리를 곁눈질하며 살 수도 있고,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를 아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살 수도 있고, 막 떠나간 애인 셰리와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 사거리에서 그는 어느 방향을 선택할까?

영등포 롯데시네마, 삼색 아트필름 전에서.

덧붙임 : 줄리 델피를 그렇게밖에 못 쓰다니. ㅠ.ㅠ

덧붙임 2 : 빌 머레이의 운동복 차림(이럴 때는 '추리닝 차림'이라고 해야 어울리는데)이 참 귀엽다.
               하하하, 혹시 짐 자무시 감독이 한국 드라마에서 유행한 추리닝 차림을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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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5-11-2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재밌을것같아요!! ^^

숨은아이 2005-11-24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빌 머레이가 옛 애인들 찾는 여행길 외에는 내내 추리닝을 입고 나와요. 어찌나 귀여운지. ^^
투풀님/유머도 사건도 잔잔하게 진행되어서, 밥 먹은 뒤에 보면 좀 졸려요. ㅎㅎㅎ

로드무비 2005-11-2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이 영화도 있었네!^^;;
오늘 <용서받지 못한 자> 보고 왔거든요.

숨은아이 2005-11-2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영화... 보셨군요. 전 캐치온에서 해줄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