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론
에밀 뒤르켐 지음 / 청아출판사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살을 이해하려면 철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고전”이라고 표지에 떡 쓰여 있는데도, 난 막연히 철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설명을 기대했나 보다. 그러나 “사회학적 연구의 고전”답게, 이 책은 자살이란 ‘개인적인 행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현상’이며, 따라서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회적 병리 현상이고, 이에 대한 치유책도 사회 조직에 있음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자살에 대해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탐구할 필요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책을 찾아봐야겠다.)

영문판을 대본으로 삼아 중역하면서도 종종 불어 원서를 참조한 듯 보이는 영문학자의 번역이 나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연구 논문으로 쓰인 책이기에 수많은 표와 수치 해설로 점철된 1부와 2부는 잠 안 올 때 읽기 딱 좋았다. 대체로 지은이의 주장에 동감하긴 하지만, 그리고 지은이의 냉철한 논리에 허를 찔리는 느낌도 들었지만, 가끔은 표를 해석하는 방식이 자의적이란 느낌이 들고, 표의 수치와 본문의 수치가 어긋나기도 해서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사회학 연구 대상이 객관적인 실체여야 하는 이유를 밝힌 뒤, 1부에서는 자살이 개인적 충동이 아니라(개인적 충동이 결정적 계기가 되기는 하겠으나) 바로 ‘객관적인 실체’로서 사회학 연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증명하고자 한다. 흔히 사람을 자살로 몰아가는 것은 어떤 정신적인 병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미쳐서 자살해버렸다는 식으로), 그러나 자살은 정신병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라 우연한 결과다. 정신 이상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으나 모든 자살자가 정신이상자는 아니며, 어떤 사람이 술 취한 상태에서 자살할 가능성도 있으나 그가 술에 취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신적 흥분 상태는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계기는 될 수 있으나 그 원인은 따로 있다.

2부에서는 모든 자살이 동일한 현상이 아니며 개인주의가 극대화한 데서 기인한 자살(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서 죽는다), 집단에 대한 결속감이 지나친 데서 기인한 자살(공동체 차원의 높은 가치를 위해서 죽는다), 사회적 가치관 혼란에 따른 상실감에 기인한 자살로 나누어 볼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우리 사회에서 보자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 분신을 택했던 분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노동운동가의 자살이 두 번째 유형에 속한다 하겠다. 그리고 몇 년 전 기업을 경영하던 이들이나 고위 관료였던 이들이 잇따라 자살했던 현상은 세 번째 유형에 속하겠지? (잠시 애도.) 물론 이것은 자살의 동기가 아니라, 자살 경향을 낳는 사회의 흐름이다. 그러한 자살 경향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소수이며, 그 동기는 본인만이 아는 것이다.

비로소 3부에 이르러서 책이 재미있어진다. 2부에서 주장한 원인들이 어떻게 해서 자살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썼는데, 우선 표가 없어서 살 것 같았다. 혁명기에는 자살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공동체 차원의 높은 가치를 두고 열정에 휩싸이면 자살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동체 차원의 가치를 구현할 만하다고 제시한 것이 “회사”라는 ‘직업공동체’라니, 이 책이 19세기 말에 발표되었다는 점이 실감난다. 만약 에밀 뒤르켐이 요즘에 살아서 이 책을 썼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원시생활을 하는 사회를 “야만 사회” “미개 사회”로 본다거나 여성이 사회적으로 미개한 상태라서 자살률이 낮다고 한 데에서도 역시 19세기 서구 남성 지식인의 시각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21세기에 공동체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조직은 무엇일까. 인간이 자기 자신을 기쁘게 긍정할 수 있도록 가치를 부여할 만한 곳은.


덧붙임 1. 국립국어원이 정리한 인명 표기안에 따르면 지은이의 이름은 “에밀 뒤르켕”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덧붙임 2. 가끔 문장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될 만한 오탈자가 눈에 띄는데, 나는 1997년에 찍은 3쇄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요즘 유통되는 책에서는 이 부분이 고쳐졌나 서점에 확인하러 갔다. 그런데 올해까지 여러 번 쇄를 거듭해서 찍었는데도 잘못된 부분들이 그대로였다!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도록 오탈자를 고치지 않다니. --+

덧붙임 3. 1997년 5월 22일 장백서원에서 산 뒤 고이 꽂아만 두었던 이 책을 꺼내도록 자극해주신 바람구두님, 고맙습니다.

자살론 | 원제 Le Suicide(1897)
에밀 뒤르켐 Emile Durkheim (지은이) | 청아출판사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케 현상 2005-11-0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뒤르크하임이라고도 하더군요 이름을 불어식으로도 읽고 독어식으로 읽기도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기억이 안 나네요^^

조선인 2005-11-0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잘못 배워서 큰일이에요. 뒤르껭이 입에 딱 달라붙어 있어요.

릴케 현상 2005-11-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음할 때는 뒤르껭이 맞잖나요^^ 표기법의 문제죠.
참 언젠가 변정수씨 글을 보니 한국의 식자들이 곧잘 주장하는 '원어 발음 대로'라는 게 그야말로 한국식 사고라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뒤르껭'이라고 소리가 나니까 그렇게 써야 한다고 하면서 외래어표기법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실제로 프랑스 사람들 입장에서는 '뒤르껭'과 '뒤르켕'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몰겠지만=3=3=3

숨은아이 2005-11-0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뒤르크하임이라고도 한다고요? 아마 그가 로렌 지방 태생이라 그런 모양이네요. 알사스와 로렌, 독일이랑 프랑스랑 서로 뺏고 빼앗겼던 지방이고, 독일 계통 주민이 많이 사는 동네라면서요.
조선인님/그냥 뒤르껭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카뮈"라고 하는 것보다 "까뮈"라 하는 쪽이 더 발음하긴 편하잖아요. 외국어 이름은 표기랑 발음을 통일하기 어려워요. -.-
다시 산책님/맞아요, 표기법의 문제죠. 근데 프랑스 사람들이 뒤르껭과 뒤르켕을 구별하지 못한다고요? 흐음, 프랑스어의 발음 체계가 가장 정교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외래어 표기법이란 한국 사람들끼리 표기의 편의를 위해 정한 거지만, 왜 경음 표기를 피하도록 정했는지 모르겠어요.

조선인 2005-11-0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연구원에서는 경음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원래 우리 말에 경음이 이렇게 많지 않은데, 전쟁을 겪으며 사람들이 퍽퍽해진 탓이라나. 문제는 경음강화가 시작된 전쟁이 임진왜란부터라고 하니, 과연 6.25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숨은아이 2005-11-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경음이 좀 속되게 느껴지나? 그런 경우도 있지만...